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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물이 너를 베리라
S. A. 코스비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22년 12월
평점 :
과거에 사람을 죽이고 교도소에 들어갔다 온 범죄자였지만, 지금은 조경 업체를 운영하며 성실히 살아가고 있는 아이크에게 어느 날 갑자기 경찰이 찾아온다. 자신은 그때의 괴물과는 다르다고 자부하고 있는데도 경찰의 방문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경찰은 아이크 때문에 온 게 아닌, 아들 아이지아와 아들의 남편 데릭의 소식을 가지고 왔다. 바 앞에 서 있던 두 사람이 총에 난사당해 죽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확인 사살까지 당했다는 걸 보면 분명 원한에 의한 살인이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남부 지역엔 아직 수많은 차별이 남아 있어서 아들과 아들의 남편이 게이라는 것도 문제가 됐을 테고, 아이지아는 흑인이고 데릭은 백인이라는 것 또한 극우주의자들의 심기에 거슬렸을지도 모른다.
아이크는 분노로 어쩔 줄을 몰라 했지만 내면에 도사린 괴물을 끄집어낼 수는 없었기에 마음을 다스렸다. 아내 마야, 그리고 아들이 남긴 딸인 아리아나와 함께 아이지아와 데릭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데릭의 아버지인 버디 리가 다가왔다. 버디 리 역시 아이크처럼 전과가 있었던 사람이고, 아들의 죽음에 엄청나게 분노하고 있었다. 버디 리는 아들들을 죽인 사람을 찾아 함께 복수를 하자고 제안했지만, 아이크는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있었기에 거절했다.
그런데 얼마 후, 아이크는 묘지 관리인에게서 아이지아와 데릭의 묘소와 비석이 훼손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비석은 둘로 갈라져 있었고, 동성애에 대한 혐오스러운 욕설이 형광 스프레이로 새겨져 있었다. 죽은 아들까지 욕보인 행위에 더 이상 화를 억누를 수 없게 된 아이크는 버디 리에게 전화해 복수를 하자고 말했다.
아무리 개방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미국이라고 해도 폐쇄적인 부분은 여전히 존재하기 마련인가 보다. 특히 남부 지역은 남북 전쟁 이전부터 이어져온 흑인에 대한 차별이 남아 있다는 걸 의미하는 소설 속 일부 내용을 보면 말이다. 그런 차별이 존재하는 남부에서 흑인 아이지아와 백인 데릭이 결혼해 아이까지 키웠다는 건 분명 이목을 끌었을 것이다. 아이지아와 데릭의 아버지인 아이크, 버디 리조차 아들들의 성 정체성에 화를 냈고, 나중엔 아들을 보려고도 하지 않았으니 모르는 타인은 더 했을 터였다.
아이크는 죽은 아들을 외면했다는 미안한 마음과 책임져야 할 가족이 새로 생겼기에 분노를 삭이려고 했지만, 묘지와 비석까지 훼손된 걸 보고 나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버디 리와 함께 복수를 시작하게 됐다. 두 사람이 그저 평범한 할아버지에 지나지 않았다면 아들들을 죽인 놈들을 찾는 건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 범죄 전력이 있는 이들이었기에 아직까지 그쪽에 관한 촉을 가지고 있었고, 또 한때의 감방 동기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잘 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방법은 있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두 할아버지의 수사는 탄제린이라는 이름의 여자가 언급되면서 꽉 막히고 말았다. 탄제린을 찾는 것에서부터 너무나 어려웠는데, 아이크와 버디 리만 그녀를 찾는 건 아니었다. 탄제린이 알고 있는 비밀을 위해 기자인 아이지아가 그녀를 돕다가 데릭과 함께 살해를 당했다. 그리고 그 살해를 지시한 건 탄제린이 두려워하던 사람이었고, 지시를 받고 움직인 건 지역에서 유명한 갱단인 '레어 브리드'였다는 걸 알게 된다. 그 레어 브리드는 숨어버린 탄제린을 찾을 겸 아이크와 버디 리를 쫓고 있었다.
아이크와 버디 리는 아들들이 인종차별이나 호모포비아 때문에 살해된 게 아닌 누군가의 원한에 의해 살해됐다는 걸 알게 된 이후 탄제린을 찾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녀를 찾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는데, 어떻게든 헤매서 찾아내자 탄제린은 너무나 두려웠던 나머지 입을 열 생각이 없었다. 그저 숨어 있고만 싶었다. 그러나 여기서 레어 브리드로 인해 총알이 빗발치는 싸움이 이어져 아이크와 버디 리는 탄제린을 데리고 도망쳐야만 했다.
이후 소설은 탄제린에 관한 비밀과 그녀가 두려워하던 이의 정체가 밝혀지며 놀라움을 안겼다. 여기에 소중한 가족들까지 피해를 입고 납치를 당하는 등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이 연속으로 이어져 과연 버디 리와 아이크가 권력과 화력을 손에 쥔 상대들과 맞설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그러나 소설은 정의의 편에 선 이들에게 복수의 성공이라는 뜻을 이루게 만들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안타깝고 슬픈 사건이 일어나긴 했지만, 앞서 복선처럼 내내 보여주던 장면이 있었기에 그럴 거라는 예상은 했다. 그래도 슬프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말이다.
S. A. 코스비의 책은 두 번째로 읽는 건데 처음 읽었던 <검은 황무지>만큼 재미있게 읽었다.
"이 모든 일을 통해 하나 배운 게 있다면, 정작 중요한 것은 내 자신 그리고 내가 지금 가진 것들이라는 겁니다. 사람들이 진짜 제 모습대로 살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진짜 자신의 모습대로 산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사형선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 P381
"일단 시작한 이상 난 그 개자식들을 찾기 위해 뭐든 할 겁니다. 사람이 다치더라도, 누군가를 죽여야 한대도, 마찬가지로 망설임 없이 할 거예요. 그 개자식들을 잡기 위해 깨진 유리 위로 100킬로미터를 기어가야 한다고 해도 마땅히 할 겁니다. 난 그럴 거예요. 기꺼이 피를 흘릴 준비가 됐단 말입니다." - P72.73
"일전에 아이들을 죽인 사람들을 잡을 수 있다면 뭐든 하겠다고 했잖소. 그 말 진심이었소? 왜냐하면 난 진심이었거든. 내가 잡은 그 새끼 때문에 다시 교도소에 간대도 난 기쁜 마음으로 주홍색 점프수트를 입고 슬리퍼를 신을 거요." - P352
"그래도 아이들은 자기 스스로 옳게 성장했소. 주변인들에게 좋은 친구였고, 서로에게 다정했으며, 딸에게도 자상했지. 우리 같은 아빠를 뒀음에도 결국 좋은 사람으로 성장했소. 우리가 아이들을 몇 번이나 실망시켰는지 몰라도 아이들은 결국 옳은 길로 갔소."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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