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 1~2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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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린트 시티라는 어느 소도시 공원에서 열한 살 소년 프랭크 피터슨이 처참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아이의 신체 일부분이 무언가에 물어뜯긴 것처럼 사라져 있었고, 성폭행의 흔적인 듯 능욕당한 흔적이 분명히 있었다. 사건을 맡은 랠프 앤더슨 형사는 공원에서 아이를 처음 발견한 목격자를 시작으로 그날 프랭크 피터슨을 본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듣는다. 오후부터 사건이 일어났을 저녁 시간까지의 행적을 되짚어본 결과, 영어 교사이자 지역 리틀 야구단의 코치를 맡고 있는 테리 메이틀랜드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확신한다. 오후에 프랭크를 흰색 밴에 태우고, 저녁엔 피범벅이 된 옷을 입고 나타났으며, 수상한 느낌을 풍겼다는 여러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도출한 결과였다.

그래서 랠프는 야구 시합이 벌어지고 있는 경기장에 찾아가 마을 사람 1000여 명 이상이 모인 자리에서 테리를 공개적으로 체포한다. 작은 마을에는 테리가 프랭크를 죽였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방송국 기자들이 테리의 집 앞에 찾아와 진을 치는 바람에 그의 아내 마시와 두 딸들은 고통스러워했다. 체포된 테리는 결백을 주장하며 변호사 하위 골드를 불렀다. 랠프는 테리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사체에 남은 DNA와 지문 등이 영락없이 테리의 것이었기에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프랭크가 살해당하던 날 테리가 동료 교사들과 함께 먼 거리에 떨어져 있던 도시에서 학회에 참석했고, 숙박한 호텔 CCTV며 학회 영상 속에서도 그의 모습이 찍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혼란에 빠진다.



프랭크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날 마을의 수많은 사람들이 목격한 테리는 범인이 분명해 보였다. 아이를 밴에 태우고 피에 흠뻑 젖은 옷을 입고선 코피가 났다고 둘러대는 모습이 영 수상했다. 작은 마을이라 병원이 어디에 있는지 뻔히 알면서도 물어보고, 이전에도 종종 마주쳤던 사람의 호칭을 난생처음 보는 사람인 양 부르는 것에 의구심이 들긴 했지만, 과학 수사의 결과물이 테리가 범인이라고 분명히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서 랠프는 테리를 체포하고 범행을 자백하라고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당연히 아니라는 것이었다. 범인이 늘 그런 대답을 한다는 걸 랠프는 알고 있었기에 이번에도 역시나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테리가 그 시각에 먼 도시에 있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한 사람이 두 공간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게 이 지구의 명백한 진실이었지만, 프랭크 사건에서 테리는 이 마을에 있기도 했고 다른 도시에서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기도 했다. 정말이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럼에도 수사를 진행시키고 기소인부절차를 위해 법원에 도착한 날, 또 다른 비극이 벌어졌다. 프랭크의 가족들이 막내를 잃은 슬픔에 잠겨 장례를 치른 후, 프랭크의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화를 주체할 수 없었던 프랭크의 형은 법원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테리를 총으로 쐈고, 총소리를 듣고 그를 보호하려던 랠프가 프랭크의 형을 쐈다. 졸지에 가족 모두를 잃은 프랭크의 아버지는 새벽에 뒷마당 나무에 목을 매달았다가 이웃에게 발견됐지만 뇌 기능이 마비되었다. 비극이 또 다른 비극을 낳았다.

테리가 범인이 맞는 것 같다가도 결백한 것 같았는데, 사건이 여러 사람의 죽음을 만들어낸 이후에는 대체 무엇이 이들을 죽게 만든 건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두 공간에 존재하는 한 사람이라는 명확한 사실 때문에 그 존재가 인간이 아니라는 건 확실해 보였다. 과학수사를 철석같이 믿었던 형사 랠프도 이쯤 되니 그 존재에 대해 의심스러워졌고, 랠프의 아내 지넷이 당연하다는 듯 초자연적인 존재라고 했다. 잘 알고 지냈던 선량한 테리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이 남아있던 랠프는 테리의 변호사 하위, 하위의 수사관 알렉, 유능한 경찰 유넬 등과 사건을 다시 조사해보기로 한다.

알렉이 도움을 받기 위해 전에 알던 유능한 탐정 빌 호지스에게 연락하자, "파인더스 키퍼스" 사무실을 지키던 홀리 기브니가 전화를 받아 그의 죽음을 알리고 테리 사건에 공조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캐릭터의 등장이었다. "빌 호지스 시리즈"에 등장한 홀리는 우울증, 대인기피증이 있는 캐릭터지만 빌 호지스를 만난 후 그녀의 비상한 두뇌 덕분에 사건을 해결했었다. 그 시리즈에서 과학적으로 믿기 어려운 경험을 했던 홀리였기에 이번 사건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예감했다.
홀리가 1권 말미에 등장한 후, 2권에서는 테리와 거의 흡사한 사건이 다른 지역에서 일어났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범인과 테리가 만났을지도 모를 접점이 밝혀지면서 사건은 본격적으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읽는 내내 재미있어했고 홀리가 등장했을 때부터는 반가우면서도 신이 났다. 그녀가 보여줄 활약이 기대가 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그 존재 "이방인(outsider)"의 입장에서도 상황을 보여주기 시작했을 땐 무시무시한 느낌에 소름이 돋기도 했다. 이방인이 어떻게 다른 사람 앞에 나타나는지, 숙주를 어떻게 조종하는지 보여줬다.
평범한 사람들과 초자연적인 이방인이 본격적으로 대립하던 소설 후반에는 과연 선한 쪽이 이기는 결말일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인간의 나쁜 감정을 먹고 사는 그 존재는 믿음과 희망이라는 긍정적인 마음을 절대 이길 수 없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긴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모든 게 잘 끝났고 세상을 떠난 테리 역시 억울한 누명을 벗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역시나 재미있다. 이번엔 반가운 캐릭터도 등장해 마지막까지 활약을 보여줘서 더 즐거웠다.


​​​​​​​

"비유를 벗겨내면 뭐가 남겠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남지. 그러니까 내가 묻고 싶은 건 단순해. ‘두 명의 테리‘라는 수수께끼의 유일한 해답이 초자연적인 현상이라면?" 1권 - P292

"그게 나에게는 비유하자면 테리 메이틀랜드예요, 빌. 멜론은 겉보기에 멀쩡했어요. 물컹하지도 않았고. 껍데기도 흠집 하나 없었어요. 벌레들이 안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었는데 들어간 거예요.
(……중략)
우리가 망쳤어요. 아주 제대로. 겉보기에 괜찮아 보이는 캔털루프 멜론을 샀는데 온 마을 사람들 앞에서 갈라 보니 안에서 구더기들이 득시글거렸죠. 안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었는데 들어가 있었어요." 1권 - P285

"그를 놓치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프랭크 피터슨을 죽일지 생각해 봐요. 애들은 자기가 아는 사람인 줄 알고 따라갈 거예요. 아니면 하워드 자매가 그랬던 것처럼 친절하게 보인다고 생각해서. 저 안에 있는 괴물, 그러니까 저 사람이 지금 보호하려는 괴물인 줄 모르고요." 2권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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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이
로미 하우스만 지음, 송경은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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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나.
엄마가 오두막을 뛰쳐나간 뒤 교통사고가 나자, 한나는 구급차에 함께 올라 병원으로 향했다. 엄마가 심하게 다쳐 수술을 받는 동안 한나는 간호사의 보호를 받으며 엄마를 기다렸다. 간호사는 한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고 지루하지 않게 스케치북을 가져다주며 그림을 그리라고 했다. 한나의 대답이나 그림이 조금 이상하자 간호사는 정신과 전문의 함슈테트 박사를 불렀다. 한나는 어른들이 멍청하다는 생각을 하며 오두막에 혼자 남아 바닥에 남은 자국을 지우고 있을 남동생 요나단을 떠올린다.

마티아스.
14년 전, 대학생이던 딸 레나가 파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사라져버렸다. 마티아스와 아내 카린, 그리고 마티아스의 친한 친구이자 경찰인 게르트가 레나를 찾기 위해 애를 쓰며 오랜 세월 동안 기다렸지만 딸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티아스는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체코 국경 근처에서 레나와 비슷한 인상착의를 가진 여자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실려왔다는 연락을 받는다. 함께 가자는 게르트를 기다리지 못하고 급하게 병원으로 향한 마티아스는 마침 수술을 끝낸 그 여자를 직접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레나와 상당히 비슷한 외모를 가지긴 했으나 자신의 딸이 아니었다. 실망스러움을 차마 감추지 못하던 마티아스와 카린은 어렸을 때의 레나와 꼭 닮은 아이가 병원 복도를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레나라 불린 야스민.
4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오두막에 갇혀 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 역할을 하며 살았던 야스민은 내내 레나로 불렸었다. 남자에게 저항을 해보기도 했지만 통하지 않았기에 기회만 노리던 그녀는 마침내 오두막을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수술을 받아야 했고 어느 정도 회복한 후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에 온 이후에도 밖을 나가지 못할 정도로 트라우마가 심하게 남은 야스민은 집에 찾아오는 이웃, 누군가가 놓고 간 편지 등으로 인해 두려움이 점점 커져간다.



14년 전 실종된 레나 사건을 중심으로 세 사람의 시점이 오가는 소설이었다. 딸을 잃은 슬픔에 14년 동안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아빠 마티아스, 레나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아내, 엄마 행세를 해야 했던 야스민이 있었다. 그리고 오두막에서 태어나 세상 밖으로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채 그곳을 전부라고 알고 살았던 13살 소녀 한나의 시점도 등장했다. 마티아스나 야스민은 피해자의 입장이었기에 어떤 행동이나 반응을 보일지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나는 오두막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변수가 될 것 같았다. 아이가 간혹 아이답지 않게 섬뜩하게 느껴질 때도 있어서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야스민이 오두막을 탈출하고 한나가 따라오면서, 그리고 마티아스가 연락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이 진행됐다.
초반엔 한나의 시점이 주로 등장해 오두막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야스민을 납치한 남자는 누가 봐도 권위적인 인간이었지만 아이들은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가 잘못했기 때문에 혼나는 거라고 당연하게 여겼다. 한나는 은연중에 사람들을 얕잡아 보기도 했는데, 그건 아무래도 아빠라는 인간에게서 보고 배운 것인 듯했다. 아이의 정신 상태가 상당히 우려됐고, 때로는 섬뜩하게 보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한나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마티아스는 오랫동안 딸의 행방을 모르고 지냈지만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살아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시신이라도 찾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레나와 닮은 여자가 병원에 실려왔다는 전화에 단번에 찾아가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었다. 그리고 한나가 당연히 레나의 딸이라는 DNA 검사 결과를 받은 뒤에는 아이에게 이제라도 할아버지 노릇을 하기 위해 애를 썼다.
야스민은 납치, 감금되어 레나라고 불리며 강간을 당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진 상태였다. 그래서 병원에 있어야 했지만 그녀는 퇴원을 했고, 의지할 사람이 없어서 혼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집 밖으로 나가질 못했다. 야스민에게 평범한 부모나 이웃, 친구가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안타까워 보였다.

소설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되고 오두막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드러난 이후에는 범인이 누구인지에 관한 것으로 초점이 맞춰졌다. 읽는 동안 의심스러웠던 인물이 딱 한 명 있었는데, 그가 보이는 모습이 집착, 광기처럼 느껴져서 이건 절대로 평범한 감정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모습이 점점 더 비정상적으로 느껴져서 범인일 거라 확신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촉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 당연히 틀렸다.
범인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존재감이 크지 않았던 캐릭터라 놀라웠다. 그런데 가만 보면 그 사람이 모든 걸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에 한 사람은 배신을 당하는 와중에도 어쩔 수 없이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퇴원 후에 야스민에게 일어난 일 역시 범인으로 인해 일어났던 일이었다.
여러모로 놀라운 범인이었는데 레나에 관한 진실 역시 밝혀져 다시금 충격을 줬다. 그런 와중에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그 사실로 알 수 있었다. 당연한 것이기도 했지만 안쓰럽기도 했다.

범인은 그가 저지른 범죄에 합당한 벌을 받았다는 점에서 시원한 결말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결말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결말만은 아니길 바랐기 때문에 씁쓸했다.
모든 게 다 끝난 이후 생각해 보니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 스릴러 소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딸을 포기하지 않는 마티아스는 물론이고 처참한 환경 속에서도 아이를 지켰던 레나, 그리고 끔찍한 지옥 속에서 자신이 낳은 아이들이 아닌데도 보살펴줬던 야스민까지 아이를 향한 부모, 어른들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 이 리뷰는 밝은세상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당신은 돌아갈 집이 없어. 이제부터 여기가 바로 당신 집이야." - P117

레나, 당신과 나는 같은 배를 탄 거야. 나를 마음 깊이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당신밖에 없어.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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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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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돌아가시고 1년 뒤에 엄마도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나"는 혼자 남게 되었다. 장례식을 치른 후 친척들 사이에서는 나를 누가 데리고 갈 것인지 시끄럽게 말다툼을 벌였다고 했다. 그들은 집에 남은 침대나 탁자, 의자를 서로 가지려고 싸우면서 나를 두고도 싸웠다고 했다. 나는 키가 아주 큰 할아버지 다리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려 했고, 결국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를 데리고 가기로 결정했다고 할머니가 나중에 말씀해 주셨다.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 버스를 타고 산속 깊은 곳에 있는 작은 오두막집에서 살게 된 나는 "작은 나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자연 속에서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보낸다.



이 소설은 체로키 인디언인 작가 포리스트 카터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한다. 소설 속 할아버지는 작가의 실제 조부의 모습을 썼다고 하고, 할머니는 전해 들은 고조모와 어머니의 모습을 합쳐 그려낸 인물이라고 한다. 실제 경험담을 담은 자서전과 같은 이야기라서 그런지 소설 속 작은 나무의 마음에 몰입해서 읽었다.

인디언으로 숲속에서 단출하게 사는 건 그리 넉넉하지 않아 어려울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런 선입견을 깨주었다. 형편이 어렵긴 했어도 그렇게 쪼들리는 삶은 아니었다. 농작물을 심고 열매 나무에서 나는 재료들로 그들은 충분히 잘 먹으며 지냈고, 동물과 물고기를 사냥해 먹기도 했다. 그들은 먹지도 않을 동물들을 단순히 사냥을 목적으로 많이 잡지 않았다. 자연에게서 최소한의 것만, 꼭 필요한 만큼만 얻었고 나머지 것들은 다 풀어주었다. 지금 시기에야말로 진정 필요한 생활 방식이 아닌가 싶었다. 사슴 같은 동물들을 먹고 난 후에는 가죽으로 셔츠 등을 만들어 입으며 추운 겨울을 나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작은 나무에게 알려준 모든 것들이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작은 나무를 뒤에서 든든하게 지켜주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이들이 산속에서만 지냈던 건 물론 아니었다. 스코틀랜드와 체로키 인디언 혼혈인 할아버지는 스코틀랜드 가계에서 전수받은 위스키 제조법으로 자신만의 위스키를 만들어 산 아래 가게에 납품하기도 했고, 가족 모두 일요일에 교회에 나가 다른 인디언을 만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떠돌아다니면서 온갖 물건을 파는 사람도 주기적으로 오두막에 들렀고, 바이올린을 켜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남자도 있었다. 인디언이 아닌 사람들과도 잘 지내는 모습이 의외였고, 역시나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내 협소한 생각을 반성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평온하기만 한 나날만 있지는 않았다. 작은 나무가 어떻게 사는지 직접 보지 못하고 오지랖을 부린 누군가로 인해 아이가 조부모와 헤어져 머나먼 고아원으로 끌려갔던 안타까운 순간도 있었다. 조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크나큰 마음으로 키웠는데 다른 사람의 눈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는 현실이 너무 슬프기도 하면서 화가 났다. 거기다 고아원의 목사가 진짜 나쁜 인간이라 작은 나무가 한시라도 빨리 그곳을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다행히 작은 나무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가깝게 지내고 따스한 마음을 나눈 사람이 좀 과격하게 행동했던 덕분에 아이는 사랑이 가득한 보금자리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190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작가 덕분에 당시의 미국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인디언의 생활 방식과 그들의 마음가짐, 가까운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모습 등을 알게 되었다. 동화처럼 따스한 이야기지만 실화이기에 마지막은 여운이 남았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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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메론 프로젝트 - 팬데믹 시대를 건너는 29개의 이야기
빅터 라발 외 지음, 정해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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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및 간략한 내용


빅터 라발 × 알아보다 2019년 12월에 이사를 하고 4개월 반 후에 바이러스가 퍼져 사람들 대부분이 그곳을 떠났다. 나는 아파트에서 필라를 만나 안면을 텄고, 건물 관리인은 매일 돌아다니며 빈 집에 표시를 해둔다.
모나 아와드 × 이처럼 푸른 하늘 줄리아는 봉쇄 조치가 내려진 도시에서 무언가를 뽑아내는 시술을 받은 이후 전남편 벤을 만나 반가워한다. 하지만 벤을 포함해 다른 모든 사람들은 줄리아를 이상하게만 본다.
카밀라 샴지 × 산책
아즈라는 조흐라와 함께 거리를 두고 산책을 나갔다. 도시 곳곳에서 만난 모르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콜럼 토빈 × LA강 이야기
봉쇄 조치가 시작된 뒤 나는 H와 함께 지내기 시작한다. 함께 지내는 동안 나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리즈 무어 × 임상 기록
부부는 아기에게 열이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단순한 열인지 감기인지 아니면 바이러스인지 걱정이 되지만 병원에 가기엔 꺼려지는 상황이다.

토미 오렌지 × 더 팀
당신은 하프 마라톤에 출전했던 방식으로 가족들과 팀을 꾸려 집에 있는 동안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계획한다.
레일라 슬리마니 × 돌멩이
소설가 로베르는 신간 출판 기념 강연 도중 얼굴로 날아온 돌멩이에 맞아 피를 흘리고 의식을 잃는다.
마거릿 애트우드 × 참을성 없는 그리젤다
은하계 간 위기 지원 프로그램 일환으로 이곳에 보내진 문어 모양의 외계인이 사람들을 모아두고 고대 지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윤 리 × 목련 나무 아래
변호사 크리시는 5년 전에 부부의 주택 매매계약을 도왔다. 그 후 아내 쪽에서 유산상속 계획에 관한 문의를 받았는데, 그들이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5년 만에 다시 나타난 부부는 이번엔 일을 확실히 매듭짓겠다고 한다.
에트가르 케레트 × 바깥
통행금지가 해제되고 난 뒤에도 사람들은 집 밖을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정부에서는 경찰과 군인을 동원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밖으로 나오게 했다.

앤드루 오헤이건 × 유품
로프티는 열흘 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간호사는 어머니의 상황이 악화됐다며 전화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로프티는 어머니의 집으로 가서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레이철 쿠시너 × 빨간 가방을 든 여인
일주일 동안 성에 머물도록 초대받은 여러 나라의 손님들이 모여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행복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한다.
테이아 오브레트 × 모닝사이드
도시에 모닝사이드 타워가 세워졌지만 사람들이 모두 떠나버린 터라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 덕분에 할인된 가격으로 그곳에서 살게 된다. 모녀는 검고 큰 개 세 마리를 키우는 베지 뒤라스와 엘리베이터에서 종종 마주친다.
알레한드로 삼브라 × 스크린 타임
어릴 적 늘 TV를 켜놓고 사는 집에서 성장한 아버지, 무려 10년 동안 TV와 멀리 떨어져 살았던 어머니를 둔 소년이 있다. 바이러스가 퍼진 뒤 부부는 아들이 TV 외에 뭘 하며 시간을 보낼지 이야기한다.
디노 멘게츄 × 그 시절
20년 동안 택시 운전을 성실히 한 삼촌을 방문한다. 어렸을 때 엄마와 삼촌의 택시를 타고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도시로 가달라고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캐런 러셀 × 마지막 버스 클럽
늦은 시간 버스를 운전하던 발레리는 사고인지 아닌지 의문스러운 일을 겪은 뒤 앰뷸런스와 함께 다리 한가운데에서 멈춰버린 시간 속에 갇힌다.
데이비드 미첼 × 바란다고 해서
교도소에서 무증상감염으로 다른 교도소로 이감된 나는 1인실이라 했던 방을 아시아인 잼과 함께 써야 한다는 것에 놀란다. 하지만 어느새 익숙해졌고 그에게 딸아이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찰스 유 × 시스템
코로나 이후 사람들의 검색 패턴이 바뀌었다. 검색하는 단어나 문장에 두려움이 묻어났지만 이후엔 그 안에 희망이 담겨있다.
파올로 조르다노 × 완벽한 여행 친구
대학에 다니느라 떠나있었던 미켈레가 상황이 안 좋아져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의 아이와 몇 년 만에 함께 사는 것은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미아 쿠토 × 친절한 강도
노인인 나는 집 문을 두드리는 강도의 방문을 받는다. 강도는 녹색 빛을 뿜어내는 흰 플라스틱 도구를 들고 있었는데, 나를 살펴본 뒤 위생 관련 물건들을 주고선 일주일 뒤에 다시 오겠다고 말하곤 떠나버렸다.

우조딘마 이웰라 × 잠
백인인 나와 흑인인 토비의 사랑이 위태롭다는 걸 느낀다.
디나 나예리 × 지하 저장실
파리에 봉쇄 조치가 내려진 뒤, 캄란과 실라는 10대 시절 테헤란에서의 기억이 떠오른다. 폭격 사이렌을 듣고 지하실로 내려갔을 때 어른들 몰래 사랑을 나누던 기억이었다.
라일라 랄라미 × 내 남동생의 결혼식
남동생의 네 번째 결혼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모로코를 찾은 나는 그 사이에 국경이 봉쇄가 되는 바람에 미국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리며 공항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줄리언 푸크스 × 죽음의 시간, 시간의 죽음
사망자가 늘어나며 시간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리버스 솔로몬 × 분별 있는 여자들
봉쇄 조치가 내려진 뒤 제루샤는 교도소에 갇혀 맨몸으로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을 엄마를 탈출시키기로 한다.

매튜 베이커 × 기원 이야기
봉쇄 조치로 가족, 친척들 모두 베벌리의 집에 모여 지내게 됐다. 공동생활을 하며 가장 신경 쓰이는 일은 식사였고, 특히 디저트로 먹는 아이스크림의 양이 적어 다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에시 에두잔 × 성벽 앞에서
팬데믹이 발생하기 4년 전 나는 첫 남편 토마스와 베이징 여행을 갔었다. 그녀는 만리장성에서 길을 잃었던 그때가 떠오른다.
존 레이 × 열린 도시 바르셀로나
얼마 전 해고된 사비는 통행금지 명령이 내려진 뒤 기발한 아이디어로 사업을 시작한다. 통행증이 있는 사람만 밖을 돌아다닐 수 있었지만,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은 통행증이 없어도 된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에드위지 당티카 × 한 가지
남편이 병원에 실려가기 전 그들은 동굴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아내 마리-잔의 이름과 같은 동굴이었다.




전 세계적인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뉴욕타임스> 편집자들은 700년 전 흑사병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준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떠올리고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고 한다. 이 시대의 유명한 작가들이 쓴 단편소설을 모아 책을 냈고, <데카메론 프로젝트>라 이름 붙였다. 스물아홉 명의 소설가들이 팬데믹을 견뎌내며 쓴 다양한 이야기였다.

스물아홉 개의 이야기 중 몇몇 작품이 기억에 남았다.
<바깥>은 코로나 이후를 가정하고 그리고 있는데,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한 집 안에만 있다가 강제적으로 끌려 나오게 된 사람들이 바깥의 모든 사물, 사람들을 경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끝났다고 해도 왠지 끝나지 않았을 것 같은 심리를 잘 표현했다.
<친절한 강도>는 보건소에서 방문한 직원을 강도라고 오해하는 노인의 짧은 순간을 그리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표현되진 않았지만 아마도 노인은 치매를 앓고 있는 듯 바깥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보건소 직원을 강도라 오해하는 바람에 체온계를 웃기게 생긴 총이라 착각하고, 위생 물품에 담긴 알코올 소독제를 술이라고 여기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그 모습이 왠지 좀 귀엽기도 하고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으나 차라리 이 끔찍한 현실을 인지하지 못해 조금은 다행인 듯한 마음도 들었다.

조금 웃겼던 건 <열린 도시 바르셀로나>였다. 위기를 기회로 잡은 한 남자의 이야기 속에서 사업 덕분에 만난 매력적인 여인과의 시간도 담고 있었다. 하지만 봉쇄 조치가 완화되면서 여인과의 관계 역시 끝났다는 점은 이 불안한 상황 속에서 그저 위안이 될 존재로만 여겨진 것 같아 남자가 조금 불쌍했다.
<기원 이야기>는 온 가족, 친척들이 함께 지내게 된 상황에서 아이스크림을 두고 벌어지는 신경전을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집안의 큰 어른 90세 베벌리와 이제 막 대학 신입생이 된 엘리의 관계를 좋게 풀어준 "아이스아이스크림" 사건이 귀엽고 따뜻했다.

팬데믹으로 가족, 사랑하는 사람과 한 공간에서 지내게 되면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불편이나 관계에 대한 생각들을 담고 있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대부분 좋게좋게 끝이 났다.
그리고 이 시기를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도 여럿 있었다. <산책>, <더 팀>, <시스템> 등의 짧은 이야기를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아 이 시기를 무사히 넘고 예전의 그 시절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줬다.

유명한 작가 29명의 단편을 담은 책이라고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읽은 작가는 마거릿 애트우드와 파올로 조르다노뿐이었다. 그나마 이름을 아는 작가는 레일라 슬리마니였고 그 외에 다른 작가들은 내게 완전히 생소했다. 물론 작가의 이름을 아느냐 모르느냐 따위는 책을 읽는 데에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인상적인 건 영미권 작가뿐만 아니라 아시아계, 라틴계, 아프리카계 등 여러 나라의 많은 작가들이 이 프로젝트를 위해 짧지만 인상적인 글을 써줬다는 점이다. 덕분에 작가들의 다양한 시선으로 팬데믹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아쉬운 건 단편이 29가지나 되다 보니 책을 덮을 때엔 기억에 남은 이야기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점은 아무래도 내가 단편에 약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흑사병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사람들을 위로해 준 <데카메론>이 있었듯, <데카메론 프로젝트> 덕분에 21세기 코로나에 찌든 이 상황에 조금이나마 웃게 해줬고 위로를 주기도 했다. 모두가 이 상황을 이겨내고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 이 리뷰는 인플루엔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힘든 한 해를 보내셨군요. 안 그런가요?" 모나 아와드 <이처럼 푸른 하늘> - P35

당신은 마지막으로 사람들 사이에 있던 것이 언제인지 생각했다. 마스크를 쓰고 허겁지겁 일주일에 한 번 식료품점에 다녀오거나 사서함에 아무렇게나 쌓인, 꼭 필요하지도 않은 상자들을 챙겨 돌아오는 것은 셈에 넣지 않았다. 특히 비말이 비처럼 쏟아진다는 역겨운 개념을 소개한 팟캐스트를 들은 뒤로는 보이는 사람마다 최대한 거리를 유지했고, 전파가 두려워 다른 사람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토미 오렌지 <더 팀> - P82

서로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면 마스크를 벗고 만나야 할 텐데.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마스크를 벗는다면 과연 서로를 신뢰할 수 있을까? 이윤 리 <목련 나무 아래> - P114

지켜보며 기다리는 것.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 그것은 새로운 세계 전체가, 직접 침범되지 않은 모든 이들이 함께하고 있는 팀워크다. 그것은 마라톤이 될 것이다. 이 고립이 될 것이다. 그러나 팀이 해낼 수 있는, 인간들이 빌어먹을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토미 오렌지 <더 팀> - P8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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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팜
조앤 라모스 지음, 김희용 옮김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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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사는 필리핀 혼혈 제인은 딸 아말리아를 데리고 남편, 시부모와 살던 집에서 나와 사촌 아테가 머무는 합숙소에서 지내고 있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제인을 비하하며 욕을 하는 문자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어린 딸을 차마 두고 올 수 없어서 데리고 나오긴 했는데,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딱히 무언가를 배운 적이 없어서 할 줄 아는 게 없던 제인은 일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사촌에게 빌붙는 게 눈치가 보일 무렵, 몸이 안 좋아 쉬어야만 했던 아테가 자신의 일을 대신해달라고 부탁했다. 제인이 일을 하는 동안에 아테가 아말리아를 보겠다면서 말이다. 갓난 딸을 떼어놓는 게 걱정이 됐지만 제인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제인은 판단 착오로 인한 잘못으로 해고되고 만다.

난감한 상황에 처한 제인에게 아테는 다른 일자리를 주선했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부자이고, 또 유명한 사람들의 아기를 대신 품고 낳아주는 대리모 일이었다. "골든 오크스"라는 비밀스러운 농장에는 엄격하게 선발된 대리모, 일명 호스트들이 임신 기간 동안 상주하며 코디네이터를 비롯해 관리인, 의사의 케어를 받았다. 호스트는 의뢰인이 지불하는 월급을 매달 받았는데, 그 액수는 뉴욕에 있는 아파트 월세를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을 정도였고 의뢰인이 호스트를 마음에 들어 하면 그 이상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기가 무사히 태어나면 그에 상응하는 엄청난 보너스를 덤으로 받을 수 있었다.
선택은 제인의 몫이었지만 답은 하나뿐이었기에 그녀는 골든 오크스에서 전무이사 메이를 만나 계약을 체결했고, 의뢰인 부부의 배아를 착상한 이후 농장에 입주한다.



소설은 상류층 의뢰인을 위한 최고급 대리모 시설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미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제인과 전형적인 금발의 아름다운 백인 여성 레이건은 각자의 사정으로 돈이 필요해서 호스트가 되는 캐릭터였다. 제인에게 일을 소개해 준 사촌 아테는 나이 든 세대의 필리핀 어머니로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중국계 미국인 메이는 골든 오크스를 전담으로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같으면서도 다른 인종, 다른 세대의 네 여성들의 시선으로 번갈아가며 소설이 전개됐다.

처음엔 호스트가 되기에 앞서 제인과 레이건의 성격을 먼저 알 수 있게 했다.
제인은 자신감이 없고 걱정이 많은 사람인데 반해 생각이 좀 짧은 경향이 있다고 느껴졌다. 아테가 일하던 입주 보모 일을 대신하는 동안 해고되기 전에 보였던 행동은 확실히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그런데 들키지 않았기 때문인지 제인은 계속해서 그 행동을 멈추지 않았고, 급기야는 아기 엄마라면 기겁을 할 행동을 하고야 말았다. 내가 그 상황을 읽으면서도 놀랄 정도였으니 아기 엄마인 당사자는 화가 솟구쳤을 것이다. 이건 도무지 편을 들어줄 수가 없는 문제였다. 그래서 제인은 초반부터 예측할 수 없는 돌발행동을 보일 수 있는 캐릭터라 불안하기만 했다.
레이건은 제인과 여러모로 상당히 달랐다. 그녀의 집은 부유했고 대학도 나왔으며 서구형 미인이었다. 성격도 다정하면서 시원시원한 걸로 봐서 호감이 가는 요소가 다분했다. 그러나 레이건은 인생 그 무엇에도 의미를 두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학비를 손 벌리기가 싫었을 만큼 아버지와의 관계가 썩 좋지 않았다. 물질적인 것에 가치를 두기보다는 좀 더 의미 있는 일에 뜻을 두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서로 다른 두 호스트가 골든 오크스에 들어가 룸메이트가 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처하는 과정을 통해 친구가 되었다가 조금 거리가 생기기도 하는 등의 관계 변화가 있었다. 한 의뢰인의 세 번째 아기를 갖게 된 트러블메이커 리사와 어울리면서 더욱 그들의 관계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젊은 그녀들과는 다르게 아테는 지난 세대의 여성이었다. 남편이 떠나고도 사 남매를 홀로 키웠을 만큼 강한 어머니상이었다. 그 때문에 아테는 돈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였고, 소설이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밝혀진 비밀로 인해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메이는 미국에서 성공한 아시아계 30대 여성이었는데, 골든 오크스의 총책임자라 신뢰할 수가 없었다. 소설 속 약자 입장인 제인과 레이건의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라 본능적으로 거리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소설이 흐를수록 아테보다 더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라 마지막까지 쉽게 판단 내리지 못했다.

이렇게 골든 오크스와 대리모를 중심으로 진행되며 여러 사건이 일어났다. 철저한 감시로 외부와 연락할 수밖에 없는 내부 상황으로 인해 제인은 아말리아 걱정이 극에 달하기도 했고, 번번이 말썽을 일으키는 리사 때문에 곤란해지기도 했다. 레이건은 동기부여가 될만한 정보를 얻었지만 나중엔 무엇이 진실인지, 급기야는 뱃속에 아기가 존재하는지조차 믿을 수 없어 혼란스러워하기도 했다. 이런 여러 사건들이 일어나는 걸 보며 호스트가 된 그녀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됐다. 그녀들은 아기를 낳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무조건적으로 제인과 레이건의 편이 되어 소설을 읽느라 자연스레 메이, 아테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후반에 메이와 아테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며 그 누구도 악역이 아니었다는 걸 보여줬다. 그녀들은 각자의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다. 각자에게 우선순위로 두는 게 서로 다르듯 제인, 레이건, 아테, 메이 모두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그 무언가를 위해 행동했을 뿐 악의는 없었다. 그래서 결말에 이를수록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대리모는 비단 소설 속에만 등장하는 설정이 아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 중에는 씨받이를 통해 대를 이었던 적이 있고, 작가가 소설을 구상한 계기는 인도의 대리모 관련 소식을 알게 된 이후라고 했으니 현재에도 어느 나라에서는 드물게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권장하는 일이 아니라 비밀스럽고 때로는 수치심을 동반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소설을 읽으며 내가 원하던 결말은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끝나지 않아 다소 의외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라 다 읽고도 조금 찝찝한 감정이 남았다. 내가 바라던 결말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는 것이긴 하지만 이 결말이 최선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각성보다는 동화를 택한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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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의뢰인은 자신들이 선택하는 호스트가 곧 태어날 아기를 품을 보관소인 동시에 몸속에 착상될 존재에 거는 그들의 높은 기대의 표상이라 여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예뻐 보이는, 혹은 ‘말솜씨가 좋거나‘ ‘친절하거나‘ ‘현명하거나‘ 심지어 교육까지 잘 받은 듯 보이는 호스트에게 끌리고, 기꺼이 프리미엄을 지불한다. - P80

"넌 어떤 낯선 부자가 널 이용하게 내버려 두고 있는 거야. 삶의 근원적인 무언가에 가격표를 붙이고 있는 거라고."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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