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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폴리 지음, 백지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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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로 시작했다가 잡지까지 론칭하게 된 줄스와 서바이벌 TV 프로그램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윌이 아일랜드의 한 섬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셀러브리티 커플의 만남이니 만큼 결혼식에 초대된 사람들만 이 섬에 들어올 수 있었다. 예비부부는 섬에 먼저 와서 준비를 하는 와중에 서로 얼굴을 마주하기만 하면 뜨겁게 불이 붙는다.

줄스의 신부 들러리이면서 이부동생인 올리비아는 여러 문제로 복잡하다. 그런 동생을 보는 줄스는 대체 뭐가 문제냐고 따지고 싶지만 좋은 날을 앞두고 있으니 꾹 참는다. 윌의 친구인 신랑 들러리 조노는 결혼식 때 입을 명품 양복을 집에 두고 왔다고 했다. 아일랜드섬에서 그의 집이 있는 시골까지 갔다 올 수 있는 시간이 안 되어 윌은 자신의 양복을 빌려주기로 한다. 사이즈가 한참 작긴 하지만 말이다.

섬의 주인이자 웨딩플래너인 이파는 남편이자 요리사인 프레디와 함께 결혼식 준비에 한창이다. 그리고 곧이어 신랑 윌의 기숙학교 패거리들, 어렸을 때부터 줄스와 친한 친구라서 결혼식 사회를 보기로 한 찰리는 아내 해나와 섬에 발을 디뎠다.


결혼식 전날부터 묘하게 날이 서 있던 분위기는 결혼식 당일 폭풍이 몰아치는 날씨까지 가세하면서 한층 날카로워졌다. 더구나 야외 결혼식이라 변수가 자꾸만 생겨 상황은 더 안 좋아졌다. 그러다 마침내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고야 만다.




평생 단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아마도 그 한 번이 마지막이길 바라는 결혼식이 완벽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 그랬기에 신부인 줄스가 예민해져 있는 게 이해가 됐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그녀는 잡지사를 소유하고 있었고, 남편으로 맞이할 윌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활약하고 있는 어마어마하게 잘생긴 남자였으니 일단은 그들 예비부부의 외형은 완벽했다. 줄스가 원하는 결혼식 역시 그들과 어울리도록 특별해야만 했다. 그래서 외딴섬에서의 야외 결혼식을 택한 것이었다.

섬의 주인이면서 웨딩 플래너인 이파는 셀러브리티인 줄스와 윌의 결혼식을 멋지게 치러낸다면 앞으로 더 많은 결혼식을 맡을 수 있을 거라 고대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분주하게 움직이며 상황을 확인하는 한편으로 예민한 줄스의 마음을 때때로 가라앉히는 역할도 한다.

올리비아는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어떤 사연이 있다는 걸 직감했다. 그녀가 줄스의 이부동생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헤어진 남자친구와의 관계로 인해 실연의 슬픔이 오래가는 것처럼 보였다. 조노는 윌과 같은 학교에 다닌 친구 사이였지만, 둘 사이에는 권력의 무게가 한쪽으로 명백히 쏠려 있다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건 윌이 괜찮은 집안 자식인데다가 지금도 잘나가는 중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 사이의 어떤 비밀로 인해 이 관계가 기울어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해나는 남편 찰리를 따라 이곳에 오긴 했는데, 사실 그녀는 줄스와 친하지 않았다. 찰리와 줄스가 오랜 친구라고는 해도 해나는 그들 사이에 친구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걸 내내 느꼈다.

이렇게 소설은 신부 줄스, 웨딩플래너 이파, 신부 들러리 올리비아, 신랑 들러리 조노, 남편을 따라 하객으로 참석한 해나까지 여러 사람의 시점을 결혼식 전날부터 보여주는 한편으로 때때로 현재 시점인 결혼식 피로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드러냈다. 그래서 시작부터 이 결혼식은 비극이라는 걸 예감할 수 있었다.

파국이 어떻게 시작될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처음엔 그저 저마다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줄스는 신부라서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올리비아는 헤어진 남자친구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밝혀지며 큰 충격을 주었다. 해나는 남편 찰리가 줄스와 단순한 친구가 아닐 거라고 내내 의심해왔기에 섬에 도착해서부터 그녀와 붙어서 결혼식 사회 진행에 관한 준비를 하는 걸 보는 게 싫어서 차라리 자리를 피했다. 조노는 기숙학교 출신인 다른 친구들과 달리 좋은 직업도 없고, 잘나가는 게 아니라서 조금은 껄끄러워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술이나 마약을 찾았던 건지도 몰랐다.

단순히 결혼식을 걱정하는 건 줄스와 이파뿐이었다고 보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는 걸 드러냈다. 올리비아가 해나에게 과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해나는 세상을 떠난 언니 앨리스를 떠올리게 됐다. 여기까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조노와 친구들이 기숙학교 시절에 학생들이 전통처럼 했던 '생존' 게임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그 게임에서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는 걸 예감할 수 있었고 그 실체가 후반에 드러났다.


여러 사람들이 엮이면서 저마다의 문제가 한 사람의 문제로 이어져 역시나 재수 없는 인간은 싹수부터 노랬다는 걸 보여줬다. 그저 싹수가 노란 게 아니라 되먹지 못한 인간이었기에 그렇게 되어 마땅했다. 저지르고 다닌 죄가 워낙 많아서 누구라도 그 인간에게 칼을 들이댈 수 있었다. 결말에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한편으로 또 다른 죗값을 치르는 걸 보니 역시 사람은 죄를 짓고 살면 안 된다는 걸 느끼게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줄스의 결혼식이 완전히 망가져서 안타까운 마음이 살짝 들었지만, 이혼보다는 파혼이 낫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줄스가 이후에 한 행동은 조금은 의외로 여겨졌고 둘의 관계가 생각보다 괜찮아서 다행이었다.


여러 사람의 시점을 오가며 저마다의 비밀로 향해가다 현재에 빵 터트려 권선징악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구조가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나는 이 예배당 같은 곳에서 결혼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래, 이곳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에는 뭔가 비극적인, 살짝 섬뜩하기까지 한 구석이 확실히 있다. - P80

결혼식을 기획한다는 건 이런 거다. 하객이 장단을 맞춰주고 특정한 경계선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걸 잊지만 않으면 나는 완벽한 하루를 꾸릴 수 있다. 그러나 하객이 협조해주지 않으면 그 뒤탈은 이십사 시간보다 훨씬 오래갈 수도 있다. 그런 유의 후유증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다. - P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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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터 라이어
태넌 존스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시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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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레슬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레슬리가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 세상을 떠났고, 동생 로빈은 10년 전에 가출한 이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 곁에 남은 유일한 가족이었던 레슬리가 그를 간호하고 보살피며 마지막까지 지켰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는 유산 처리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변호사의 말을 들으니 아버지는 레슬리와 로빈이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왔을 때 절반으로 나눈 유산을 딸들이 갖게 될 거라는 조건이 붙었다.


그래서 레슬리는 어렵게, 어렵게 로빈을 찾았다. '레이철 브릴런드'라는 가명으로 살고 있는 로빈을 찾아 고향으로 직접 데리고 가려고 했던 레슬리는 싸늘한 주검이 된 깡마른 로빈의 시신을 마주했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당황한 레슬리는 그대로 도망을 쳐 나왔다. 로빈은 레이철이라는 가명으로 무연고자 묘지에 묻히겠거니 했다.

5만 달러 유산을 어떻게 받아야 하나 고민하던 레슬리 앞에 예쁘게 생긴 메리가 나타났다. 배우 지망생이라고 하는 메리의 머리 색깔을 바꾸면 예뻤던 로빈과 제법 비슷할 것 같아서 레슬리는 그녀에게 제안을 한다. 고향으로 함께 가서 로빈인 척 서류에 사인을 해주고 로빈 몫의 유산을 가지라고 말이다.




아버지 곁에 남아 간호하고 보살핀 레슬리 입장에서 유산 상속 조건은 큰 불만이었을 것 같다. 동생 로빈은 10년 전에 떠나서 돈이 필요할 때에만 연락을 했고, 때로 술이나 마약에 취해서 전화 연락만 했으니 레슬리는 답답하고 화도 났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산 상속 문제로 동생을 찾아냈을 때 이미 죽어버린 시신을 보고 놀라 소리를 지르거나 통곡을 하는 등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걸로 봐서 어쩌면 그런 끝을 예감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유산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그러다 메리를 만나게 된 건 레슬리에게 기회였을 것이다. 10년 전에 가출해서 집에는 돌아오지 않았던 동생의 외모 같은 건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졌을 터였다. 어릴 때부터 레슬리보다 예뻤던 로빈이었기에 그만큼 예쁜 메리가 로빈과 똑같은 머리 색깔로 바꾼다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예쁜 건 화장이나 헤어스타일로 어떻게든 만들어낼 수 있으니 말이다. 더구나 아버지의 친구이자 유산 상속 변호사는 돌아가신 아버지만큼이나 지긋한 나이였기에 확실히 구분할 수 없다는 데에 가능성을 걸었다.

그렇게 시작된 사기는 처음엔 잘 먹혀 들어가는 듯했다. 레슬리는 집으로 가는 중에 부모와 관련된 정보를 메리에게 알려주었다. 배우 지망생이라 그런지 메리는 로빈인 척 능청스럽게 연기하며 레슬리의 남편 데이브, 아들 일라이를 만났다. 그리고 변호사 또한 마주했는데, 서류 처리 문제로 시간이 좀 미뤄져 가짜 자매의 기묘한 동거 생활이 시작되었다.

메리는 레슬리가 왜 그렇게 유산을 원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데이브에게는 일을 그만뒀다고 했지만, 레슬리는 낮에 회사에 갔고 일라이는 어린이집에 맡겼다. 메리는 레슬리를 미행하며 그녀가 왜 낯선 이에게 동생인 척해달라는 부탁까지 한 건지 밝혀내려고 했다. 그러는 와중에 과거 로빈과 묘한 관계가 있었던 낸시를 만나 전적인 사랑을 받는 느낌이 무언지 깨닫게 되었다. 낸시는 메리와의 관계를 로빈과의 재회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레슬리의 비밀을 파헤치는 와중에 가족의 과거, 정확히 말하면 자매의 어머니에 관한 사실이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이 부분은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긴 했다. 충분한 단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한차례 반전이 드러나며 커다란 충격을 줬고, 결말에서는 또 한 번 놀란 가슴을 움켜쥐게 만들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억울하고 안타까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제목이 이보다 더 내용과 잘 어울릴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경찰에 연락하지 않으면 로빈 보이트는 이대로 레이철 브릴런드로 남게 된다. 라스베이거스시는 가족 없는 헤로인 중독자 레이철 브릴런드를 알아서 묻어줄 것이다. 열여섯 살 로빈이 선택한 삶의 길 그대로. 고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땅속에 홀로 묻혀 있기를. - P15

순간, 진짜 로빈을 보는 듯했다. 실제보다 완벽한 로빈. 로빈이 또 다른 삶을 살았다면 아마도 저런 모습일 것이다.
어수선한 머릿속으로 흘러든 생각은 또 다른 상상으로 이어졌다. 해결책. 바로 이 난관을 뚫을 방법이었다. - P66.67

어떤 면에서 나는 이미 유령이었다. 죽은 여자의 집에서 죽은 여자의 얼굴로 돌아다니고 있으니까. 이따금 레슬리가 나를 보는 표정에서도 그것이 느껴졌다. 그럴 때면 레슬리에게 나는 메리가 아니라, 로빈이었다. - P15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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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 도쿄, 불타오르다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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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각, 배가 나온 중년의 남자가 경찰서에 붙잡혀 왔다. 주류 판매점에서 자판기를 발로 차며 행패를 부렸고, 그를 말리려던 직원을 폭행한 혐의였다. 잡혀온 남자 스즈키 다고사쿠를 마주한 경찰 도도로키 이사오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주취자 사건이기에 적당히 조사를 하고 돌려보내려고 했다. 스즈키가 1시간 뒤인 10시에 아키하바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촉에 대해 운운하며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않던 스즈키였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도도로키는 10시가 됐을 때 대로변 건물 3층에서 폭발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듣게 된다. 이 사건이 일어난 이후 도도로키는 스즈키를 달리 보게 되지만, 그는 앞으로 3번 폭발이 더 일어날 거라고 예고한다.


도쿄돔에서 2차 폭발이 일어난 이후 경시청 소속의 기요미야 데루쓰구와 루이케가 스즈키를 맡게 됐다. 스즈키는 도도로키에게만 말하겠다고 했으나 이내 마음을 바꿔 기요미야를 상대했고 도도로키는 CCTV 등의 증거를 찾는 일을 맡게 됐다.

그러는 한편 스즈키가 주류 판매점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을 때 출동했던 순경 고다 사라는 동료 야부키 다이토, 차출되어 온 다른 경찰들과 함께 어딘가에 숨겨놨을 폭탄을 찾는 일을 하게 된다.




처음엔 안일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잡혀 온 스즈키는 차림새도 허름했고 말도 어수룩했는데, 경찰의 눈치를 보는 듯 헤헤거리며 웃어넘기려고 했던 걸 보면 말이다. 그래서 도도로키 역시 처음엔 그가 촉을 운운하는 예고를 흘려 들었을 터였다.

하지만 스즈키가 예고한 시간에 폭탄이 터지면서 잘못 생각했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스즈키의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는 수수께끼 같은 걸 내며 말을 빙빙 돌리고 있었다. 그러다 도쿄돔에서 폭탄이 터지고 사상자가 나오면서 경시청 수사관 기요미야가 사건을 맡게 됐다. 폭탄 테러는 어느 나라에서나 중대한 사건으로 여기고 있기에 더 전문적인 이들이 맡는 게 당연했고, 도도로키가 이전에 일어난 사건으로 동료들과의 관계가 영 껄끄러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기요미야가 후배 수사관인 루이케와 함께 스즈키를 수사하면서 마치 스무고개 같은 게임이 이어졌다. 말장난처럼 보이기만 했던 그 게임을 통해 엉뚱하지만 두뇌 회전이 빠른 루이케가 몇 번이고 답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폭탄이 터지지 않은 건 아니었다. 스즈키가 낸 스무 고개의 답이 너무나 광범위했기 때문에 현장을 돌아다니는 경찰이 미처 확인할 새가 없었고, 날이 밝은 뒤에는 일상생활을 하는 수많은 시민들로 인해 통제가 불가피한 경우도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현장으로 나간 도도로키가 조사를 하면서 성과가 있었고, 스즈키를 처음 체포했던 사라 역시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소설이 어느 정도 흐른 뒤에는 폭탄을 찾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스즈키의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이미 몇 년 전에 어떤 폭로로 인해 경찰직을 내려두고 자살을 한 하세베 유코의 이름이 언급되었다. 하세베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져 충격을 줬고, 도도로키가 그를 옹호하는 발언을 해서 조직 내에서 따돌림 아닌 따돌림을 당했다는 게 드러났다. 스즈키가 하세베와 어떤 관련이 있는 건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도무지 접점이라고 할 만한 게 없어 보였다. 그러다 조금씩 조금씩 관련된 단서가 드러났고, 이후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눈에 들어왔다.

스즈키와는 다르게 사람들은 자기 자신만 걱정하지 않았다. 번화가나 이용객이 많은 역에서 폭탄이 터져 생사의 위협을 받을 때 누군가는 자신의 안위만 걱정하기도 하겠지만, 어떤 이는 나서서 일면식도 없는 타인을 돕고 곁을 지키기도 했다. 대체로 그러했다. 기요미야와 루이케는 얼굴을 맞대고 있던 스즈키를 향한 증오가 솟구치기도 했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듯 말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타인을 자신과 같이 여기는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후반에 활약을 한 사라 역시 한때의 인연을 잊지 않으며 감싸기도 했다.

결국 스즈키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될 리가 없었다. 도도로키가 초반에 말했듯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는 연대의식이라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연대의식이 타인을 향한 관심과 선의로 이 사회가 만들어진 것이니 말이다.


오승호(고 가쓰히로) 작가의 책은 네 번째 읽는 건데, 이번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좋아서 무척 몰입해서 읽었다. 재미있었다.

"어디선가 무언가가 폭발해 누군가 죽고 누군가는 슬퍼할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저한테 10만 엔을 빌려줄 건 아니겠죠. 제가 죽어도 슬퍼하지 않을 것이고, 제가 죽는다고 해도 말리지 않을 겁니다. 분명." - P27

그 순간, 규칙의 선을 넘어 네놈의 손가락을 부러뜨린 순간 나는 분명 충만감을 느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충만감이었다. 마음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욕망. 억누르고 있던 야만적 충동.
이 자식은 내 동료가 아니라는 확신이 그것을 허락했다. - P419

이유 있는 살인이다. 복수, 청산. 상대는 희대의 살인마. 인간의 탈을 쓴 괴물.
무엇이 잘못됐나? 죽여서는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
현명한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곳은 법치 국가다. 재판에서 진실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 살아 있는 그를 분석해서 얻은 식견이 미래의 수사에 도움 될 것이다. 사회 문제를 밝힐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잠꼬대 같은 소리다. 그런 건 상관없다. 이 증오 앞에서, 내 증오 앞에서 당신들의 하찮은 이익 따위 알 바 아니다. - P545

자신이 했던 말을 다시 떠올린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이 사회를 함께 구성해 가는 동료라는 연대의식이 느껴지는 사람들은 엄연히 있다.
그 말을 들은 스즈키의 얼굴.
‘범죄자도 포함되나요?‘라고 묻는 목소리. - P10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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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을 걷는 남자 스토리콜렉터 110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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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다코타의 런던.

사냥꾼 할 파커가 자신의 암소를 죽인 늑대를 제거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 어둠이 내려앉은 숲을 수색하는 중이었다. 그런 그가 숲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부검을 마친 시신처럼 가슴이 Y자로 꿰매진 여성이었다. 놀란 할 파커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고, 런던 지역의 경찰인 조 켈리가 수사를 시작했다.

그 여성의 정체는 지역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는 종교 단체 '브라더스'의 교사 아이린 크레이머로 밝혀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여성이 낮에는 종교 단체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매춘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얼마 지나지 않아 FBI 소속인 에이머스 데커와 파트너 알렉스 재미슨이 런던으로 향하게 됐다. 어느 시기 이후 과거가 도무지 드러나지 않는 아이린 크레이머의 사건을 수사하라는 윗선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평범하게만 보이는 그녀에게 어떤 과거가 있었는지 궁금해했다.

그들이 노스다코타의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이 석유 시추 사업으로 외부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지역이라는 걸 알았고, 동시에 흉물스러운 공군 기지 옆에 브라더스의 공동체가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의아해한다.




일을 찾는 외지인들이 많이 유입되는 석유 도시에서 밤에는 매춘을 했다는 여성이 살해된 채 발견된 건 이상하게 여길 부분은 아니었다. 스릴러 장르의 영화나 책에서 보면 이런 특정 여성들에 대한 범죄율이 굉장히 높은 편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여성 크레이머에겐 특이점이 몇 가지 있었기에 눈길을 끌었다. 하나는 이미 죽어서 부검이 됐었다는 사실인데, 사냥꾼이 발견했을 때 그녀의 사체가 깨끗했다는 점이다. 암소를 죽였을 정도로 굶주린 늑대를 쫓는 사냥꾼이 있었으니 죽은 크레이머의 시신은 진작에 훼손되어야 마땅했다. 그건 사냥꾼이 크레이머를 발견하기 직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발견 장소에 옮겨두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의문스러운 점은 평범하게만 보이는 그녀의 죽음이 FBI를 이곳에 불러온 것이었다. 과거를 깊이 파헤칠 수 없다는 점으로 인해 데커와 재미슨이 그녀가 증인 보호 프로그램과 같은 시스템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수사를 시작한 데커와 재미슨은 현지 경찰인 켈리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노스다코타 런던에는 흉하다는 표현이 적합한 공군 기지가 있었는데, 그곳은 뭔가 의심스러운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는 종교 단체 브라더스의 공동체 구역이 붙어 있었다는 게 의문스럽기만 했다. 크레이머가 그 종교 단체에서 선생님으로 일했었기에 공군 기지와 무슨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 부분을 파헤쳤다.

그런가 하면 지역의 거물인 휴 도슨과 스튜어트 매클렐런을 알게 되기도 했다. 지역에서 벌어지는 사업은 대부분 두 사람의 것이었기에 그들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반면에 도슨의 딸 캐럴라인과 매클렐런의 아들 셰인은 함께 고등학교를 다녔었고 현재는 셰인이 캐럴라인을 좋아하고 있었다. 심지어 경찰 켈리 역시 고등학교 때 친했었고, 더욱 놀라운 건 이 지역에 일을 하러 온 데커의 매형 스탠 베이커가 캐럴라인과 데이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알고 보니 누나와 스탠은 현재 이혼 협의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데커는 마음이 좀 싱숭생숭해지지만, 그런 감정은 치워두고 스탠에게 여러 도움을 받기도 했다.

스릴러 소설 시리즈이니 만큼 살해된 사람은 아이린 크레이머만 있던 건 아니었다. 종교 공동체의 또 다른 젊은 여성이 앞서 언급한 사냥꾼의 창고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고, 공군 시설에서 일하던 병사가 실종되기도 했다. 데커와 재미슨에게는 정부의 또 다른 기관에서 파견된 윌 로비와 제시카 릴이 위험할 때마다 나타나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 지역에 있는 공군 시설과 관련된 사항들을 파헤치면서 추악한 비밀이 드러났고, 살인 사건과 관련된 범인은 소설 후반에 얼굴을 비췄다. 범인에 관한 건 당연히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돈과 연결되어 있을 거라 생각하긴 했는데 다른 부분은 그런 기미조차 못 느껴서 충격이긴 했다.

3년 만에 읽는 '데커 시리즈'의 6번째 책이다. 늘 그렇듯 이번에도 꽤 두꺼운 분량으로 여러 사건이 여기저기서 터졌고, 범인은 이번에도 당연히 알아맞히지 못했다. 비밀을 알고 나니 잘 숨긴 것 같으면서도 눈치챌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새로 등장해 도움을 준 캐릭터인 윌 로비와 제시카 릴의 콤비가 너무 멋졌다. 이들에 관한 이야기도 풀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주인공인 데커 역시 점점 좋은 쪽으로 바뀌는 게 눈에 들어와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 기대가 된다.

"크레이머는 우리에게 분명히 중요한 존재일 겁니다."
"어쩌면 살아 있을 때보다 죽어서 더 중요한 존재가 됐을 수도 있어. 하지만 적어도 나만큼은 크레이머가 당한 것 같은 죽음은 반드시 정의 실현과 처벌로 마무리돼야 한다고 믿네." - P232

"우리 모두가 망할 놈의 시한폭탄 위에 앉아 있다는 거야." - P169

"내 극복 방식은 그냥 진실을 찾아내는 겁니다, 알렉스. 그걸 할 수 있다면, 다른 건 어떻게든 견딜 수 있어요." -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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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신화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오카다 에미코 지음, 김진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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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라고 하면 그리스 로마 신화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할 것이다. 소설 외의 장르를 드물게 읽는 나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었을 정도니 신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러 신들에 대해 줄줄 외울 만큼 섭렵했을 것이다. 또한 그리스 로마 신화가 여러 문학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리스 로마 신화 외에 다른 신화에 대해 접한 기억이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는 단군 신화가 워낙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고,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게 신화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다른 신화에 대해 접해볼 기회가 없었는데, 페르시아 신화에 대해 소개하는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란에서 널리 알려진 신화를 읽으며 처음엔 신선함을 느꼈고, 왕족의 신화적 이야기나 형제들 사이의 질투, 남녀의 사랑 이야기는 시대와 국가를 넘어 통용되는 비슷한 부분이 있어 친숙하게 다가왔다.




왕위를 계승하며 이어져 내려온 페르시아 신화 중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꼽으라고 하면 700년 동안 이란을 다스렸다는 잠시드왕에 대한 부분이었다. 그는 사려 깊고 자애롭고 정의로운, 더할 나위 없이 왕의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 이였다. 잠시드왕의 치세 700년 동안 백성이 평화롭고 행복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자만하게 되면서 행운이 잠시드왕에게서 등을 돌렸다고 한다.

이 시기에 마르다스왕의 아들 자하크에게 악신 아리만이 다가와 그를 꾀어냈다. 악신의 꼬임에 넘어간 자하크는 부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아리만이 입을 맞춘 자하크의 어깨에 뱀 두 마리가 자라났다. 뱀왕이라 불리게 된 자하크가 이란으로 군대를 보내 잠시드왕을 죽이고서 이란의 모든 것을 차지했다.

신화라는 것이 그저 신비로운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는 걸 이 부분에서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여겨졌다. 백성들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선하고 너그럽게 세상을 다스리던 잠시드왕이 자신을 신격화하는 등의 자만을 하자 모든 걸 단번에 앗아갔다고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왕으로서, 한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로서의 덕목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자하크와 악신 아리만의 이야기는 분별없는 시선으로 인해 악을 악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이가 왕위에 올랐을 때 그가 다스리는 세상이 얼마나 피폐해지는지 보여줬다.

악신 아리만은 이후로도 몇 번이고 등장해 페르시아 신화의 공식 악당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빠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도 존재했다. 이란의 무장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빛나는 은발을 가졌다는 이유로 버려져 신령한 새 시무르그가 기른 잘 이자르는 뒤늦게 그를 찾아 용서를 구한 아버지의 아들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살게 되었다. 잘 이자르에 관한 소문이 이웃나라 카불에게까지 알려졌는데,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루다베 공주는 얼굴을 보지도 않고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잘 이자르 역시 카불을 방문했다가 루다베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들의 사랑이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 같았던 건 앞선 시대의 잠시드왕과 악신 아리만에게 지배된 자하크왕 때문이었다. 역사로 인해 현재의 왕이 그들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으려 했으나 아버지의 애원과 잘 이자르의 현명함 덕분에 그들은 부부가 될 수 있었다. 또한 위대한 영웅이었던 잘 이자르와 루다베의 아이 역시 영웅의 풍모를 가지고 태어나는 게 당연했기에 출생의 신비 또한 신화적으로 그려냈다.

나에게는 멀고 낯선 나라 이란, 페르시아의 신화에 대해 재미있게 들려준 이 책은 어느 나라나 옛날 옛적 이야기들은 비슷하다고 여겨져 높은 줄만 알았던 벽이 조금은 허물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훌륭한 왕과 꾀임에 빠져 부왕을 죽이고 왕이 된 자, 막내를 질투한 두 형의 끔찍한 행동이 불러일으킨 파멸 또한 있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재미있는 사랑 이야기까지 가득 채워져 있었다.

마치 이란의 할머니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풀어나간 책 덕분에 마지막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신화는 그 나라의 종교이고 철학이며 문학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 나라 사람들의 영혼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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