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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것이 오지 않기를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7월
평점 :
사에와 나쓰코, 일명 낫 짱은 아주 오래전부터 함께였다. 사에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특히 남자친구 문제에 관해 나쓰코가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며 그녀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나갔다. 두 사람 사이에 두터운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사에와 나쓰코는 서로를 베스트 프렌드라 여기며 오랜 세월을 함께 해 올 수 있었다.
현재.
나쓰코는 리리를 키우며 가정주부로 살고 있다. 미용 학교에 다니다 다카오를 만나 사귀면서 임신이 되어 그녀는 곧바로 결혼을 해 육아와 집안일에 전념하게 되었다. 일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에, 오로지 다카오가 벌어오는 수입으로 생활하고 있었기에 육아를 비롯한 모든 집안일은 전적으로 나쓰코의 몫이었다.
사에는 조산사인 동생 마리에가 일하는 조산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있다. 그녀 역시 결혼해 남편 다이시와 살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몇 년째 아기를 가지려고 노력하지만 도통 생기질 않는다. 그러다 사에는 다이시가 바람을 피우고 있는 걸 알게 되고, 비밀이 없는 나쓰코에게 그 사실을 말한다.
나쓰코와 사에는 굉장히 친밀한 친구 사이처럼 보였다. 고등학생 때뿐만 아니라 그 이전인 초등학생 때의 이야기도 나왔던 걸로 봐서 두 사람의 우정은 웬만한 친구들이 끼어들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듯했다. 그로 인해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한 현재까지도 둘의 관계는 돈독했고, 각자의 남편보다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각자의 남편과 알게 된 시간보다 사에와 나쓰코가 서로를 알고 지낸 시간이 훨씬 더 길었으니 말이다.
다만 두 사람 사이에 분명하게 다른 점이 있었다. 사에는 아기를 갖고 싶어서 갖은 노력을 하고 있어도 임신이 되지 않는 반면에 나쓰코는 임신으로 결혼에 성공한 케이스라 그녀에게는 쉬워 보였다는 것이다. 그 임신이라는 부분으로 인해 두 사람의 사회생활 경험에 대한 유무도 나뉘고 있었다. 그 점만 아니면 두 사람의 관계는 너무나 좋아 보였다.
그러나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서로에게 말하지 않는, 차마 말할 수 없는 게 있기도 했다.
사에는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는 것까지 나쓰코에게 말했는데, 사회생활의 어려움 같은 건 말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쓰코는 일을 해본 적이 없어서 자신에게 공감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쓰코 또한 사에에게 말하지 않았던 게 있었다. 리리를 키우는 게 얼마나 힘이 드는지 독박 육아로 인해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조차 모르겠지만, 사에에게는 얼른 아기를 낳아야 한다고 긍정적인 방향의 얘기만 했다.
두 사람은 너무나 가까워 보였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상대를 향한 부정적인 생각이 있는 것처럼 보여서 이 관계가 조금은 위태롭게 느껴졌다.
그러다 바람을 피운 사에의 남편이 죽으면서, 하필이면 나쓰코와 마주 앉아 있을 때 죽게 되면서 상황은 묘하게 흘러갔다. 그 상황만 놓고 봤을 땐 나쓰코가 사에의 남편을 죽인 걸로 보였다. 눈앞에서 그가 죽어가는데도 나쓰코는 구급차를 부르지 않았고, 그의 숨이 완전히 끊어진 뒤에는 사체를 처리할 생각만 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건이라 상황 파악이 잘되지 않아 소설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처음부터 당연하게 여겼던 무언가를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게 밝혀져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다. 이전에 읽은 몇 권의 일본 소설이 떠오르게 하는 그런 반전이 뒤통수를 때렸다.
그렇게 뒤통수를 맞고 난 후에는 놀라움이 차츰 가라앉으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했다. 처음부터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관계, 가깝지만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관계의 이면에 사랑과 헌신이라는 당연한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전 소설이지만 씁쓸함까지 덤으로 안긴 책이었다.
이 아이의 앞길에 행복만 있기를. 나쁜 것이 오지 않기를. - P325
by. 나쓰코 아이를 낳기만 하면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자기 자신보다 아이를 먼저 챙기고, 그러한 삶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는 존재. 나도 연애나 일을 질릴 만큼 하고서 이제는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싶어 심사숙고한 끝에 아이를 낳았다면 좀 더 예뻐할 수 있었을까. 분명 그럴 것이라는 확신과, 몇 살을 먹어도 변함없을 것이라는 체념이 동시에 들었다. - P13
by. 사에 농담과 잡담을 섞어가며 걸핏하면 출산을 강조해 온 나쓰코의 말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맴돌았다. 일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 주제에 잘난 척은, 하고 겨우 깔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허무함이 솟구쳤다. - P15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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