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션 일레븐 스토리콜렉터 45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지음, 한정아 옮김 / 북로드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조지아공화국에서 강력한 신종 독감이 유행한다는 뉴스가 보도된 다음 날, 지반은 의사인 친구의 전화를 받는다. 친구는 모스크바에서 출발해 캐나다로 들어온 비행기를 타고 온 환자가 독감 증세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고 했다. 오전에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12명의 환자가 병원을 찾았으며, 오전부터 한밤중인 지금까지 독감으로 입원한 환자가 200명이 넘고 그중 15명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조지아 독감이라고 불리는 이 증세는 너무나도 짧은 잠복기와 99.9%의 치사율로 전 세계 대다수의 사람들을 사망에 이르게 해 세상은 순식간에 멸망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20년 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공연을 하는 유랑극단은 2년 전 임신한 동료 부부가 남기로 했던 마을을 다시 찾았다. 유랑극단의 커스틴은 마을 사람들에게 물으며 친구를 찾았지만 그들이 떠났다는 답만 듣는다. 하지만 마을 한구석에 친구 부부의 무덤이 아닌 묘비만 남아있었다.

의문을 품고 마을에서 셰익스피어의 공연을 끝낸 직후, 정리를 하는 그들 앞에 예언자라 불리는 남자가 나타나 극단의 16살짜리 소녀를 두고 가라고 한다. 그 제안이 불쾌했던 극단 사람들은 한밤중에 그곳을 떠나 소문만 무성한 문명 박물관이 있는 공항으로 향한다. 

 

 

 

소설은 조지아 독감 환자 보균자가 비행기를 탄 당일, 토론토에서 상영되는 연극 장면으로 시작됐다. 리어 왕 역할을 맡은 유명 영화배우 아서가 공연 도중 무대에서 심장을 움켜쥐고 쓰러지자, 그 모습을 본 응급구조사 교육을 받은 지반이 무대 위로 올라가 심폐소생술을 실시한다. 하지만 아서는 이내 사망하고, 지반은 곁에서 울고 있던 어린 소녀 커스틴을 달래주게 된다.

20년 후, 커스틴은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아 유랑극단을 가족으로 여기며 살고 있었다. 아서의 옛 친구 클라크는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가 목적지가 아닌 어느 공항에 착륙한 비행기로 인해 많은 사람들과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다.

이들은 아서와 그의 첫 아내 미란다가 그린 만화책 "스테이션 일레븐"으로 조금씩 연결되어 있었다.

 

문명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나이 든 사람들은 마을을 꾸려 자급자족으로 생활하며 많은 사람들과 규칙을 지키며 살았고, 또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에게 이전의 시대를 가르치기도 했다. 핸드폰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통화를 했다는 것과 책이라는 게 뭔지, 나라와 국경이 뭔지 등 온갖 것들을 가르쳤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전화, 인터넷 등으로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부터가 그랬는데, 조지아 독감 이후에 태어난 20세 미만의 아이들은 그런 것들이 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었다. 그들에겐 지금 살고 있는 시대가 문명이었다.

그래서인지 이전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사무치는 그리움이 느껴졌다. 마지막 날의 아침 식사, 커피와 신문, 마지막 통화 같은 것 등이었다. 그 모든 게 마지막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랬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지막을 그리워하긴 했지만 그것에만 매달리지는 않았다. 그리움은 마음속에 묻어두고 가끔씩 꺼내보며 현재의 삶을 살았다. 이런 상황에도 사람은 어떻게든 살게 되기 마련이었다.

 

조지아 독감 이전의 세상과 20년 후의 현재를 오가며 진행되는 소설은 종말이라는 거대한 절망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는데도 비슷한 배경의 다른 소설들처럼 건조하거나 끔찍하게 표현되지 않았다. 믿기지 않는 상황으로 당장 생존 앞에 내던져졌어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묵묵히 삶의 길을 걸었고, 낯선 타인을 악의 없이 선한 마음으로 대했다. 물론 예언자같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며 어린 여자애들을 아내로 삼으려는 미친 자가 있긴 했지만, 그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가 아닌 선한 사람들의 시점으로 진행된 소설이라 평화롭고 때로는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절망의 끝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미래를 향한 희망적인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었다. 희망을 갖는다는 게 사람들에게, 혹은 이 상황에 얼마나 큰 기적을 일으키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랬기에 예언자 무리들과는 다르게 커스틴, 클라크, 지반 등은 새로운 문명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것이었다.

 

읽는 내내 소설에 푹 빠져서 시야가 좁아졌었던 것 같다. 상황에 대한 묘사가 리얼해서 책을 읽다가 잠깐 고개를 들면 왠지 멍해졌었다. 그만큼 소설이 주는 매력이 와닿았다. 절망적이지 않은,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한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신선함과 인간다운 선함, 그리고 때때로 등장한 그리움이 좋았던 책이었다.

기억 속의 인생이란 일련의 사진들과 끊어지는 단편 영화들의 모음이었다. - P378

인간이 거의 모두 사라진 세상의 아름다움. 타인이 지옥이라면, 사람이 거의 없는 세상은 뭘까? 머지않아 인류가 멸종되고 말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도 커스틴은 슬프기보다는 평화로운 기분이 들었다. - P201

부서지고 무너지고 낡아버린 주변 풍경 속에도 아름다움이 있었다. 햇빛이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진입로의 자갈 사이로 튀어 올라온 꽃들을 비췄고, 앞 베란다는 이끼가 잔뜩 깔려 밝은 초록색으로 변했으며, 흰 꽃이 핀 관목에는 나비들이 날아들었다. - P40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lobe00 2019-12-23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스틴이 인터뷰어에게 냉장고에 대해서 묻는 부분도 찡~하더라구요...그래..빛이 있었지.

syunni1225 2020-01-08 15:54   좋아요 0 | URL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이렇게 서정적이고 아름답게 표현한 책은 처음이었습니다.
중간중간 울컥하고 찡해지는 부분이 있었죠.ㅠㅠ
 
소포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정신과 의사 엠마는 학회가 끝나고 집이 아닌 협회 측에서 제공해준 호텔로 향한다. 임신 5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르게 시작한 아기방 공사로 정신없는 집에서 출장 간 남편 필리프 없이 혼자 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엠마는 씻고 나오면서 욕실 유리에 수증기로 쓴 글을 발견하고 불안해하다가 비명 소리를 들었다는 다른 투숙객의 방문을 받는다. 이후 갑자기 곯아떨어진 엠마는 몇 분 후 핸드폰이 울려 잠에서 깨어 체크인할 건지 묻는 호텔 프런트의 전화를 받는다. 호텔에 있는데 그런 전화를 받은 것에 놀라 침대에서 일어난 그녀는 옆에 서 있는 남자의 기척과 주삿바늘이 자신을 찌르는 것을 느끼곤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된다.

그 후 엠마는 여자들을 살해하고 머리카락을 미는 연쇄살인범 "이발사"에게 강간당한 유일한 생존자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찰이나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

 

6개월 뒤, 엠마는 폐쇄병동에 갇혀있다가 아빠의 동료였고 자신과는 친한 친구인 콘라트 변호사의 사무실을 방문해 3주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이발사 사건 이후 집 밖에 나갈 수 없던 그녀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들을 택배로 주문하는데, 안면을 튼 우편배달부가 이웃에 사는 A. 팔란트라는 사람의 소포를 맡기고 갔다. 엠마는 이 소포로 인해 하루 동안 온갖 혼란스러운 일을 겪는다.

 

 

 

연쇄살인범에게 강간을 당하고 아기까지 유산되었지만 유일하게 생존한 엠마를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패턴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녀가 당한 일을 망상 취급했다. 이러니 억울해서 제정신을 가지고 살 수 있을까 싶다. 그래서 엠마는 온갖 공포증을 갖게 됐고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날 우편배달부가 맡긴 소포 때문에 혼란에 빠졌다가 기절을 해버렸고, 그 이후엔 키우는 개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남편은 세미나 때문에 집에 올 수 없었기에 개를 구하기 위해서는 엠마가 밖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됐다.

 

유일한 생존자와 소포가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엠마가 밖에 나가기 전에 밝혀지고 그게 어마어마한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

그 과정에서 엠마가 집에 혼자 있는데 벨 소리를 듣고 이웃의 소포가 사라졌다 나타났다 한다. 그리고 동물병원 수의사에게서 남편을 호텔에서 봤다는 얘기를 듣고, 소포 주인인 팔란트의 집에 몰래 들어갔다가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오기도 한다. 엠마가 약을 복용하고 있었기에 그게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진짜로 들은 게 맞는지 도무지 확신할 수 없었다. 거기다 그녀가 중간중간 필름이 끊기듯 정신을 잃어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도 너무 혼란스러웠다. 주인공 엠마가 혼돈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100%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팔란트의 방문을 받고, 함께 그의 집으로 간 후에는 더욱 놀랍고 끔찍한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읽는 내내 진실과 술래잡기를 하는 것 같았다. 이게 진짜가 맞나 싶었는데 아니라고 밝혀지고, 다른 것은 진짜인가 싶었는데 더욱 커다란 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라 뒤통수를 여러 번 세게 맞았다.

결국 마지막에 어떻게 된 것인지 모두 밝혀진 이후에는 엠마가 너무나도 가여웠다. 신경질적인 아빠는 옷장 유령에 대해 말하는 어린 엠마에게 소리만 질렀다. 성인이 되어서는 미친 연쇄살인범에게 끔찍한 일을 당했는데 그녀를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이 상황에 친구 실비아는 약을 잘못 줬다며 그녀에게 막말을 했다. 근데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게 놀랍기만 했다. 엠마의 인생 자체가 너무 안타까웠다.

스포일러라서 말은 못 하겠지만 뒤통수도 잡고 뒷목도 잡게 만들었다. 어떻게 이런 뭐 같은 상황이 다 있나 싶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짜증도 나고 안타깝긴 했지만 읽는 동안에는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주인공을 확실하게 믿지 못하겠는데 그녀가 겪는 상황이 너무 이상하고 또 궁금하기도 해서 정말 불안해하면서 읽었다. 무서운데 궁금하게 만드는, 딱 그런 종류의 책이었다.

그리고 심리 묘사도 탁월했다. 엠마를 믿을 수는 없어도 감정을 이입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녀가 겪는 혼란스럽고 기이한 경험을 함께 체험한 듯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는 혼란에 빠졌다.(그러다 마지막에 거하게 뒤통수 맞고..)

아무튼 표지에 쓰여있는 것처럼 대단한 악몽 같은 책이었다. 좋은 의미로 말이다.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소설은 세 번째인데 이 책이 가장 가독성도 좋고 재미도 있었다. 책 디자인도 제목에 딱 어울려서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 가죽을 벗기는 자. 잔인한 말이지만 연쇄살인범에게는 ‘이발사‘보다 훨씬 더 적합한 별칭이었다. 놈은 희생자의 머리를 ‘이발‘한 게 아니라 삶을 벗겨냈으니까. - P82

엠마는 자기 자신이 가장 두려웠다. 엠마가 주목을 끌기 위해서 강간 사건을 지어냈다고 주장하는 경찰 심리학자, 엠마에게 쪽지를 준 적이 없다고 말하는 요르고, 그들의 말이 모두 옳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 P18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0세 생일에 양로원 창문을 넘어 갱단의 돈다발이 든 가방을 훔쳐서 무사히(?) 도망친 알란은 현재 발리 호텔에서 율리우스와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다. 율리우스의 생일에 거금을 들여 초대한 가수가 까만색 판때기를 보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게 된 알란은 태블릿이라 불리는 그것의 작동법을 배우고, 호텔 매니저에게 부탁해 손에 넣기까지 한다. 그 후 매일같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율리우스에게 들려주는 게 알란의 일과가 됐다.

 

 

율리우스가 알란의 돈으로 아스파라거스 사업을 시작한 뒤, 마르지 않을 것 같던 가방의 돈은 점점 바닥을 보이고 호텔 숙박비도 어마어마하게 밀리고 만다. 그런 와중에 율리우스는 알란의 101세 생일을 맞아 열기구를 타고 샴페인을 마시며 축하해주려고 하는데, 어쩌다 보니 바람에 실려 아주 멀리까지 날아가게 된다. 인도양 한가운데에 내려앉긴 했지만 열기구 바구니로 물이 새어들어와 곧 죽겠구나 싶었던 두 사람은 마침 지나가던 화물선에 구조된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배는 농축 우라늄을 싣고 평양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엄청난 인생을 살면서 죽을 고비를 수십 번은 무사히 넘긴 알란이 101살이 되어 돌아왔다. 무사태평하게 잘 지내시는가 싶더니 돈은 탕진했고, 호텔 숙박비는 15만 달러나 밀려 매니저가 감시를 하는 상황임에도 알란과 율리우스는 생일 파티를 위해 열기구를 탔다가 바다에 떨어져 버렸다. 거기다 북한측 배에 구조되는 바람에 알란은 살기 위해 자신이 핵 전문가라고 거짓말을 하고, 함께 평양으로 가서 김정은을 만나 핵무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기까지 한다.

 

 

 

북한이라니, 핵이라니! 전문 사기꾼 율리우스마저 덜덜 떨게 만드는 거짓부렁이었지만, 알란은 너무나 평온하고 느긋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런 상황은 마지막까지 계속되었다.

 

평양에 꽤 오랫동안 머물게 될 줄 알았는데, 마침 그곳을 방문한 스웨덴 외무 장관 겸 UN 특사 덕분에 무사히 탈출해 미국에 트럼프를 만나러 간다. 그것도 북한에서 훔친 농축 우라늄을 들고 말이다. 이 우라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초반의 관건이었는데, 다행히도 트럼프의 성격을 금세 알아차리고 다른 이에게 줄 방안을 찾아 넘겨주고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알란의 파란만장한 여정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혼자 가게를 하는 사비네를 만나 신세를 지다가 관 사업에 뛰어들고, 이 사업으로 인해 네오 나치에게 쫓기게 된다.

정말 끝도 없이 사건, 사고가 이어졌다. 처음엔 율리우스만 벌벌 떨며 고생했었지만, 나중엔 사비네까지 그들과 동행하게 되어 알란이 몰고 오는 사건들을 몸소 체험해야 했다. 이 정도면 알란은 무인도에 가서 사셔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거기에 갔더라도 어떻게든 온갖 사건들을 일으켜 세계의 주목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100살의 알란을 통해 20세기 역사의 발자취를 보여줬고, 101살의 알란은 현재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요소들을 중심으로 모험 내지는 추격전을 펼쳤다. 제목에도 들어가 있듯 북한 핵무기부터 신나치주의, 난민 등 여러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 문제를 실감 나게 하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해 블라디미르 푸틴, 앙겔라 메르켈 등의 익숙한 사람들이 등장해 저마다의 캐릭터를 강렬하게 보여줬고, 마르고트 발스트룀이나 도리스 로이타르트 등의 낯설지만 실제로 그 직책에 있는 사람들까지 출연해 온갖 활약을 했다. 물론 알란 때문에 말이다.

 

전작을 읽을 땐 알란이 참 재미있고 매력적이라 함께 있으면 즐겁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엔 너무 많은 사건이 일어나 위험한 상황에 빠졌다 나왔다를 반복하다 보니, 그가 의도를 한 게 아니었지만 조금 자제를 해줬으면 싶기도 했다. 더불어 가끔은 좀 말이 너무 많은 것 같기도 했고.(율리우스와 사비네가 노이로제 걸리겠어.)

 

왠지 전작이 더 재미있었다고 느껴졌다. 쉴 틈을 주지 않는 사고의 연속이라 읽다가 지쳤나 보다. 그래도 나름의 모험이 흥미로웠다.

알란이 이제는 평화로운 노년을 만끽하길 바란다. 제발!

101세 노인은 여러 가지 결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적어도 한 가지 재능은 특출했으니, 바로 어느 상황에서고 살아남는 것이었다. - P96

「만일 두 분이 얌전히 지내신다면, 우리와 함께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까지 갈 수 있을 거요.」
「우리가 얌전히 지낸다면?」
「그렇소. 그다음에는 경애하는 최고 영도자 동지께서 두 분의 일을 처리하실 거요.」
「일전에 자기 형을 처리했던 것처럼?」 - P65

이 사람이 정말로 대통령이야, 아니면 그냥 미치광이야? 뭐, 역사를 살펴보면 대통령인 동시에 미치광이인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있었지만……. - P184.185

그는 단지 잘못된 때에 잘못된 장소에 가 있는 재주가 특출났을 뿐이다.
무려 101년 동안 말이다.
- P5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라이
닐 셔스터먼.재러드 셔스터먼 지음, 이민희 옮김 / 창비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6월 4일 토요일.

캘리포니아에 사는 얼리사는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가족들에게 알린다. 가족들은 뉴스를 통해 콜로라도 강물이 캘리포니아주로 유입되지 않아 주 전체가 단수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실 물을 사기 위해 마트에 가지만 물은 진작에 동이 나버려서 얼리사는 기지를 발휘해 얼음을 잔뜩 사서 집으로 돌아온다.

 

단수 2일 차에 바질 삼촌은 가뜩이나 물도 없는데 집에 얹혀있는 게 불편하다며 여자친구 대프니가 있는 도브캐니언으로 떠난다.

그리고 3일 차, 바닷가에 담수화 설비에서 물을 얻어오겠다며 부모님이 떠났는데 이후로 연락이 되질 않는다. 그 후 전기가 끊겨 불안한 얼리사와 개릿 남매를 같은 학교에 다니는 옆집 켈턴이 도와준다.

 

 

 

어느 날 갑자기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불편하더라도 잠깐이면 이 단수가 끝날 거라며 참을 수 있겠지만, 주 전체에 공급되는 물이 끊기고 이 단수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면 혼란에 빠지게 된다. 몇 시간만 물을 마시지 않아도 목이 타고, 음식을 만들 때도 물이 필요하다. 거기다 씻고 용변을 보는 문제 모두 물과 관련이 있었기에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정말 심각한 문제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단 며칠 만에 워터좀비가 됐다. 마트에서 물을 가지고 싸우는 건 예삿일이었고, 물을 가진 자는 얼마가 됐든 가격을 부를 수 있었다. 하지만 단지 물을 사고파는 거라면 다행이었다. 한 모금의 물을 위해 욕구를 취하는 것은 물론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지경까지 이른다.

 

이런 배경에 16살 얼리사와 옆집에 사는 같은 학교 켈턴, 얼리사의 10살짜리 남동생이 부모님을 찾기 위해 바닷가로 갔다 돌아오는 길에 위기에 빠진다. 그 상황을 벗어나게 도와준, 왠지 껄렁껄렁한 19살 재키와 동행하여 집에 오지만,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 그들끼리 떠나 켈턴 아버지가 준비한 벙커로 향한다. 그 과정에서 바질 삼촌에게 큰 차를 빌리기 위해 도브캐니언에 갔다가 혼자 남은 집에서 물을 파는 헨리를 만나 함께 가게 된다.

 

모두가 10대인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운전면허도 재키만 있을 뿐이라 오로지 그녀의 차지였는데, 나중엔 서로 돌아가면서 할 상황까지 벌어진다. 위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가지고 있던 총으로 허세를 떨긴 했어도 진짜로 총을 쏘기에는 너무 겁이 나기만 한다.

거기다 그들은 성격까지 서로 다 달라서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얼리사는 차분하고 이타적인 사람이었고, 켈턴은 어디로 튈지 몰랐다. 재키는 모두에게 동등하게 삐딱하게 굴었고, 10살 개릿은 딱 그 나이 아이답게 다소 철이 없었다. 그리고 헨리는 말 잘하는 사기꾼 타입이라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좀처럼 믿을 수 없는 녀석이었다.

 

인간다움이나 인류애 따위는 이런 디스토피아에서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단수가 되어 하루, 이틀까지는 괜찮았지만 워터좀비가 나타나 사람들을 위협하고 물만 얻을 수 있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듯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며 혐오스러우면서도 오죽하면 저럴까 싶기도 했다. 하긴 목이 그렇게 마른데 다른 사람,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은 물을 마시지 못하면 3일째부터 위험하고 최대 8일 정도까지는 버틸 수 있다고 알고 있다.(기적 같은 사례는 논외.)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너무나 목이 말랐다.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나는 물을 마실 수 있는데도 고통스러웠다.

 

물은 인류에게 최고로 중요한 자원이었다.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인식시키기에 이보다 더 좋은 책은 없는 것 같다.

그동안 물을 아끼면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소설을 읽고는 더욱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짜로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는 느낌이다. 꿈속으로 빠져들 때의 느낌. 그렇다고 잠이 든 것은 아니다. 깨어 있었다. 그럼 뭘까? 가만, 혹시 이게 워터좀비로 변하는 현상인가? - P385

"문을 활짝 열어 주든가, 아예 걸어 잠가야 해요. 애매하게 믿기엔 사람들은 너무 복잡해요." - P19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선을 다해 느긋하겠습니다 - 여유만만 늘보 슬로틸다의 행복한 마이웨이 라이프
단테 파비에로 지음, 타일러 라쉬 옮김 / 와이즈맵 / 2019년 12월
평점 :
품절


 

<심슨가족>으로 에미상을 수상했던 애니메이터 단테 파비에로가 블로그에 게시한 글을 출판한 책이다.

주인공은 느림의 대명사인 나무늘보 캐릭터로 이름은 "슬로틸다"라고 한다. 나무늘보처럼 생기지 않았는데, 캐릭터화를 해서 귀엽게 표현됐다. 반려견 웰시코기 "피넛"과 함께 사는 슬로틸다의 느긋하고 느릿한 하루하루를 보여줬다.

 

 

 

 

어릴 땐 몰랐는데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보니 운동은 필수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것이든 몸을 움직이는 게 좋다는 뜻이다.

근데 운동을 하고 나면 허기가 져서 뭔가를 많이 먹게 되고, 그러고 나면 또 배가 부르니 움직이고선 또 먹고. 이런 반복적 패턴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먹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이 먹으려고 운동을 하는 것이지!

 

좋은 운동 기구를 살 필요가 없고, 헬스장을 몇 개월씩 끊는 것도 소용없는 건 어느 나라나 비슷한가 보다. 러닝머신이 빨래걸이가 되는 왜 똑같은지, 정말 웃겼다.

 

 

 

 

음식이 주는 즐거움은 정말 굉장하다. 기분이 안 좋을 때 맛있는 걸 먹거나 매운 걸 먹으면 기분이 조금은 풀어지기도 한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정말 좋다.

 

절반을 먹고 이따 먹겠다고 남겨두고선 얼마 안 가 먹는 거, 왜 나를 보는 것 같지? 이래서 남는 음식이 없다.

내가 육식파이긴 하지만 감자도 정말정말 좋아한다. 감자는 삶든, 찌든, 튀기든, 굽든 다 맛있다. 감자 얘기하니까 문득 감자전이 먹고 싶어지네.

 

 

 

 

일상과 일에 대해 말하는 부분도 왜 그리 공감이 되던지. 난관에 봉착하면 걱정, 절망을 거쳐 타협을 하는데, 그 타협이 일단 회피라는 것도 비슷하다. 월요일에 일하기 싫어하는 건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을 테고. 일할 때 딴짓하는 것도 역시나!

 

셀카 사이클은 공감하는 사람이 정말 많을 듯! 찍고 지우고 찍고 지우고. 그러다가 건지면 저장하는 거고 못 건지면 그날 셀카는 접는다는 거. 그러고 보니 나 요새 셀카 안 찍은 지 오래됐다. 찾아보니 마지막 셀카가 4월이네? 와우!

 

나는 카페인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안 마시면 이상하게 졸리긴 한다. 조금이라도 카페인이 들어가줘야 또렷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카페인이 많이 들어간 커피를 마신다고 해서 잠을 못 자는 건 아니라서 참 다행이다. 카페인은 대환영!

 

 

 

 

슬로틸다가 키우는 피넛과의 에피소드도 등장했다. 어릴 때 강아지를 몇 번 키웠던 적이 있어서 흐뭇하게 웃으면서 읽었다. 역시 반려동물은 사랑이야!

 

 

 

요즘엔 뭐든지 빨리 바뀌고, 빨리빨리 하면서 살게 되는 세상이다. 느긋하면 왠지 뒤처지는 것만 같기도 하고.

빠른 세상에 때로는 느긋한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나무늘보 캐릭터를 보며 공감하며 읽었다. 빠른 것도 좋지만 여유를 갖는 것도 정말 필요하다.

 

<심슨가족>의 애니메이터라고 그래서 그림체가 어떨까 싶었는데, 귀엽고 깜찍해서 상품화 시켜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책 속에 끼워져 함께 온 스티커가 더욱 반가웠다. 피넛도 정말 귀여웠고.

단순한 그림에 포함되어 있는 짧은 코멘트를 재미있게 번역한 방송인 타일러 라쉬 덕분에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 이 리뷰는 와이즈맵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