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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영의 악의 기원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6년 9월
평점 :
60년 전, 9지구의 폭도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후드를 입고 있어서 '후디'라고 부른 폭도 무리는 9지구에서 중위 지구로 차례로 폭동을 일으키며 해당 지구 사람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다행히 상위 지구로 올라가기 전인 4지구에서 후디들이 제압되었고,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세워졌다.
그 사건을 '12월의 폭동'이라 명명되었는데, 사람들의 인식으로 인해 하위 지구로 내려갈수록 위험하다는 선입견이 생긴다. 9지구는 대놓고 배척할 정도였다.
현재.
1지구의 소년들 중 수재 중의 수재들만 입학하는 '프라임스쿨'에 다니는 다윈 영은 아버지 니스를 따라 30년 전 사망한 제이 아저씨의 추모식에 참석한다. 아버지의 가까운 친구였던 제이 아저씨의 추모식을 매번 따라가는 이유는 습관이 되었다는 것도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제이 아저씨의 조카인 루미가 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는 게 더 큰 부분을 차지했다. 수줍음이 많은 다윈이 먼저 루미에게 말을 건네볼 기회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러다 30주기인 추모식에 참석했을 때 다윈은 루미와 단둘이 대화를 나눌 기회를 얻게 된다. 그것도 세상을 떠난 제이 아저씨의 방에서 말이다. 루미는 자신과 꼭 닮았다고 하는 제이 삼촌에 대해 말하며 다윈에게 삼촌의 의문스러운 죽음에 대해 털어놓는다.
소설은 미래 사회 같으면서도 과거의 느낌이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전반적인 분위기로는 미래의 어느 순간을 얘기하는 것 같았는데, 표면적으로는 계급이 없다고 하지만 1지구부터 9지구까지 존재하는 것에서부터 예스러운 느낌이었다. 여기에 소설의 설정 중에 상위 지구 사람들, 특히 1지구 사람들을 신성하게 여기는 태도와는 다르게 가보지도 않고선 일단 꺼리고 보는 9지구 사람들의 대비는 이 사회의 불균형을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배경의 주인공은 1지구에 사는 16살 소년 다윈 영이었다. 다윈은 여느 프라임스쿨 남학생들과는 다르게 학교의 명성을 내세우지 않는 아이였다. 아이다운 순수함과 차분함, 배려심이 넘치는 아이였다. 그야말로 타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윈의 아버지 니스는 문화교육부 차관이라는 높은 지위에 있었으며, 그 역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윈의 할아버지이자 니스의 아버지 러너는 은퇴한 사업가로 고즈넉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이렇게 영 가문의 삼대는 1지구가 주는 안정 속에서 평온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다만 다윈과 니스는 사이가 좋았지만, 니스는 러너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점이 눈에 띄는 부분이었다.
이런 가족의 평화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 건 다윈이 루미와 가까워지면서 루미에겐 삼촌인 제이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파헤치면서부터였다. 루미는 제이의 환생이라고 여겨질 만큼 제 삼촌과 닮은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루미는 1지구에서 7급 서기관으로 일하고 있는 아버지 조이보다 30년 전에 세상을 떠난 제이 삼촌을 훨씬 더 가깝게 여기고 애틋하게 생각했다. 다윈과 가까워지면서 루미는 본격적으로 제이 삼촌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어떤 부분은 고위 공무원의 아들인 다윈의 손을 빌리기도 했다.
이 부분이 나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죽은 삼촌과 닮았다는 이유로 가깝게 생각하고 죽음에 집착하는 게 내 상황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르게 여기고 있어서 좀처럼 납득이 되질 않았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루미를 이해해 보려고 했으나 나중엔 제이의 죽음을 밝히는 일에 집착이 너무 심해져 선을 넘을 때가 많았기에 미워지기까지 했다. 다윈과 똑같은 16살인데 비교가 될 정도로 과한 면이 많이 보여서 마지막까지 정이 가질 않았다.
이렇게 다윈이 루미와 가까워지면서 제이의 죽음을 밝히는 일에 한 발자국씩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던 비밀이 서서히 드러났고, 다윈은 큰 영향을 받아 그에게 있을 거라 상상도 하지 못한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 가족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다윈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불꽃이 터지기만을 기다리던 폭탄은 마지막이 되어서야 결국 터지게 됐는데, 그게 생각도 못 한 누군가에게 터지고 말았다. 그걸 보며 그제서야 소설 제목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찰스 다윈이 주장한 '종의 기원'에 빗대어 악으로부터 진화한 다윈 영의 변화가 섬뜩하게 다가왔다.
이 소설은 856페이지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번복되는 느낌이 들어 줄여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부분도 있었지만, 다 읽고 나니 착실히 쌓아 올리는 과정이었다고 여겨졌다.
"다윈, 사람들이 그러지? 1지구는 완벽한 세계라고. 하지만 이 완벽한 세계에도 이렇게 보이지 않는 얼룩은 있어.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곳은 훨씬 더 짙게 얼룩져 있는지도 모르지." - P386.387
창으로 쏟아지는 빛이 방 안 사물에 닿아 바닥 여기저기에 기하학적인 그림자가 생겨났다. 가장 밝은 빛 옆에서 가장 어두운 그늘이 만들어지는 것이 보였다. 빛과 어둠으로 고약하게 조각난 세계 같았다. 니스는 손바닥만 한 파편 위에 홀로 고립되어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어디로 발을 내디뎌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P27.28
진실이 밝혀지면 모두가 행복해져야 할 텐데 기대와 달리 행복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진실이 묻히고 진실이 아닌 것이 진실로 둔갑할 때 행복이 유지되는 경우를 자주 목격했다. - P417.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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