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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드릴게요 - 정세랑 소설집
정세랑 지음 / 아작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미싱 핑거와 점핑 걸의 대모험 높이뛰기 선수인 '나'는 오른손 검지만 사라지는 아이를 좋아했다. 그 애의 검지는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듯 사라지곤 했는데, 갑자기 사라진 자신의 검지를 찾기 위해 그 애는 늘 곤란한 시간 여행을 해야만 했다. 어느 날 나는 그 애에게 검지를 찾으러 갈 때 자신도 데리고 가 달라고 부탁했다.
11분의 1 유경은 대학 시절에 가입한 동아리의 11명의 오빠들 중 기준 오빠를 짝사랑 해왔다. 고백도 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던 어느 날, 기준 오빠가 어렸을 때 앓았던 암이 재발하는 바람에 종적을 감췄다. 유경이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한 후에도 기준 오빠와 연락이 닿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 유경은 동아리 오빠 5 아니면 6의 연락을 받고 기준 오빠를 만나기 위해 남아공으로 향한다.
리셋 어느 날 갑자기 외계에서 거대 지렁이들이 내려왔다. 모든 게 무너졌고 거대 지렁이들에게 먹혀 문명이 사라졌다고 봐야 했다. 그러는 와중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저마다 이 현실에서 다시 살아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동시에 거대 지렁이에 관한 연구를 한다. 그렇게 74년이 흐른 뒤, 놀라운 진실이 밝혀진다.
모조 지구 혁명기 일종의 테마파크인 제2 지구, 속칭 모조 지구에서 사는 '나'는 이곳에서 탈출하려는 걸 포기했다. 일종의 체념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인 건 모조 지구의 유일한 생물이라 여겼던 내 앞에 천사가 나타난 것이었고, 매일 붙어있다 보니 사랑에 빠졌다. 그러다 천사에게 날개가 자꾸만 돋아나 아파하는 바람에 모조 지구를 만든 디자이너를 찾아가게 된다.
리틀 베이비블루 필 블라우 박사는 알츠하이머를 앓는 어머니를 위해 약을 개발한다. 복용하면 3시간 동안 뇌가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게 되는 기발한 약이었다. 하지만 약이 상용화되기 전 제약회사로 인해 시중에 유통되었는데, 약은 치매 환자들이 아닌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 고문 기술자들이 사용했다. 이후 교통사고 증가, 산업 노동자의 사고 등의 부작용이 이어지기도 했다.
목소리를 드릴게요 영어 교사인 여승균은 수용소에서 깨어났다. 왜 이곳에 오게 됐는지 영문도 모르는 그에게 소장은 승균이 가르쳤던 학생 중 16명이 살인자가 됐다고 하면서 그의 목소리가 폭력 인자를 가진 이들에게 들려주면 일종의 각성 효과를 낸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장은 승균에게 여러 조건을 내세우며 성대 제거술을 권했다. 쉽게 결정하지 못할 문제라 일단 이곳에 머물며 고민을 해보기로 한다. 얼마 후 승균은 자신 외에 다른 능력자인지 뭔지 모를 수용자들을 만나게 된다.
7교시 2098년 인류가 위기에 처했다. 바이러스가 유행해 누군가는 죽음으로, 건강한 사람은 감기처럼 앓고 지나갔다. 돌연변이가 생겨 수많은 인류가 세상을 떠났다. 이후 남은 인류는 지구 환경에 대해 돌아보며 친환경적 삶을 살아간다.
메달리스트의 좀비 시대 양궁 메달리스트 정윤은 양궁 장학금을 주는 지방 국립대에 들어갔다.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다가 리모델링으로 인해 옥탑방에서 지내게 됐다. 그러다 사람들이 좀비로 변해 서로를 물고 뜯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옥탑방에서 지내게 된 게 정윤에겐 행운이었다. 하지만 이 생활이 지속되면서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나 비관적인 생각만 든다.
인상적이었던 단편은 표제작인 <목소리를 드릴게요>였다. 목소리로 인해 폭력성을 일깨우는 교사 승균이 수용된 수용소에 다른 특이한 사람들이 뭔가 독특한 재미를 유발했다.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시켜 자기 생각으로 인식하게 하는 하민이 있었고, 온갖 바이러스를 옮기는 슈퍼 보균자 경모는 수용소를 만든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그런가 하면 시체를 먹는 구울도 존재했다. 타인을 어떤 중독자로 만드는 연선이 들어오면서 수용소 내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정확히는 연선이 아프면서부터 수용소 내의 특이한 능력자들이 힘을 합쳐 그녀를 수용소 밖으로 빼돌릴 계획을 세웠다.
독특한 캐릭터들의 특징이 빛을 발했던 단편이었는데, 유쾌함이 더해져 즐겁게 읽었다. 그러면서 엔딩은 조금 애틋하기도 해서 인상에 남았다.
또 다른 단편 중에 <11분의 1>도 재미있었다. 좋아하는 상대의 병을 낫게 해주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날아온 이의 이야기가 뭔가 유쾌하게 이어졌고, 함께 모인 동아리 오빠들과의 대치가 웃기기도 했다. 결말엔 외계로 떠나는 장면이 나름대로 로맨틱한 느낌도 들었다.
여러 단편들을 관통하고 있던 주제는 지구 환경에 관한 것이라 씁쓸했다. 돌이킬 수 있는 지점을 지난 것 같은 지구의 아픔이 시시각각 피부로 와닿아 단편들이 픽션으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정세랑 작가의 독특한 아이디어가 빛났고, 현실적인 부분이 의미를 준 단편집이었다.
천체투영관에서 태양계 파트를 틀어주실 때, 목성과 목성의 위성들을 설명하실 때 말해도 됩니다. 저기에 친구가 산다고. 갈릴레이의 위성 중 하나에 친구가 산다고요. <11분의 1> - P40
무엇보다 멸종이 끔찍했다. 멸종, 다음 멸종, 다다음 멸종. 사람들 눈에 귀여운 종이 완전히 사라지면 ‘아아아‘ 탄식한 후 스티커 같은 것이나 만들었다. 사람들 눈에 못생기거나 보이지 않는 종이 죽는 것에는 개뿔 관심도 없었다. 잘못 가고 있었다. 잘못 가고 있다는 느낌이 언제나 은은한 구역감으로 있었다. 스스로 속한 종에 구역감을 느끼기는 했어도, 끝끝내 궤도를 수정하지 못했다. <리셋>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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