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되어 줄게 문학동네 청소년 72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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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010년생 중 1 강윤슬은 엄마와 도통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하기만 하다. 꼭 입고 가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던 맨투맨을 엄마가 빨아놓지 않아 살짝 짜증을 냈더니 돌아온 엄마의 반응이 워낙 커서 도리어 윤슬이가 당황했을 정도다. 언제나 다정한 엄마지만 때때로 윤슬이는 깐깐한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다.

1980년생 최수일이 보기에 요즘 애들은 정말 편하게 학교 다니는 것만 같다. 딸 윤슬이만 봐도 자신이 일일이 다 챙겨주고, 요즘 학교는 체벌도 없어서 수일이 학교 다니던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거기다 조금 자랑 같지만 수일은 자신이 좀 괜찮은 엄마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윤슬이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은데 딸은 그게 아닌가 보다.


그렇게 엄마와 딸의 갈등이 깊어져 가던 중에 술에 취한 아빠를 데리러 다녀오겠다던 엄마 수일이 사고를 당했다. 윤슬이는 방에서 자고 있다가 눈을 떴는데 그 몸에서 깨어난 건 엄마 수일이었다. 그리고 윤슬이는 30년 전 처음으로 가출을 한 엄마 수일의 몸에서 눈을 뜬다.




딱 서른 살 차이가 나는 엄마 수일과 딸 윤슬의 세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수일이 학교를 다닐 때에는 당연히 교칙이 엄하고 체벌도 있던 시절이라 선생님 말씀이라면 꼼짝도 못 했다. 그에 비해 윤슬이 학교에 다니는 현재는 교칙이 좀 자유로웠고 체벌이 없어서 선생님도 다정한 분들이 많았다. 이렇게 겉으로만 봤을 때에는 수일이 입장에서 윤슬이가 편하게 사는 것 같아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시험 기간이 끝난 뒤에 틀린 문제 개수 대로 손바닥을 맞거나 반 전체가 혼이 날 때 발바닥을 맞거나 심하면 자를 세워서 손가락을 맞았던 때에 학교를 다녔던 나는 당연히 수일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또 하나 두 모녀에게 공감했던 건 '나중에 꼭 너 같은 딸 낳아 봐라'라는 엄마의 단골 대사 같은 멘트였다. 나도 엄마에게 그런 말을 들었던 적이 몇 번 있었기에 이 부분에서는 윤슬이에게 공감이 됐다.


이렇게 시작부터 윤슬과 수일 모두에게 조금씩 다른 공감을 느꼈던 소설은 두 사람의 몸이 바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저 몸만 바뀐 게 아니라 중1이라는 나이는 그대로 세월을 뛰어넘었다. 윤슬이는 엄마가 중1이었을 93년에서 눈을 떴고, 엄마는 현재의 윤슬이 몸에서 눈을 떴다. 수일과 윤슬에게 30년이라는 격차가 있었기에 서로 소통할 방법이 없이 당장 눈앞의 현실을 살아야 했다.

윤슬이는 엄마에게서 얼핏 듣긴 했지만 93년이 진짜로 이렇게 무시무시할 줄은 몰랐다. 그저 엄마가 과장을 조금 보탰겠거니 했는데, 지난 시험과 비교해 떨어진 점수 대로 맞았고 전교 1등부터 석차를 차례로 적힌 대자보를 붙여 놓은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엄마의 말에 과장은 하나도 없었다는 걸 윤슬이는 직접 경험하고서야 알게 됐다.

그런가 하면 수일은 현재의 중학교 1학년을 만만하게 봤었는데, 그게 또 아니었다. 태블릿으로 진행하는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다. 사실 이 부분은 나도 대체 뭔 말을 하는 건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또한 수일은 윤슬이의 몸으로 축제 참가를 위한 춤 연습을 해야 했는데, 이게 너무나 어려웠다.

'라떼는 말이야'라고 농담으로 얘기하는 자신의 과거가 제일 힘들고 제일 고단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직접 경험해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해 수일과 윤슬은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의 미묘한 애증을 해소하는 과정도 있었다. 둘째로 태어난 수일은 엄마가 언니 수영만 이뻐하는 거라 여겨 가출을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윤슬이 몸에 들어갔을 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수일은 잠깐 동안 윤슬이로 살아가며 딸의 고충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딸의 친구들에게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기도 했는데, 이 부분이 참 따뜻하기도 하면서 웃겼다.


딸 입장에서는 상상만 했던 엄마와 몸이 바뀌는 게 이 소설에서 유쾌하고 재미있게 이어져서 즐거움을 줬다.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 또한 기분 좋은 먹먹함을 남겨 마지막까지 흐뭇한 감정을 품고 읽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아무리 엄마와 딸이라도 매일 매 순간 좋을 수는 없지 않을까. 나는 우리가 서로를 좋아한다고 믿게 됐다. 그거면 됐지. - P192.193

by. 윤슬
엄마가 나를 가르치고 도와주고 잘 키우는 것 말고, 나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 P15

by. 수일
왜 하필 윤슬이가 됐을까. 종종 윤슬이에게 ‘나도 내가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윤슬이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고, 말 그대로 나에게도 나 같은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이었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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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최애에게
류시은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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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최애에게   '나'는 최애 아이돌 '크레스타'의 2집 쇼케이스를 보기 위해 제주도에서 서울로 왔다. 행사장에서 버벅대는 내게 옆자리에 앉은 초록 머리가 도움을 준 덕분에 노래도, 의상도 별로이긴 했지만 그래도 쇼케이스를 무사히 볼 수 있었다. 이후 초록 머리와 나는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좋아하는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낸다.

인물과 식물   소형은 남편 원재와 함께 이사 갈 집을 구한다. 저렴한 가격에 전세로 나온 15층 아파트가 왠지 꺼림칙하고 방 하나는 너무 깨끗해서 누군가가 죽었을 거라 확신하지만, 원재는 그런 부분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이후 그 집으로 이사한 뒤 소형은 마음을 주고 기르는 침엽수 화분을 버리게 된다.


유료 분량   신영은 웹툰, 팬픽, 에세이 등을 자유롭게 게시하고 때에 따라서는 유료분도 구매할 수 있는 온라인 사이트에서 마음이 가는 웹툰의 미공개 그림을 구매했다. 그날 이후 사이트에 다시 들어가자 비밀번호가 바뀌어 있었기에 의아하게 여기며 본인 인증을 받아 비밀번호를 바꾸지만, 곧장 다시 비밀번호가 바뀌었다. 해킹을 당한 것이었다. 결국 신영은 회원 탈퇴를 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계정을 해킹한 사람으로부터 메일을 받는다.

나나   나나는 '나'에게 갑자기 길에서 구하게 된 어린 고양이 나나를 맡기고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함께 살며 의지하던 나나의 죽음은 내게 이유를 되짚는 과정이 된다.


레티 흐엉   아내인 베트남 여자 레티가 사라졌다며 남동생이 찾아왔길래 '나'는 모르는 척하며 친정에 보내줬다고 말했다. 이후 남동생은 레티를 찾아 베트남으로 갔지만 연락이 끊겼다. 그러자 이번엔 엄마가 내게 전화해 동생을 찾아보라고 닦달하는 바람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레티의 친정으로 향한다.

배우 수업   배우 지망생인 '나'의 프로필 사진을 찍어줬던 사진작가 효민과 함께 어울리며 잘 놀던 날들이 지나고 효민은 몽골에 갔다. 몽골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까지만 해도 효민과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끊어지고 말았다. 그러고선 효민에게 갑자기 연락이 와서 병원에 있다고 하며 올해를 넘기지 못할 거란 말을 했다.


밤과 감   유전으로 인해 갑상샘 항진증을 앓고 있는 길범은 회사와 연계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은퇴를 앞둔 노의사는 어렸을 적 아버지가 일제강점기 때 의사로 일했던 일화 등을 들려준다.

숨 쉬는 것부터 인간   호석의 아내 해원은 명절에 남편의 집에서 고되게 일하다 뱃속의 둘째를 잃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헤어지고 난 후에 성인이 된 딸 수아를 잃었다. 최근에는 호석이 재혼 상대인 남 선생과도 헤어졌다. 이 모든 걸 겪으며 해원과 호석은 여전히 무언가를 하기 위해 서로에게 손을 내민다.




여덟 편의 이야기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유료 분량>이었다. 무료분이 아닌 유료분, 그것도 겨우 200원짜리를 결제한 걸로 계정이 해킹됐다는 걸 알게 됐고, 해킹한 도둑놈은 자신이 그 사이트에서 72만 원어치를 구매했다고 하며 탈퇴한 신영을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해킹범이 구매한 내역은 아마 모든 사이트에서 검열 당할 거라 예상되는 단어들로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웬만한 사람들은 평생 쓰지도 않을 것 같은 단어였기에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싶었다.

그 고소로 인해 신영은 난생처음 경찰에게 참고인 조사를 받기도 했고, 이래저래 많은 걱정을 했다.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잘 끝나려는 듯싶다가 스릴러로 방향을 틀었는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문장으로 깜짝 놀라게 함과 동시에 기발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다른 이야기들은 대체로 돌보는 일에 마음을 쓰는 내용이었다. 표제작 <나의 최애에게>는 갑작스러운 상황을 맞닥뜨리고 다친 자신의 마음을 위로해 준 아이돌을 덕질함으로써 위안을 얻었다. <레티 흐엉>은 남동생과 결혼한 베트남 여자를 애처롭게 여기며 도와주는 시누이의 이야기라 왠지 마음이 아팠다. <배우 수업> 또한 돌봄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마지막이 영 씁쓸한 맛을 남겼다.


짧은 단편들로 이루어진 책이라 금세 읽을 수 있었다. 여운을 남겨 왠지 모르게 쓸쓸한 이야기였다.

나나는 분명 알고 있었어. 언제나 다 알고 있다는 눈으로 나를 지켜봐왔지. 나는 나나가 나 없이는 살 수 없는 불구라고 여겨왔는데, 나도 다르지 않았던 거야. 나나는 내가 알아채길 바라지 않았지. 그래서 쉼 없이 손 가는 것들을 내 곁에 두고 내가 아프지 않기를 바랐어. <나나>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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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의 거짓말
엘리자베스 케이 지음, 김산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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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은 11살 때 처음 만난 마니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단짝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자신이 어둠이라면 마니는 빛이었기에, 그리고 서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많은 친구 사이였기에 이 관계가 오래도록 이어질 거라 믿었다.


마니와 결혼한 찰스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찰스는 잘생기고 능력 있는 남자이긴 했다. 그래도 제인의 눈에는 마니의 짝으로는 한참 부족해 보였다. 찰스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와 만난 이후 왠지 모르게 자신이 마니에게 두 번째가 된 것 같아 불만스럽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니의 곁에서 찰스를 영원히 치워버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제인은 소설 도입부부터 찰스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마니와 이미 결혼한 시점에서 소설이 시작되긴 했지만, 찰스에 대한 증오 내지는 혐오가 결혼 이전부터 시작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제인은 그에 대한 경멸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순전히 마니를 위해서 속내를 감출 뿐이었다.


이후 제인과 마니가 언제 처음 만나서 어떻게 가까워졌는지, 10대 시절에 마니가 사귀었던 남자를 제인이 어떻게 치워버렸는지 밝히며 둘의 관계가 굉장히 깊다는 걸 보여줬다. 물론 제인의 시점으로만 이루어진 소설이었기에 그녀 혼자만의 의견일 수 있겠지만, 마니 역시 제인을 친한 친구라고 여기는 듯했다. 제인만큼 집착하는 건 아니었고 말이다.

어떻게 보면 아빠의 오랜 바람으로 인한 이혼 이후 제인은 의지할 데가 없어 마니에게 집착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제인보다는 여동생 에마에게 신경을 쓰고 있었기에 그녀는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환경에 처한 마니를 가족처럼 여겼다. 마니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인상에 남을 정도로 밝혀지진 않았으나 그래도 화목한 가정은 아니었던 걸로 보였다. 그래서 10대 시절에 두 소녀는 서로를 의지하고 챙겨주며 특별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그 관계가 성인이 되어서까지 이어져 제인과 마니는 함께 살기까지 했는데, 마니가 여러 남자를 만나고 제인 역시 조너선을 만나 결혼하게 되면서 특별한 친구 사이는 조금 기운을 잃은 듯했다.

그러다 조너선이 교통사고를 당해 제인의 눈앞에서 사망하면서 그녀는 상실감에 빠졌고, 이후 마니에게 더욱 집착하게 된 것으로 보였다. 마니에게는 완벽한 짝이었을 테지만, 제인의 눈에는 형편없는 남자로만 보인 찰스를 못마땅하게 여겨 두 사람을 어떻게든 갈라놓으려고 했는데 그건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니의 미움을 사지 않고 찰스를 떼어놓으려고 했던 적이 있었으나 결국 갈등이 생기고 말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제인 입장에서는 절호의 찬스가 왔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너무 태연해서 섬뜩했던 그 일을 제인은 아무렇지 않게 해치우고서 마니 앞에서도 전혀 모르는 척 연기를 했다. 제인에게 마니의 존재가 그토록 컸던 건가 싶어 너무 소름이 끼쳤다. 찰스의 죽음으로 제인은 마니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그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기자가 두 사람을 괴롭히자 제인은 집착적인 성격을 그 기자의 뒤를 쫓는 데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퍽 조심하면서 말이다.

이후 소설은 모든 비밀이 밝혀졌지만 개운치 않은 결말로 끝을 맺어 영 찝찝한 기분을 남겼다. 나쁜 사람이 벌을 받는 통쾌한 결말은 없었고, 집착 역시 끝을 모르고 이어져서 마지막까지 일관적인 모습을 보였다.


페이지가 술술 잘 넘어가긴 했지만 주인공 캐릭터가 너무 무섭고 끔찍해서 마음이 가지는 않았던 책이다.

지금도 난, 그녀가 알고 있었길 바란다. 우리의 뿌리가 서로에게 너무 단단히 들러붙어 있어서 절대 떼어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때 그녀가 깨달았기를 바란다. 가장 단단하게 들러붙은 곳에서 더 두껍고 거친 껍질이 벌어져 살과 살이 맞닿았음을, 그때 우린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나‘와 ‘영원히‘에 헌신적이었음을 알았기를 바란다. - P89

마니와 나는 사랑 때문에 멀어졌다. 이제 그 벌어진 틈은 텅 비어서, 새로 채워지고 보수될 일만 남았다. 결국 그 틈은 전혀 존재한 적 없던 것처럼 보이게 될 것이었다. 내가 그 기회를 만들어냈다. 그녀의 고통과, 앞으로 그녀가 겪을 일들을 생각하면 슬퍼졌다. 그렇다고 죄책감을 느끼진 않았다. 주로 안도감을 느꼈다. - P204

어린 소녀일 때부터 알아온 한 여성이 어머니가 되기까지 지켜본다는 건, 아름답기도 하면서 무척 이상야릇했다. 그 성장의 단계마다 나는 그녀를 보호했다. 맨 처음에는 부모로부터, 그다음에는 남자친구들로부터, 그다음에는 상사로부터. 마지막으로 경멸스러운 남편으로부터.
그리고 늘, 심지어 지금도, 진실로부터.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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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랜드
천선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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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밤과 푸른 달   반은 염소, 반은 악마인 외계 생명체 '크람푸스'가 지구를 침공해 사람들은 늑대 유전자를 주입한 인간을 만들어 내 그들과 싸우게 했다. 그렇게 4년 2개월의 전쟁이 끝난 후 인간을 위해 싸웠던 존재들은 골칫거리가 된다. 이후 인간들은 늑대 인간을 훈련이라는 명분으로 시설에 가둬둔다.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명월을 보기 위해 강설은 시설을 찾아간다.

바키타   배아통을 실은 우주선이 지구에 불시착했다. 우주비행사는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바키타를 보게 된다. 오래전 바키타가 지구에 왔을 때 그들은 침략이 목적이 아닌 인공화합물을 먹는 게 목적이었기에 인간들은 그들과 함께 공존했다. 그러다 바키타가 어느 순간 이후 인간이 만든 모든 것들을 먹어 치우면서 그곳을 떠나게 된 과정이 떠올랐다.


푸른 점   지구와 닮은 행성을 찾아 떠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우주로 나간 '사투르호'의 함장 시에라는 다른 대원들보다 조금 일찍 냉동 수면에서 깨어났다. 엄마가 그토록 사랑했던 푸른 점 지구를 잠시 동안이나마 혼자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선체 외부에 가벼운 충격이 가해져 우주선의 인공지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에라가 직접 수리를 하기 위해 우주로 나갔을 때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야 만다.

옥수수밭과 형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는 천재 자폐증 소년 푸코는 형이 너무나도 좋고, 학교에 갔다가 집에 일찍 돌아와 형과 함께 옥수수밭에서 하는 소풍도 즐겁기만 하다. 그렇게 사랑하는 형이 백혈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푸코는 형이 없다는 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슬펐는데, 이틀 후에 옥수수밭에서 형을 다시 만나게 됐다. 발목에 숫자 9가 새겨진 형은 푸코가 알던 바로 그 형이었다.


제, 재   해리성 인격 장애가 있는 천재 재는 또 다른 인격인 제와 한 몸을 쓰고 있다. 두 인격은 잠을 잠으로써 교대로 다른 인격이 깨어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천재인 재는 과학의 발전을 위해 수면제를 먹으면서까지 해야 할 일을 해놓고 잠에 들었고, 재와는 달리 제는 만화를 그리는 걸 좋아할 뿐 과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뜬 제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한다.

이름 없는 몸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사람이 사는지조차 알 수 없는 마을에서 태어나고 살았던 '나'는 그곳에서 도망쳐 도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고 있다. 그러다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고 장례를 마친 후에 도망쳤던 집으로 향했다. 사람을 잡아먹을 것처럼 쳐다보던 노인들이 득시글거리던 그 마을이 왠지 모르게 스산하고 조용했다.


-에게   '나'는 이름을 잊어서 저승차사가 부르는 말에 대답을 하지 못해 성불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돈다. 그러다 광화문에서 잊지 않겠다며 이름을 구호처럼 외치는 많은 여성들을 마주하게 된다.

우주를 날아가는 새   이제 지구는 살 수 없는 곳이 되어 사람들이 하나둘씩 이곳을 떠나고 있다. 절에서 동자승으로 자란 효원은 동생들을 먼저 수송선에 태워 보내고 떠나지 않겠다고 한 효종 스님의 곁을 지킨다.


두 세계   유라는 소설을 현실처럼 즐길 수 있는 '노랜드'에서 판매되는 책 <아락스>에 오류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주인공 아락스가 원래의 결말과는 다르게 목을 매 자살을 한 결말이었다는 것이다. 유라는 관리자로 그 책에 접속하려고 했지만 되지 않았고 나중엔 시스템 전체가 비어버린 걸 알게 된다. 유라는 최근에 <아락스>를 구매한 독자를 찾다가 35번이나 완독한 신규영을 만난다.

뿌리가 하늘로 자라는 나무   지구를 침략한 외계 생명체와의 전쟁에 참전한 군인 이인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유일하게 가까웠던 미군 친구 벤을 마지막으로 추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차를 타고 달리던 도중 이인은 사고가 나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열 편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집은 SF 장르가 두드러졌는데, 차갑게만 느껴지는 SF가 아니라 천선란 작가의 따스함이 듬뿍 담긴 SF가 몇 편 있어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흰 밤과 푸른 달>, <푸른 점>, <우주를 날아가는 새>가 유독 감성적인 느낌을 풍겼다.

<흰 밤과 푸른 달>은 지구를 침략하러 나타난 외계 생명체에 대항하기 위해 유전자 변이 시술을 받은 이후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언제든 떠날 것처럼 느껴졌던 명월이 이제는 닿을 수 없는 우주 밖으로까지 나가게 되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러 온 강설은 하고 싶었던 말을 나쁘게 들리도록 하고서 돌아섰지만, 속내는 그게 아니라는 걸 다시 말해줘야 했다. 그래서 다시 찾아가 한 말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푸른 점>은 엄마의 기억이 생생한 시에라가 새로운 지구를 찾아 나서는 내용이었는데, 이 이야기의 끝부분에는 큰 반전이 있어 충격으로 다가왔다. 엄마가 사랑했던 푸른 점을 똑같은 마음으로 여긴 시에라에게 그 사실은 절망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다른 대원들을 위해 엄마가 남긴 유언과도 같은 선택을 한 게 조금은 서글프게 느껴졌다.

<우주를 날아가는 새> 역시 <푸른 점>과 같이 지구를 떠나는 이야기였는데, 전자와는 다르게 남겨진 이의 이야기였다는 점에서 더욱 쓸쓸함이 느껴졌다. 회상과 현재의 시점을 오갔던 이야기의 마지막은 그런 상황임에도 남은 이를 신경 쓰던 효종 스님의 걱정이 애틋하게 다가와 눈물이 나기도 했다.

감성적인 이야기만 담고 있었던 게 아니라는 점에서 때때로 환기가 되었다.

<옥수수밭과 형>은 마지막에 너무 소름이 돋아서 섬뜩하기까지 했다. <제, 재>는 해리성 인격 장애를 가진 자의 이야기였는데, 한쪽 인격에게만 치우친 두뇌로 인해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 밝혀져 큰 충격을 안겼다. 그리고 <이름 없는 몸>은 주인공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에 대한 설명에서부터 소름이 돋았다. 늙은 노인들이 희번덕거리는 눈을 하고서 어린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을 상상하니 공포 영화가 따로 없었다. 이후 마을로 다시 돌아갔을 때 옆집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뜯어먹고 있었다는 장면 역시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이 세계보다는 다른 세계에 살고 싶어 했던 유라의 쌍둥이 유진과 소설 속 아락스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천선란 작가의 책은 장편이든 단편이든 모두 다 내 마음을 사로잡고 만다. 이 책 역시 너무나 좋았다.

아주 어색한 만남이 될 것이다. 같은 종족의, 같은 나이였던 두 소녀는 70년 후 늑대와 할머니로 만나게 될 테니까. 그렇지만 강설은 기다릴 만하다고 생각했다. 모래 알갱이보다 작아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겠지만 그래도 쳐다보는 곳 어딘가 명월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면, 영원히 떠난 사람들을 그리워했던 시간에 비해 훨씬 기다릴 만했다. <흰 밤과 푸른 달> - P56

떠나는 것이 아니라 쫓겨나는 중이다. 옷을 갈아입으려는 지구로부터. 격변을 버틸 수 있는 많은 대안을 세웠으나 모든 시뮬레이션이 실패로 끝났다. 판이 뒤집히는 대혼란 속에서 생명체는 하늘에서도, 땅속에서도, 바닷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슬퍼하고 억울해할 것도 없었다. 공룡이 사라졌듯 인간도 사라져야 할 때가 다가왔을 뿐이므로. <푸른 점> - P90

잠을 자지 않으면 깨어 있는 동안 몸을 통제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인격을 바꾸는 방식은 무의식이었다. 잠들지 않으면, 깊이 자지 않으면 한없이 몸을 차지할 수 있었다. <제, 재>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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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웃는 숙녀 두 사람 비웃는 숙녀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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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졸업 25년 만에 동창회가 열렸다. 그것도 무려 호텔에서 열린 것이었다. 동창들은 어떻게 저렴한 참가 회비로 호텔을 빌릴 수 있었는지 의아해했지만, 히사카 고이치가 동창회에 참석했다는 사실을 알고 수긍했다. 그가 스캔들 메이커라는 점은 차치하고 현직 국회의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동창회는 히사카 고이치의 건배사 직후에 각자 여러 종류의 술을 들면서 시작되자마자 아비규환이 됐다. 술맛이 이상하다는 걸 느끼자마자 뱉은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마셨다가 바로 사망했다. 동창회 참석자 20명 중 무려 17명이 세상을 떠났다.


경찰은 국회의원이 참석한 동창회라는 부분에 주안점으로 두고 수사를 시작한다. 이후 여러 지역에서 불특정 다수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경찰은 혼란에 빠진다.





이번 시리즈가 지난 시리즈 <다시 비웃는 숙녀>와 달랐던 점은 미치루의 타깃을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챕터마다 이름이 붙어있어서 그 사람이 타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지만, 읽는 동안에는 이유를 알 수 없었고 결말에 이르렀을 땐 다른 이유가 밝혀져 예측을 벗어났다.

거기다 지난 두 시리즈와는 다르게 한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을 죽이는 테러를 벌였다. 중학교 동창회에 참석한 20명의 사람들 중 17명이 죽고 3명이 상해를 입었다. 이후에는 관광버스 좌석이 폭발하게 만들어 방음벽에 부딪쳐 26명이 사망하는 큰 사고가 발생했다. 또한 중학교에서 불에 탄 시체가 발견되는가 하면 시골 헬스장 폭발 등의 사건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한 사람만을 노린 게 아닌 우연찮게 같은 장소에 있던 수많은 사람에게까지 상해를 입혔다는 점에서 너무나도 섬뜩하게 다가와 공포감이 극대화됐다.


사건이 여러 장소에서 일어났고 연관성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경찰은 시작부터 수사에 난항을 겪었다. 첫 사건에서 스캔들로 유명한 현직 국회의원이 죽었기 때문에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수사를 시작했지만, 이후 여러 곳에서 각기 다른 수법의 테러가 일어나 연관성을 찾을 수 있었다.

그 결과 CCTV에 우도 사유리라는 여성이 포착되어 그녀를 집기 위한 수사로 진행되었다. 그녀는 의료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도망친 여성이었는데, 시리즈의 주인공인 미치루와 어쩌다 마주치게 되면서 그녀의 계획을 돕게 된 것이었다. 누군가를 죽이는 데에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너무나 닮았지만, 우도 사유리는 점점 미치루의 계획에 의문을 품었고 마지막엔 자신을 처리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읽는 동안 너무 무서웠던 건 관련 없는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봤다는 점이었다. 미치루의 살인 계획에 포함된 사람도 가여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도 죽거나 다쳤다는 점이 끔찍했다. 나중엔 금요일 저녁에 신칸센에서 테러를 일으키려고 했을 만큼 미치루는 살인귀가 되었다. 정말이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우도 사유리도 미치루에게 동조하긴 했지만 마지막에 어떻게든 빠져나오게 되면서 두 사람은 그렇게 찢어지게 됐다. 하지만 둘 다 죽지 않았고 경찰에게도 잡히지 않았기에 나중에 또 만나지 않을까 싶다. 그때는 원수가 되어서 말이다.


미쳐버린 악녀 미치루가 다음엔 또 어떤 악행을 벌일지 벌써부터 두렵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잖아. 이번 사건은 그게 반대가 된 게 아닐까 싶어서."
"반대, 라니요?"
"수단을 위해서는 목적을 가리지 않는다. 즉 애초에 대규모 살인이라는 수단을 위해서라면 목적은 복수든 정치적 의도든 상관없는 거지." - P57.58

동류. 다만 세상의 평범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이질적인 부류.
두 사람이 만난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 P294

별안간 사유리는 이해했다. 이 조소야말로 미치루의 본성이다. 타인의 고뇌, 고통, 절망, 단말마. 오로지 그것들을 오만하게 내려다보며 비웃기 위해서 인생을 허비한다. - P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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