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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고 있잖아 ㅣ 오늘의 젊은 작가 28
정용준 지음 / 민음사 / 2020년 6월
평점 :
14살 중학생 '나'는 심한 말더듬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웅변 학원에도 다녀봤지만 도무지 고쳐지질 않았다. 하도 말을 더듬어서 친구도 사귈 수 없었고, 국어 선생은 말을 더듬는 나를 고쳐주겠다며 아이들 앞에서 망신을 주는 것만 같다.
이번에 엄마가 보내준 곳은 언어 교정원이었다. 덩치가 큰 남자 원장님이 나를 상담해 줬고, 곧바로 그곳에 다니는 사람들과 만나게 됐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본명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말하기 어려운 단어를 이름 대신으로 불렸다. 나는 무연중학교에 다닌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워서 이름이 '무연'이 됐다. 그곳에서 나는 같은 학교 3학년 누나인 '루트'와 비슷한 나이의 '곰곰이', 그리고 나중엔 이모라 부르게 된 '처방전', 소설가 '마야코프스키', '할머니' 등의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본명이 등장하지 않는 소년 무연은 심한 말더듬증으로 인해 아이의 사회생활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학교에서 외면을 받았다. 같은 반 아이들에게는 물론이고, 선생마저 무연의 말더듬증을 놀리는 것만 같았다. 변명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건 말을 시작했을 때 또 버릇처럼 말을 더듬게 될까 봐 그랬다. 그래서 무연은 자신의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마음속에는 상처가 자꾸만 생겨나고 있었다.
말더듬증을 고치기 위해 엄마는 무연을 여기저기 보냈던 모양인데 다 잘 안된 듯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잘 안될 거라 여겼지만, 언어 교정원은 뭔가 달랐다. 독특하면서도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다니던 그곳에서 언어 교정 수업을 통해 무연은 말더듬증을 고치는 것보다 일단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자신도 모르게 배우게 된 것 같았다. 말을 더듬어서 시작조차 해볼 수 없었던 이전과는 다르게 그곳의 사람들은 기다려줬고 소리 내지 않고 응원을 해주는 것처럼 느껴져서 무연은 조금씩 말을 먼저 시작할 수 있게 됐다. 단번에 그 일이 일어난 건 아니었던 터라 수업의 일환으로 거리로 나가 모르는 사람에 말을 걸거나 스피치 같은 걸 해야 했지만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이런 동시에 무연의 가정 내에서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상황으로 인해 또 다른 고통에 처해 있었다. 때때로 술을 마시면 괴로워하고 상처 주는 말을 꺼내는 엄마에게 무연은 애증을 가지고 있었다. 엄마가 만나는 남자친구는 모두 제대로 된 사람들이 없었기에 그것 또한 무연에게 괴로움을 안겨줬다. 이전에 만났던 쓰레기가 다시 집에 들어와 함께 지내게 되면서 무연은 집보다 교정원이 더 편안할 지경이었다.
무연을 중심으로 교정원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면서 언어적 교감과 비언어적 교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모든 이들은 대부분 언어를 통해 생각과 감정을 나누고, 상대를 파악하기 마련이다. 비언어적 교감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표정을 통해 상대가 나에게 호감이 있는지 아니면 싫어하는지 판단할 수도 있다.
이 소설 속 교정원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헤아리는 방법을 터득한 듯싶었다. 물론 언어나 기록이라는 직접적인 방법을 통해 마음을 전달할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말하지 않아도 먼저 헤아리고 이해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말이 상처를 줄 때도 많다는 걸 알고 있기에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거라고 말이다. 아무래도 그들이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들리는 말이 아닌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과정이 이 소설만의 방식으로 그려졌다. 소설 후반엔 큰 사건이 일어나 어떻게 될지 걱정됐지만, 어느새 진심을 나누게 된 관계 덕분에 무사히 해결되어 다행이었다.
짧은 소설이었지만 이 속에 담긴 관계와 언어, 진심 등이 마음에 와닿았다.
누가 시키지 않으면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나는 이제 괴롭힘조차 당하지 않는 존재감 없는 존재가 됐다. 투명 인간처럼,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사람이 됐다. 꼼짝도 않고 서 있는데 걸어가는 사람들 중 누구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 P36
왜 사는 걸까. 생각하고 또 해 봐도 살 이유를 찾지 못했다.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죽고 싶지 않은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 살아갈 이유도 없는데 살고 싶고 죽고 싶지 않은 이유도 없는데 죽고 싶지 않다니. 왜 나는 이유 없이 이렇게 사는 걸까? (……중략) 왜 사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냥. 그냥 살아.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 그래. 그냥 사는 게 사는 데 있어 가장 큰 이유야. 다른 이유는 없어. - P1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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