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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숨
김혜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평점 :
오지 않은 미래 동화 작가 여경은 전통주 빚기 취미반에서 민서를 만났다. 동화를 쓰고 싶다는 민서와 가까워지게 된 여경은 부다페스트에 갈 예정이었는데, 마침 민서가 남자친구 진수가 그곳에 있다며 도움을 받으라고 하며 소개해 주었다. 부다페스트에서 진수와 가까워진 후 귀국한 여경은 민서, 진수를 만나 시간을 보낸다.
가만히 바라보면 요가원 강사인 '나'는 허리를 다쳐 요가 수업을 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몸을 담고 있는 요가원에서는 나의 편의를 봐주지 않아 일을 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통증이 줄어들 때쯤 태국 파타야로 떠나왔다. 더운 그곳에서 한동안 지내던 나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트랜스젠더 잠과 가까워진다.
아버지가 없는 나라 한아를 '해나'라고 부르는 아진이 한국에 다시 왔다. 한국인이지만 미국으로 입양된 아진은 생물학적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다시 이곳에 오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준비를 하던 아진은 그에게서 메시지를 받는다. 번역기를 이용한 그 메시지는 찾아오지 말고 연락도 하지 말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모니카 일 때문에 뉴욕을 찾은 정지은은 20년 전 미국에 왔을 때 만난 모니카가 떠오른다. 택시를 운전하던 일본계 미국인 모니카를 만난 이후 어학연수를 마치고도 미국에 눌러앉아 딸 한아를 낳았을 만큼 그녀를 사랑했다. 20년 만에 다시 미국을 찾은 정지은은 모니카를 다시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두려움을 안고 있다.
비터스윗 요가 강사인 진아는 다정하고 잘 챙겨주는 진 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하다. 그녀와 함께 요가원을 차리는 미래를 그리지만, 진 언니의 아들 제이슨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더욱이 진아의 남자친구 준과의 관계 또한 점점 버거워진다.
레드벨벳 '나'는 소설로 영어 토론 수업을 하는 원어민 강사 해럴드와 어쩌다 함께 차를 마시게 된다. 그와 대화했던 시간은 나에게 편안하고도 즐거운 시간이라 그와 함께 다시 차를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해럴드는 자신의 아내에게 미안하다며 차를 마시자는 나의 제안을 거절했다.
코너스툴 40대 소설가 이오진은 6살 때 만난 예지가 어느덧 성인이 되어 베스트셀러 작가로 나타난 걸 보며 20여 년 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예지의 아빠이자 독립서점을 운영하던 박호산 씨와 함께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눴던 시간은 어느 날 이후 완전히 단절되었다.
<아버지가 없는 나라>와 <모니카>가 서로 조금 관련 있던 것만 제외하면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단편집이었다.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나를 돌아보는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아버지가 없는 나라>는 입양된 한국인 아진을 통해 한아가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있었다. 생부에게 버림받은 아진이 끝끝내 생모를 만나고선 자신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다. 그녀와 동행했던 한아는 20여 년 전에 미국에서 엄마, 모니카와 살 때가 떠올랐다. 한아는 모니카를 너무나 좋아했지만 자신을 버렸다고 여겨 내내 인정하기 두려웠던 감정을 마침내 받아들이자 그녀가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아진과 동행하면서 한아는 두려움과 보고 싶은 양가적 마음 역시 자신의 것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아버지가 없는 나라>에 이어 곧바로 등장한 <모니카>는 한아의 엄마 지은의 시점으로 진행됐다. 지금보다 더 보수적인 시절에 미국에서 모니카를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자신의 잘못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다시 미국을 찾게 된 후 모니카가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한아의 엄마라 그런지 지은 역시 양가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
<레드벨벳>과 <코너스툴>은 겉으로는 결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부분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다.
<레드벨벳>의 '나'는 그저 친구로서 해럴드와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상대에 의해 그 관계가 단절되었다. 그로 인해 마음이 상했는데, 도리어 해럴드가 나를 놓지 못하는 듯 느껴졌다. 한국인 아내, 감당하기 버거운 딸로 인해 정서적 교감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였다.
그런가 하면 <코너스툴> 역시 유부남 박호산과 소설가 이오진의 관계를 보여줬는데, 박호산의 아내의 오해로 관계가 절단이 되었다. 그럼에도 이오진은 이성적인 감정이 생겨날 수 없는 박호산과 친구로 지내고 싶었지만, 세상의 시선으로 인해 자신을 숨기는 선택을 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20여 년이 지난 후에야 그 진실을 드러냈는데 어쩌면 너무 늦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만나 관계를 이어가면 당연한 기대가 생기기 마련인가 보다. 그 관계가 좋지 않다면 더는 이어가지 않고 끊으면 그만일 테지만, 상대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가 더는 그 관계를 지속할 수 없을 땐 아쉽기만 하다. 그 과정에서 나를 돌아보고 스스로 일어서는 사람도 있었고, 아쉬운 마음을 뒤늦게 어떤 방법으로든 고백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무엇보다 나라는 존재를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에게 의존하고 기대는 것보다 나를 우선시하는 것이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끊을 때, 혹은 끊어질 때 자존감을 잃지 않고 스스로를 좀먹지 않는 방법인 듯하다.
"내 과거를 찾아야만, 내 친부모를 찾아야만 내가 완전해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단지 내 망상에 불과했어. 그래. ‘나‘라는 존재는 어느 누구에게서 발생한 게 아니고, 어느 누구에게 속해 있지도 않았어. 나는 그저 존재할 뿐이지. 마치 그날 바라본 친어머니의 눈처럼, 그 속에 담긴 하나의 영혼처럼, 나도 그저 존재하고 있어. 내가 잃어버린 퍼즐 조각은 나의 친부도 친모도 아닌, 나 자신이었어. 내가 찾아야 할 존재는 오직 나 자신뿐이라는 진실." <아버지가 없는 나라> - P138.139
두려웠다. 내가 저지른 행동을 그가 되돌려줄까 두려웠고, 비극이 재현될까 두려웠다. 그런 상황이라면 어떻게든 피하고만 싶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알고 싶었다. 결국 비극이 도래할지라도 아직 보지 못한 결말을 향해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모니카> - P178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 모두에게서 등진 채로 떠나면, 우리가 꿈꾸던 진실한 삶이 그곳에 있을 것 같아? 그럴 수도 있겠지. 그곳에 진짜 내가, 진짜 내 삶이 존재하고 있을지도 몰라. 그런데, 그러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꿈을 이루면 영원한 행복에 이르러 두 번 다시 불행과 불안을 느끼지 않으며 살 수 있을까? 너는 정말로 그렇게 믿어? <비터스윗>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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