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린터 - 언더월드
정이안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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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친구이자 함께 입양되어 가족이 된 고등학생 강단이와 이연아, 하지태는 2호선 지하철을 타고 자신들만의 소란스러운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주목받는 단거리 육상 선수인 단이가 코치 스티브가 괜찮은 거라며 준 약을 먹고 세계육상선수권 대회에서 도핑 테스트에 걸려 모든 게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가는 곳마다 지지를 받았던 단이는 그 후로 사람들의 싸늘한 눈초리만 받았다. 그로 인해 단이는 이제 달리기는 그만둘 거라고 하며, 인터넷 방송을 하는 연아의 채널에서 마지막으로 뛰어본 것이었다.
목표한 것을 이루고 기뻐하는 아이들을 태운 지하철은 여지없이 운행을 지속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열차가 멈춰 섰고 전기가 끊겨 암흑에 휩싸였다. 이내 불이 다시 들어왔지만 이후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마치 영화에나 존재할 법한 괴물이 어두운 지하철 터널 안에서 나타나 사람들을 물어뜯고 공격해 죽이는 것이었다. 단이는 지태, 연아를 데리고 도망치는 데에 집중한다. 그러다 버스만 타고 출퇴근을 하던 엄마가 무슨 일 때문인지 노량진역에 갇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국정원 실장 기현국은 3년 전 세상을 떠난 장호준 박사의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의문의 상대는 현국에게 장 박사를 처음 만난 곳으로 오라는 말만 남긴다.
일단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었던 현국은 청와대 비밀 지하 벙커로 향한다. 그곳에서 국정원장을 비롯해 개헌으로 9년째 집권 중인 대통령과 여러 부처 장관들을 마주한다. 현재 지하철 2호선 내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논의하기 위함이었다.



평범한 고등학생 세 친구가 맞닥뜨린 괴물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도망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은 다치지 않고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엄마를 구하러 가야 한다는 문제에 직면했다. 단이와 연아, 지태가 10살이었을 때, 그들의 부모가 한날한시에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고아가 되어버렸는데, 이혼한 지태의 친엄마가 세 아이들을 모두 데려다 키운 것이었다. 진짜 자기 자식처럼 사랑해 준 엄마였기에 세 아이들은 당연히 엄마를 구하러 가야만 했다.
하지만 지하철역은 살고 싶은 사람들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어 잘못하면 깔려 죽을 판이었고, 그곳을 무사히 벗어났을 땐 군인들이 나타나 강압적으로 역 밖으로 사람들을 몰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 갑작스럽게 괴물들이 나타나 무자비하게 공격을 해대고 있었으니 정말이지 정신이 하나도 없고 두려운 지경이었다.
그런데 다행히 아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이 있었으니 지하철역에서 아무도 모르는 구역에 사는 노숙자 꼬마 화니였다. 아기 때 버려진 화니를 노숙자들이 데려다 키우며 그녀 역시 지하철역의 노숙자 마을에서 살게 된 것이었다. 그곳에 살면서 하루 종일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화니 덕분에 단이와 친구들은 2호선에서 노량진역으로 갈 수 있었다.

이렇게 긴박한 와중에 기현국의 시점을 통해 괴물이 어떻게 생겨나게 된 것인지 알 수 있게 했다. 괴물들을 부르는 명칭은 '유니언'이고 유니언들의 우두머리는 '신야'라고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노아 프로젝트'라고 명명했다. 50년 이상 한국에서 비밀리에 진행된 노아 프로젝트는 이번 대통령으로 완성되었는데, 이 사람은 이걸 기회로 삼아 인간이 한 단계 진화할 수 있을 거라는 야욕을 드러냈다.
현국은 대통령의 더러운 욕망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그의 노력이 대통령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게 밝혀져 충격을 줬다. 처음에 현국이 등장하고 괴물의 정체와 관련된 것들이 밝혀진 뒤에는 그를 응원했었다. 하지만 신야와 유니언들을 막기 위해 현국이 선택한 방법을 보며 너무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다수의 희생을 막기 위해 소수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소설이 중반을 넘어 후반을 향해 가면서 다행히 아이들은 엄마를 구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 현국이 지시한 거짓말로 인해 단이는 최악의 경우로 점점 가까워졌다. 독가스로 인해 죽을 뻔한 위기에서 겨우 벗어났을 때, 대통령이 그토록 생포하라고 했던 신야를 직접 마주하게 된다. 놀랍게도 신야는 괴물의 모습이 아닌 곱게 잘 빚은 것 같은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신야와 대화를 한 후에 나가는 길을 알게 된 단이는 놀라운 능력을 갖게 됐다. 덕분에 위험에 빠진 연아를 구할 수 있었고, 나중엔 인간다운 선택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죽을 위기에 처했던 또 다른 한 사람 현국은 괴한들에게 납치되었는데, 그를 납치한 사람의 정체가 밝혀지며 다시금 큰 충격을 줬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고등학생 스프린터와 지하철 깊은 곳에 존재하는 괴물에 관한 이 책은 한국 소설에서 거의 본 적이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거기에 거대한 권력과 인간의 악한 면까지 말하고 있었다. 상상력이 어디까지 뻗어나가는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아 소설 후반을 읽으며 내내 감탄했다.

소설은 3부작으로 계획됐다고 하는데 이 책 이후로는 속편이 나오질 않고 있다. 벌써 6년이나 지났는데 출판이 되지 않는 걸 보면 아예 안 나오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서 아쉽다. 책을 이대로 끝내기엔 설정을 잘 쌓아 올렸기 때문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속편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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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생겨도, 우리, 사람다운 선택을 하자. 우리가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자." - P339

분명 이 모든 것을 계획한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 누군가가 괴물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괴물들이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겠는데, 괴물들을 이용한 존재가 있을지도 모른다니. - P177

─ 우린 거대한 흐름 속에 놓여 있지만 우리가 무엇이 될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 그 믿음을 잊지 마. - P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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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아웃랜더 1~2 - 전2권
다이애나 개벌돈 지음, 심연희 옮김 / 오렌지디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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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난 1945년.
결혼한 지 8년이 되었지만 전쟁으로 인해 정작 함께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은 클레어와 프랭크 부부는 드디어 신혼여행을 오게 됐다. 스코틀랜드는 역사 교수로 부임 예정인 남편 프랭크가 좋아하는 과거사를 되짚을 수 있는 곳이었고, 육군 간호사로 일했던 클레어 또한 식물을 좋아하는 취향에 맞는 여행지였다.

한창 여행을 하던 두 사람은 우연히 어떤 커다란 선돌 사이에서 마을 여자들이 이른 시각에 모여 춤을 추는 걸 목격하게 된다. 그날 밤, 클레어는 선돌 근처에 핀 식물을 보러 다시 갔다가 마치 돌이 소리를 지르는 듯한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된다.
정신을 다잡고 프랭크가 있는 숙소로 돌아가려던 클레어는 킬트를 입은 남자들을 본다. 무슨 영화 촬영이라도 하나 싶었지만, 그런 남자들은 한둘이 아니었고 그들이 들고 있는 무기 또한 현대의 것이 아니란 걸 깨닫는다. 그러는 동시에 클레어 앞에 프랭크와 아주 닮은 한 남자가 나타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코틀랜드인에게 납치되는 일까지 겪는다.



선돌 주위에서 춤을 추는 여자들을 목격한 뒤에 클레어는 200년 전의 스코틀랜드로 뚝 떨어지게 됐다. 그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면 당연히 현실을 부정하고 꿈이라 여기겠지만, 남편이 역사학자라 들은 게 많아서 그런지 그녀는 상황을 금세 파악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700년대의 과거라서 할 수 있는 게 없긴 했지만 말이다.

가뜩이나 잉글랜드인인 그녀는 다행히 남편 프랭크의 선조인 조너선 랜들과 가장 먼저 마주 하긴 했지만, 의심을 사는 바람에 끈질긴 악연이 시작됐다. 이런 상황에 잉글랜드인에게 적대적인 스코틀랜드인이 나타나 클레어를 납치해 끌고 갔다. 아직 문명이 발전되지 않은 시대이고 여자들이 제대로 된 권리를 받지 못했던 때라 늦은 시간에 혼자 돌아다니는 클레어는 창녀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그녀는 보통 여자가 아니라 전쟁을 겪고 그 전쟁터에서 다친 병사들을 치료하던 간호사라 그런지 굉장한 패기를 보여주며 다소 야만적인 이들의 기를 한풀 꺾어 놓았다. 그러는 동시에 싸움을 벌이다 다친 한 남자를 치료해 주는 직업정신을 발휘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클레어는 매켄지 영주의 성에 들어가 치료사로 지내며 틈틈이 도망칠 기회를 엿본다. 하지만 여러 사건에 얽히고 가문 사이의 일이나 마녀사냥 등으로 인해 클레어는 번번이 위기에 처했다. 거기에 잉글랜드 군인 조너선 랜들이 클레어를 마주할 때마다 숨통을 조이곤 해서 그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스코틀랜드인이 되는 것뿐이었기에 클레어는 이곳에서 처음 치료를 해줬던 제이미와 부부가 된다.

정말이지 클레어가 너무 끔찍하고 많은 일을 겪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꿋꿋하게 버티는지 대단하다고 느꼈을 만큼 클레어는 온갖 사건을 겪고 또 겪었다. 게다가 이미 결혼을 한 몸인데 이 과거에서 또 결혼을 해야 했으니 곤혹스러움이 말도 아니었다. 다행인 건 클레어와 결혼한 제이미가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한 뒤에는 우려와는 다르게 서로에게 깊이 빠져드는 장면이 이어졌다. 이 부분을 읽으며 소설이 그저 판타지가 아니라 로맨스 판타지라는 걸 깨달았을 만큼 두 사람은 진짜 사랑을 하게 된 거라고 느꼈다. 클레어의 인생을 뒤바꿀 선택을 하게 만들었을 만큼 어느새 깊어진 사랑이라 조금 놀랍기도 했다.
소설은 클레어와 제이미의 사랑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역사를 따라 흘렀고, 제이미와 조너선 랜들의 악연까지 쉴 새 없이 몰아쳤다. 악인이 생각보다 이르게 생을 마감한 뒤에도 소설의 분량이 꽤 남아있었는데, 뒷부분은 제이미에게 남은 트라우마에 관한 내용과 깊어만 가는 클레어의 사랑으로 이어졌다.

정말 기나긴 이야기였지만 초반만 견디고 나면 금세 몰입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의 역사는 아는 게 없다고 볼 수 있지만 다행히 핵심 내용을 설명을 할애한 페이지가 있었고, 로맨스가 섞이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기나긴 소설은 굉장히 긴 시리즈인데 아직 국내에 출판된 게 이 작품과 두 번째 이야기뿐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그마저도 절판인 듯 하나 개정판이 새로 나올 예정인가 보다. 얼른 속편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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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에 하나씩 낀 결혼반지는 한쪽은 은, 또 한쪽은 금이었다. 순간 그 가느다란 금속의 무게가 마치 결혼의 구속만큼이나 무겁게만 느껴졌다. 이 반지들은 마치 자그마한 족쇄처럼 나를 침대에 붙들어 매어 두 기둥 사이에 영원히 묶었고, 외로이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심장을 찢기는 프로메테우스처럼 내 마음속 사랑을 찢고 있었다. 1권 - P629

"모든 사람의 행동은 미래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입니다. 만약 자매님께서 원래 위치에 그대로 계셨다 해도, 자매님의 행동은 여전히 그 후에 일어날 상황에 영향을 미쳤겠지요. 지금 못지않게 말입니다. 자매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책임이 있으신 겁니다. 모든 사람이 어느 시대에나 다 마찬가지죠. 유일한 차이점이 있다면, 자매님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겠습니다. 하지만 그조차 아닐 수도 있고요." 2권 - P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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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 간 심리학
박소진 지음 / 믹스커피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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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하는 내가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책이라 읽기 시작했다. 심리학에 관한 책은 몇 권 읽어본 기억이 나지만, 영화와 접목시킨 이 책 덕분에 이전에 봤던 영화를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영화도 원작 소설도 충격을 줬던 <케빈에 대하여>에 대해 소개한 부분을 읽으면서 역시 심리학자의 입장에서는 다르게 보이는구나 싶은 생각을 했다. 평범한 내가 볼 땐 케빈에게 사이코패스 성향 같은 큰 문제가 있었고, 엄마 에바는 원치 않았던 임신으로 케빈에게 사랑을 주지 못했다는 걸 영화를 통해 느꼈었다.
저자는 영화에 대해 설명하면서 아이와 주양육자와의 사이에 애착이 형성되어야 할 시기가 있는데, 영화 속 케빈과 에바 사이에는 그 애착이 형성되지 않아 대인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게 되는 거라고 말했다. 산후우울증을 겪은 엄마로 인해 아이에게 어떻게든 영향이 미칠 수도 있고 말이다.
영화를 보며 했던 생각은 아빠의 역할이 중요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점에서 상황을 악화시킨 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에바의 남편은 애는 원래 많이 운다는 태도를 보였고, 나중엔 오냐오냐하며 에바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비약일 수도 있지만 남편이자 아빠가 중간 역할을 제대로 못해줬기에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스릴러의 패러다임을 바꾼 <나를 찾아줘>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 인상적이었고, 코미디를 안 좋아하지만 재미있게 본 <극한직업>의 포인트를 짚어준 설명도 좋았다.




내가 본 영화도 많았지만 못 본 영화들에 대해 설명하며 영화에 대해 궁금해지게 만들었다. 전문가의 시선으로 영화를 새롭게 본 느낌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삶을 훔쳐보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이런 욕구를 영화가 일정 부분 해소해주면서 그 안에서 자신을 투영하기도 하고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기도 한다.
이렇듯 영화는 안전한 투사 도구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영상 텍스트 맥락에서 심리적으로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영화의 등장인물에게 자신의 다양한 감정을 투사한다. - P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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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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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전문 서점을 운영하는 맬컴 커쇼에게 FBI 요원 그웬 멀비가 찾아온다. 그녀는 말을 꺼내기 전에 지금부터 자신이 하는 말은 비밀로 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맬컴이 긍정의 답을 보이자 그웬은 몇 사람의 이름을 대며 아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들려준 이름들 중에 살해된 아나운서 외에는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자 그웬은 추리소설 서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봤을 때 뭔가 연관성이 있을 것 같은지 물어보았고, 그는 솔직하게 이름에서 오는 느낌들을 말해줬다.

답을 들은 그웬은 오래전에 맬컴이 서점 블로그에 올린 글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에 대해 말했다. 그 글은 십몇 년 전에 맬컴이 쓴 것이었다. 서점 운영에 활력을 주고자 자신이 생각하는 소설 속 완벽한 살인에 관한 리스트 목록이었다.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고 잡힐 확률이 극히 낮아서 완벽한 살인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 일어나는 살인이 맬컴이 오래전에 쓴 그 살인과 거의 흡사한 방식으로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살인은 현재진행형이라 그웬이 맬컴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었다.



추리, 스릴러 소설 속 살인을 보면 어떻게 저러고도 안 잡힐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다. 범인이 잡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더러는 이 소설의 제목처럼 완벽한 살인을 저지르고 사라지는 살인범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 소설은 잡히지 않을 것 같은 완벽한 살인을 저지른 여덟 편의 소설을 소개하며 그 리스트 속 살인을 똑같이 저지르고 다니는 살인범을 추적하고 있다. 글을 쓴 장본인인 맬컴과 FBI 요원 그웬이 합심해서 말이다.

그런데 시작부터 묘한 느낌이 들었던 건 화자인 맬컴이 숨기고 싶어 하는 게 있어서 완벽하게 신뢰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화자에게 뒤통수를 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이 소설의 주인공인 그 역시 믿기 어려웠다. 맬컴이 그웬에게 협조를 하며 살인범을 찾으려고 애를 쓰고 있긴 했지만, 그건 순전히 본인을 위해서 하는 행동처럼 보였다. 자신이 쓴 리스트를 따라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범이 있다는 어떤 책임감 때문이기도 했고, 혹시라도 자신이 누명을 쓸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사건에 개입하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조금은 꺼림칙한 분위기를 풍기던 맬컴의 사연이 드러났다. 그가 자신이 쓴 소설 리스트 속 살인을 경험했던 것이었다. 맬컴이 저지른 리스트 속 살인은 다행히 내가 읽은 책이었기에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이 되었던 그 살인의 상황을 금세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 사건이 계기였다는 걸 깨달은 맬컴은 자신이 시작한 그 살인과 관련된 사람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그 사람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지는 않는 게 당연했다.

소설이 중반을 넘어 후반을 향해 가면서 몇 번의 살인이 이어졌는데, 맬컴은 살인범의 흔적을 잡아 추적을 이어가며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다 맬컴의 서점 동업자이자 소설가인 브라이언이 타깃이 됐다는 걸 알게 되면서 범인과 대면하게 됐다. 동시에 맬컴이 과거에 저지른 리스트 속 살인과 관련된 비밀이 밝혀지며 소설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렀다.
더욱 놀라운 건 결말에 밝혀진 반전이었다. 소설이 약간 애매하게 끝이 나서 확실하진 않은데, 흐름을 봤을 때 소설 초반에 느꼈던 맬컴에 관한 이미지에 부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소설에서도 수없이 차용된 반전이라 익숙하지만, 이 소설에서도 그런 끝으로 이어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뭔가 김이 새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은 그냥 가볍게 읽기에 무난한 책이었다. 책장이 잘 넘어간다는 장점이 있었다.


"당신의 리스트를 따라 하는 사람이 누구든 간에 그는 당신을 알고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당신도 그를 안다는 뜻은 아니에요……. 당신이 알 수도 있어요. 하지만 범인은 확실히 당신을 알아요." - P143

우리는 누구에게서도 결코 완전한 진실을 얻을 수 없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만나 말을 나누기 전에도 이미 거짓과 절반의 진실이 존재한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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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서머스 1~2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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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살인업자 빌리 서머스는 일을 하는 데 있어서 한 가지 철칙이 있다. 의뢰를 받아 아무나 죽이는 게 아니라 나쁜 놈들만 죽인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자신도 사람을 죽이는 일로 먹고살고 있어서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죽일 만한 놈들을 해치우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과는 다르다.
이렇게 단 하나의 철칙을 고수하며 일을 했던 빌리는 이제 은퇴를 하고 싶다. 일을 가려서 받았기에 돈이 많다고는 못하더라도 늙어 죽을 때까지 적당히 아끼면서 살 수 있을 만큼은 벌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 있는 그에게 종종 일을 맡겼었던 닉 머제리언에게서 연락이 왔다. 재판을 받기 위해 구치소에 있는 조엘 앨런이 법원 앞에 나타났을 때 저격해 죽이라는 것이었다. 닉은 빌리가 이 일을 수락하면 '데이비드 로크리지'라는 이름의 작가로 마을에서 지내야 한다고 했는데, 그건 조엘 앨런이 언제 재판을 받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착수금으로 50만 달러를 받게 될 것이고, 일이 완료된 후에 150만 달러를 받게 될 거라고 했다. 빌리가 백발백중의 스나이퍼라고는 해도 총합이 200만 달러인 어마어마한 일을 맡아본 적이 없어서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빌리는 고민을 해보지만 그래도 마지막 한탕이라는 생각에 일을 수락한다.

그렇게 작가 데이비드 로크리지로 살게 된 빌리는 이웃 애커먼 가족과 가깝게 지냈고, 작가의 작업실로 빌린 법원 건너편 제러드 타워에서 입주민들과도 안면을 튼다.
그러면서 빌리는 시간을 죽일 겸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빌리가 백발백중으로 유명해진 건 해병대에 복무하던 중 이라크에 파병을 나갔을 때부터였다. 여러 임무를 수행하며 훈장을 받고, 엄지발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로 제대를 한 후에 함께 복무했던 전우에게서 나쁜 놈을 좀 처리해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러면서 빌리는 브로커인 버키 핸슨과도 만나게 됐다.
빌리에게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가 닉과 같은 사람들 앞에서는 조금은 멍청한 척을 한다는 것이었다. 청부살인업자로 일을 할 때 빌리가 쓰는 가면과도 같았다. 약간은 바보처럼, 눈치가 없는 사람인 듯 보여야 그들이 안심을 한다고 여기는 듯했다. 원래의 빌리는 책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읽고 다른 이들이 말할 때 틀린 문법을 지적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하지만, 절대 티를 내지 않는다. 그 덕분에 자신이 아직까지 이 일을 하며 지낼 수 있는 거라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가면을 쓴 빌리에게 마지막 한탕이라는 문구에 어울릴 큰 건수를 맡게 되면서 여태까지와는 다른 생활을 하게 된다. 빌리는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없고, 당연히 결혼도 하지 않았으며, 가족이라고는 어릴 때 살해된 동생과 헤어진 어머니가 있었다. 위탁가정에 보내져 얼마 동안 지내다 해병대에 자원했고, 그 후에 이 일을 하게 되었으니 누군가와 가까워질 수 없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데이비드라는 이름으로 지내게 되면서 이웃들은 물론이고 작업실 건물의 사람들과도 가까워졌다. 놀라운 건 빌리 스스로도 그들과의 관계를 너무나 즐기고 있었다는 데에 있었다. 이 일을 수락하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잘 지내는 빌리는 나중에 자신이 한 일이 밝혀졌을 때 그들이 얼마나 실망하게 될지 조금은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된 듯했다.
그러면서 빌리는 닉을 비롯한 다른 이들이 모르는 '돌턴 스미스'라는 이름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집을 얻는다. 당연히 지금의 모습과는 다른 외형으로 꾸미고선 말이다. 빌리에게 돌턴 스미스는 일종의 보험이었다. 어쩌면 이 상황에 꺼림칙한 구석이 있다는 걸 내내 느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 것일 터였다.

그렇게 작가로 지내다 디데이가 왔을 때 빌리는 당연히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끝냈다. 하지만 닉이 세운 탈출 계획을 따르지 않고 그의 부하들의 눈을 피해 달아나 돌턴 스미스의 거처에서 두문불출했다. 저격 사건이 잠잠해질 때까지, 닉 일당들이 빌리를 찾는 걸 슬슬 포기할 때까지 버티려고 했다.
그런데 변수가 나타났다. 지하층에 사는 돌턴 스미스의 집 창문 바깥에 웬 남자들이 나타나 술에 취한 듯한 여자를 버리고 간 것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었고 여자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기에 저러다 죽겠다 싶은 생각이 든 빌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 여자를 데리러 나갔다가 들어왔다. 이제 성인이 되었을까 말까 한 여자애는 맞은 듯한 자국이 있었는데, 그것보다 심각한 건 성폭행을 당한 듯 보였다는 것이다. 빌리가 여자애 앨리스를 구하게 되면서 소설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고, 닉 일당이 빌리에게 줘야 할 보수를 주지 않아 브로커 버키에게 연락을 하게 되면서 닉의 배후에 더 큰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내가 읽은 스티븐 킹의 소설에는 작가가 종종 등장하는데, 이 소설에서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킬러가 등장했다. 작가의 신분으로 지내는 동안 빌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삶을 회고했다. 역경이 가득한 삶이었고 막다른 길로 갈 수도 있었지만, 빌리는 그러지 않고 나쁜 놈들을 죽이는 일을 하며 착한 이들이 조금 더 평안한 삶을 살도록 뒤에서 애를 썼다. 소설을 읽을 때면 대체로 주인공에게 마음이 기울 수밖에 없는데, 빌리는 아무리 봐도 좋은 사람이라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앨리스를 만나게 된 후에는 예상을 벗어난 상황이 종종 발생했지만, 빌리는 선(線)을 지키며 선(善)을 행했다. 나쁜 놈들은 고통받아야 마땅하니 말이다.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배후가 드러났고, 빌리 자신을 비롯해 앨리스까지 위험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 킬러와 비밀스러운 자전적 소설에 관한 놀라운 결말에 이르렀다. 결말 부분을 읽으면서 눈물이 나기도 했을 만큼 소설에 푹 빠졌었다.

역시 스티븐 킹이다. 여태껏 정말 많은 작품을 냈고 매해 빠지지 않고 책을 펴내는 것 같은데, 읽는 소설마다 재미가 있다. 어쩜 이렇게 재미있는 글을 쓰시는지 놀랍기만 하다. 정말 대단한 작가다. 그래서 늘 믿고 읽는다!


운명을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벌어진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자신을 설득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민낯의 진실을 대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놓는 바보 같은 헛소리다. 그것 우연이었고 거기에서부터 모든 게 시작됐다. 2권 - P26

"그 자식이 고통을 당하면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 그러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되겠지만요."
"그게 인간적인 반응이지. 나쁜 놈들은 대가를 치러야 해. 그것도 혹독하게." 2권 - P76

by. 빌리
노트북에 그가 벤지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이유는 도전 과제이자 그 유명한 마지막 한탕이기 때문이었지만, 이제는 보다 더 심오하고 진정한 이유가 있었다는 걸 안다. 누군가가 그의 이야기를 읽어 주길 바라는 것이다. 1권 - P157.158

by. 앨리스
"그럴 수 있다는 거 알았어요? 모니터나 종이 앞에 앉아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거? 영원히 유지되지는 않고 세상은 항상 원래대로 돌아가지만 그래도 그러기 전까지는 얼마나 근사한지 몰라요. 그게 제일 중요해요. 뭐든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거든요." 2권 - P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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