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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23년 1월
평점 :
펜시 고등학교에 다니는 16살 홀든 콜필드는 퇴학을 당했다. 영어 외에 다른 과목의 성적이 낙제였기 때문이다. 홀든은 퇴학을 당한 걸 개의치 않아 했지만, 그걸 걱정하는 단 하난의 이유는 벌써 네 번째 퇴학을 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아시면 호되게 야단을 맞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행히 퇴학을 알리는 교장의 편지가 뉴욕에 있는 집에 도착하기까지 아직 시간 여유가 있기 때문에 홀든은 잠깐 기숙사에서 지내다 짐을 빼서 돌아다닐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기숙사 룸메이트 때문에 짜증이 났고, 옆방에 사는 학생 역시 홀든이 못 견뎌하는 성격을 가진 자라 그는 한밤중에 짐을 싸서 기숙사를 나간다. 그러고선 뉴욕행 기차에 올랐고, 도착한 후에는 싼 호텔을 전전한다.
돈이 떨어지고 마침 여동생 피비가 보고 싶어 부모님의 집에 찾아가는 그 며칠 동안 홀든은 여러 사람을 만나 갖은 일을 겪는다.
16살밖에 되지 않은 고등학생 홀든이 네 번씩이나 퇴학을 당했다는 사실이 소설 초반에 밝혀졌다. 그래서 뭔가 대단히 큰 잘못을 한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성적이 좋지 않아 퇴학을 당한 것이었다. 성적이 나쁜 정도로 퇴학이라니 좀 과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내 홀든이 다닌 펜시 고등학교가 사립 명문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고등학생 입장에서 퇴학을 당한 건 정말로 큰일인데, 홀든은 생각보다 덤덤했다. 네 번째라 무뎌진 탓일 수도 있겠지만 정해진 교육 과정에 충실해야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영어 외에 모든 과목을 낙제점을 받았다니 성격도 확고해 보였고 말이다.
다만 그렇게 자유로운 성향임에도 아직은 아버지가 무서운 나이이긴 했다. 그래서 부모님이 퇴학 사실을 알게 되는 날까지 학교를 떠나 어떻게든 지내보려고 마음을 먹고 뉴욕으로 향한다.
그렇게 홀든은 며칠 동안 뉴욕에서 지내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스치듯 지나간 인연 중에는 택시 기사나 호텔의 엘리베이터 보이, 콜걸 등이 있었고, 형 D. B.가 한때 만났었던 여자나 전에 다니던 학교의 선생님, 한때 친했던 친구도 있었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는 홀든을 보며 아직 어린 나이인데 왜 이다지도 애늙은이 같은 구석이 있나 하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홀든이 하는 말이나 생각들은 그리 즐겁게 살지 않은 삶을 산 노인의 입에서 나올 법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온통 부정적인 생각과 말들이 홀든의 속에 넘쳐흐르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형 D. B.의 행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뚜렷하게 제시했다. 작가로 글을 쓰는 형을 너무나 좋아했지만, 현재는 영화 산업에 뛰어들어 할리우드에서 지내고 있는 형은 세속적인 인간이라 여겼다. 그러면서 홀든은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을 보며 가짜라고 생각하며 무조건적인 비판을 했다.
이런 홀든은 부정적이었고, 염세적이었으며, 확증편향까지 가지고 있는 듯 보이기까지 했다. 홀든의 이 짧은 여정을 읽는 내내 불편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 같은 부담스러운 감정을 느꼈다. 더군다나 내가 긍정적인 편이라 그런지 모든 걸 나쁜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겨우 16살인 홀든이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주변의 환경이 홀든을 이렇게까지 만든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의 고문 변호사로 일하는 아버지와 뉴욕 상류층 집안, 글을 쓰는 일을 버리고 성공을 좇아 할리우드로 간 형, 그리고 사랑했던 남동생이 어린 나이에 백혈병으로 떠난 사건 등이 지금의 홀든을 만들었다고 말이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홀든은 회의적이고 염세적이며 부정적인 인간이 된 걸지도 모른다. 16살은 충분히 어린 나이지만, 환경으로 인해 성격과 인성이 확립되는 시기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게 보면 홀든은 참 안타까운 아이일 수밖에 없다. 스스로 만들어나간 게 아니라 타의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홀든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여동생 피비를 끔찍하게 여겼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다. 순수함의 상징인 피비를 위해 파수꾼이 되고 싶었을 만큼 말이다. 홀든이 생각하기에 자신이 피비의 곁을 떠나는 게 최선이었지만, 피비 덕분에 홀든은 떠나지 않고 마음의 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다행이다.
너무나 유명해서 손이 가질 않았던 책인데 더 이상 미루지 않기 위해 읽게 됐다. 언젠가는 읽겠다고 다짐한 책들은 간략한 줄거리 외엔 아무런 정보 없이 읽기 때문에 이 책 역시 성장 소설이라는 것만 알고 읽었다. 그래서인지 나와 반대되는 사람인 홀든의 짧은 여정을 읽는 내내 불편했고 힘들었다. 그래도 불안해 보였던 홀든이 마지막엔 우려했던 끝을 맞이하지 않았기에 안심했다.
어떤 것들은 계속 그 자리에 두어야만 한다. 저렇게 유리 진열장 속에 가만히 넣어두어야만 한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잘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 P165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유일하게 달라지는 게 있다면 우리들일 것이다. 나이를 더 먹는다거나 그래서는 아니다. 정확하게 그건 아니다. 그저 우리는 늘 변해간다. - P164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인생의 어느 순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환경이 줄 수 없는 어떤 것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네가 그런 경우에 속하는 거지.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속한 환경에서 찾을 수 없다고 그냥 생각해 버리는 거야. 그리고는 단념하지. 실제로 찾으려는 노력도 해보지 않고, 그냥 단념해 버리는 거야.」 - P247.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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