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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서머스 1~2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9월
평점 :
청부살인업자 빌리 서머스는 일을 하는 데 있어서 한 가지 철칙이 있다. 의뢰를 받아 아무나 죽이는 게 아니라 나쁜 놈들만 죽인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자신도 사람을 죽이는 일로 먹고살고 있어서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죽일 만한 놈들을 해치우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과는 다르다.
이렇게 단 하나의 철칙을 고수하며 일을 했던 빌리는 이제 은퇴를 하고 싶다. 일을 가려서 받았기에 돈이 많다고는 못하더라도 늙어 죽을 때까지 적당히 아끼면서 살 수 있을 만큼은 벌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 있는 그에게 종종 일을 맡겼었던 닉 머제리언에게서 연락이 왔다. 재판을 받기 위해 구치소에 있는 조엘 앨런이 법원 앞에 나타났을 때 저격해 죽이라는 것이었다. 닉은 빌리가 이 일을 수락하면 '데이비드 로크리지'라는 이름의 작가로 마을에서 지내야 한다고 했는데, 그건 조엘 앨런이 언제 재판을 받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착수금으로 50만 달러를 받게 될 것이고, 일이 완료된 후에 150만 달러를 받게 될 거라고 했다. 빌리가 백발백중의 스나이퍼라고는 해도 총합이 200만 달러인 어마어마한 일을 맡아본 적이 없어서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빌리는 고민을 해보지만 그래도 마지막 한탕이라는 생각에 일을 수락한다.
그렇게 작가 데이비드 로크리지로 살게 된 빌리는 이웃 애커먼 가족과 가깝게 지냈고, 작가의 작업실로 빌린 법원 건너편 제러드 타워에서 입주민들과도 안면을 튼다.
그러면서 빌리는 시간을 죽일 겸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빌리가 백발백중으로 유명해진 건 해병대에 복무하던 중 이라크에 파병을 나갔을 때부터였다. 여러 임무를 수행하며 훈장을 받고, 엄지발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로 제대를 한 후에 함께 복무했던 전우에게서 나쁜 놈을 좀 처리해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러면서 빌리는 브로커인 버키 핸슨과도 만나게 됐다.
빌리에게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가 닉과 같은 사람들 앞에서는 조금은 멍청한 척을 한다는 것이었다. 청부살인업자로 일을 할 때 빌리가 쓰는 가면과도 같았다. 약간은 바보처럼, 눈치가 없는 사람인 듯 보여야 그들이 안심을 한다고 여기는 듯했다. 원래의 빌리는 책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읽고 다른 이들이 말할 때 틀린 문법을 지적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하지만, 절대 티를 내지 않는다. 그 덕분에 자신이 아직까지 이 일을 하며 지낼 수 있는 거라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가면을 쓴 빌리에게 마지막 한탕이라는 문구에 어울릴 큰 건수를 맡게 되면서 여태까지와는 다른 생활을 하게 된다. 빌리는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없고, 당연히 결혼도 하지 않았으며, 가족이라고는 어릴 때 살해된 동생과 헤어진 어머니가 있었다. 위탁가정에 보내져 얼마 동안 지내다 해병대에 자원했고, 그 후에 이 일을 하게 되었으니 누군가와 가까워질 수 없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데이비드라는 이름으로 지내게 되면서 이웃들은 물론이고 작업실 건물의 사람들과도 가까워졌다. 놀라운 건 빌리 스스로도 그들과의 관계를 너무나 즐기고 있었다는 데에 있었다. 이 일을 수락하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잘 지내는 빌리는 나중에 자신이 한 일이 밝혀졌을 때 그들이 얼마나 실망하게 될지 조금은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된 듯했다.
그러면서 빌리는 닉을 비롯한 다른 이들이 모르는 '돌턴 스미스'라는 이름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집을 얻는다. 당연히 지금의 모습과는 다른 외형으로 꾸미고선 말이다. 빌리에게 돌턴 스미스는 일종의 보험이었다. 어쩌면 이 상황에 꺼림칙한 구석이 있다는 걸 내내 느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 것일 터였다.
그렇게 작가로 지내다 디데이가 왔을 때 빌리는 당연히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끝냈다. 하지만 닉이 세운 탈출 계획을 따르지 않고 그의 부하들의 눈을 피해 달아나 돌턴 스미스의 거처에서 두문불출했다. 저격 사건이 잠잠해질 때까지, 닉 일당들이 빌리를 찾는 걸 슬슬 포기할 때까지 버티려고 했다.
그런데 변수가 나타났다. 지하층에 사는 돌턴 스미스의 집 창문 바깥에 웬 남자들이 나타나 술에 취한 듯한 여자를 버리고 간 것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었고 여자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기에 저러다 죽겠다 싶은 생각이 든 빌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 여자를 데리러 나갔다가 들어왔다. 이제 성인이 되었을까 말까 한 여자애는 맞은 듯한 자국이 있었는데, 그것보다 심각한 건 성폭행을 당한 듯 보였다는 것이다. 빌리가 여자애 앨리스를 구하게 되면서 소설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고, 닉 일당이 빌리에게 줘야 할 보수를 주지 않아 브로커 버키에게 연락을 하게 되면서 닉의 배후에 더 큰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내가 읽은 스티븐 킹의 소설에는 작가가 종종 등장하는데, 이 소설에서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킬러가 등장했다. 작가의 신분으로 지내는 동안 빌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삶을 회고했다. 역경이 가득한 삶이었고 막다른 길로 갈 수도 있었지만, 빌리는 그러지 않고 나쁜 놈들을 죽이는 일을 하며 착한 이들이 조금 더 평안한 삶을 살도록 뒤에서 애를 썼다. 소설을 읽을 때면 대체로 주인공에게 마음이 기울 수밖에 없는데, 빌리는 아무리 봐도 좋은 사람이라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앨리스를 만나게 된 후에는 예상을 벗어난 상황이 종종 발생했지만, 빌리는 선(線)을 지키며 선(善)을 행했다. 나쁜 놈들은 고통받아야 마땅하니 말이다.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배후가 드러났고, 빌리 자신을 비롯해 앨리스까지 위험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 킬러와 비밀스러운 자전적 소설에 관한 놀라운 결말에 이르렀다. 결말 부분을 읽으면서 눈물이 나기도 했을 만큼 소설에 푹 빠졌었다.
역시 스티븐 킹이다. 여태껏 정말 많은 작품을 냈고 매해 빠지지 않고 책을 펴내는 것 같은데, 읽는 소설마다 재미가 있다. 어쩜 이렇게 재미있는 글을 쓰시는지 놀랍기만 하다. 정말 대단한 작가다. 그래서 늘 믿고 읽는다!
운명을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벌어진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자신을 설득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민낯의 진실을 대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놓는 바보 같은 헛소리다. 그것 우연이었고 거기에서부터 모든 게 시작됐다. 2권 - P26
"그 자식이 고통을 당하면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 그러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되겠지만요." "그게 인간적인 반응이지. 나쁜 놈들은 대가를 치러야 해. 그것도 혹독하게." 2권 - P76
by. 빌리 노트북에 그가 벤지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이유는 도전 과제이자 그 유명한 마지막 한탕이기 때문이었지만, 이제는 보다 더 심오하고 진정한 이유가 있었다는 걸 안다. 누군가가 그의 이야기를 읽어 주길 바라는 것이다. 1권 - P157.158
by. 앨리스 "그럴 수 있다는 거 알았어요? 모니터나 종이 앞에 앉아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거? 영원히 유지되지는 않고 세상은 항상 원래대로 돌아가지만 그래도 그러기 전까지는 얼마나 근사한지 몰라요. 그게 제일 중요해요. 뭐든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거든요." 2권 - P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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