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비웃는 숙녀 비웃는 숙녀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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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사회활동 추진 협회'의 사무장인 후지사와 유미는 3개월 전에 들어온 간자키 아카리와 함께 모금 활동 중이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높여 호소를 해도 모금한 금액은 겨우 3천엔 정도뿐이었다. 더운 여름이라 바깥에서의 모금 활동은 유난히 힘이 든다.

유미가 모금 활동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이 모금액이 국회의원이자 협회의 이사장인 야나이 고이치로의 정치 자금으로 들어갈 예정이기 때문이다. 야나이의 비서인 사키타 아야카가 유미를 재촉해서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성과가 없어 곤란한 처지다.

그러던 중에 아카리가 투자 자문사에게 상담을 받아보면 어떻겠냐는 말을 먼저 꺼냈다. 의심하던 유미는 상담은 무료라는 말에 아카리의 소개로 노노미야 쿄코를 만나게 된다.


이후 사이비 종교 단체 쇼도관의 부관장 이노 덴젠, 야나이의 후원회 회장 구라하시 효에, 그리고 비서 사키타 아야카에 이어 야나이 고이치로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전 시리즈에서 미모와 언변으로 많은 사람들을 홀린 가모우 미치루는 친척 노노미아 쿄코의 얼굴로 수술하고서 여러 의혹에서 빠져나갔다. 악녀의 통쾌한 사기가 이번에는 어떻게 이어질지 기대가 됐다.

소설은 시작부터 각기 다른 등장인물의 이야기로 진행되었으나 처음부터 목표는 정해져 있다는 걸 드러냈다. 바로 국회의원 야나이 고이치로였다. 그가 어떤 사람이기에 타깃이 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초반부터 단정 지었던 건 분명 나쁜 인간이라는 점일 뿐이었다. 야나이의 불법 정치 자금 마련을 위해 설립된 협회의 사무장인 유미에게 미치루가 처음으로 마수를 뻗쳤을 때부터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유미는 운용자금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았고, 쇼도관의 부관장 이노는 교단 운영이 어려워지자 책을 써서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했다. 그리고 구라하시는 젊은 야나이 이전에 그의 아버지 아냐이 고노스케를 후원했던 과거를 추억하며 자신도 정치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리고 야나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갖은 것들을 참고 견뎠던 비서 아야카는 그의 아내가 되고 싶은 마음을 품어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들은 모두 야나이와 관련된 부분은 차치하고 저마다의 욕망을 품었다. 그 욕망은 자신이 바라는 자리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 욕망을 단번에 알아본 미치루로 인해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진창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늦었다는 걸 깨달았을 땐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었던 게 당연했다. 미치루는 언제나 그들보다 빨랐기 때문이었다.

타깃인 야나이가 얼마나 나쁜 인간인지 드러났을 때 그를 향해 복수를 하는 게 통쾌할 것 같아 기대가 됐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른 흐름으로 이어져 조금은 의아해지게 만들었다. 그러다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치달으며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고 말았다. 반전을 정말 예상할 수 없었기에 놀라운 한편으로 이전 시리즈와는 다르게 굉장한 불쾌감을 남겼다. 이게 바로 '이야미스'인가 싶었다. 나쁜 놈들을 혼내주는 매력적인 악녀라고 느꼈었는데, 이번 소설에서는 그저 사이코패스로만 여겨져 찝찝함을 남겼다.

불쾌하긴 해도 다음 시리즈는 읽어야겠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외모가 90퍼센트다. 외모가 그럴싸하면 대부분의 인간을 속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중략)
그와 동급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쿄코도 같은 부류라고 할 수 있다. 불쾌감을 주지 않는 미모와 사람을 매료시키는 목소리부터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이런 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믿어 볼까, 라는 생각이 들고 만다. - P113.114

─ 이건 지능범죄로 가장한 최악의 범죄입니다. 돈은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로지 피해자들만 궁지에 몰아넣었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상대를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오랫동안 이 일을 해왔지만 이렇게나 비정하고 악랄한 사건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 P368

세상에 쾌락을 위해 살인하는 부류가 존재하듯 쿄코라는 여자는 쾌락을 위해 계획을 짜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특별한 동기도 없고 상대에 대한 증오도 없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타인의 삶과 생명을 앗아가고 목적을 달성하면 아이가 새 장난감을 찾듯 또 다른 사냥감을 찾기 시작한다. - P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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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칭 관찰자 시점 - 2018년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조경아 지음 / 나무옆의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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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와 디모테오는 어릴 때 같은 성당의 고아원에서 자랐다. 12살 어린 나이에 테오와 베드로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공유하며 친구가 되었다. 신부라고 하기엔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크고 민머리인 베드로는 외모와는 달리 순박한 사람이었다. 반면에 남녀노소 누구라도 흠뻑 빠져버릴 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테오는 냉랭한 기운을 내뿜으며 좀처럼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베드로는 자신이 적을 둔 성당에 부임한 테오를 반갑게 맞아줬다. 그리고 성당의 신도, 특히 여성 신도들은 테오를 경외하며 우러러보는 것을 넘어 거의 아이돌처럼 여겼다. 그중에서 품행장애로 인해 병원에 다니고 있는 고등학생 레아가 테오를 스토킹하다시피 따라다녔다. 12살 남자아이 요셉은 자신에게만은 너무나 다정한 테오와 가까워졌다.

그러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서 테오의 입지가 위태로워졌다.




끈끈한 관계인 사람들에게 어려운 일이 닥치면 함께 이겨나가기도 하지만, 소설 속 베드로와 디모테오처럼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경우라면 관계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것도 테오의 아버지인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강치수에게 하나뿐인 가족이 살해당한 거라면 더더욱 말이다. 강치수는 집 지하실에서 10명이 넘는 여자와 아이들을 살해했다. 테오와 엄마는 인질이나 다름없어서 그에게서 도망을 칠 수도 없었다. 그러다 같은 성당에 다니던 베드로와 그의 누나가 강치수에게 속아 지하실로 가게 됐고, 그곳에서 베드로의 누나와 테오의 엄마가 살해당하고 말았다. 베드로는 테오를 충분히 미워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너무 착한 아이였는지 그러지 않았다. 이후 두 아이는 같은 성당 고아원에서 지내게 됐고, 함께 사제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드디어 그 꿈을 이뤘다.

꿈을 이뤄 같은 성당에서 함께 지내게 됐다는 기쁨도 잠시, 테오에게 시련이 닥쳐오고야 말았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시련이 그를 힘들게 했고 들춰내고 싶지 않았던 과거까지 까발려졌다.

제일 먼저 일어난 사건은 레아였다. 고등학생인 그녀는 테오를 향한 애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정신적인 폭력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까지 했다. 신부가 어떤 사람인지 뻔히 알고 있었을 텐데도 자신이 좋아하는 마음을 왜 받아주지 않느냐고 하는 걸 보며 제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러다 성당 내부에서 그녀가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 테오를 곤란해지게 했다. 그런데 테오는 레아가 자살이 아닌 타살된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해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성당 내에서 살인이 일어났다니 경을 칠 노릇이었기에 다들 쉬쉬했지만, 테오는 홀로 의심스러운 점을 좇기 시작했다.

그러는 한편으로 새 정권의 공약으로 잔혹한 범죄자들의 사형이 재개되었다. 가장 우선순위에 오른 자는 바로 테오의 아버지 강치수였다. 베드로는 유일한 가족을 죽인 강치수의 죽음을 마주해야 하는 심정이 복잡하기만 하다.

소설은 테오를 중심으로 주변 사람들의 시점으로 진행되었다. 주인공은 테오라고 볼 수 있는데 그의 시점은 등장하지 않고, 소설의 제목처럼 그야말로 3인칭 시점으로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이면서 같은 고통을 나눠가진 베드로부터 시작해서, 주임신부 유스티노, 어린 소년 요셉, 죽은 레아, 레아의 정신과 상담의 마 교수, 남자연 경찰, 심지어는 강치수의 시점도 등장했는데 정작 테오의 속내를 알 수 있는 시점이 등장하지 않아 의문스러운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소설 속에서 일어난 사건의 원흉이 드러나면서 이야기의 전개 구성을 이렇게 짠 이유가 이해가 됐다. 사람은 타인을 볼 때 자신만의 프레임을 씌우기 마련이다. 테오를 향한 레아의 시선은 갖고 싶은 욕망이었고, 베드로는 애잔한 마음이 느껴졌을 만큼 저마다 테오를 보는 시선이 각기 달랐다. 그 다름으로 인해 테오가 아버지 강치수처럼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 모호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이었다. 나도 당연히 휩쓸릴 뻔했지만 이 소설의 속편 아닌 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을 몇 년 전에 읽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결 과정에 집중하며 읽었다.


어쩌다 보니 <복수전자>를 먼저 읽고 이 소설을 이제야 읽게 되었다. 도팔과 요셉, 테오 신부의 이야기가 시작된 지점이라 그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우연이기도 했고 필연, 또는 그저 흘려보냈을 수도 있었던 순간이 그렇게 이어진 게 흥미로웠다.

"검은 놈은 아무리 백색 칠을 해도 검은 놈이니까. 누가 뭐래도 너는 내 아들이야. 알아들어? 그러니 착한 척하려고 너무 애쓰지 마. 결국, 우리 같은 놈들은 지옥에서 다시 만날 운명이니까!" - P93

"죗값은 살아내면서 평생을 두고 치러야 하는 겁니다. 죄책감을 가슴에 담아두고, 하루하루 무거워지는 고통을 오롯이 견뎌내야만 진짜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겁니다. 그게 죽어버리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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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얼 - 전건우 장편소설
전건우 지음 / 래빗홀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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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일러 최승재 경위는 희대의 연쇄살인마로 알려진 리퍼, 조영재와 대치 중이다. 지난 2년 동안 리퍼는 총 21건의 살인을 저질렀다. 연쇄살인범이 대체로 특정 인물들을 타깃으로 삼는 것과는 다르게 리퍼의 피해자들은 남녀노소 두루 포진되어 있었기에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거기다 살인 수법은 너무나 잔인했고, 매번 달랐으며 정교했다. 무엇보다 현장에 연쇄살인범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흔적은 물론 DNA 조차 전혀 찾을 수 없어서 수사는 날로 어렵기만 했다.

그러던 중에 마침내 최승재가 리퍼 조영재를 찾아냈다. 당장 리퍼를 죽이고 싶은 최승재를 주저하게 만든 건 리퍼가 자신의 아내와 딸을 납치해 감금하고서 정해진 시간이 되면 움직일 죽음의 기계의 희생양으로 내몰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였다. 최승재는 어떻게든 리퍼의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폭주한 최승재가 리퍼의 목을 졸라 숨이 끊어지려던 찰나 벼락이 떨어져 두 사람 모두 사망하고 말았다.


죽음의 순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던 최승재는 문득 눈을 떴다. 그것도 영안실 철제 침대에서 벌거벗은 채로 말이다. 죽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영안실 문을 열고 나가니 앞을 지키고 있던 경찰 두 명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기겁을 했다. 그러면서 그를 우필호라고 불렀다. 여동생을 강간해 죽인 장기현에게 복수를 하고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죽은 사람인 우필호의 몸에서 최승재가 환생한 것이었다.




경찰이라면 나쁜 놈들을 잡고 싶은 게 당연하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며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연쇄살인범을 잡고 싶은 마음에 그 사건에 매달려 미친 사람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최승재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의 아내가 남편을 향해 범인 잡으려다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고 했을 정도였으니 최승재가 리퍼를 얼마나 잡고 싶었는지, 어느 정도로 미쳐 있었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그렇게 미치도록 잡고 싶었던 연쇄살인범 리퍼와 마주했을 때 사적 제재를 하고픈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인간이기에 앞서 경찰 신분이었기에 어떻게든 그를 붙잡아 적법한 처벌을 받도록 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 최승재의 눈을 그야말로 돌아버리게 한 건 그가 아내와 딸을 납치해 죽음의 문턱에 밀어 넣었다는 걸 알게 된 이후였다. 경찰 신분 따위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기에 최승재는 리퍼의 목을 졸랐지만, 비 오던 날 번개를 맞아 함께 사망하고 말았다. 죽어가면서도 가족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최승재에게 깊이 새겨져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최승재는 되살아났지만, 안타깝게도 사적 복수를 한 살인자의 몸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자신도 죽지 않고 환생했다면 리퍼 역시 다시 살아났을 거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누구의 몸에서 환생하게 됐는지 알아내는 것부터가 어려웠고, 하필이면 살인자의 몸에서 깨어나는 바람에 환생을 하자마자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다행히도 최승재는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떠올랐다. 오컬트와 각종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후배 형사 조우리였다. 조우리는 자신 앞에 나타난 우필호를 잡으려고 했지만 몸 안에 들어있는 최승재가 조우리의 모든 것, 심지어는 개명 전의 이름까지 말해주자 그의 말을 믿게 되었다. 이후 최승재는 조우리의 도움을 받아 리퍼가 환생했을 것 같은 사람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리퍼의 환생을 찾는 일은 요원했고, 우필호를 죽이려고 하는 의문의 사람들에게 쫓기게 됐다. 최승재는 몸을 지키기 위해 우필호의 원수인 자들을 찾아 헤매는 한편으로 리퍼까지 찾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소설은 짧은 분량이라 그런지 속도감이 굉장했다. 리퍼를 찾는 과정에 몸의 주인 우필호와 연관된 사람들이 등장해 긴박감이 있었고, 나중엔 리퍼가 누구로 환생했는지 밝혀지며 개연성을 더했다. 환생 후에도 이어지는 사이코패스 살인자와의 대치가 어떻게 끝날지, 과연 적법한 벌을 내릴 수 있을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들었다. 마지막이 조금 씁쓸했지만 어떻게 보면 당연한 끝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정확한 끝맺음이기도 했고 말이다.

영화로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오랜만에 하게 한 한국 소설이었다.

악마.

리퍼를 설명하는 데 그것만큼 적확한 단어는 없었다. 내 빈약한 머릿속 사전에도 악마에 대한 설명은 곧 리퍼였다. 아마 다들 똑같으리라. 리퍼가 저지른 스물한 건의 살인 중 하나라도 목격했거나 조사한 사람이 있다면 악마에 대한 같은 정의를 내릴 것이다.
리퍼가 곧 악마이고, 악마가 곧 리퍼라고. - P12

공포야말로 리퍼가 원하는 것이었다. 놈은 인간들이 공포에 떨길 원한다. 그걸 보고 희열을 느낀다. 지금쯤 리퍼는 낄낄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몸속에서.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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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로 읽는 세계사
김인철 지음 / 양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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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흥미가 있는데 주로 조선사에 관한 책만 많이 읽어서 그런지 조선 외 다른 역사, 외국 역사에 관한 지식은 아주 얕은 수준이다. 그래도 최근 몇 년 동안은 그 얕은 지식에 조금이나마 깊이를 더해보고 싶어서 여러 책을 읽었다. 그냥 읽으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 미술과 관련된 것으로 말이다.

도서관에서 발견한 이 책은 초상화를 통해 세계사에 대해 말하고 있어서 흥미를 끌었다. 미술에 관한 지식도 더하고 세계사 지식도 얻을 수 있어 좋을 것 같아 읽기 시작했다.




주로 영국과 프랑스의 역사를 다루고 있던 내용 중에 인상적이었던 건 엘리자베스 1세에 관한 내용이었다. 당시 프랑스와 스페인에 비해 큰 영향력이 없던 나라인 영국의 발전을 이끌어 낸 처녀 여왕이었다.

헨리 8세와 앤 볼린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어머니가 아버지에 의해 참수되면서 조심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다. 요즘 말로 하면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그녀에게 남은 것으로 보였다. 아버지의 말 하나로 어머니는 물론이고 계모의 목숨까지 좌지우지되는 상황이었으니 당연했다. 심지어 그때 엘리자베스 1세의 나이가 고작 3살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어머니 앤 볼린이 처형된 후 엘리자베스는 왕위 계승자도 아니고 공주도 아닌, 그냥 엘리자베스 아가씨라는 명칭으로 불렸단다. 성인이 된 후에는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지도 못한 채 단지 왕실을 위한 목적으로 결혼이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위태로웠던 상황이 오른 엘리자베스 1세의 차분함과 예리한 판단력을 주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서열에서 한참 밀려나 있던 그녀가 왕위에 올랐을 때 그녀의 그런 성격이 나라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터였다.


영국 왕실은 너무나 복잡하고 가계도 또한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데, 나중에 차분하게 관련 역사를 한 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레이디 해밀턴, 일명 엠마 하트라고 불리는 여인의 초상화가 너무 아름다워서 보자마자 흠뻑 빠졌다. 작은 얼굴에 담긴 큰 이목구비가 요즘 시대에도 통하는 미모였기 때문에 넋을 잃었다. 물론 당시의 초상화는 조금 미화되기도 했겠지만 그래도 그녀의 행적을 보면 아름다운 외모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게 당연했다.


매우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지 못했던 그녀는 14살에 모델 일을 시작하여 몇몇 화가의 뮤즈가 되었고, 사교계에도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그녀는 유력 정치인들의 정부가 되었고, 결국엔 귀족 윌리엄 해밀턴 경과 결혼했다.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뿐만이 아니라 공부를 하며 내면의 아름다움 역시 쌓아갔다고 한다.

그녀는 호레이쇼 넬슨 제독의 공공연한 연인이 되어 집에도 드나드는 사이가 되었다. 집에 남편 해밀턴 경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랬다고 하는데, 너무나 놀라워서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넬슨의 아내인 파니 넬슨은 남편의 스캔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화를 내는 당연한 반응을 보였다지만 말이다.

넬슨 제독이 트라팔가 해전에서 중상을 입고 사망한 후에 엠마 하트는 극심한 슬픔에 잠겼었고, 함께 살던 저택을 지키기 위해 애를 썼다고 하는데 여자 혼자 몸으로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큰 빚을 지고 도망쳐 과음과 마약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한다.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있듯 기구한 팔자였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에 남은 이들에 대해 얘기했는데, 수많은 초상화와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역사를 인물 초상화로 풀어낸 게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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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핏 쇼 워싱턴 포
M. W. 크레이븐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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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범죄수사국의 틸리 브래드쇼는 최근 일어난 묘한 사건에 집중하고 있다. 영국 컴브리아 지역에 있는 '환상열석'에서 불에 타 죽은 시신과 관련된 연쇄살인사건이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60~70대 남자들로 부유한 계층이었고, 생식기가 잘려 입에 들어가 있었다. 신변을 확인한 결과 모두들 당분간 집을 비울 예정이었다고 가족과 지인들은 전했다. 실종 신고가 들어오지 않는 게 당연했다는 것이다.

브래드쇼는 다중단층촬영을 한 결과 세 번째 피해자의 시신에서 상처로 새겨진 글자를 발견한다. 정직된 경관 워싱턴 포의 이름과 숫자 5였다. 브래드쇼는 그가 다섯 번째 피해자가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 스테퍼니 플린 경위에게 보고한다.


브래드쇼에게 관련 보고를 들은 플린은 포를 찾아갔다. 정직 처분을 끝내고 업무에 복귀하라는 지시를 할 참이었는데, 그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환상열석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수사에 참여한다.




불에 타는 게 가장 고통스럽다고 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해서 차라리 죽었으면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두 번째로 큰 고통은 신체 절단이라고 하는데, 소설 속 연쇄살인범은 이 두 가지 모두를 해냈다. 피해자가 멀쩡한 정신을 가지고 있을 때 생식기를 잘라 입에 넣고 불을 태워 죽인 것이다. 피해자들의 연령대가 엇비슷하고 모두 부유했는데, 하필이면 생식기를 잘라 입에 넣었다는 부분으로 인해 성적인 부분과 관련된 복수라는 걸 암시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초반에는 소설의 정보를 흡수하느라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세 번째 피해자의 신체에서 정직된 형사 워싱턴 포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걸 발견하면서 그가 수사에 합류하게 되었다. 아무리 봐도 그는 세 명의 피해자와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나이도 30살 정도 차이 났고, 경찰이라 부유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수사에 합류했는데, 곧이어 네 번째 피해자가 발견되었다.

소설은 범인을 찾고 다음 피해자를 막는 데에 집중했다. 플린이 사건의 중심을 잡으며 포와 브래드쇼를 이끌었고, 포의 10대 시절부터 친구이자 경찰인 킬리언 로드가 합류했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예상치 못한 부분으로 빠져 수사에 난항을 겪었다. '톨룬드 맨'이라고 불리던 퀜틴 카마이클이 수면 위로 떠올랐는데, 그가 환상열석 사건의 범인을 지칭하는 '이멀레이션 맨'과 어떤 관련이 있는 건지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26년 전 사건이 현재 일어나는 사건과 흡사한 부분이 없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다 우연찮게 고가의 브라이틀링 시계가 수사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소설은 빠르게 사건의 중심부로 향해 갔다. 그렇게 드러난 비밀은 정말 역겹고 끔찍한 것이었다. 피해자라고 불리기도 아까운 그들은 그렇게 죽어도 마땅한 자들이었다. 기나긴 세월을 거쳐 복수를 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다.

처음엔 이멀레이션 맨이 누구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는데, 연쇄살인범의 정체가 밝혀지기 직전에 알아챘다. 매번 범인을 맞히지 못했지만 이번만은 성공했다.


자주 읽는 스릴러 장르이지만 이 소설이 유독 흥미를 끈 건 워싱턴 포와 틸리 브래드쇼라는 매력적인 캐릭터 때문이었다. 포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형사 캐릭터라 여느 소설에서도 볼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아이큐 200의 천재인데 사회성이 전혀 없어서 다른 이들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20대 중반의 브래드쇼를 만나 왠지 모르게 웃긴 장면을 많이 만들어냈다. 초반에는 서로 너무 다른 두 사람이 과연 수사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싶어 걱정이 됐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브래드쇼가 포와 어울리면서 사회성이라고 할 만한 게 생겼고, 두 사람 사이에 유대감과 우정이 형성되면서 기가 막힌 콤비가 되어 수사를 이끌었다. 의외로 둘이 쿵짝이 잘 맞아서 브래드쇼가 브레인, 포가 현장을 담당해 수사를 착착 해결해 나갔다. 이들의 이야기가 시리즈로 이어진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도 다음 책들이 출판되었으면 좋겠다.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책이었지만 정말 재미있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어 읽었다.

"범인은 현장을 자기 뜻대로 통제하고 있어. 즉흥적으로 한 게 전혀 없어. 필요한 건 전부 가지고 갔고. 납치 장소나 살해 장소에 물리적인 증거도 남기지 않았는데, 증거 전이가 불가피하고 그 어느 때보다 증거 수집 기술이 발달했다는 걸 감안하면 그건 대단한 일이야." - P51

가능한 단 한 가지 이유는 범인이 포가 사건에 개입하기를 바라지만 너무 뒤처지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포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하자, 마치 안개를 뚫고 비추는 불빛처럼 자기가 사건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가 훤히 보였다.
이멀레이션 맨은 심판을 피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는 심판을 내리고 있었다. - P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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