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데카메론 프로젝트 - 팬데믹 시대를 건너는 29개의 이야기
빅터 라발 외 지음, 정해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6월
평점 :

차례 및 간략한 내용
빅터 라발 × 알아보다 2019년 12월에 이사를 하고 4개월 반 후에 바이러스가 퍼져 사람들 대부분이 그곳을 떠났다. 나는 아파트에서 필라를 만나 안면을 텄고, 건물 관리인은 매일 돌아다니며 빈 집에 표시를 해둔다.
모나 아와드 × 이처럼 푸른 하늘 줄리아는 봉쇄 조치가 내려진 도시에서 무언가를 뽑아내는 시술을 받은 이후 전남편 벤을 만나 반가워한다. 하지만 벤을 포함해 다른 모든 사람들은 줄리아를 이상하게만 본다.
카밀라 샴지 × 산책 아즈라는 조흐라와 함께 거리를 두고 산책을 나갔다. 도시 곳곳에서 만난 모르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콜럼 토빈 × LA강 이야기 봉쇄 조치가 시작된 뒤 나는 H와 함께 지내기 시작한다. 함께 지내는 동안 나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리즈 무어 × 임상 기록 부부는 아기에게 열이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단순한 열인지 감기인지 아니면 바이러스인지 걱정이 되지만 병원에 가기엔 꺼려지는 상황이다.
토미 오렌지 × 더 팀 당신은 하프 마라톤에 출전했던 방식으로 가족들과 팀을 꾸려 집에 있는 동안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계획한다.
레일라 슬리마니 × 돌멩이 소설가 로베르는 신간 출판 기념 강연 도중 얼굴로 날아온 돌멩이에 맞아 피를 흘리고 의식을 잃는다.
마거릿 애트우드 × 참을성 없는 그리젤다 은하계 간 위기 지원 프로그램 일환으로 이곳에 보내진 문어 모양의 외계인이 사람들을 모아두고 고대 지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윤 리 × 목련 나무 아래 변호사 크리시는 5년 전에 부부의 주택 매매계약을 도왔다. 그 후 아내 쪽에서 유산상속 계획에 관한 문의를 받았는데, 그들이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5년 만에 다시 나타난 부부는 이번엔 일을 확실히 매듭짓겠다고 한다.
에트가르 케레트 × 바깥 통행금지가 해제되고 난 뒤에도 사람들은 집 밖을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정부에서는 경찰과 군인을 동원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밖으로 나오게 했다.
앤드루 오헤이건 × 유품 로프티는 열흘 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간호사는 어머니의 상황이 악화됐다며 전화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로프티는 어머니의 집으로 가서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레이철 쿠시너 × 빨간 가방을 든 여인 일주일 동안 성에 머물도록 초대받은 여러 나라의 손님들이 모여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행복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한다.
테이아 오브레트 × 모닝사이드 도시에 모닝사이드 타워가 세워졌지만 사람들이 모두 떠나버린 터라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 덕분에 할인된 가격으로 그곳에서 살게 된다. 모녀는 검고 큰 개 세 마리를 키우는 베지 뒤라스와 엘리베이터에서 종종 마주친다.
알레한드로 삼브라 × 스크린 타임 어릴 적 늘 TV를 켜놓고 사는 집에서 성장한 아버지, 무려 10년 동안 TV와 멀리 떨어져 살았던 어머니를 둔 소년이 있다. 바이러스가 퍼진 뒤 부부는 아들이 TV 외에 뭘 하며 시간을 보낼지 이야기한다.
디노 멘게츄 × 그 시절 20년 동안 택시 운전을 성실히 한 삼촌을 방문한다. 어렸을 때 엄마와 삼촌의 택시를 타고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도시로 가달라고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캐런 러셀 × 마지막 버스 클럽 늦은 시간 버스를 운전하던 발레리는 사고인지 아닌지 의문스러운 일을 겪은 뒤 앰뷸런스와 함께 다리 한가운데에서 멈춰버린 시간 속에 갇힌다.
데이비드 미첼 × 바란다고 해서 교도소에서 무증상감염으로 다른 교도소로 이감된 나는 1인실이라 했던 방을 아시아인 잼과 함께 써야 한다는 것에 놀란다. 하지만 어느새 익숙해졌고 그에게 딸아이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찰스 유 × 시스템 코로나 이후 사람들의 검색 패턴이 바뀌었다. 검색하는 단어나 문장에 두려움이 묻어났지만 이후엔 그 안에 희망이 담겨있다.
파올로 조르다노 × 완벽한 여행 친구 대학에 다니느라 떠나있었던 미켈레가 상황이 안 좋아져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의 아이와 몇 년 만에 함께 사는 것은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미아 쿠토 × 친절한 강도 노인인 나는 집 문을 두드리는 강도의 방문을 받는다. 강도는 녹색 빛을 뿜어내는 흰 플라스틱 도구를 들고 있었는데, 나를 살펴본 뒤 위생 관련 물건들을 주고선 일주일 뒤에 다시 오겠다고 말하곤 떠나버렸다.
우조딘마 이웰라 × 잠 백인인 나와 흑인인 토비의 사랑이 위태롭다는 걸 느낀다.
디나 나예리 × 지하 저장실 파리에 봉쇄 조치가 내려진 뒤, 캄란과 실라는 10대 시절 테헤란에서의 기억이 떠오른다. 폭격 사이렌을 듣고 지하실로 내려갔을 때 어른들 몰래 사랑을 나누던 기억이었다.
라일라 랄라미 × 내 남동생의 결혼식 남동생의 네 번째 결혼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모로코를 찾은 나는 그 사이에 국경이 봉쇄가 되는 바람에 미국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리며 공항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줄리언 푸크스 × 죽음의 시간, 시간의 죽음 사망자가 늘어나며 시간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리버스 솔로몬 × 분별 있는 여자들 봉쇄 조치가 내려진 뒤 제루샤는 교도소에 갇혀 맨몸으로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을 엄마를 탈출시키기로 한다.
매튜 베이커 × 기원 이야기 봉쇄 조치로 가족, 친척들 모두 베벌리의 집에 모여 지내게 됐다. 공동생활을 하며 가장 신경 쓰이는 일은 식사였고, 특히 디저트로 먹는 아이스크림의 양이 적어 다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에시 에두잔 × 성벽 앞에서 팬데믹이 발생하기 4년 전 나는 첫 남편 토마스와 베이징 여행을 갔었다. 그녀는 만리장성에서 길을 잃었던 그때가 떠오른다.
존 레이 × 열린 도시 바르셀로나 얼마 전 해고된 사비는 통행금지 명령이 내려진 뒤 기발한 아이디어로 사업을 시작한다. 통행증이 있는 사람만 밖을 돌아다닐 수 있었지만,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은 통행증이 없어도 된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에드위지 당티카 × 한 가지 남편이 병원에 실려가기 전 그들은 동굴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아내 마리-잔의 이름과 같은 동굴이었다.
전 세계적인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뉴욕타임스> 편집자들은 700년 전 흑사병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준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떠올리고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고 한다. 이 시대의 유명한 작가들이 쓴 단편소설을 모아 책을 냈고, <데카메론 프로젝트>라 이름 붙였다. 스물아홉 명의 소설가들이 팬데믹을 견뎌내며 쓴 다양한 이야기였다.
스물아홉 개의 이야기 중 몇몇 작품이 기억에 남았다.
<바깥>은 코로나 이후를 가정하고 그리고 있는데,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한 집 안에만 있다가 강제적으로 끌려 나오게 된 사람들이 바깥의 모든 사물, 사람들을 경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끝났다고 해도 왠지 끝나지 않았을 것 같은 심리를 잘 표현했다.
<친절한 강도>는 보건소에서 방문한 직원을 강도라고 오해하는 노인의 짧은 순간을 그리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표현되진 않았지만 아마도 노인은 치매를 앓고 있는 듯 바깥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보건소 직원을 강도라 오해하는 바람에 체온계를 웃기게 생긴 총이라 착각하고, 위생 물품에 담긴 알코올 소독제를 술이라고 여기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그 모습이 왠지 좀 귀엽기도 하고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으나 차라리 이 끔찍한 현실을 인지하지 못해 조금은 다행인 듯한 마음도 들었다.
조금 웃겼던 건 <열린 도시 바르셀로나>였다. 위기를 기회로 잡은 한 남자의 이야기 속에서 사업 덕분에 만난 매력적인 여인과의 시간도 담고 있었다. 하지만 봉쇄 조치가 완화되면서 여인과의 관계 역시 끝났다는 점은 이 불안한 상황 속에서 그저 위안이 될 존재로만 여겨진 것 같아 남자가 조금 불쌍했다.
<기원 이야기>는 온 가족, 친척들이 함께 지내게 된 상황에서 아이스크림을 두고 벌어지는 신경전을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집안의 큰 어른 90세 베벌리와 이제 막 대학 신입생이 된 엘리의 관계를 좋게 풀어준 "아이스아이스크림" 사건이 귀엽고 따뜻했다.
팬데믹으로 가족, 사랑하는 사람과 한 공간에서 지내게 되면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불편이나 관계에 대한 생각들을 담고 있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대부분 좋게좋게 끝이 났다.
그리고 이 시기를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도 여럿 있었다. <산책>, <더 팀>, <시스템> 등의 짧은 이야기를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아 이 시기를 무사히 넘고 예전의 그 시절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줬다.
유명한 작가 29명의 단편을 담은 책이라고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읽은 작가는 마거릿 애트우드와 파올로 조르다노뿐이었다. 그나마 이름을 아는 작가는 레일라 슬리마니였고 그 외에 다른 작가들은 내게 완전히 생소했다. 물론 작가의 이름을 아느냐 모르느냐 따위는 책을 읽는 데에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인상적인 건 영미권 작가뿐만 아니라 아시아계, 라틴계, 아프리카계 등 여러 나라의 많은 작가들이 이 프로젝트를 위해 짧지만 인상적인 글을 써줬다는 점이다. 덕분에 작가들의 다양한 시선으로 팬데믹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아쉬운 건 단편이 29가지나 되다 보니 책을 덮을 때엔 기억에 남은 이야기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점은 아무래도 내가 단편에 약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흑사병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사람들을 위로해 준 <데카메론>이 있었듯, <데카메론 프로젝트> 덕분에 21세기 코로나에 찌든 이 상황에 조금이나마 웃게 해줬고 위로를 주기도 했다. 모두가 이 상황을 이겨내고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 이 리뷰는 인플루엔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힘든 한 해를 보내셨군요. 안 그런가요?" 모나 아와드 <이처럼 푸른 하늘> - P35
당신은 마지막으로 사람들 사이에 있던 것이 언제인지 생각했다. 마스크를 쓰고 허겁지겁 일주일에 한 번 식료품점에 다녀오거나 사서함에 아무렇게나 쌓인, 꼭 필요하지도 않은 상자들을 챙겨 돌아오는 것은 셈에 넣지 않았다. 특히 비말이 비처럼 쏟아진다는 역겨운 개념을 소개한 팟캐스트를 들은 뒤로는 보이는 사람마다 최대한 거리를 유지했고, 전파가 두려워 다른 사람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토미 오렌지 <더 팀> - P82
서로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면 마스크를 벗고 만나야 할 텐데.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마스크를 벗는다면 과연 서로를 신뢰할 수 있을까? 이윤 리 <목련 나무 아래> - P114
지켜보며 기다리는 것.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 그것은 새로운 세계 전체가, 직접 침범되지 않은 모든 이들이 함께하고 있는 팀워크다. 그것은 마라톤이 될 것이다. 이 고립이 될 것이다. 그러나 팀이 해낼 수 있는, 인간들이 빌어먹을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토미 오렌지 <더 팀> - P86.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