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
앤 그리핀 지음, 허진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11월
평점 :
84살의 모리스 해니건은 한때 지역 유지의 저택이었다가 지금은 호텔이 된 그곳의 바에 앉아 지난날을 회상한다.
모리스가 어렸을 때 부모보다 더 의지했던 형 토니가 있었고, 고작 15분의 기적이었던 몰리가 있었다. 처제 노린, 아들 케빈, 그리고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내 세이디에 대해 차례로 떠올린다.
그리고 그는 호텔 바를 떠나 어디론가 향한다.
소설은 독특하게 서간체 형식으로 쓰여 있었다. 모리스가 호텔 바에 앉아 아들인 케빈에게 말을 거는 듯, 편지를 쓰는 듯한 형식의 문장이었다. 그래서 여느 소설보다는 문체가 부드러워서 읽기 수월했지만, 내용은 그다지 편하지만은 않았다.
모리스는 2년 전에 아내 세이디를 떠나보내고 혼자 사는 삶에 점점 회의를 느껴 지금에까지 온 것 같았다. 어떤 각오를 한 듯한 그는 종종 들르곤 했던 호텔 바에 앉아 술을 마시며 과거에 젖어들었다.
처음엔 어릴 적 이야기였다. 이곳이 호텔이 되기 전에 마을의 큰 농장주 돌러드의 대저택이던 시절 모리스는 엄마와 함께 이 집 일을 했었다. 돌러드 씨만큼이나 악랄했던 아들 토머스는 모리스가 또래라서 그런지 심심하면 폭행을 했고, 나중엔 얼굴에 큰 상처가 남아 지금까지 흉이 졌을 만큼 때리고 또 때렸다. 그러던 중에 창 밑에 떨어진 금화를 주운 사건 이후 돌러드 집안의 후계자 토머스의 삶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러면서 늘 믿고 의지했던 형 토니에 대한 이야기도 곁들였다.
몰리는 세이디와 결혼한 후 어렵게 가진 아이였지만 모리스가 자책을 하게 만든 비극이 있었다.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처제 노린과의 이야기는 어떤 부분에서 보면 조금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반짝이는 것만 좋아하던 노린을 회상하며 모리스는 지난날의 과오를 바로잡을 수 있었던 걸 보면 말이다. 그리고 아들 케빈과 아버지 모리스의 관계는 여느 부자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아 뒤늦게 후회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사랑하는 아내 세이디는 모리스의 전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모리스가 살면서 만난 사람들 중 중요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후회가 느껴졌다. 케빈은 일 때문에 미국으로 간 것이었지만 어찌 됐든 그들 모두는 모리스의 곁을 떠난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이 떠난 뒤에야 모리스가 깊이 후회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리스의 곁에 있을 때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소중함이 떠난 뒤에야 폐부를 찌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그러면서 각 장마다 건배를 외쳤던 그들 모두가 모리스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얼마나 사랑하는 존재인지 깨닫게 했다. 비록 마음을 다해서 표현하지 않았던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들 덕분에 모리스의 인생이 조금은 달라졌고 충만한 사랑을 느끼며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런 모리스의 회고를 읽으며 '눈부신'이라는 형용사에 어울리는 인생은 아니라고, 후회 많은 인생이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삶을 살아온 당사자인 모리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삶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운을 남겼다.
이제 다섯 번 중에서 첫 번째 건배를 할 준비가 됐다. 다섯 번의 건배, 다섯 명의 사람, 다섯 개의 기억. - P38
나에게도 너무 벅찬 일이었다. 네 살짜리 아이는 고사하고 마흔세 살인 남자도 세이디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어. 자신을 사랑하라고? (……중략) 세이디가 너에게 그런 이야기를 몇 번이나 했을지 궁금하구나. 그래서 지금의 네가 된 걸까? 삶을 굳게 믿고 만족하는 사람이? - P214.215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 전까지는 아무도, 정말 아무도 상실을 몰라. 뼈에 달라붙고 손톱 밑으로 파고드는 마음 깊이 우러나는 사랑은 긴 세월에 갈쳐 다져진 흙처럼 꿈쩍도 안 한다. 그런데 그 사랑이 사라지면…… 누가 억지로 뜯어간 것 같아. 아물지 않은 상처를 드러낸 채 빌어먹을 고급 카펫에 피를 뚝뚝 흘리며 서 있는 거야. 반은 살아 있고 반은 죽은 채로, 한 발을 무덤에 넣은 채로 말이다. - P2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