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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해피엔딩
조현선 지음 / 북로망스 / 2025년 2월
평점 :
21살 연소미는 두 달 전부터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낯선 도시의 원룸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다. 가족도 없이 연고지도 아닌 곳에서 어린 그녀가 살게 된 건 삼촌, 남동생과 살던 집이 화재로 몽땅 타버렸다는 것인데, 그 화재로 인해 삼촌과 남동생 역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소미는 교도소에 드나드는 엄마는 기억나지 않을 정도라 살을 맞대고 사는 삼촌, 남동생과 가까워야 했지만 그들의 죽음이 그렇게 슬프지도, 그렇다고 잘 됐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저 무덤덤할 뿐이다.
장원일 형사는 화재가 난 날 소미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곧장 오지 않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끼리 술을 마시고 돌아오다가 뒷산에서 잠이 들었다는 걸 의심했다.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잘 내려놓고 뒷산에서 잠든 그녀가 발견되기까지 40분이라는 시간의 공백을 소미 스스로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의심의 대상이 됐다. 형사의 의심에도 소미는 자신이 불을 지른 게 아니라는 걸 확신했기에 오랫동안 살았던 곳을 떠나 도시로 온 것이었다.
소미에게는 굉장히 특이한 친구가 하나 있었다. 손바닥에 쏙 들어올 만큼 작은 곰 인형이었는데, 그 곰 인형이 말을 하며 소미와 대화한다는 사실이다. 소미는 중학생 때부터 곰이와 대화하며 지낸다는 걸 비밀로 했다. 곰이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소미는 그런 소중한 친구 곰이의 몸에 얼룩이 져 지워지지 않는 걸 보곤 근처 장난감 가게로 갔다. 중고 장난감을 팔거나 수리하는 곳이었는데, 그곳 사장인 우신과 친구이자 동업자인 민호가 소미를 반겨주었다. 소미는 장난감 가게에 드나들며 사장님들과 친해졌고, 그곳 덕분에 여러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된다.
성인이긴 해도 21살이라는 너무나 어린 나이의 소미가 혈혈단신으로 낯선 도시에 와서 사는 건 어려울 것만 같았다. 친구도 별로 없었고 이제는 가족조차 없어진 상황이 막막할 듯했지만, 소미는 조금 소심하긴 해도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잘 살아가고 있었다. 소미에게 가족인 삼촌과 남동생이 그리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홀가분해 보였다. 소미의 엄마가 동생인 삼촌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가버린 이후 소미는 온갖 집안일을 다 해야만 했다. 남동생은 선천적으로 청각이 좋지 않아 말을 해도 잘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미는 음식과 빨래, 남동생의 뒤치다꺼리는 물론이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보태야 했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정을 붙일 수 없던 게 당연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소미에게는 말하는 인형 곰이가 있었으니 삼촌, 남동생과 살던 막막한 시기를 견뎌낼 수 있었고, 그들이 세상을 떠난 지금은 곰이와 알콩달콩 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곰이의 몸을 씻겨주고자 장난감 가게를 방문하면서 소미는 세상에 말하는 장난감, 물건이 곰이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장난감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중고 장난감, 중고 물건들은 저마다 소리를 내며 소미에게 말을 걸었다. 말이 명확하게 들리던 목소리도 있었고, 그저 웅웅거리는 소리만 들린 경우도 있었다. 가게가 이렇다 보니 소미는 사장님들 역시 이런 소리를 듣는다는 걸 알게 되어 그곳을 편하게 드나들었다. 나중엔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신비로운 장난감 가게 덕분에 소미는 여러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소미가 사는 원룸의 앞집에 새로 이사 온 지희는 동갑내기 또래라 금세 가까워졌다. 옆집에 사는 강용수 아저씨와는 친해지지 못했지만, 그가 기타 연습을 엄청 열심히 하고 또 작곡도 잘 한다는 걸 지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생 철웅이는 우연히 곰이가 말하는 걸 본 이후 공부도 잘하고 멋진 친구 연우에게 그 사실을 말한 바람에 연우가 장난감 가게로 찾아오기까지 했다. 그리고 서울로 이사를 갔다가 찾아온 10살 예림이는 여전히 소미를 의심하는 장원일 형사와 만나 가까워졌다.
장난감 가게가 주요 배경이다 보니 곰이처럼 말하는 중고 물건들이나 말을 하지 않아도 원래 주인과 깊은 유대를 형성한 물건들을 통해 저마다의 사연이 풀어지는 과정을 보여줬다. 나이 차이가 좀 나는 언니와 갑자기 사이가 안 좋아진 지희는 화해를 하기 위해 애를 썼고, 강용수는 장난감 가게에서 산 기타를 통해 좋은 인연을 맺게 됐다. 소미가 사는 원룸의 주인 할머니의 이야기는 먹먹한 여운이 남게 했다. 어리지만 똑 부러지는 연우와 예림이의 이야기는 흐뭇하게 끝나 안도했다.
그런 와중에 장난감 가게의 주인인 우신과 민호의 이야기도 나왔는데, 예상치 못한 흐름으로 이어져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리고 장원일 형사에게 내내 용의자로 의심받던 소미가 결백하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 등장한 숨겨진 이야기는 그야말로 크나큰 충격을 안겼다. 민호와 소미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에게 왜 말하는 물건, 무언가가 나타나고 곁을 지키게 되었는지 깨달았다. 서글프지만 고마웠다.
소설 <두 번째는 해피엔딩>은 SNS에서 우연히 알게 되어 찜해둔 책이다. 마침 도서관 신착 코너에 있어서 빌려 읽었는데, 아기자기한 판타지 소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즐겁고 흐뭇했다. 물론 숨겨진 이야기로 인해 입이 떡 벌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소미와 그녀의 곁을 지키는 친구 곰이가 오랫동안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짙게 남았다.
"이 아이들은 애정에 반응해서 숨을 쉬기 시작해. 네가 어떤 존재에게 아낌없이 마음을 주면, 그리고 운 좋게 그 녀석들에게 힘이 있다면, 숨을 쉬면서 존재하기 시작하지." - P229
"네가 가진 나쁜 기억과 감정, 내가 가져갈게.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 P48
낡고 닳아빠진 물건들에는 기억이 고여 있다. 사람은 물건에게 애정을 주며 자신의 감정을 쏟아 붓는다. 그리고 희박한 확률로 그들이 깨어나서 주인의 소망을 이루어주려 노력한다. - P15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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