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원더 아르테 오리지널 14
엠마 도노휴 지음, 박혜진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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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8월.
영국인 리브 라이트는 일하는 병원 수간호사에게서 어떤 환자의 곁을 2주 동안 지키는 일을 제안받는다. 아일랜드에 거주하는 그 환자를 관찰만 하면 된다는 그 일의 보수는 생각보다 굉장했다. 거기다 아일랜드를 오가는 비용과 생활비까지 주는 일이라 한편으로는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리브는 일을 수락하고 아일랜드로 향했다.

아일랜드에 도착한 리브는 2주 동안 머물 식료품점의 숙소에 짐을 풀고 돌봐야 할 환자인 오도널 가족의 주치의인 맥브리어티 선생을 따라간다. 리브의 동행길에는 수녀 미카엘도 함께였다. 리브와 미카엘이 시간을 정해 번갈아가며 환자를 돌봐야 된다는 사실을 그들을 마주하고서야 알게 됐다.
오도널 가족의 집을 찾은 리브와 일행은 환자인 애나를 만난다. 애나는 4개월 전인 11살 생일에 성체를 먹은 뒤 그 어떤 음식도 먹지 않고 여태껏 지내고 있었다. 찻숟가락으로 하루에 몇 모금의 물만 마시는 애나는 4개월 동안 굶은 것치고는 너무나 생기발랄한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리브는 단번에 거짓이라 의심하고 진실을 밝혀낼 거라고 다짐한다.
그때부터 리브와 미카엘 수녀는 하루에 8시간씩 애나의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일을 시작한다.



사람은 음식을 먹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며칠 혹은, 극한에 몰린다면 기적적으로 1~2주까지 살 수도 있을 테지만 아마 아사 직전에 이른 상태이지 않을까 싶다.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이 생명을 이어가는 데에 중요한 행위 중 하나이고, 성인이 아닌 유아, 어린이, 청소년 등에게는 특히나 필수적인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관찰 대상인 11살 애나는 무려 4개월 동안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먹지 않아도 괜찮다는 애나는 음식을 보고도 그 어떤 욕망을 느끼지 않는 듯 초연한 모습을 보였다. 부모나 가족에 의해 억지로 굶는다면 태연한 척해도 막상 음식을 마주하면 정신을 차리지 못할 텐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 거기다 생각보다 혈색이 좋았으니 리브가 의심하는 게 당연했다.

소설은 이렇게 리브의 시점으로 진행되며 오롯이 그녀의 감정에 따라가게 만들었다. 음식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주장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고, 그래서 그녀처럼 애나를 의심했다. 그러다 가족들이 독실한 신자임이 밝혀지면서 부모인 맬러키와 로절린을 의심하게 됐다. 아이가 먹지 않겠다고 아무리 말해도 부모라면 제 자식의 입에 뭐라도 넣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할 텐데, 그들은 절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기적을 보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을 반기며 신에게 기도를 했고, 손님들이 나갈 땐 기부를 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두고 가는 걸 용납했다. 아무리 봐도 부모, 특히 엄마 로절린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로절린은 신을 믿지 않는 리브를 대놓고 경계했으니 바른 눈으로 그녀를 볼 수가 없었다.
의심의 방향이 애나에서 로절린으로 향하면서 리브가 머무는 숙소에 기자 윌리엄 번이 나타나 취재를 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 리브가 애나를 위해 다른 손님을 들이는 걸 막은 탓이라 그는 애나를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처음 만났을 땐 생기 넘치던 애나가 눈에 띄게 쇠약해지고 죽어가는 게 자신의 눈에도 보이게 된 리브는 관찰이라는 원래의 목적은 버려두고 아이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여태껏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 드러나 충격에 빠뜨렸다. 그 비밀이 애나의 입을 통해 드러났을 때 너무나 추악하고 역겨워서 책을 읽는 도중에 욕설이 튀어나왔다. 안 그래도 이전에 등장한 중의적인 문장으로 인해 뭔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 예감이 적중해 너무나 화가 났다. 그로 인해 벌어진 일들은 모두 어른들의 탓이라 애나가 짓지도 않은 죄를 짊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가엽기만 했다. 이제는 친구가 되어 진심으로 애나를 걱정하며 제발 뭐라도 먹어달라고 청하는 리브의 말을 거부하는 모습이 너무나 답답했다. 이러다가 애나가 진짜로 죽을 것만 같아서 마음을 졸였다.
하지만 다행히 리브의 기지가 빛을 발해 죽음의 강을 건너기 직전이었던 애나를 구원해냈고,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었던 윌리엄 또한 애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선택을 했다.

19세기 아일랜드에서 실제로 있었던 '단식 소녀'를 모티브로 지어낸 소설이었다. 인간이 향유할 수 있는 온갖 욕구 중에 먹는 게 가장 중요한 내 입장에서는 추체험을 하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던 책이다. 거기다 비밀이 밝혀진 이후에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거짓과 기만으로 점철된 인간들에게 신의 기적 따위는 없으니 주변을 제대로 좀 봤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결말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험난했지만 이제는 편안하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해피엔딩이라 마음을 놓았다. 애나에게 리브가 구원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리브에게도 애나를 통한 구원이 이루어진 이야기라 둘의 관계성이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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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주님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함께하며 그분께 애도를 표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단식은 유용한 속죄의 방식이 될 수 있어요."
"스스로 벌을 주면 죄가 용서된다는 뜻인가요?" 리브가 물었다.
"다른 이의 죄가 용서되기도 하죠." 수녀가 나직이 말했다. - P36

"어제로부터 4개월 전인 4월 7일. 그날 아침부터 주님의 물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어요."
리브는 역겨움에 속이 울렁거렸다. 이게 정말 사실이라면 어떻게 엄마라는 사람이 이렇게 신나서 얘기할 수 있단 말인가? - P42.43

문득 리브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지금 던져야 할 질문은 아이가 이런 사기를 어떻게 저지르느냐가 아니라 왜 저지르느냐이지 않을까? - P139

"우리는 아무 짓도 안 하고 있어요!"
"우리는 매 순간 감시를 하고 있어요. 아이를 나비처럼 핀으로 고정해둔 거라고요."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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