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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로 읽는 세계사
김인철 지음 / 양문 / 2023년 1월
평점 :
역사에 흥미가 있는데 주로 조선사에 관한 책만 많이 읽어서 그런지 조선 외 다른 역사, 외국 역사에 관한 지식은 아주 얕은 수준이다. 그래도 최근 몇 년 동안은 그 얕은 지식에 조금이나마 깊이를 더해보고 싶어서 여러 책을 읽었다. 그냥 읽으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 미술과 관련된 것으로 말이다.
도서관에서 발견한 이 책은 초상화를 통해 세계사에 대해 말하고 있어서 흥미를 끌었다. 미술에 관한 지식도 더하고 세계사 지식도 얻을 수 있어 좋을 것 같아 읽기 시작했다.
주로 영국과 프랑스의 역사를 다루고 있던 내용 중에 인상적이었던 건 엘리자베스 1세에 관한 내용이었다. 당시 프랑스와 스페인에 비해 큰 영향력이 없던 나라인 영국의 발전을 이끌어 낸 처녀 여왕이었다.
헨리 8세와 앤 볼린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어머니가 아버지에 의해 참수되면서 조심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다. 요즘 말로 하면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그녀에게 남은 것으로 보였다. 아버지의 말 하나로 어머니는 물론이고 계모의 목숨까지 좌지우지되는 상황이었으니 당연했다. 심지어 그때 엘리자베스 1세의 나이가 고작 3살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어머니 앤 볼린이 처형된 후 엘리자베스는 왕위 계승자도 아니고 공주도 아닌, 그냥 엘리자베스 아가씨라는 명칭으로 불렸단다. 성인이 된 후에는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지도 못한 채 단지 왕실을 위한 목적으로 결혼이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위태로웠던 상황이 오른 엘리자베스 1세의 차분함과 예리한 판단력을 주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서열에서 한참 밀려나 있던 그녀가 왕위에 올랐을 때 그녀의 그런 성격이 나라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터였다.
영국 왕실은 너무나 복잡하고 가계도 또한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데, 나중에 차분하게 관련 역사를 한 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레이디 해밀턴, 일명 엠마 하트라고 불리는 여인의 초상화가 너무 아름다워서 보자마자 흠뻑 빠졌다. 작은 얼굴에 담긴 큰 이목구비가 요즘 시대에도 통하는 미모였기 때문에 넋을 잃었다. 물론 당시의 초상화는 조금 미화되기도 했겠지만 그래도 그녀의 행적을 보면 아름다운 외모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게 당연했다.
매우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지 못했던 그녀는 14살에 모델 일을 시작하여 몇몇 화가의 뮤즈가 되었고, 사교계에도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그녀는 유력 정치인들의 정부가 되었고, 결국엔 귀족 윌리엄 해밀턴 경과 결혼했다.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뿐만이 아니라 공부를 하며 내면의 아름다움 역시 쌓아갔다고 한다.
그녀는 호레이쇼 넬슨 제독의 공공연한 연인이 되어 집에도 드나드는 사이가 되었다. 집에 남편 해밀턴 경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랬다고 하는데, 너무나 놀라워서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넬슨의 아내인 파니 넬슨은 남편의 스캔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화를 내는 당연한 반응을 보였다지만 말이다.
넬슨 제독이 트라팔가 해전에서 중상을 입고 사망한 후에 엠마 하트는 극심한 슬픔에 잠겼었고, 함께 살던 저택을 지키기 위해 애를 썼다고 하는데 여자 혼자 몸으로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큰 빚을 지고 도망쳐 과음과 마약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한다.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있듯 기구한 팔자였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에 남은 이들에 대해 얘기했는데, 수많은 초상화와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역사를 인물 초상화로 풀어낸 게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