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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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열일곱 살 때 에세이 대회 시상식장에서 열여섯 살인 '너'를 처음 만났다. 그곳에서의 만남 이후 나와 너는 가깝게 지내며 종종 만나곤 했는데, 그때마다 너는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 대해 말했다. 진짜 자신은 그 벽 안의 도시에 있고, 이곳에 있는 너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나는 네가 말하는 도시에 대해 궁금해져 이것저것 물어봤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 도시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곳에 가서 진짜 너를 만나고 싶었다.
나와 네가 몇 달의 시간 동안 만나며 조심스레 교제를 이어오다가 불현듯 너와의 연락이 끊어졌다. 매번 보내오던 편지가 더는 오지 않았고, 내가 보내는 편지에도 답장이 없었다. 고민을 하다가 네가 알려준 집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지만, 전화를 받은 나이 든 남자는 너와 통화를 하고 싶다는 말에 대꾸도 없이 끊어버렸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 땐 결번이라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어느 순간, 중년이 된 나는 이곳, 벽 안의 도시에 들어와 있었다. 아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옮겨져 눈을 떴다. 구덩이에 누워있던 나는 벽을 지키는 문지기에게 발견되어 그림자를 떼어내고, 눈에 상처를 낸 뒤 '꿈을 읽는 이'가 되어 도시 안에 들어왔다. 매일 해가 진 뒤에 나는 도서관에 가서 바깥세계의 너와 똑같이 생긴, 열여섯 살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네가 가져다준 꿈을 읽는다. 꿈을 읽는 작업이 다 끝나면 나는 너를 집 근처까지 바래다준다.
그런 생활을 이어가던 중에도 나는 문지기에게 맡겨두고 온 그림자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본체와 떨어진 그림자는 서서히 생명의 빛을 잃어가다 마침내 죽을 거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뒤로는 계속 마음이 쓰인다. 그러다 나는 그림자와 함께 벽 안의 도시를 나가기로 마음먹는다.




소설 초반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나'와 '너'의 십대 시절 풋풋한 교제에 대해 말하는 부분과 벽 안쪽 도시로 들어온(옮겨진) 중년의 나에 대해 교차로 보여주었다. 십대 시절의 교제는 네가 말해주는 벽 너머의 도시가 주요 화제였다. 마치 둘이서 도시를 만들어가기라도 하듯 네가 도시에 대해 말하면 나는 그걸 습득해 다듬어가는 느낌이었다. 중년이 된 내가 도시 안에 들어와 적응을 해나가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십대 시절에는 네가 말하던 도시에 가서 진짜 너를 만나고 싶었지만, 몇 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 갑자기 도시 안으로 옮겨진 상황이라 적응하기에는 시간이 걸렸다. 꿈을 읽는 작업 또한 막연하기만 해서 답답한 감이 있었다. 다행히 열여섯 살의 너와 똑같은 소녀가 사서로 도움을 줬지만, 그 아이는 바깥세계에서의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기에 조금은 쓸쓸했다.
같은 사람이지만 나이대가 현저히 다르고, 사는 세계 역시 달라진 두 명의 나를 보여주며 진행된 소설은 1부 마지막이 되었을 때 어느새 하나로 맞물리게 됐다. 두 세계가 어느새 합쳐지는 건 하루키의 소설에서 종종 등장하는 설정이라 익숙했다.

그리고 2부가 되었을 땐 앞서 보여준 장면으로 예상했던 진행과는 다른 흐름이 이어져 조금은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1부 마지막에 그림자와 함께 바깥으로 나가려던 내가 마음을 바꿔 그림자만 밖으로 내보내고 끝이 났는데, 2부 초반에서 나는 현실, 그러니까 벽 바깥쪽의 세계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분명 벽 안쪽 도시에 다녀온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곳에 사는 내가 본체인지, 아니면 그림자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벽 안쪽 도시에 있다가 그곳으로 옮겨진 것처럼 어느새 도시 바깥으로 옮겨진 나는 이 세계를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오랫동안 성실히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서 연고가 없는 벽지의 작은 마을 도서관에서 일하게 된다. 카운터를 맡아 온갖 잡일을 하는 사서 소에다가 있었고, 도서관 관장인 고야스도 일하고 있었는데 나는 고야스의 후임으로 일하게 된 거라는 사실을 채용되고 나서야 알게 된다. 그곳 일이 익숙해지고 난 뒤에 옐로 서브마린 소년도 알게 됐고, 역 근처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여자도 만난다.

1부에서 2부로 넘어왔을 때 당연히 벽 바깥쪽의 진짜 현실 세계일 거라 단정 지었었다. 현실과 환상, 혹은 꿈이라는 걸로 나누는 게 맞다고 여겼다. 하지만 고야스가 어떤 존재인지 밝혀지면서 예상을 무너뜨리는 전개에 다시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도서관을 중심으로 여러 이야기가 펼쳐지는 그곳은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인 경계선이었다. 벽 안쪽 도시로 넘어갈 수 있고, 진짜 현실이라고 부르는 벽 바깥쪽으로도 나갈 수 있는 모호한 경계였다. 그렇게 이어지던 소설은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비범했던 옐로 서브마린 소년으로 인해 다시 한번, 그러면서 공고하게 진실을 일깨웠다. 그리고 3부가 되었을 때 현실과 비현실이 섞여든 세계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 내리지 않았지만, 그 모호함을 받아들이도록 이해시키는 과정이 이어졌다.

익숙하지만 너무 오랜만이라 반가운 하루키 문학의 재현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은 첫사랑을 향한 러브스토리라 할 수 있을 것이고, 또 어떻게 보면 평행세계를 다루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또한 현실을 살아가는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싶은 나의 자아 분열, 혹은 주인공인 '나'가 바라는 이상향을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소설이었다.

읽는 동안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을 끝낸 뒤 찾아보니 작가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흡사한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읽은 지 10년이 더 된 책이라 가물가물했는데, 그마저도 내가 쓴 리뷰를 읽고서야 비슷한 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하루키의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몇 년 만에 출간된 하루키의 신작 소설은 역시나 읽는 동안 작가가 만든 세계에 푹 빠져들게 했다. 오랜만이라 낯설었으나 어느새 익숙함이 들기 시작하면서 반가워졌고, 이내 주인공 나와 동화되어 그 도시와 현실과 경계를 살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책 제목에 들어간 형용사처럼 불확실한 모호함이 너무나 좋았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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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바깥세계에 있던 것이 그녀의 그림자고, 이 도시에 있는 것이 본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글쎄올시다. 실은 반대일지도 모르거든요. 어쩌면 바깥세계에 있던 것이 진짜 그녀이고, 이곳에 있는 건 그림자인지도 몰라요. 만약 그렇다면 모순과 가짜 이야기로 가득한 이 세계에 머무른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당신은 확신합니까, 이 도시에 있는 그녀가 진짜라고?" - P152

어느 포인트에서 나에게 양자택일의 선택지가 주어졌다.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나는 이쪽 선택지를 고른 나다. 그리고 또 한편, 저쪽 선택지를 고른 내가 어딘가에 있다. 어딘가─아마 높은 벽돌 벽에 둘러싸인 도시에. - P226

내가 가까스로 알 수 있는 건 지금 나 자신의 위치가 아마도 ‘저쪽‘과 ‘이쪽‘ 세계의 경계선 근처이리라는 것 정도였다. 이 반지하 방과 마찬가지다. 지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하도 아니다. 흘러드는 빛은 엷고 흐릿하다. 나는 그렇듯 어슴푸레한 세계에 있는 것이다. 어느 쪽인지 확실히 판단할 수 없는 미묘한 장소에. 그리고 나는 어떻게든 확인하려고 한다. 내가 정말 어느 쪽에 있는지. 그리고 내가 나 자신이라는 인간의 어느 쪽에 있는지를. - P495

"본체와 그림자란 원래 표리일체입니다." 고야스 씨가 나지막이 말했다. "본체와 그림자는 상황에 따라 역할을 맞바꾸기도 합니다. 그럼으로써 사람은 역경을 뛰어넘어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랍니다. 무언가를 흉내 내는 일도, 무언가인 척하는 일도 때로는 중요할지 모릅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지금 이곳에 있는 당신이, 당신 자신이니까요." - P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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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 1~2 - 전2권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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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22살 알래스카 샌더스는 고향 세일럼을 떠나 작은 도시 마운트플레전트의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고 있었다. 사실 알래스카는 아름다운 외모를 입증하듯 세일럼의 수많은 미인대회 우승자이고 할리우드에서 배우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이라 작은 마을에 머무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남자친구인 월터와 함께 지내고 있었기에 그게 이유일 거라고 마을 사람들은 수긍했다.
주유소 사장이 퇴근을 하고 알래스카가 가게를 지키고 있었던, 평범하기 그지없던 다음날, 마라톤 대회 출전을 위해 연습 중이던 로렌이 숲을 따라 뛰다가 곰이 바닥에 있는 사람을 뜯어먹고 있는 걸 발견하고 근처 주유소로 달려가 경찰에 신고를 해달라고 한다. 출동한 경찰은 곰을 총으로 쏴 죽였고, 이후 곰에게 당한 시신을 조사하기 시작하는데 그 시신이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알래스카라는 게 밝혀져 마을은 발칵 뒤집힌다.
사건을 맡은 형사 페리와 매트, 니콜라스는 알래스카의 주변인을 탐문했고, 남자친구 월터는 물론이고 월터와 알래스카를 소개해 준 에릭 등 여러 사람을 만난다. 그러다 월터가 범인으로 몰려 취조를 당하던 와중에 경찰을 쏴 죽였고, 자신의 머리에도 총을 겨눠 자살한다. 월터가 죽기 전 에릭과 공범이었다는 말을 남겼기에 그는 즉시 체포되어 종신형을 받고 수감되었다.

2010년.
베스트셀러 작가인 마커스 골드먼은 자신의 멘토이자 친구인 해리 쿼버트를 그리워하며 방황한다. 누명을 쓴 해리를 위해 책을 써서 억울함을 벗겨냈지만 감쪽같이 종적을 감춘 탓이었다.
그렇게 해리를 그리워하던 마커스는 예전에 함께 사건을 조사했었던 페리를 마주하게 된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도 잠시 페리에게 절망적인 사건이 일어나면서 마커스는 11년 전에 살해된 알래스카 사건을 알게 되는데...



젊고 아름다워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이의 시선을 잡아 끄는 알래스카가 살해됐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사람들의 의심은 당연히 남자친구인 월터를 향했다. 월터는 20대 후반으로 알래스카와 나이 차이가 꽤 났는데, 그게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었다. 나이보다는 월터가 매력적인 알래스카와는 다르다는 데에 있었다. 부모님 가게를 봐주며 한량처럼 지내는 월터는 작은 도시를 벗어나고 싶지 않았고, 꿈도 희망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알래스카는 고향 세일럼에서 미인대회에 출전해 수상을 했고, 이후엔 할리우드 배우를 꿈꾸며 에이전시와 계약을 하고 오디션 영상을 보내는 등 꿈을 향해 도전하고 있었다. 지금은 알래스카와 월터가 연인으로 지내고 있긴 해도 알래스카는 언제든 이곳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이라 여겨졌고, 만약 그런 일이 닥쳤을 때 월터가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거라는 것 역시 알 수 있었다.
그랬기에 경찰도 당연히 월터를 의심했지만, 월터의 엄마가 에릭이 알래스카와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 같다는 둥의 말을 내뱉어 혼란스럽게 했다. 에릭과 알래스카가 어느 마트 주차장에서 싸우다 경찰이 출동한 사건이 있었기에 의심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러다 월터가 부모님의 가게와 2층 자기 방에 불을 지른 사건으로 인해 알래스카 살인범으로 몰리게 됐다. 하지만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월터와 경찰이 죽었고, 월터가 공범이라고 했던 에릭만 죗값을 받게 됐다. 물론 에릭은 억울하다는 입장이었지만 말이다.

11년 전에 종결된 알래스카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건 페리의 아내 헬렌이 익명의 편지를 받으면서부터였다. 헬렌은 남편 모르게 이 편지의 발신인을 찾아내려다 심장마비로 급사했고, 페리는 절망하고 만다. 페리보다 먼저 익명의 편지의 존재를 알게 된 마커스가 조사를 하면서 밝혀낸 진실로 페리를 끌어들였고, 이윽고 두 사람은 알래스카를 죽인 진짜 범인을 찾기 위해 손을 잡고 움직였다.
이미 종결된 사건이고, 공범이 죗값을 치르고 있는 상황을 뒤집기란 너무나 어려워 보였다. 11년 전의 단서를 이제 와 되짚어보기에는 막막한 구석도 있었고 말이다. 그러나 페리와 마커스는 포기하지 않고 차분하게 하나씩 의심스러운 점을 짚어나갔다.
그러다 11년 전에는 간과했었던 세일럼을 주목하게 된다. 그렇게 마운트플레전트에서 세일럼으로 시선을 돌리게 됐을 때 알래스카와 친구이자 같은 미인대회 출신으로 모델을 꿈꿨었던 엘레노어가 알래스카가 살해되기 전에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수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엘레노어가 에릭과 한때 사귀었던 사이였기 때문이다.

보통 소설이 흐르면 흐를수록 어느 정도 감을 잡기 마련인데,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정체를 알 수 없는 진범과 술래잡기를 하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당연히 월터를 의심했고, 억울하다고 항변했어도 교수형을 피하기 위해 죄를 인정한 에릭이 의심스럽기도 했다. 그러다 마커스와 페리의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뒤통수를 맞았다가 누군가를 또 의심했다가 다시금 다른 사람에게 화살을 돌리기도 하는 등의 과정이 이어졌다. 하지만 마지막이 되어서야 밝혀진 범인의 실체를 통해 어쩌면 완벽한 범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사람이었기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끝에 가서야 밝혀진 진짜 범인과 알래스카, 월터, 에릭 등등 여러 사람의 감춰진 모습이 드러나는 걸 보면서 사람은 겉으로만 봐서는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 앞에 보여준 모습과 진짜 자신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다. 그건 소설에 등장한 여러 캐릭터들뿐만 아니라 현실 속의 대부분의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늘 범인을 찾아내지 못하는 나는 이번에도 당연히 맞히지 못했다. 비단 범인을 맞히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범인의 실체를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만큼 소설은 완전 범죄를 꿈꾸던 범인의 계획대로 흘러가며 겹겹이 싸인 진실을 잘 감추고 있었다. 그 진실이란 여러 사람의 거짓이 보태진 것이라 더욱 밝히기 어려웠지만, 마커스와 페리 콤비의 활약 덕분에 밝혀질 수 있었다.
두꺼운 분량의 소설이었으나 얽히고설킨 관계와 거짓, 진실 덕분에 몰입해서 금세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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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비밀을 간직해봤나? 비밀을 갖고 있을 때 무엇보다 어려운 점은 그걸 발설하지 않는 것보다 그 비밀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야." 1권 - P478

수사가 처음 시작되었을 대부터 누군가 우리를 조종하려고 했고, 그 빌어먹을 작자의 의도는 보기 좋게 성공했다. 우리는 그 작자의 손끝에 매달려 춤을 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2권 - P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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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드릴게요 - 정세랑 소설집
정세랑 지음 / 아작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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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싱 핑거와 점핑 걸의 대모험 높이뛰기 선수인 '나'는 오른손 검지만 사라지는 아이를 좋아했다. 그 애의 검지는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듯 사라지곤 했는데, 갑자기 사라진 자신의 검지를 찾기 위해 그 애는 늘 곤란한 시간 여행을 해야만 했다. 어느 날 나는 그 애에게 검지를 찾으러 갈 때 자신도 데리고 가 달라고 부탁했다.
11분의 1 유경은 대학 시절에 가입한 동아리의 11명의 오빠들 중 기준 오빠를 짝사랑 해왔다. 고백도 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던 어느 날, 기준 오빠가 어렸을 때 앓았던 암이 재발하는 바람에 종적을 감췄다. 유경이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한 후에도 기준 오빠와 연락이 닿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 유경은 동아리 오빠 5 아니면 6의 연락을 받고 기준 오빠를 만나기 위해 남아공으로 향한다.

리셋
어느 날 갑자기 외계에서 거대 지렁이들이 내려왔다. 모든 게 무너졌고 거대 지렁이들에게 먹혀 문명이 사라졌다고 봐야 했다. 그러는 와중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저마다 이 현실에서 다시 살아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동시에 거대 지렁이에 관한 연구를 한다. 그렇게 74년이 흐른 뒤, 놀라운 진실이 밝혀진다.
모조 지구 혁명기
일종의 테마파크인 제2 지구, 속칭 모조 지구에서 사는 '나'는 이곳에서 탈출하려는 걸 포기했다. 일종의 체념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인 건 모조 지구의 유일한 생물이라 여겼던 내 앞에 천사가 나타난 것이었고, 매일 붙어있다 보니 사랑에 빠졌다. 그러다 천사에게 날개가 자꾸만 돋아나 아파하는 바람에 모조 지구를 만든 디자이너를 찾아가게 된다.

리틀 베이비블루 필
블라우 박사는 알츠하이머를 앓는 어머니를 위해 약을 개발한다. 복용하면 3시간 동안 뇌가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게 되는 기발한 약이었다. 하지만 약이 상용화되기 전 제약회사로 인해 시중에 유통되었는데, 약은 치매 환자들이 아닌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 고문 기술자들이 사용했다. 이후 교통사고 증가, 산업 노동자의 사고 등의 부작용이 이어지기도 했다.
목소리를 드릴게요
영어 교사인 여승균은 수용소에서 깨어났다. 왜 이곳에 오게 됐는지 영문도 모르는 그에게 소장은 승균이 가르쳤던 학생 중 16명이 살인자가 됐다고 하면서 그의 목소리가 폭력 인자를 가진 이들에게 들려주면 일종의 각성 효과를 낸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장은 승균에게 여러 조건을 내세우며 성대 제거술을 권했다. 쉽게 결정하지 못할 문제라 일단 이곳에 머물며 고민을 해보기로 한다. 얼마 후 승균은 자신 외에 다른 능력자인지 뭔지 모를 수용자들을 만나게 된다.

7교시
2098년 인류가 위기에 처했다. 바이러스가 유행해 누군가는 죽음으로, 건강한 사람은 감기처럼 앓고 지나갔다. 돌연변이가 생겨 수많은 인류가 세상을 떠났다. 이후 남은 인류는 지구 환경에 대해 돌아보며 친환경적 삶을 살아간다.
메달리스트의 좀비 시대
양궁 메달리스트 정윤은 양궁 장학금을 주는 지방 국립대에 들어갔다.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다가 리모델링으로 인해 옥탑방에서 지내게 됐다. 그러다 사람들이 좀비로 변해 서로를 물고 뜯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옥탑방에서 지내게 된 게 정윤에겐 행운이었다. 하지만 이 생활이 지속되면서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나 비관적인 생각만 든다.




인상적이었던 단편은 표제작인 <목소리를 드릴게요>였다. 목소리로 인해 폭력성을 일깨우는 교사 승균이 수용된 수용소에 다른 특이한 사람들이 뭔가 독특한 재미를 유발했다.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시켜 자기 생각으로 인식하게 하는 하민이 있었고, 온갖 바이러스를 옮기는 슈퍼 보균자 경모는 수용소를 만든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그런가 하면 시체를 먹는 구울도 존재했다. 타인을 어떤 중독자로 만드는 연선이 들어오면서 수용소 내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정확히는 연선이 아프면서부터 수용소 내의 특이한 능력자들이 힘을 합쳐 그녀를 수용소 밖으로 빼돌릴 계획을 세웠다.
독특한 캐릭터들의 특징이 빛을 발했던 단편이었는데, 유쾌함이 더해져 즐겁게 읽었다. 그러면서 엔딩은 조금 애틋하기도 해서 인상에 남았다.
또 다른 단편 중에 <11분의 1>도 재미있었다. 좋아하는 상대의 병을 낫게 해주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날아온 이의 이야기가 뭔가 유쾌하게 이어졌고, 함께 모인 동아리 오빠들과의 대치가 웃기기도 했다. 결말엔 외계로 떠나는 장면이 나름대로 로맨틱한 느낌도 들었다.

여러 단편들을 관통하고 있던 주제는 지구 환경에 관한 것이라 씁쓸했다. 돌이킬 수 있는 지점을 지난 것 같은 지구의 아픔이 시시각각 피부로 와닿아 단편들이 픽션으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정세랑 작가의 독특한 아이디어가 빛났고, 현실적인 부분이 의미를 준 단편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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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체투영관에서 태양계 파트를 틀어주실 때, 목성과 목성의 위성들을 설명하실 때 말해도 됩니다. 저기에 친구가 산다고. 갈릴레이의 위성 중 하나에 친구가 산다고요. <11분의 1> - P40

무엇보다 멸종이 끔찍했다. 멸종, 다음 멸종, 다다음 멸종. 사람들 눈에 귀여운 종이 완전히 사라지면 ‘아아아‘ 탄식한 후 스티커 같은 것이나 만들었다. 사람들 눈에 못생기거나 보이지 않는 종이 죽는 것에는 개뿔 관심도 없었다. 잘못 가고 있었다. 잘못 가고 있다는 느낌이 언제나 은은한 구역감으로 있었다. 스스로 속한 종에 구역감을 느끼기는 했어도, 끝끝내 궤도를 수정하지 못했다. <리셋>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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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음에 영화를 처방해 드립니다 - 영화를 사랑한 심리학, 심리학이 새겨진 영화, 2022 한국 사회 및 성격 심리학회 [올해의 책] 선정
전우영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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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내 생각과 느낌을 반영해 리뷰를 쓰는데,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읽고 영화의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은 저렇게 생각했구나 하는 차이점을 발견하면 재미있기도 하다. 같은 영화를 보고 다르게 느낀다는 점이 영화에 대한 시각을 넓혀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때로는 영화 리뷰 외에 영화와 관련된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는데, 좀처럼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지 못했었다. 그러던 중에 이 책이 눈에 들어오게 됐다. 드물지만 1년에 한 권 정도는 읽는 것 같은 심리학과 영화의 결합이라 흥미를 유발했다.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은 자신에게 황금시대나 다름없던 1920년대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그토록 좋아하던 화가들과 피츠제럴드 등의 문학가를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한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다 여성이 그토록 동경하던 1890년대로 다시 떠나게 된다.
그저 평범한 사람의 입장에서 영화를 봤을 땐 꿈에 그리던 곳으로 시간 여행이라니 정말 즐겁고 신나겠다는 생각만 했는데, 심리학자의 시선으로 본 영화는 '초점주의 오류'에 대해 말했다. 평범한 우리는 중심 사건과 주변 사건이 동반된 삶을 살고 있다. 결혼이라는 중심 사건에는 예식장 잡기, 청첩장 돌리기, 신혼여행 예약하기 등등이 있다고 예를 들었다. 빅 이벤트에는 자질구레한 일들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이런 와중에 일은 일대로 해야 하니 아무리 결혼을 앞두고 있어도 현재의 삶은 아름답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 떨어져서 보면 중심 사건은 멋지고 아름답기 마련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처럼 1920년대의 멋진 면만 보고 있었기에 르네상스로 여길 수 있다는 뜻이었다. 다른 사람의 SNS에 올라온 멋진 일상을 보며 부러워하다 괜스레 우울해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이자 사회운동가 부부는 3살에서 7살 흑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인형을 보여주며 몇 가지 선택을 하도록 했다. 같이 놀고 싶은 인형을 고르라고 했을 때 다수의 흑인 어린이들이 백인 인형을 선택했다. 그러면서 착한 인형을 고르라는 말에도 백인 인형을 선택했고, 나쁜 인형은 당연히 흑인 인형을 골랐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과 닮은 인형을 고르라는 말에 흑인 인형을 골랐는데, 나쁘다고 고른 인형과 자신이 닮았다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인해 몇몇 아이들은 감정적으로 힘들어했고 화를 내며 뛰쳐나간 아이도 있다고 한다.
아직 어린아이들에게조차 사회적 편견과 고정관념이 학습되었다는 걸 보여주는 실험이었다. 책이나 TV, 영화를 통해 자신과 같은 피부색을 가진 흑인은 나쁘고 백인은 착하다는 편견을 갖게 되었고, 그걸 인지하면서 혼란을 겪고 스스로를 비난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영화 <블랙 팬서>는 흑인도 착하고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수많은 흑인 아이들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줄 수 있었을 것이다. 덕분에 영화가 큰 인기를 누렸던 건 아닐까 싶다.

칸 영화제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물론이고 세계 수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다시피한 영화 <기생충>을 통해 '빈곤 스트레스'에 대해 말했다. 연구 참여자에게 자동차 결함이 발견돼서 수리를 해야 하는데, 이 수리비를 처리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을 하고 지능검사를 받았다. 그랬더니 수리비 고민 후에 부자들의 지능검사 점수는 변하지 않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지능검사 점수가 낮아졌다고 한다. 또 다른 연구를 통해 지능검사 점수의 감소는 하룻밤 수면을 박탈했을 때와 맞먹는 크기였다고 한다.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경제적 사정에 대한 걱정이 하룻밤을 꼴딱 새운 것과 맞먹는다니,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피곤해지는 가난이라는 게 너무 참담했다. 경제적 빈곤이 우리의 마음을 가장 먼저 무너뜨린다는 저자의 말이 괜스레 서글퍼졌다.



47편의 영화와 드라마로 51가지 심리학적 관점을 보여준 책을 통해 내가 보고 느낀 영화에 대한 새로운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소개된 작품 중에 아직 못 본 영화와 드라마도 있었는데, 덕분에 찾아보고 싶어지게 만들었다.

좋아하는 영화를 심리학의 시선으로 바라본 책이라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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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영의 악의 기원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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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 9지구의 폭도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후드를 입고 있어서 '후디'라고 부른 폭도 무리는 9지구에서 중위 지구로 차례로 폭동을 일으키며 해당 지구 사람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다행히 상위 지구로 올라가기 전인 4지구에서 후디들이 제압되었고,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세워졌다.
그 사건을 '12월의 폭동'이라 명명되었는데, 사람들의 인식으로 인해 하위 지구로 내려갈수록 위험하다는 선입견이 생긴다. 9지구는 대놓고 배척할 정도였다.

현재.
1지구의 소년들 중 수재 중의 수재들만 입학하는 '프라임스쿨'에 다니는 다윈 영은 아버지 니스를 따라 30년 전 사망한 제이 아저씨의 추모식에 참석한다. 아버지의 가까운 친구였던 제이 아저씨의 추모식을 매번 따라가는 이유는 습관이 되었다는 것도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제이 아저씨의 조카인 루미가 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는 게 더 큰 부분을 차지했다. 수줍음이 많은 다윈이 먼저 루미에게 말을 건네볼 기회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러다 30주기인 추모식에 참석했을 때 다윈은 루미와 단둘이 대화를 나눌 기회를 얻게 된다. 그것도 세상을 떠난 제이 아저씨의 방에서 말이다. 루미는 자신과 꼭 닮았다고 하는 제이 삼촌에 대해 말하며 다윈에게 삼촌의 의문스러운 죽음에 대해 털어놓는다.




소설은 미래 사회 같으면서도 과거의 느낌이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전반적인 분위기로는 미래의 어느 순간을 얘기하는 것 같았는데, 표면적으로는 계급이 없다고 하지만 1지구부터 9지구까지 존재하는 것에서부터 예스러운 느낌이었다. 여기에 소설의 설정 중에 상위 지구 사람들, 특히 1지구 사람들을 신성하게 여기는 태도와는 다르게 가보지도 않고선 일단 꺼리고 보는 9지구 사람들의 대비는 이 사회의 불균형을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배경의 주인공은 1지구에 사는 16살 소년 다윈 영이었다. 다윈은 여느 프라임스쿨 남학생들과는 다르게 학교의 명성을 내세우지 않는 아이였다. 아이다운 순수함과 차분함, 배려심이 넘치는 아이였다. 그야말로 타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윈의 아버지 니스는 문화교육부 차관이라는 높은 지위에 있었으며, 그 역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윈의 할아버지이자 니스의 아버지 러너는 은퇴한 사업가로 고즈넉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이렇게 영 가문의 삼대는 1지구가 주는 안정 속에서 평온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다만 다윈과 니스는 사이가 좋았지만, 니스는 러너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점이 눈에 띄는 부분이었다.

이런 가족의 평화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 건 다윈이 루미와 가까워지면서 루미에겐 삼촌인 제이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파헤치면서부터였다. 루미는 제이의 환생이라고 여겨질 만큼 제 삼촌과 닮은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루미는 1지구에서 7급 서기관으로 일하고 있는 아버지 조이보다 30년 전에 세상을 떠난 제이 삼촌을 훨씬 더 가깝게 여기고 애틋하게 생각했다. 다윈과 가까워지면서 루미는 본격적으로 제이 삼촌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어떤 부분은 고위 공무원의 아들인 다윈의 손을 빌리기도 했다.
이 부분이 나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죽은 삼촌과 닮았다는 이유로 가깝게 생각하고 죽음에 집착하는 게 내 상황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르게 여기고 있어서 좀처럼 납득이 되질 않았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루미를 이해해 보려고 했으나 나중엔 제이의 죽음을 밝히는 일에 집착이 너무 심해져 선을 넘을 때가 많았기에 미워지기까지 했다. 다윈과 똑같은 16살인데 비교가 될 정도로 과한 면이 많이 보여서 마지막까지 정이 가질 않았다.

이렇게 다윈이 루미와 가까워지면서 제이의 죽음을 밝히는 일에 한 발자국씩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던 비밀이 서서히 드러났고, 다윈은 큰 영향을 받아 그에게 있을 거라 상상도 하지 못한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 가족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다윈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불꽃이 터지기만을 기다리던 폭탄은 마지막이 되어서야 결국 터지게 됐는데, 그게 생각도 못 한 누군가에게 터지고 말았다. 그걸 보며 그제서야 소설 제목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찰스 다윈이 주장한 '종의 기원'에 빗대어 악으로부터 진화한 다윈 영의 변화가 섬뜩하게 다가왔다.

이 소설은 856페이지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번복되는 느낌이 들어 줄여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부분도 있었지만, 다 읽고 나니 착실히 쌓아 올리는 과정이었다고 여겨졌다.


"다윈, 사람들이 그러지? 1지구는 완벽한 세계라고. 하지만 이 완벽한 세계에도 이렇게 보이지 않는 얼룩은 있어.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곳은 훨씬 더 짙게 얼룩져 있는지도 모르지." - P386.387

창으로 쏟아지는 빛이 방 안 사물에 닿아 바닥 여기저기에 기하학적인 그림자가 생겨났다. 가장 밝은 빛 옆에서 가장 어두운 그늘이 만들어지는 것이 보였다. 빛과 어둠으로 고약하게 조각난 세계 같았다. 니스는 손바닥만 한 파편 위에 홀로 고립되어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어디로 발을 내디뎌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P27.28

진실이 밝혀지면 모두가 행복해져야 할 텐데 기대와 달리 행복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진실이 묻히고 진실이 아닌 것이 진실로 둔갑할 때 행복이 유지되는 경우를 자주 목격했다. - P417.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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