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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칭 관찰자 시점 - 2018년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조경아 지음 / 나무옆의자 / 2018년 9월
평점 :
베드로와 디모테오는 어릴 때 같은 성당의 고아원에서 자랐다. 12살 어린 나이에 테오와 베드로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공유하며 친구가 되었다. 신부라고 하기엔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크고 민머리인 베드로는 외모와는 달리 순박한 사람이었다. 반면에 남녀노소 누구라도 흠뻑 빠져버릴 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테오는 냉랭한 기운을 내뿜으며 좀처럼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베드로는 자신이 적을 둔 성당에 부임한 테오를 반갑게 맞아줬다. 그리고 성당의 신도, 특히 여성 신도들은 테오를 경외하며 우러러보는 것을 넘어 거의 아이돌처럼 여겼다. 그중에서 품행장애로 인해 병원에 다니고 있는 고등학생 레아가 테오를 스토킹하다시피 따라다녔다. 12살 남자아이 요셉은 자신에게만은 너무나 다정한 테오와 가까워졌다.
그러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서 테오의 입지가 위태로워졌다.
끈끈한 관계인 사람들에게 어려운 일이 닥치면 함께 이겨나가기도 하지만, 소설 속 베드로와 디모테오처럼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경우라면 관계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것도 테오의 아버지인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강치수에게 하나뿐인 가족이 살해당한 거라면 더더욱 말이다. 강치수는 집 지하실에서 10명이 넘는 여자와 아이들을 살해했다. 테오와 엄마는 인질이나 다름없어서 그에게서 도망을 칠 수도 없었다. 그러다 같은 성당에 다니던 베드로와 그의 누나가 강치수에게 속아 지하실로 가게 됐고, 그곳에서 베드로의 누나와 테오의 엄마가 살해당하고 말았다. 베드로는 테오를 충분히 미워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너무 착한 아이였는지 그러지 않았다. 이후 두 아이는 같은 성당 고아원에서 지내게 됐고, 함께 사제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드디어 그 꿈을 이뤘다.
꿈을 이뤄 같은 성당에서 함께 지내게 됐다는 기쁨도 잠시, 테오에게 시련이 닥쳐오고야 말았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시련이 그를 힘들게 했고 들춰내고 싶지 않았던 과거까지 까발려졌다.
제일 먼저 일어난 사건은 레아였다. 고등학생인 그녀는 테오를 향한 애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정신적인 폭력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까지 했다. 신부가 어떤 사람인지 뻔히 알고 있었을 텐데도 자신이 좋아하는 마음을 왜 받아주지 않느냐고 하는 걸 보며 제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러다 성당 내부에서 그녀가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 테오를 곤란해지게 했다. 그런데 테오는 레아가 자살이 아닌 타살된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해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성당 내에서 살인이 일어났다니 경을 칠 노릇이었기에 다들 쉬쉬했지만, 테오는 홀로 의심스러운 점을 좇기 시작했다.
그러는 한편으로 새 정권의 공약으로 잔혹한 범죄자들의 사형이 재개되었다. 가장 우선순위에 오른 자는 바로 테오의 아버지 강치수였다. 베드로는 유일한 가족을 죽인 강치수의 죽음을 마주해야 하는 심정이 복잡하기만 하다.
소설은 테오를 중심으로 주변 사람들의 시점으로 진행되었다. 주인공은 테오라고 볼 수 있는데 그의 시점은 등장하지 않고, 소설의 제목처럼 그야말로 3인칭 시점으로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이면서 같은 고통을 나눠가진 베드로부터 시작해서, 주임신부 유스티노, 어린 소년 요셉, 죽은 레아, 레아의 정신과 상담의 마 교수, 남자연 경찰, 심지어는 강치수의 시점도 등장했는데 정작 테오의 속내를 알 수 있는 시점이 등장하지 않아 의문스러운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소설 속에서 일어난 사건의 원흉이 드러나면서 이야기의 전개 구성을 이렇게 짠 이유가 이해가 됐다. 사람은 타인을 볼 때 자신만의 프레임을 씌우기 마련이다. 테오를 향한 레아의 시선은 갖고 싶은 욕망이었고, 베드로는 애잔한 마음이 느껴졌을 만큼 저마다 테오를 보는 시선이 각기 달랐다. 그 다름으로 인해 테오가 아버지 강치수처럼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 모호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이었다. 나도 당연히 휩쓸릴 뻔했지만 이 소설의 속편 아닌 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을 몇 년 전에 읽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결 과정에 집중하며 읽었다.
어쩌다 보니 <복수전자>를 먼저 읽고 이 소설을 이제야 읽게 되었다. 도팔과 요셉, 테오 신부의 이야기가 시작된 지점이라 그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우연이기도 했고 필연, 또는 그저 흘려보냈을 수도 있었던 순간이 그렇게 이어진 게 흥미로웠다.
"검은 놈은 아무리 백색 칠을 해도 검은 놈이니까. 누가 뭐래도 너는 내 아들이야. 알아들어? 그러니 착한 척하려고 너무 애쓰지 마. 결국, 우리 같은 놈들은 지옥에서 다시 만날 운명이니까!" - P93
"죗값은 살아내면서 평생을 두고 치러야 하는 겁니다. 죄책감을 가슴에 담아두고, 하루하루 무거워지는 고통을 오롯이 견뎌내야만 진짜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겁니다. 그게 죽어버리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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