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8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종길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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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런던에서 지내던 록우드는 히스클리프의 집 '드러시크로스'를 당분간 빌려 살기 위해 언덕 위에 있는 그의 또 다른 집 '워더링 하이츠'를 방문한다. 그와 계약을 맺은 록우드는 날씨가 좋지 않은 날 우연찮게 워더링 하이츠에 머물게 되는데, 그 집의 어느 방에서 캐서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 쓴 글을 발견한 뒤 유령 비슷한 걸 목격한다.
이후 드러시크로스로 돌아온 록우드는 심한 몸살이 걸려 자리에 눕게 된다. 그러다 드러시크로스에서 집안일을 봐주는 딘 부인이 아주 오래전에 워더링 하이츠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녀에게 옛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수십여 년 전.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 언쇼 씨는 리버풀에 갔다가 집시처럼 까만 아이를 데리고 와 죽은 아들의 이름을 따 히스클리프라 부른다. 히스클리프를 보자마자 아들 힌들리는 싫은 기색을 내비쳤고, 딸 캐서린은 짐짓 무심한 척하다가 이내 가까운 친구 사이가 된다.
이후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관계는 남녀 사이의 단순한 사랑이라고 표현하기에 부족한 격정적이며 폭풍과도 같은 애정과 미움을 갖게 된다.



15~16년 전에 두 달여 동안 읽었던 이 책을 최근에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다시 읽게 되었다. 처음 읽었을 때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기에 언젠가 다시 읽으려고 다짐했던 책이었는데, 첫 독서의 기억이 그리 좋지 않았기에 여태껏 미루고 있었다. 그래도 영화를 챙겨본 덕분에 잊지 말고 책을 꼭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의 주인공인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은 그들의 시점이나 전지적 시점으로 진행된 게 아니라 곁에서 두 사람을 오랫동안 지켜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던 가정부 딘 부인의 입으로 전달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드러시크로스 저택을 빌려 살게 된 덕분에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에 대해 궁금해진 록우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말이다.

어렸을 적 캐서린과 히스클리프가 처음 만나게 된 건 평범하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서로에게 편견 없이 다가갈 수 있었다. 캐서린의 오빠 힌들리는 그래도 머리가 굵어졌다고 히스클리프를 천대하며 하인을 부리듯 했지만, 캐서린은 또래 친구로 여기고 가깝게 지냈다. 그러는 사이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었으나 한 집에서 남매처럼 지내왔기에 그런 감정을 깨달을 새가 없었다.
마침 드러시크로스에 이사를 온 에드거 린튼으로 인해 히스클리프는 질투라는 감정을 느끼고, 그처럼 용모를 단정하고 깨끗이 하여 캐서린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먹는다. 반면에 캐서린은 조금 변덕스러운 소녀였던 터라 새롭게 만난 친구인 에드거에게 단번에 빠져들었고, 그의 청혼을 깊이 고민해 볼 사이도 없이 받아들이게 됐을 땐 히스클리프에 대한 마음을 깨닫고 만다. 이 사건이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진 본격적인 계기가 되었고, 청혼을 받아들였다고 했을 때 히스클리프는 워더링 하이츠를 떠났다.
사실 히스클리프와 에드거를 향한 자신의 사랑이 다르다고 말하는 캐서린을 조금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여러 종류의 사랑이 있는 게 당연하지만 캐서린이 말하는 사랑은 이기적인 것으로만 보였기 때문이다. 히스클리프의 자유를 위해 에드거를 이용하려던 마음이 특히 마음에 좋지 않게 남았다. 이로 인해 몇 년이 흘러 히스클리프가 다시 워더링 하이츠로 돌아왔을 때 결혼한 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놓아주질 못했다. 죽어서도 말이다. 히스클리프에겐 악만 남아 모든 걸 제 손에 쥐겠다는 과욕만을 부렸다.

초중반까지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캐서린의 죽음으로 끝이 나버렸고, 이후엔 캐서린이 낳은 딸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와 에드거의 동생 이사벨라 사이에서 태어난 린튼, 그리고 힌들리의 아들 헤어튼의 복잡한 관계가 이어졌다. 이 세 사람의 관계는 부모들에게서 이어져 내려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확히는 히스클리프의 욕심으로 인해 마구잡이로 휘둘린 가련한 아이들의 고난이 이어졌다.
아이들은 원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모양인지, 딸 캐서린은 린튼과 흡사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도 되는 듯 둘만의 애절한 사랑을 하다가 뒤늦게 캐서린이 진실을 깨닫고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캐서린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던 헤어튼은 워더링 하이츠의 원래 상속자였지만, 제 아버지로 인해 히스클리프의 하인 노릇을 하고 있었기에 서로 이루어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다행히 뒤늦게 깨달은 캐서린의 똑부러지는 성격 덕분에 모든 게 원래 자리로 돌아갔고, 비극적인 사랑이 대를 잇지는 않게 되었다.

처음 읽었을 때보다는 당연히 훨씬 빨리 읽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머릿속에도 잘 들어왔다.
그럼에도 이들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너무나 지독하고 집착적이며 파괴적인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사랑이 어떤 건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사랑을 잘못 배운 이들로 인해 그들의 아이들까지 불행해질 뻔했다는 게 참 안타깝다. 다행히도 그런 비극이 이어지진 않았지만 말이다.


"저이는 잠시 동안이라도 나를 가엾게 여겨 살리려고 하질 않아. 내가 받은 사랑이란 저런 것이야. 하지만 괜찮아. 저런 것이 나의 히스클리프는 아니니까. 나는 그래도 나의 히스클리프를 사랑할 것이고, 저승까지도 데리고 갈 거야. 그는 내 마음속에 있으니까." - P216

by. 캐서린
"린튼에 대한 내 사랑은 숲의 잎사귀와 같아. 겨울이 돼서 나무의 모습이 달라지듯이 세월이 흐르면 그것도 달라지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어. 그러나 히스클리프에 대한 애정은 땅 밑에 있는 영원한 바위와 같아. 눈에 보이는 기쁨의 근원은 아니더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거야. 넬리, 내가 바로 히스클리프야. 그는 언제까지나 내 마음속에 있어. 나 자신이 반드시 나의 기쁨이 아닌 것처럼 그도 그저 기쁨으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서 내 마음속에 있는 거야." - P136

by. 히스클리프
"난 그녀가 죽은 뒤로 미치광이처럼 밤낮으로 늘 그녀가 내게 돌아오기를 빌었어. 영혼이라도 돌아오라고 말이야." - P480

by. 캐서린의 딸 캐서린
"히스클리프 씨, 당신은 아무도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잖아요. 아무리 우리를 비참하게 만든다 하더라도 말이에요. 아저씨의 그 잔인한 성격은 아저씨가 우리보다 훨씬 비참하기 때문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풀려요. 아저씨는 비참해요, 그렇지 않아요? 악마같이 외롭고 시기심이 많은 거죠. 아무도 아저씨를 사랑하지 않아요. 아저씨가 죽어도 아무도 울어주지 않을 거예요! 저는 아저씨처럼 되진 않을 거예요!" - P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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