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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가족
한요셉 지음, 박지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7월
평점 :
하와이에서 태어난 그레이스 조는 이곳으로 이민을 온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얼마 전까지 오빠 제이컵도 부모님의 음식점 '델리카트슨'을 도우며 함께 살았었지만, 6개월 전 부모님의 고향인 한국으로 가 영어 강사를 하겠다고 떠났다. 결국 델리의 일손을 돕는 건 그레이스의 몫이 되어 그녀는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던 중에 한국의 뉴스를 보게 되었다. DMZ에서 웬 미국계 한국인 남성이 북으로 가려다가 붙잡혔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는 조 씨 가족의 아들 제이컵이었다.
그레이스와는 다르게 제이컵은 한국어를 잘 하지 못했다. 스스로를 숨기는 성격으로 인해 어떤 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그는 어느 날 문득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한국에는 엄마의 가족인 정 할머니와 정 이모가 있었기에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어 학원에 강사로 일하면서도 여전했던 제이컵은 어느 날 갑자기 죽은 할아버지 혼령을 보기 시작한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태우라는 이름을 가진 그 할아버지가 제이컵의 몸 안에 들어와 마음대로 행동하게 된다.
소설은 혼령인 태우의 시점으로 시작되었다. 나이가 많은 그는 교회 주차장의 주차 요원으로 일하다 갑자기 쓰러져서 깨어났는데, 몸과 분리된 것을 보고서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죽는 건 너무 당황스러운 일이었을 테지만, 죽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고향인 북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태우는 북으로 가기 위해 전망대에 올랐지만 보이지 않는 벽이 태우가 북쪽으로 가는 걸 막고 있었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실향민 혼령들을 모아 벽을 뛰어넘기 위해 수백 명의 목말을 태워 보았지만 넘을 수가 없었다.
이후 그레이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환되었다. 그녀의 가족은 외국인의 입맛에 맞는 한식을 파는 델리를 운영하고 있었다. 조 할아버지가 가게를 시작했고, 아빠가 물려받아 자식들인 그레이스와 제이컵이 돕고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특이점은 부모와 제이컵은 한국에서 태어나 이민을 왔지만, 그레이스는 하와이에서 태어났다는 점이다. 가족 중 유일하게 현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였는데 그녀는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거기다 델리 일에 지쳐가고 있었던 상황에 오빠마저 떠나버려서 가족과 가족의 일이 모두 그녀의 어깨 위에 놓였다. 가족이 분명 하와이에 사는 주민이었지만 한국인의 특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레이스의 고충이 피부로 와닿았다.
한편 한국에 있던 제이컵은 할아버지인 태우의 혼령을 보게 된 이후 그에게 몸을 내어주게 된다. 계속해서 나타나서 자신을 괴롭히게 두기보다는 원하는 게 있으면 몸에 들어와 빨리 해치우고 떠나라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그게 북으로 가는 것일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여기서 할아버지 태우의 행동이 너무 민폐라 불쾌하기까지 했다. 북에서 결혼 후 가족을 남겨두고 남으로 와서 정 할머니와 결혼해 두 딸을 낳았고, 그런 가족을 다시 버리고 나가 세상을 떠난 태우였다. 그래놓고 손자의 몸을 빌려 북으로 가려고 한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내 기준에서 고향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인지 태우의 행동이 이기적으로만 보였다. 그리고 그 결과 DMZ 군인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붙잡혀 오랫동안 취조 비슷한 걸 당해야 했던 제이컵의 정신적, 신체적 피해를 보상해 주지도 못할 할아버지로 인해 화가 나기도 했다.
다행히 제이컵은 한국으로 돌아와 가족의 품에서 이전과는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가족들 역시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으로 결말을 맺어 다행이었다.
실향민인 태우 할아버지, 언제까지나 이방인 취급을 받는 조 씨 가족들 사이에는 확실한 연결고리가 있긴 했다. 고향을 떠나왔다는 점, 쉽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 그랬다. 태우는 죽어서도 고향에 갈 수 없었기에 그리워했으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내게는 고향이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게 아니기에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두 번이나 가족을 버린 이가 고향만큼은 그리워했다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여겨졌다. 결국 내가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던 건 그레이스였다. 해외에 거주하지만 영락없이 한국인 가정의 딸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그녀의 스트레스가 와닿았다.
서로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던 가족이 마지막엔 함께 웃어서 다행이었다.
"우리들 중에는 미련을 버리고 쉽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단다." 할머니가 제이컵에게 말했다. "절대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 하지만 시간이 끌고 가기 때문에 나아가는 거야." - P274
문제는 태우가 남쪽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산 자들의 정치와 죽은 자들의 법에 따르면, 그는 북쪽에서 죽을 수 없었고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다. - P21.22
나를 관광객으로 오해하지 말아요. 난 관광객이 아니라 현지인이니까. 난 당신들과 같은 사람이에요. - P324
그레이스는 이 사람들과 진정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러한 관계는 그들이 음식을 함께 먹고 아파트 벽에 바싹 붙어서 전자 담배를 나눠 피우고 웃음소리가 연기와 함께 피어오르는 동안 계속되었다. 그들은 평소 조용했던 가족이 만들어낸 갑작스러운 소음에 마음이 활짝 열렸다. -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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