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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 간 철학 - 중년의 철학자가 영화를 읽으며 깨달은 삶의 이치
김성환 지음 / 믹스커피 / 2023년 2월
평점 :

매년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겠다고 다짐하는데, 결국 가장 많이 찾게 되는 건 소설 종류이다. 가상의 이야기를 통해 느끼는 재미를 도무지 놓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간혹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지어낸 각본으로 영화가 만들어진다. 만들어 낸 이야기 속에 담긴 여러 인물들과 그들의 관계, 사건 사고를 통해 인생의 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든다.
그런 이유로 내가 좋아하는 영화와 내겐 너무나 낯설기만 한 철학이 만난 책을 읽게 됐다. 고등학교 때 특이하게 교과목으로 철학을 배운 적이 있어서 그렇게 낯설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깝다고 하기엔 너무나 먼 철학이다. 그래서 철학과 관련된 책은 읽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내가 좋아하는 영화과 접목했다니 쉽고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반가웠다.
제일 먼저 소개한 영화는 철학적인 SF 영화로 세기말에 깊은 인상을 준 <매트릭스> 시리즈였다. 뒤늦게 집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철학적인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있으면서도 의미 있게 담아낸 것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잘 모르는 분야이긴 하지만 종교적인 의미도 담아낸 것 같다고 당시에 생각했었는데, 책에서 그 부분을 짚고 넘어갔다. 주인공 '네오'와 '트리니티', '모피어스'까지 기독교와 관련된 뜻이 있어서 역시 이런 부분을 알아야 더 많은 게 보이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신화와 관련된 부분도 이야기했는데, '오라클'은 신탁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네오가 오라클을 만나려고 찾은 부엌문 위에 '너 자신을 알라'의 라틴어 현판도 걸려 있다고 말하며 장면을 되새기게 했다.
<매트릭스> 시리즈는 자의식을 바탕으로 성 충동인 에로스(Eros)와 죽음 충동인 타나토스(Thanatos)가 작동하며 갈등하고 충돌하는 게 인생이라고 정리한 영화라고 했다. <매트릭스> 시리즈의 1편이 워낙 인상적이었던 덕분에 후속작들은 갈수록 1편만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집중력이 떨어져서 깊이 있게 감상하지 못했었는데, 철학자의 시선을 통해 영화를 떠올리니 새삼 영화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첫 키스만 50번째>는 안 봤지만 내용을 아는 영화였다. 이 영화와 관련된 철학은 욕망이었다. 플라톤이 쓴 대화편 <향연>에서 소크라테스가 뭔가를 사랑하는 건 그 대상을 원하는 것이고 그 대상을 원하는 건 그 대상이 부족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간단히 정리하면 욕망은 결핍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욕망이 결핍이라는 전통적인 견해를 뒤집은 건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였다. 욕망을 결핍으로 보면 부정적인 것이 되지만, 욕망을 생산적인 것으로 보면 긍정적인 것이 된다고 했다. <첫 키스만 50번째>의 주인공 헨리가 하루가 지나면 기억을 잃는 루시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도하는 행위는 루시를 만나고 싶은 욕망을 채우고자 방법을 생산해 내는 거라고 말이다.
누군가에게 욕망은 결핍이 될 수도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생산이 될 수도 있는 듯하다.
전 세계 관객들에게 큰 재미를 선사한 마블 스튜디오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플라톤의 우주생성론과 관련짓는 게 놀라웠다. 타노스가 우주의 절반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 모으는 인피니티 스톤으로 말이다. 우주의 탄생과 만물의 생성을 과학에 의존해 설명하며 형이상학 또는 존재론과도 관련 있다고 했다. 단순히 재미를 위해 본 영화인데 철학적으로 접근해 놀라울 따름이었다.
2020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네 개 부문의 상을 수상한 뒤 기자회견에서 봉준호 감독님이 한 말을 통해 헤겔의 변증법을 이야기했다. 관련 전공자도 어렵다고 하는 헤겔의 철학이라고 하는데 너무 어렵지 않게, 영화 <기생충>에 빗대어 표현했다. 대충은 이해했지만 설명할 정도는 아니기에 아쉽다.
내가 좋아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 3부작을 이야기하며 여러 철학을 말했다.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 칸트의 법칙론, 마이클 샌델이 말하는 자유지상주의와 평등주의,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 샌델의 공동선 이론 등 정말 많은 사회철학이 등장했다. 히어로 무비를 만들어도 깊이가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나 보다.

영화를 철학적으로 접근한 이 책을 통해 이미 본 영화를 되새기게 만들었고, 못 본 영화는 궁금해지게 했다. 어렵기만 한 철학을 관심 분야와 연결하니 조금은 친근해진 것 같다. 물론 철학의 치읓 자도 모르는 걸음마 단계라 그래도 어렵긴 했지만 말이다.
이 책 덕분에 앞으로는 철학 관련 책을 심하게 경계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