더 크라이
헬렌 피츠제럴드 지음, 최설희 옮김 / 황금시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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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조애나와 그의 애인 앨리스터, 그리고 태어난 지 9주 된 그들의 아이 노아가 글래스고에서 멜버른으로 가기 위해 공항 보안검색대에 선 순간부터 위기에 봉착했다. 조애나의 중이염 항생제와 노아의 해열진통제가 기내에 반입 가능한 액체 용량 규정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부랴부랴 빈 병을 사서 나눠 담고 비행기에 올랐는데, 21시간의 비행 내내 노아가 울음을 그치질 않았다. 조애나가 기저귀도 만져보고 젖도 물려보며 이런저런 일을 다 해봤지만 노아는 엄마를 비롯해 함께 비행기에 탄 다른 승객 모두를 짜증 나게 했다. 자느라 정신이 없던 아이 아빠 앨리스터를 제외하고 말이다.

 

이런 어려움 끝에 멜버른에 겨우 도착한 그들은 빌린 오두막에 짐을 풀고 앨리스터의 어머니를 뵈러 향한다. 그러다 작은 가게 앞에 차를 세워두고 두 사람이 시간차를 두고 가게에 들어갔다 나온 잠깐 사이에 뒷좌석에 있던 노아가 사라졌다.

 

 

 

그들이 갓난아기를 데리고 장거리 비행을 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앨리스터의 전 부인 알렉산드라가 데려간 딸 클로이를 다시 데리고 오기 위해서였다. 조애나와 앨리스터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알렉산드라가 말도 없이 딸을 데리고 호주로 가버린 게 벌써 4년 전이었다. 앨리스터는 그 시간 동안 클로이를 찾아가지 않았지만, 최근에 알렉산드라가 클로이를 태우고 가다가 음주단속에 걸려 체포됐기 때문에 아이를 자신이 키워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었다.

조애나는 앨리스터의 그런 의견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갓 태어난 자신의 아이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데 10대 소녀를, 그것도 자기 아빠와 관계를 하던 걸 목격한 아이와 함께 살지도 모른다는 게 부담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클로이의 양육권 문제를 시작하기도 전에 갓난아기를 잃어버렸으니 그들은 혼란에 빠졌고, 바로 경찰이 투입되어 앨리스터와 조애나의 증언을 토대로 아기를 유괴했을 만한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사건이 이슈가 되어 기자들은 연일 그들을 따라다녔고 자원봉사단과 SNS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책 소개를 통해 소설 내용이 아기 유괴 사건을 다룬 스릴러인 줄 알았지만, 중요한 비밀은 극 초반에 밝혀졌다. 사건이 벌어지고 곧바로 거짓말이 시작되어 모두를 속이게 되면서 자신마저 속이는 것 같아서 나중엔 정신까지 이상해지는 혼란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 비밀이 드러나고 뒤이어 누군가가 이 행동을 하게 됐을 때부터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저따위 생각을 하고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질 않았다. 그건 부모로서의 행동이 아닌 자기 자신만을 지키려는 이기적인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 사람은 부모가 돼선 안 되는 사람이었다. 정말이지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라 정말 싫었다.

하지만 그 사람의 행동은 점점 화를 불러일으키면서 마지막엔 또 다른 비밀이 밝혀져 큰 충격을 줬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이 그래서 있는 거였다.

 

소설은 조애나의 시점과 알렉산드라의 시점을 오가면서 진행됐다. 노아를 잃은 슬픔에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자신을 자책하는 조애나와 앨리스터에게 클로이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애를 쓰지만 말 안 듣는 딸을 제어하기가 좀처럼 어려운 알렉산드라였다.

초반엔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는 두 여자의 입장이라 생각했지만, 읽다 보니 아이를 키우는 두 엄마의 서로 다른 모습은 어느새 서로를 향한 공감으로 이어졌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은 나쁜 감정보다는 입 밖에 낼 수는 없어도 서로를 이해하고 연민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때로는 이런 관계가 아니었다면 친구가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앨리스터가 개차반이라는 게 밝혀지고 난 뒤에 차마 표현할 수는 없지만 공감대를 형성한 게 아닌가 싶다.

 

읽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조애나의 상태 때문이기도 하고 초반에 비밀이 밝혀진 마당에 끝엔 어떻게 될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결말에 이르러 몰랐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안 그래도 답답했었는데 돌덩이 하나가 더 얹어진 기분이었다. 그걸 내내 숨기고 있으면서 그런 파렴치한 짓을 했다니 진짜 인간이 맞나 싶었다.

결국 어떤 방법으로든 처벌을 받긴 했지만 결말은 속이 시원하지 않았다. 그 비밀을 말했어야 했는데 왜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그 사람의 마음을 너무 무겁게 했나 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들었던 생각은 역시 아이는 아무나 키우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말 못 하는 갓난아기는 물론 의사 표현이 너무나 확실해서 도무지 통제할 수 없는 10대 아이까지 직접 겪은 게 아닌 글만 읽었을 뿐인데도 힘들어서 진이 빠졌다.

그래서인지 부모가 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아이를 낳으면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소설에 등장한 두 엄마와 한 아빠의 모습을 보니 더욱 확신이 들었다. 완벽히 준비가 된 사람들만이 아기를 낳고 키워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것 같다.

 

결말까지 답답하게 만들기는 했어도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책이었다.

"누가 우리 애를 훔쳐갔어요!" 그렇게 그녀는 이 사고를 고스란히 넘겨주었다. 자, 세상아, 이제 이건 네 거야. 가져가. - P106

그녀는 자백하고 싶었다. 죽고 싶었다. 딱 그 순서대로 하고 싶었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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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는 곳으로 오늘의 젊은 작가 16
최진영 지음 / 민음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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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라에서 기괴한 바이러스가 퍼졌다. 백신을 만들면 진화한 바이러스가 창궐하길 반복했다. 감염 경로조차 알 수 없어서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뉴스에서 그렇게 떠들어댔어도 사람들은 먼 나라의 이야기라며 괜찮아질 거라 믿었다.

 

류는 11살 된 자신의 아이, 해림이가 갑자기 죽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학교에서 병원으로 이송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사망했다. 류는 어린 자식을 앞세운 절망에 남편 단, 해림보다 어린 해민과 함께 한국을 떠나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엄마와 아빠가 차례로 돌아가신 뒤, 도리에게 남은 사람은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여동생 미소뿐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도리에게 미소를 부탁했기 때문에 그녀는 반드시 살아남아 동생을 지켜야 했다. 도리는 동생을 데리고 터무니없이 비싼 배 티켓을 훔쳐 칭다오로 달아났다가 울란우데로 향한다.

바이러스가 퍼질 때쯤 지나의 아빠는 사업을 몽땅 정리하고 탑차 두 대에 생필품을 가득 채워 가족, 친척들과 러시아로 향했다. 그들 중 유일하게 피가 섞이지 않은 건지는 지나가 함께 가야 한다고 우겼기 때문에 데리고 갈 수밖에 없던 아이였다. 어느 날 밤, 머무르기로 한 마을에서 지나는 도리와 미소를 만난다.

 

 

 

종종 여러 책, 영화를 통해 접했던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삼고 있었다. 원인을 몰라 피할 수조차 없는 바이러스로 사람들은 당연히 사람다움을 잃어버렸다. 강도나 방화 정도는 약과였고, 인신매매나 살인을 서슴지 않았다. 더 심한 것은 어린아이의 간을 먹으면 살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유언비어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 좁아터진 한국 땅을 떠나 대륙으로 향한 사람들은 러시아에서 서로를 만나게 된다. 류는 기도소에서 만난 같은 한국인 도리에게 잠깐 동안 해민을 맡겼었고, 도리와 미소 자매를 발견한 지나는 아빠에게 그들을 데리고 가 달라고 부탁했다. 한국에서 이웃에 살았던 건지를 데려가자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말이 안 통하고 글조차 읽을 수 없는 러시아에서 만난 한국 사람이기에 서로를 보듬어주며 사람답게 대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이런 상황일 때야말로 사람들의 본성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아무리 같은 나라 사람이라도 피가 섞인 가족이 아니면 낯선 사람일 뿐이었고, 언제든지 뒤통수를 치고 도망갈 사람이라 여겼다.

무장 단체가 지나 일가 무리를 습격해 친척들 중 한 남자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이때다 싶어 도리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폭행했다. 걱정하는 지나가 도리 자매의 곁에 다가가지도 못하게 했다. 여기까지만 했더라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이 끔찍한 상황에 더러운 성욕은 남아있었다. 여태까지 자신이 받아냈던 시선의 의미를 도리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쩜 그렇게 짐승만도 못하게 구는 인간들이 있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더 어이가 없던 반응은 함께 지내게 해줬으니 한 번 줄 수도 있지 않았느냐는 말이었다. 너무 끔찍하고 역겨웠다. 미친 바이러스 때문에 세상이 미쳐돌아가는 게 아닌 그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미쳐가고 있었다.

도리는 당연히 동생과 도망쳤고, 건지마저 쫓겨나게 됐다. 마음을 내준 도리와 미소, 건지를 잃은 지나는 왠지 체념하게 된 것처럼 보였다.

 

삶을 산다고 볼 수 없는, 그저 하루하루 버텨가는 삶에서 희망이 되어준 것은 사랑이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좋은 사람이기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마음, 곁에 있어 몰랐다가 어느새 깨닫게 된 사랑, 서로를 지켜주고자 했던 자매간의 사랑과 자식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었다. 사랑은 살아야 한다는 의지를 다지게 했고, 이렇게라도 살다 보면 언젠가는 헤어진 서로를 만날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했다. 미움만 남아 사람들을 다 악으로 분류하는 사람들보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과 따뜻했던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이 끔찍한 삶을 견뎌낼 수 있었다.

 

지옥에도 사랑은 있었기에 삶은 희망으로 충만했다. 비극 속에서 말하는 사랑이라 너무 따뜻하고 때로는 애틋해서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게 바로 사람다운 사람의 모습이었다.

 

하루하루 살아남는 게 기적이면서도 기적은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 기적은 없다. 기적이 정말 있다면 등장할 기회를 놓쳤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 끝내 몇몇이 살아남는다고 치자. 그따위를 기적이라 부를 수 있을까? - P56

세상이 지옥이어서 우리가 아무리 선하려 해도, 이렇게 살아 있는 것만으로 우리는 이미 악마야. 함께 있어야 해. 한순간도 쉬지 않고 서로를 보고 만지고 노래하며 사람이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 해.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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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문학 :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 - 미술사 결정적 순간에서 창조의 비밀을 배우다
김태진 지음 / 카시오페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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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미술의 형성: 르네상스에서 바로크 전반기까지

 

15세기 피렌체에서 시작된 고전미술의 "Classics"라는 용어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를 모델로 삼고 계승, 발전시킨 결과물을 일컫는다고 한다. 당연히 고대의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가 미술의 핵심 주제였다. 교회가 가장 큰 고객이었다고 하는데 그리스 신들의 그림만 그려댔다고 생각하면 상당히 당혹스럽다.

 

 

"마사초"라는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 그림에는 원근법이라는 게 적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마사초는 그림을 그리던 초창기에는 다른 화가들처럼 원근법 따위 없는 그림을 그렸으나, 르네상스 시대를 연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를 만나게 된 이후 원근법에 눈을 뜨게 됐다고 한다. 조각가 경력을 가진 건축가라니 예사롭지 않은 감각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마사초는 서양미술 최초로 원근법을 제대로 구현한 작가였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 그래서 그에 이어 원근법으로 이름을 알린 화가는 "파올로 우첼로"라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사초만큼의 천재성이 없어 원근법이 반영된 그림에 약간의 어색함이 있었다.

 

 

너무나 유명한 그림인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그림에 대해 말하는 부분을 통해 신체 비율의 어색함을 이제야 느끼게 됐다. 얼굴의 묘한 각도, 심하게 축 처진 좁은 어깨, 다소 길이가 안 맞고 굵기도 뭔가 이상한 양팔 등 그림을 하나하나 자세히 보니 인간의 신체를 제대로 그려낸 작품은 아니었다. 분위기만으로 아름다움을 주는 그림이라 여태 자세히 살펴볼 생각을 하지 않아서 몰랐던 것 같다.

 

이렇게 신체의 어색함에 대해 말하고 난 뒤에 자연히 따라온 화가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였다. 예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지식에 천재성을 보인 그는 밀라노의 지배자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총애를 받아 당시 사람의 몸을 해부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던 교회의 눈을 피해 여러 구의 시신을 해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다 빈치보다 23살 어린 14살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피렌체의 지배자 로렌초 데 메디치의 주관으로 가문에서 벌어진 비밀 해부학 강의 자리를 통해 처음으로 그것에 깊이 빠지게 된다.

 

두 사람 모두 천재적인 예술가지만, 작품 스타일은 상당히 달랐다고 한다. 다 빈치는 자신의 해부학 지식을 은은하게 드러냈고,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통해 신체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절제와 과시라는 상반된 스타일이기에 각기 다른 매력이 있다.

 

 

바로크 시대를 연 천재 화가 "카라바조"는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의 명암법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책에 소개된 이전의 그림들을 보다가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니 더욱 인상적이었다. 밝고 화려한 색채의 그림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던 어두운 부분이 주는 강렬한 메시지가 느껴진다.

카라바조의 명암법인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스타일과 거기서 파생된 테네브리즘(Tenebrism) 스타일의 그림도 유행이었다고 한다. 카라바조의 스타일을 가장 열렬하게 받아들인 스페인에서는 "후세페 데 리베라"와 프랑스 바로크의 대표자 "조르주 드 라 투르"가 유명하고, 네덜란드에서 빛의 마술사라 불린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는 <진주 귀고리 소녀>를 남겼다.

그리고 너무나 유명한 빛과 어둠의 화가라는 별명을 지닌 "렘브란트 판 레인"을 통해 명암법이 비로소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단다.

 

 

 

 

고전미술의 해체: 바로크 후반기에서 인상주의까지

 

 

1985년, 미술 전문가들이 뽑은 가장 위대한 그림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었다고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선을 빼앗기는 많은 지점이 있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그림을 가까이 볼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림을 정교하게만 그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조금 충격으로 다가왔다. 잘 마르지 않아 그림을 완성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유화의 특성 때문에 마르기 전에 그림을 완성하는 알라 프리마(Alla Prima)를 연마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정통으로 그린 유화와 알라 프리마로 그린 유화의 두 개의 모습에서 확연히 다른 점을 찾을 수 있었다. 너무나 잘 그린 그림이지만 움직이지 않는 "조지 스텁스"의 개와는 달리 "마네"가 그린 개는 개털의 결이 느껴지는 생생함이 돋보였다.

 

 

선 중심의 회화는 아이작 뉴턴을 통해 색채 중심의 회화로 변모한다. 그리고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색채 연구가 미술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로 인해 정석적인 그림 스타일보다 작가의 시선을 중점으로 다양한 그림이 그려진다. 밝게 빛나는 듯한 "모네"의 그림이 그래서 더 아름답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현대미술의 개화: 세잔에서 현대미술 전반까지

 

 

인상주의 이후의 현대미술은 이제 그림은 눈으로 본 것을 그대로 옮기는 그림이 아닌 작가의 표현에 따라 그려지게 된다. "빈센트 반 고흐"의 <삼나무가 있는 밀밭>은 사실적인 풍경을 그린 게 아니기 때문에 왠지 더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명한 그림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초상 1>은 화려한 금색 빛이 시선을 잡아끌며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표현주의 이후엔 추상주의가 이어졌다. 무얼 그린 건지 알 수 없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변화하는 그림을 보다 보니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바실리 칸딘스키"의 <집들이 있는 풍경>에서 책을 다른 각도로 봤을 때 깨닫게 된 그림 제목이나 "피에트 몬드리안"의 나무 그림이 추상화로 변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정교하게 표현된 조각이 예술적이라 인정받는 건 당연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생각지도 못한 물건을 가지고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마냥 그림만 봤을 때와 달리 시대의 흐름을 통해 그림에 다양한 기법이 사용되어 변화하는 과정을 보는 게 흥미로웠다. 보이지 않았던 미술의 이면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보게 되고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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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그라운드
S.L. 그레이 지음, 배지은 옮김 / 검은숲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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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시작된 아오바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면서 전 세계 사람들이 혼란을 겪는 와중에 종말에 대비한 몇 가족들은 150만 달러를 투자해 사들인 메인 주의 생존 콘도로 향한다. 지하로 뚫린 거대한 아파트처럼 생긴 성소는 각 층마다 2세대가 거주할 수 있고, 공기 필터나 와이파이, TV 등의 편리 시설을 비롯해 1년 동안 그 안에서 지낼 수 있을 정도의 음식과 물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락실과 수영장, 체육관 등이 딸려있어 지루하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생존 콘도를 설계한 그레그 풀러를 포함해 강압적인 아빠와 종교적 믿음이 강한 엄마, 쌍둥이 남매로 이루어진 거스리 가족, 엄마와 한국인 아빠, 게임을 좋아하는 재이 가족, 어린 딸에게 무심한 아빠 타이슨과 얼떨결에 이곳에 따라오게 된 보모 케이트,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매덕스 부부, 그리고 도착했을 때부터 아픈 엄마로 인해 감금된 단하우저 가족이 공동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성소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했던 윌 부셰가 며칠 동안 그레그를 도와주러 왔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성소는 처음부터 잡음이 많았고 어떤 사람들은 상대에게 호의를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초면부터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다 성소의 설계자인 그레그 풀러가 시체로 발견되면서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고, 얼마 뒤에는 그곳에 갇히게 됐다는 걸 알게 된다.

 

 

 

지구 종말이 갑자기 찾아와서 전 세계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는 게 아닌 피하면 살 수 있을 정도의 바이러스가 퍼진다는 걸 알게 된다면 누구나 셀프 감금을 하게 될 것이다. 집안에 먹을 것 등을 쌓아두고 뉴스를 주시하면서 언제쯤 소강상태에 접어들지 기다리는 일 외엔 할 수 없다.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르게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핵폭탄이 터져도 안전한 성소에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당연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 성소가 계획된 것과 다르다면, 함께 지내고 있는 사람들 중 살인자가 있다면, 더욱이 그런 불안한 상황에서 바깥에 나갈 수조차 없게 된다면 사람들은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소설은 정말 안전하다고 여겼던 성소에 다양한 가족들이 모여 얼마간 지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 만큼 성소에도 온갖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작은 사회라고 할 수 있는 그곳에 인종차별주의자가 있었고, 자신이 권력을 차지하려고만 드는 사람, 모든 이들을 삐딱하게만 보는 사람과 의심만 하는 사람, 뭔가 비밀이 있는 것 같은 사람이 있었다.

좋은 사람들도 존재했지만 처음 느낀 사람들의 이미지는 소설이 진행되면서 점점 알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레그 풀러 사망 이후 다른 사람들이 차례로 하나씩 죽은 채 발견되면서 모든 이들을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바깥과의 연결이 끊어지고 원치 않게 감금되면서 성소 내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미쳐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극한의 상황에서만 드러나는 사람들의 본성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소재의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선하기보다는 악한 것 같다고 느껴진다. 생존이라는 중대한 문제가 달려있어서 예민해질 수 있다는 건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죽이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당장 자신에게 해를 끼친 누군가에게 악감정을 가질 수는 있어도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사람에 대해 살아있어 봤자 음식, 물이나 축내지 뭐 하겠냐는 식으로 생각하는 건 정말 무시무시한 논리였다.

그래서인지 마지막에 살인자의 실체가 드러났을 때 소름이 끼쳤다.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인물이 살인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건 그 사실을 알고서도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던 누군가의 모습이었다. 그런 행동을 이해한 것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다는 걸 납득한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아무튼 성소 안이나 밖이나 끔찍한 건 마찬가지였다.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스릴러라 읽는 동안 점점 숨이 막혀왔다. 입주 직후부터 인터넷이 안 되기 시작하고 나중엔 TV도 나오지 않고 물도 제대로 마실 수 없게 되어 악취가 풍기면서 정말 답답해졌다. 그리고 빠져나갈 수 없는 공간에 살인자와 함께 있다는 것 또한 두려움을 줬다. 읽는 내내 온갖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재미있게 읽었다.

소재와 내용이 흥미롭고 반전도 있어서 영화로 만들기 딱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거주자들 중 몇몇 사이에 근본적으로 이상한 분위기가 깔려 있다는 기분과 부합하는 말이었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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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자락 도서관 팝콘북
펠리시티 해이스 매코이 지음, 이순미 옮김 / 서울문화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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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3년 전, 남편 말콤이 직장 동료이자 가족의 친구였던 여자와 부부 침대에서 뒹구는 모습을 본 한나는 그날로 런던 집을 나와 아일랜드의 고향 시골 마을 핀파란으로 돌아왔다. 10대였던 딸 재즈는 영문도 모른 채 엄마의 손에 이끌려 시골로 온 걸 못마땅해 했지만, 차츰 적응을 해나갔고 이제는 성인이 되어 항공사에서 일하며 쉬는 날마다 집에 왔다.

딸이 떠나고 친정 엄마 메리와 남은 한나는 예전부터 엄마와 잘 맞지 않는 성격이었는데, 이제는 도무지 엄마를 견디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나의 나이도 이제 50살이 넘었으니 고모할머니가 남겨준 다 쓰러져가는 집을 수리해 엄마에게서 벗어나고자 한다.

 

한나는 전남편 말콤에게 위자료를 하나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집 수리 비용 마련을 위해 이제서야 말콤에게 그 얘기를 꺼내지만, 그는 돈을 줄 생각이 전혀 없다며 치사하게 군다. 어쩔 수 없이 신용협동조합에서 대출을 받아 돈을 마련하고, 괴짜 같지만 정말 일을 잘하는 건축업자 퓨리가 집 수리를 맡는다.

그런데 한나가 사서로 일하고 있는 도서관이 폐관될 예정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

 

 

 

바다가 가까운 절벽의 소박한 시골 마을은 건너 건너 다 아는 사람들만 살고 있었다. 그래서 한나는 이혼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 소문이 두려워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한나를 딱딱하고 차가운 사람이라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일주일에 3번 도서관에서 일하는 코너는 한나가 조금 무뚝뚝해 보여도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고, 또 인간적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집 수리를 해주는 퓨리 역시 소문에 연연하지 않고 그녀를 대했고, 나중에 알게 된 브라이언도 그녀와 좋은 친구가 됐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조금씩 다져지며 혼자 살게 될 집을 수리하던 한나 앞에 해고라는 큰 문제가 나타난다. 옆 지역은 유명한 사람이 책에서 언급해 관광지로 거듭나 주 예산이 그곳 개발에 쓰일 예정이라고 했다. 그렇게 되면 한나의 관리하에 있던 도서는 새로 지을 복합 건물로 옮겨질 것이고 발전된 기술 덕에 더 이상 인력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건 한나만의 문제가 아닌 그 마을 사람들 모두의 문제였다. 성인이 되어 작은 시골 마을을 떠날 수 있었지만, 고향에 남기로 하고 이곳을 일구기 위해 가게를 열거나 관광 관련 사업을 추진 중이던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이 모두 물거품이 된다는 뜻이었다. 지금도 일이 그리 잘 풀리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도서관의 한나와 코너, 그리고 아이디어를 제공한 수녀원의 미카엘 수녀님을 중심으로 노인들과 젊은이들이 의기투합해 이곳을 지켜내고 발전시킬 제안서를 짜내기 시작했다.

 

어디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란 10대 아이들은 성인이 되면 도시로 나가버려 그곳엔 나이 많은 사람들만 남아 점점 쇠퇴한다. 어떤 매체를 통해 유명세를 타지 않는 이상 잊혀질 곳이었고, 그곳에 할당될 예산 또한 없는 게 당연했다. 그렇게 되면 겨우 남아있던 젊은 사람들은 기회조차 없어 도시로 떠나기 마련이었다.

이래서 시골엔 노인들만 남게 되고 기술 발전도 더뎌 당연히 받아야 할 혜택도 받기 어려워지는 것이었다.

 

고향 마을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관계에 관한 내용이기도 했다. 이혼녀라는 꼬리표 때문에 사람들을 피했던 한나와 그런 딸을 못마땅해 했던 한나의 엄마와의 관계가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고, 한나는 사람들과 사귀며 이전과는 다른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때로 다소 산만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한나와 코너를 비롯해 다른 등장인물의 시점이 불쑥 튀어나오고 여러 사건이 한꺼번에 진행되어 중반 이후 결합되기까지 집중하기가 조금 어려웠다.

그래도 소소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괜찮았던 소설이었다.

 

"이상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뭉치니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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