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세계사 - 인종차별과 빈부격차, 전쟁과 테러 등 넷플릭스로 만나는 세계사의 가장 뜨거웠던 순간
오애리.이재덕 지음 / 푸른숲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를 좋아해서 관련 도서를 많이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몇 백 년 전의 역사는 흥미롭지만, 근현대사는 오래전의 역사보다 복잡하게 느껴져서 그런지 관련 도서를 많이 읽지 못했다.
그러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해서 빌려왔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영화, 드라마 시리즈 중에 관련 역사를 알고 보면 더 흥미로울 작품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다. 넷플릭스 작품 중에 본 것보다 못 본 게 더 많지만 일단 흥미를 갖고 읽기 시작했다.



각본가로 유명한 아론 소킨의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1968년 일어난 믿을 수 없는 재판에 관해 다루고 있다. 베트남 파병에 관한 비폭력 반전 시위가 국가의 주도하에 폭력 시위라는 오명을 쓰게 되면서 시위를 주도한 여러 시민 단체의 대표가 고소를 당해 재판에 세워진 것이었다. 당시 미국 내의 정치, 사회 등의 혼란스러운 시기와, 진보와 보수의 갈등, 사법제도에 관한 문제까지 깊이 있게 다루고 있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전당대회에서 시위자들과 경찰의 대치가 TV로 중계됐다고 하는데, 그로 인해 시청자들은 경찰의 시위대 진압이 온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단다. 하지만 추후에 사건 조사보고서를 통해 경찰의 진압이 통제되지 않았으며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졌고, 평화롭게 참여한 사람들과 지나가던 구경꾼들까지 경찰의 곤봉에 맞아 크게 다치는 등의 사고가 있었다고 알려졌다.
역사적 사실에 관해 설명하면서 현재와의 연결점에 관해 말하고 있는 부분이 씁쓸해지게 만들었다.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가 그때도,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재판 초기에는 8명이 기소됐었는데, 흑인인 보비 실이 별도 재판을 결정하면서 7명이 된 것이었다. 보비 실은 사흘 동안이나 재갈과 수갑을 찬 채로 법정에 끌려 나왔다고 한다. 흑인 인권에 대해 달라진 점이 없는 걸 보면 진정한 평등이란 아직 한참 멀었구나 싶다.

미국 마피아와 노동계의 검은 커넥션에 대해 다루고 있는 <아이리시맨>은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 하비 케이틀 등의 명배우가 대거 출연한 영화다. 노동계의 대통령이라는 별명이 있던 지미 호파의 실종 뉴스가 1975년 7월 31일 보도된다. 지미 호파는 전미화물운송노조를 이끌며 열악한 노동환경에 맞서 싸운 노동운동가지만, 기금을 불법적으로 사용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과 방해꾼들을 제거해 나가며 권력을 독점한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1961년 들어선 케네디 정부는 전미화물운송노조와 조직범죄의 연관성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호파와 케네디 형제의 싸움은 1957년부터 1960년까지 이어진 조사 특위를 통해 여러 차례 청문회까지 개최했다. 그로 인해 케네디 형제와 지미 호파의 관계는 나빠진 게 당연했는데,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됐을 때 지미 호파가 만세를 부를 정도였다고 한다. 케네디의 죽음과 관련된 가족 관계에 관한 내용과 마피아와의 연관성까지 설명하고 있었다.
호파가 어떻게 죽었는지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았고, 유해 또한 발견되지 않았기에 그의 죽음을 둘러싼 내막은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싶다.

너무나 흥미롭게 읽은 책 <퀸스 갬빗>을 최근에 드라마로 감상했다. 아직 리뷰 업로드는 하지 않았지만 올해 본 드라마 중에서 베스트로 뽑을 만한 작품인데, 이 책에도 소개하고 있었다.
소련이 왜 체스 최강국이 되었는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고, 미국과 소련의 체스 전쟁은 냉전시대와 연관 짓고 있었다. 또한 체스계에서 여성이 도외시되는 부분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었다. 재미있게 본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라 흥미로운 사실이 많아서 좋았다.



스무 편의 영화, 드라마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본 작품보다 못 본 작품이 많다. 그래서 완전히 이해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조금은 아쉬움이 든다. 더 많은 작품을 보고 이 책을 읽었더라면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소개된 작품 중에 취향에 맞을 것 같은 작품을 나중에라도 꼭 찾아봐야겠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민 토킹
미리엄 테이브스 지음, 박산호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메노파 공동체 '몰로치나'에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다. 공동체의 남자들이 매일 밤 공동체의 여자들에게 동물용 마취제를 뿌리고선 강간한 것이었다. 여자들은 잠에서 깨어나서 두통을 느끼거나 피를 흘렸고, 일부 여자들은 아기를 가졌다. 여자들은 꿈을 꾼 것이라며, 혹은 신이 자신들에게 벌을 내리는 거라 여겼다. 어떤 여자들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숨겼고, 진실을 밝히고 싶어 하는 일부 여자들은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러나 마침내 진실이 밝혀져 범죄를 저지른 남자 여덟 명이 공동체 바깥세상으로 끌려갔다. 주교 피터스는 마을 남자들과 함께 여덟 명의 남자들을 다시 공동체로 데리고 오기 위해 도시로 향했다.

오래전, 몰로치나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지만 파문당해 영국에서 지내다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아우구스트 에프는 오나에게서 회의록을 작성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마을 여자들에게 일어난 끔찍한 일에 관해 자신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에 관한 회의였다.



이 책은 소설이지만 실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볼리비아의 메노파 신자들의 공동체에서 일어난 사건은 앞서 기재한 줄거리였다. 자는 여자들에게 동물용 마취제를 사용하고선 강간했고, 사건이 밝혀진 이후 법정에서 유죄 판결이 나서 중형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남자들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데도 공동체에선 여전히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책 초반에 적혀 있었다. 사실 명시에 관한 부분만 읽었을 뿐인데도 혐오스럽고 역겨웠다. 실재하는 그 공동체에서는 여자를 동물처럼 취급하고 있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이후 실제 사건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책의 작가는 그 사건을 토대로 여성들이 나누는 대화와 선택은 자신의 상상임을, 소설이라는 것을 알렸다.

회의에 참석한 여자들은 그레타 뢰벤과 그녀의 딸들인 마리케, 메얄, 그리고 마리케의 딸이었고, 아가타 프리센가와 그녀의 딸 오나, 살로메, 살로메의 조카딸 나이체였다. 그리고 회의록을 작성하기 위해 참석한 유일한 남자가 아우구스트였다. 굳이 남자인 그가 회의록을 작성해야 했던 이유는 몰로치나 여자들이 모두 문맹이었기 때문이다. 공동체에서 여자들은 남자들을 내조하고, 동물을 키우거나 밭일을 하고, 아이들을 먹이고 보살피는 일만 하고 있었다. 남자들의 보살핌이라는 명목하에 지배를 받던 가부장 시대의 여자들처럼 말이다.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인데 가부장적인 작은 사회라니, 그것도 그들이 21세기를 살고 있다니 너무 믿기지 않아서 황당할 정도였다.
웃긴 건 몰로치나 남자들은 딱 두 종류로 보였다는 점이다. 주교 피터스를 포함한 남자들은 여자들을 가축보다 더 하찮게 여기며 강간이나 일삼는 금수만도 못한 놈들이고, 파문당했다가 돌아온 아우구스트나 치매 노인, 어린아이의 정신을 가지고 있던 남자는 공동체의 다른 남자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었다. 이들이야말로 공동체의 여자들에게 그 어떤 해도 미치지 않았는데 말이다.

소설은 사건이 일어난 후 여덟 명의 여자들과 아우구스트가 치매 노인의 다락에 자리를 잡고 회의를 하는 내용을 보여주었다. 아우구스트의 표현대로라면 회의였지만, 사실은 여자들이 스스로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 대화를 나누는 것에 가까웠다. 때로는 대화였고, 분통 터지는 감정을 표현하는 해소 창구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즐거운 농담이 오가는 화기애애한 노닥거림 같기도 했다. 그녀들이 당한 일을 생각하면 너무나 큰 충격이라 내가 다 절망스러웠는데, 그녀들은 그 일이 자신의 인생을 좀먹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 자리에 모였기에 좌절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 것인지에 대해 여자들은 몰로치나에 남거나 맞서 싸우거나 아니면 떠나는 세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두 집안의 여러 연령대의 여자들이 모인 만큼 성격도 제각각이라 무엇이 자신들에게 최선인지 대화를 나누었다. 떠나는 것에 다소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던 마리케가 있었고, 불같은 성격으로 어떻게든 저항하려고 하는 살로메도 있었다. 남자들의 짓거리로 인해 아기를 갖게 된 오나는 양쪽 입장을 중재하며 다정하고 따스한 모습을 보였다. 참고로 오나는 아우구스트가 좋아하는 여자이기도 했다.
이렇게 회의에 참석한 여자들과는 다르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했던 공동체의 여자들도 언급되었다. 그녀들은 가부장적인 공동체의 관습으로 인해 남자들이 없으면 스스로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여겨 선택도 하지 않으려 했다. 안타깝긴 하지만 그녀들을 탓할 수는 없었다. 그저 이들의 회의를 마을 남자들에게 말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회의가 지속되면서 여자들은 남는다는 선택지는 진작에 버렸고, 맞서 싸우는 것과 떠나는 것 중에서 어떤 게 자신들에게 최선일지 생각했다. 맞서 싸우는 건 신을 믿는 입장에서는 할 수 없는 것이기에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이들은 문맹이었고, 공동체 밖을 나가본 적이 없는 여자들이었다는 게 발목을 잡았다. 자신들이 아이를 키우고 남자들을 내조하고 동물을 기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누군가가 떠나는 것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여도 다른 누군가가 설득해 마음을 돌리도록 만들었다. 또한 나이가 지긋한 두 여성은 앞날은 내다본 것처럼 결정되지 않았음에도 미리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여 역시 연륜이란 무시할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소소한 복수를 하며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는 걸 보여줬다.

21세기에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작가가 쓴 소설은 아마 현실과는 많이 다를 것이라 여겨진다.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기독교 공동체에서 태어나서 살았던 여자들이 인생 전반을 뒤집는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기 때문이다. 현실은 알 수 없고 혹은 안타까울 수도 있겠지만, 소설 속 그녀들은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투쟁을 하는 결말이 뜻깊고 뭉클하게 다가왔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미래를 응원하게 됐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2023년 제95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수상했다. 배우 겸 감독인 세라 폴리가 연출했고, 프랜시스 맥도맨드, 루니 마라, 클레어 포이, 제시 버클리, 벤 위쇼가 출연했다. 너무 좋은 내용에 배우들까지 좋아서 꼭 보고 싶다!


​​​​​​​

"우리는 목소리 없는 여자들이야. 우리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우리가 지내는 곳에서도 붕 뜬 존재이고, 심지어 우리가 사는 나라 말도 하지 못해. 우리는 고국이 없는 메노파 신자들이야. 우리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고, 몰로치나의 동물들조차 제 보금자리에서 우리 여자들보다는 안전하게 살고 있어. 우리 여자들이 가진 건 우리가 꾸는 꿈뿐이야." - P91

마리케는 메얄이 발작을 일으킨 건 여자들만의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거라고 말했다. 스스로 지도를 만들어야 하는 게 두려워서가 아니라 거기에 깃든 의미가 두려웠던 거라고. 이제 우리가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던 거라고. 우리가 미지의 땅으로 출발하게 되는 게 두려워서라고. - P133

그녀는 자신의 세 살 난 아이의 몸으로 또 다른 남자가 폭력적인 충동을 만족시키려 하기 전에 거짓말할 것이고, 악마를 사냥할 것이고, 죽일 것이고, 그들의 무덤 위에서 춤을 출 것이고, 지옥에서 영원히 불탈 것이라고 말했다. - P145

"여기 남아 있는 상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용서란 진심으로 하는 용서가 아니라 강요된 것이겠지. 떠남으로써 우리는 신앙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의무들을, 즉 평화주의, 사랑, 용서를 조금 더 빨리 이룰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이것이 우리의 가치라고 가르치게 될 것이고. 떠남으로써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들의 아버지가 기대하는 그 무엇보다 이런 가치들을 최우선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치게 될 거야." - P169

"우리는 아이들이 안전하길 원해요." 그녀는 울음이 터지는 바람에 말을 이어가기 힘들었지만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변함없길 바라고. 우리는 생각하고 싶어요." - P2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눈물이 너를 베리라
S. A. 코스비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거에 사람을 죽이고 교도소에 들어갔다 온 범죄자였지만, 지금은 조경 업체를 운영하며 성실히 살아가고 있는 아이크에게 어느 날 갑자기 경찰이 찾아온다. 자신은 그때의 괴물과는 다르다고 자부하고 있는데도 경찰의 방문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경찰은 아이크 때문에 온 게 아닌, 아들 아이지아와 아들의 남편 데릭의 소식을 가지고 왔다. 바 앞에 서 있던 두 사람이 총에 난사당해 죽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확인 사살까지 당했다는 걸 보면 분명 원한에 의한 살인이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남부 지역엔 아직 수많은 차별이 남아 있어서 아들과 아들의 남편이 게이라는 것도 문제가 됐을 테고, 아이지아는 흑인이고 데릭은 백인이라는 것 또한 극우주의자들의 심기에 거슬렸을지도 모른다.

아이크는 분노로 어쩔 줄을 몰라 했지만 내면에 도사린 괴물을 끄집어낼 수는 없었기에 마음을 다스렸다. 아내 마야, 그리고 아들이 남긴 딸인 아리아나와 함께 아이지아와 데릭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데릭의 아버지인 버디 리가 다가왔다. 버디 리 역시 아이크처럼 전과가 있었던 사람이고, 아들의 죽음에 엄청나게 분노하고 있었다. 버디 리는 아들들을 죽인 사람을 찾아 함께 복수를 하자고 제안했지만, 아이크는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있었기에 거절했다.
그런데 얼마 후, 아이크는 묘지 관리인에게서 아이지아와 데릭의 묘소와 비석이 훼손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비석은 둘로 갈라져 있었고, 동성애에 대한 혐오스러운 욕설이 형광 스프레이로 새겨져 있었다. 죽은 아들까지 욕보인 행위에 더 이상 화를 억누를 수 없게 된 아이크는 버디 리에게 전화해 복수를 하자고 말했다.



아무리 개방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미국이라고 해도 폐쇄적인 부분은 여전히 존재하기 마련인가 보다. 특히 남부 지역은 남북 전쟁 이전부터 이어져온 흑인에 대한 차별이 남아 있다는 걸 의미하는 소설 속 일부 내용을 보면 말이다. 그런 차별이 존재하는 남부에서 흑인 아이지아와 백인 데릭이 결혼해 아이까지 키웠다는 건 분명 이목을 끌었을 것이다. 아이지아와 데릭의 아버지인 아이크, 버디 리조차 아들들의 성 정체성에 화를 냈고, 나중엔 아들을 보려고도 하지 않았으니 모르는 타인은 더 했을 터였다.
아이크는 죽은 아들을 외면했다는 미안한 마음과 책임져야 할 가족이 새로 생겼기에 분노를 삭이려고 했지만, 묘지와 비석까지 훼손된 걸 보고 나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버디 리와 함께 복수를 시작하게 됐다. 두 사람이 그저 평범한 할아버지에 지나지 않았다면 아들들을 죽인 놈들을 찾는 건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 범죄 전력이 있는 이들이었기에 아직까지 그쪽에 관한 촉을 가지고 있었고, 또 한때의 감방 동기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잘 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방법은 있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두 할아버지의 수사는 탄제린이라는 이름의 여자가 언급되면서 꽉 막히고 말았다. 탄제린을 찾는 것에서부터 너무나 어려웠는데, 아이크와 버디 리만 그녀를 찾는 건 아니었다. 탄제린이 알고 있는 비밀을 위해 기자인 아이지아가 그녀를 돕다가 데릭과 함께 살해를 당했다. 그리고 그 살해를 지시한 건 탄제린이 두려워하던 사람이었고, 지시를 받고 움직인 건 지역에서 유명한 갱단인 '레어 브리드'였다는 걸 알게 된다. 그 레어 브리드는 숨어버린 탄제린을 찾을 겸 아이크와 버디 리를 쫓고 있었다.
아이크와 버디 리는 아들들이 인종차별이나 호모포비아 때문에 살해된 게 아닌 누군가의 원한에 의해 살해됐다는 걸 알게 된 이후 탄제린을 찾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녀를 찾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는데, 어떻게든 헤매서 찾아내자 탄제린은 너무나 두려웠던 나머지 입을 열 생각이 없었다. 그저 숨어 있고만 싶었다. 그러나 여기서 레어 브리드로 인해 총알이 빗발치는 싸움이 이어져 아이크와 버디 리는 탄제린을 데리고 도망쳐야만 했다.

이후 소설은 탄제린에 관한 비밀과 그녀가 두려워하던 이의 정체가 밝혀지며 놀라움을 안겼다. 여기에 소중한 가족들까지 피해를 입고 납치를 당하는 등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이 연속으로 이어져 과연 버디 리와 아이크가 권력과 화력을 손에 쥔 상대들과 맞설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그러나 소설은 정의의 편에 선 이들에게 복수의 성공이라는 뜻을 이루게 만들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안타깝고 슬픈 사건이 일어나긴 했지만, 앞서 복선처럼 내내 보여주던 장면이 있었기에 그럴 거라는 예상은 했다. 그래도 슬프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말이다.

S. A. 코스비의 책은 두 번째로 읽는 건데 처음 읽었던 <검은 황무지>만큼 재미있게 읽었다.



​​​​​​​

"이 모든 일을 통해 하나 배운 게 있다면, 정작 중요한 것은 내 자신 그리고 내가 지금 가진 것들이라는 겁니다. 사람들이 진짜 제 모습대로 살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진짜 자신의 모습대로 산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사형선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 P381

"일단 시작한 이상 난 그 개자식들을 찾기 위해 뭐든 할 겁니다. 사람이 다치더라도, 누군가를 죽여야 한대도, 마찬가지로 망설임 없이 할 거예요. 그 개자식들을 잡기 위해 깨진 유리 위로 100킬로미터를 기어가야 한다고 해도 마땅히 할 겁니다. 난 그럴 거예요. 기꺼이 피를 흘릴 준비가 됐단 말입니다." - P72.73

"일전에 아이들을 죽인 사람들을 잡을 수 있다면 뭐든 하겠다고 했잖소. 그 말 진심이었소? 왜냐하면 난 진심이었거든. 내가 잡은 그 새끼 때문에 다시 교도소에 간대도 난 기쁜 마음으로 주홍색 점프수트를 입고 슬리퍼를 신을 거요." - P352

"그래도 아이들은 자기 스스로 옳게 성장했소. 주변인들에게 좋은 친구였고, 서로에게 다정했으며, 딸에게도 자상했지. 우리 같은 아빠를 뒀음에도 결국 좋은 사람으로 성장했소. 우리가 아이들을 몇 번이나 실망시켰는지 몰라도 아이들은 결국 옳은 길로 갔소." - P3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웃는 숙녀 비웃는 숙녀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학생 노노미야 쿄코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입학했을 때까지만 해도 친구들과 잘 어울렸으나 2학기가 시작된 후 빈혈로 며칠 결석을 한 이후에 아이들은 눈에 띄게 쿄코를 괴롭히며 놀리곤 했다. 뚱뚱하고, 못생겼고, 병약하다는 둥 갖은 것들로 쿄코를 놀렸지만, 그녀는 부모에게 염려를 끼치고 싶지 않아 꾹꾹 눌러 참았다.
그러던 중에 동갑내기 사촌인 가모우 미치루가 쿄코의 학교로 전학을 올 거라는 얘기를 엄마에게서 들었다. 외가에 가면 늘 함께 놀며 가깝게 지냈었지만 6년 전에 갑자기 왕래가 끊긴 미치루를 다시 만날 생각에 쿄코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심지어 미치루는 쿄코와 같은 반이 되어 놀랍고 기뻤지만 내색을 할 수 없었던 건 자신이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했고, 또 미치루에게도 영향이 갈까 봐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예뻤던 미치루는 중학생이 되어 더욱 빛이 나는 듯했다. 남자아이들은 물론이고 여자아이들까지 그녀의 미모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개중에도 미치루의 범접할 수 없는 미모를 시기하는 여자아이가 있었고, 그 아이의 남자친구로 인해 괴롭힘은 쿄코에서 미치루로 옮겨가게 된다. 쿄코는 안도했지만 그래도 미치루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는데, 미치루가 재미있는 걸 보게 될 거라며 방과 후에 체육관 뒤로 오라고 한다.



소설은 미치루의 사촌 노노미야 쿄코의 시점을 시작으로 세 명의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뒤, 마지막에 가모우 미치루의 시점으로 끝을 맺었다. 그러는 사이에 쿄코와 미치루는 성인이 되어 그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미치루가 어떻게 사람들을 홀려 범죄를 저지르게 만들었는지 보여줬다.

미치루의 악행이 시작된 건 왕따 주도자인 여자아이를 그 아이의 남자친구 무리가 괴롭히게 만든 것이었다. 남자친구가 미치루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하자 그녀는 그 남자애를 말로 꼬드겨 여자친구를 괴롭혔다. 중학생이 그런 짓을 시켰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무자비한 행동이었기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쿄코도 그 괴롭힘을 몰래 보고는 놀랐었지만, 자신도 그 여자애로 인해 왕따를 당했었기에 복수를 했다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미치루의 악행은 더욱 끔찍해졌다. 그런 걸 보고도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 쿄코와 함께 학대에 성폭행까지 일삼는 자신의 아버지를 자살로 위장해 죽인 것이었다. 미치루의 아버지는 죽어 마땅한 놈이었기에 통쾌하긴 했지만 불안함도 함께 느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쿄코와 미치루는 생활 컨설턴트라는 사업을 하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명목으로 접근하거나 소개를 받는 등의 행위로 범죄의 거미줄을 뻗어 나갔다.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만난 사기누마 사요, 쿄코의 남동생인 히로키, 2년 전 남편이 퇴직한 후 갑자기 가장이 된 후루마키 요시에였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모든 것이 완벽하고 절대적으로 행복하기만 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저마다 다른 고민과 걱정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미치루는 그런 개개인의 속내를 꿰뚫어보고 조언을 해주는 척하면서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건 낯선 이에게 일단 호감을 주기에 충분한 조건이었고,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태도 역시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다. 그런 호감 요소가 작용해 미치루를 신뢰하게 만들었고, 이후에는 무시무시한 속내를 가진 그녀의 조언이 명쾌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횡령과 존속살인, 보험 사기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는데, 그럼에도 미치루를 전혀 원망하지 않았다. 그녀의 가스라이팅이 완벽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미치루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각 지역의 경찰들로 인해 덜미가 잡히고 말았는데, 반전이라고 할 만한 놀라운 알리바이를 대고서 빠져나갔다. 이 소설이 시리즈라는 걸 알고 읽기 시작했기에 미치루가 여기서 잡히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럼에도 놀라운 반전이라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여러 시리즈 중 하나인 이 소설은 지독한 악녀를 내세웠다. 보통 악당이라고 하면 싫고 미운 감정이 들기 마련이지만, 이 소설 속의 미치루는 불쌍하기도 하다가 밉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매력적인 부분이 존재하는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캐릭터 설정을 잘 구축한 거라 느껴졌다.
앞으로 미치루가 또 무슨 일을 일으킬지 궁금하고, 또 두렵기도 하다.


​​​​​​​

"이번 나고야 사건도 그렇지만, 실행범의 곁에는 언제나 미치루가 존재합니다. 실행범의 그들에 숨어 결코 밖으로 나오지 않죠." - P362

완전범죄. 미즈모토는 그 네 글자를 떠올리고는 소름이 돋았다. 그런 것은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말이라고 지금까지 믿어 왔지만, 가모우 미치루의 존재야말로 그것을 대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P3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3 - 연산군에서 선조까지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3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신병주 감수 / 민음사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권의 시작은 연산군의 횡포였다. 연산군의 너무나 악명 높은 악행으로 인해 왕을 끌어내리려는 신하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반정을 도모한 이들은 연산군 정권에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종2품 관직에 있다가 종9품으로 강등된 이들이 있었고, 누이가 연산군에게 강간당하고 자결했기에 당연히 연산군에게 원한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반정에 성공한 뒤, 반정 세력들은 연산군을 즉시 죽이지 않고 강화도로 유배를 보냈다. 여기서 잘 알려진 부분이 있는데, 유배 간 연산군이 그제야 부인 신씨를 그리워했다는 점이다. 뒤늦게 후회해 봐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건 당연했다.

중종은 자신이 보위에 오를 줄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조선의 왕이 되었다. 이후 공신 책봉이 이루어졌는데, 중종반정의 공신은 무려 100여 명이 넘었다고 한다. 왕권보다 신권이 강했음을 입증하는 결과였다.
여기에 연산군 세력을 처분해야 하는 건 당연한 순리였다. 안타깝게도 중종의 아내인 단경왕후 신씨의 아버지가 연산군의 처남이었기에 단경왕후는 가장 짧은 시간 국모 자리에 있었다가 폐비가 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지나갔는데, 폐비가 된 여인들은 당시의 평균 수명을 웃도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단종비 정순왕후는 82세, 단경왕후는 71세까지 살았다. 궁궐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삶이 얼마나 고됐을지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후 임꺽정 같은 도적 무리들을 소탕하는 내용을 다뤘고, 역사보다는 문학 시간에 익숙한 '관동별곡'의 정철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 있었다. 정철이 술을 좋아했다는 부분도 다뤘고, 정여립의 역모 사건과 관련된 기축옥사에서 정철이 위관(수사 책임자)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즉결 처분당했다는 내용을 새롭게 알게 됐다.
또한 조선시대의 교육열, 실록과는 다르게 세세한 승정원일기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3권은 왕에 대해서 주로 다루기보다는 여러 사건을 이야기했고, 교육열이라는 주제로 지금 시기와 비교해 볼 수 있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 부분들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