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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얼 - 전건우 장편소설
전건우 지음 / 래빗홀 / 2023년 8월
평점 :
프로파일러 최승재 경위는 희대의 연쇄살인마로 알려진 리퍼, 조영재와 대치 중이다. 지난 2년 동안 리퍼는 총 21건의 살인을 저질렀다. 연쇄살인범이 대체로 특정 인물들을 타깃으로 삼는 것과는 다르게 리퍼의 피해자들은 남녀노소 두루 포진되어 있었기에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거기다 살인 수법은 너무나 잔인했고, 매번 달랐으며 정교했다. 무엇보다 현장에 연쇄살인범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흔적은 물론 DNA 조차 전혀 찾을 수 없어서 수사는 날로 어렵기만 했다.
그러던 중에 마침내 최승재가 리퍼 조영재를 찾아냈다. 당장 리퍼를 죽이고 싶은 최승재를 주저하게 만든 건 리퍼가 자신의 아내와 딸을 납치해 감금하고서 정해진 시간이 되면 움직일 죽음의 기계의 희생양으로 내몰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였다. 최승재는 어떻게든 리퍼의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폭주한 최승재가 리퍼의 목을 졸라 숨이 끊어지려던 찰나 벼락이 떨어져 두 사람 모두 사망하고 말았다.
죽음의 순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던 최승재는 문득 눈을 떴다. 그것도 영안실 철제 침대에서 벌거벗은 채로 말이다. 죽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영안실 문을 열고 나가니 앞을 지키고 있던 경찰 두 명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기겁을 했다. 그러면서 그를 우필호라고 불렀다. 여동생을 강간해 죽인 장기현에게 복수를 하고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죽은 사람인 우필호의 몸에서 최승재가 환생한 것이었다.
경찰이라면 나쁜 놈들을 잡고 싶은 게 당연하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며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연쇄살인범을 잡고 싶은 마음에 그 사건에 매달려 미친 사람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최승재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의 아내가 남편을 향해 범인 잡으려다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고 했을 정도였으니 최승재가 리퍼를 얼마나 잡고 싶었는지, 어느 정도로 미쳐 있었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그렇게 미치도록 잡고 싶었던 연쇄살인범 리퍼와 마주했을 때 사적 제재를 하고픈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인간이기에 앞서 경찰 신분이었기에 어떻게든 그를 붙잡아 적법한 처벌을 받도록 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 최승재의 눈을 그야말로 돌아버리게 한 건 그가 아내와 딸을 납치해 죽음의 문턱에 밀어 넣었다는 걸 알게 된 이후였다. 경찰 신분 따위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기에 최승재는 리퍼의 목을 졸랐지만, 비 오던 날 번개를 맞아 함께 사망하고 말았다. 죽어가면서도 가족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최승재에게 깊이 새겨져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최승재는 되살아났지만, 안타깝게도 사적 복수를 한 살인자의 몸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자신도 죽지 않고 환생했다면 리퍼 역시 다시 살아났을 거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누구의 몸에서 환생하게 됐는지 알아내는 것부터가 어려웠고, 하필이면 살인자의 몸에서 깨어나는 바람에 환생을 하자마자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다행히도 최승재는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떠올랐다. 오컬트와 각종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후배 형사 조우리였다. 조우리는 자신 앞에 나타난 우필호를 잡으려고 했지만 몸 안에 들어있는 최승재가 조우리의 모든 것, 심지어는 개명 전의 이름까지 말해주자 그의 말을 믿게 되었다. 이후 최승재는 조우리의 도움을 받아 리퍼가 환생했을 것 같은 사람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리퍼의 환생을 찾는 일은 요원했고, 우필호를 죽이려고 하는 의문의 사람들에게 쫓기게 됐다. 최승재는 몸을 지키기 위해 우필호의 원수인 자들을 찾아 헤매는 한편으로 리퍼까지 찾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소설은 짧은 분량이라 그런지 속도감이 굉장했다. 리퍼를 찾는 과정에 몸의 주인 우필호와 연관된 사람들이 등장해 긴박감이 있었고, 나중엔 리퍼가 누구로 환생했는지 밝혀지며 개연성을 더했다. 환생 후에도 이어지는 사이코패스 살인자와의 대치가 어떻게 끝날지, 과연 적법한 벌을 내릴 수 있을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들었다. 마지막이 조금 씁쓸했지만 어떻게 보면 당연한 끝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정확한 끝맺음이기도 했고 말이다.
영화로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오랜만에 하게 한 한국 소설이었다.
악마.
리퍼를 설명하는 데 그것만큼 적확한 단어는 없었다. 내 빈약한 머릿속 사전에도 악마에 대한 설명은 곧 리퍼였다. 아마 다들 똑같으리라. 리퍼가 저지른 스물한 건의 살인 중 하나라도 목격했거나 조사한 사람이 있다면 악마에 대한 같은 정의를 내릴 것이다. 리퍼가 곧 악마이고, 악마가 곧 리퍼라고. - P12
공포야말로 리퍼가 원하는 것이었다. 놈은 인간들이 공포에 떨길 원한다. 그걸 보고 희열을 느낀다. 지금쯤 리퍼는 낄낄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몸속에서.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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