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객 명단
루시 폴리 지음, 백지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6월
평점 :
블로그로 시작했다가 잡지까지 론칭하게 된 줄스와 서바이벌 TV 프로그램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윌이 아일랜드의 한 섬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셀러브리티 커플의 만남이니 만큼 결혼식에 초대된 사람들만 이 섬에 들어올 수 있었다. 예비부부는 섬에 먼저 와서 준비를 하는 와중에 서로 얼굴을 마주하기만 하면 뜨겁게 불이 붙는다.
줄스의 신부 들러리이면서 이부동생인 올리비아는 여러 문제로 복잡하다. 그런 동생을 보는 줄스는 대체 뭐가 문제냐고 따지고 싶지만 좋은 날을 앞두고 있으니 꾹 참는다. 윌의 친구인 신랑 들러리 조노는 결혼식 때 입을 명품 양복을 집에 두고 왔다고 했다. 아일랜드섬에서 그의 집이 있는 시골까지 갔다 올 수 있는 시간이 안 되어 윌은 자신의 양복을 빌려주기로 한다. 사이즈가 한참 작긴 하지만 말이다.
섬의 주인이자 웨딩플래너인 이파는 남편이자 요리사인 프레디와 함께 결혼식 준비에 한창이다. 그리고 곧이어 신랑 윌의 기숙학교 패거리들, 어렸을 때부터 줄스와 친한 친구라서 결혼식 사회를 보기로 한 찰리는 아내 해나와 섬에 발을 디뎠다.
결혼식 전날부터 묘하게 날이 서 있던 분위기는 결혼식 당일 폭풍이 몰아치는 날씨까지 가세하면서 한층 날카로워졌다. 더구나 야외 결혼식이라 변수가 자꾸만 생겨 상황은 더 안 좋아졌다. 그러다 마침내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고야 만다.
평생 단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아마도 그 한 번이 마지막이길 바라는 결혼식이 완벽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 그랬기에 신부인 줄스가 예민해져 있는 게 이해가 됐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그녀는 잡지사를 소유하고 있었고, 남편으로 맞이할 윌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활약하고 있는 어마어마하게 잘생긴 남자였으니 일단은 그들 예비부부의 외형은 완벽했다. 줄스가 원하는 결혼식 역시 그들과 어울리도록 특별해야만 했다. 그래서 외딴섬에서의 야외 결혼식을 택한 것이었다.
섬의 주인이면서 웨딩 플래너인 이파는 셀러브리티인 줄스와 윌의 결혼식을 멋지게 치러낸다면 앞으로 더 많은 결혼식을 맡을 수 있을 거라 고대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분주하게 움직이며 상황을 확인하는 한편으로 예민한 줄스의 마음을 때때로 가라앉히는 역할도 한다.
올리비아는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어떤 사연이 있다는 걸 직감했다. 그녀가 줄스의 이부동생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헤어진 남자친구와의 관계로 인해 실연의 슬픔이 오래가는 것처럼 보였다. 조노는 윌과 같은 학교에 다닌 친구 사이였지만, 둘 사이에는 권력의 무게가 한쪽으로 명백히 쏠려 있다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건 윌이 괜찮은 집안 자식인데다가 지금도 잘나가는 중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 사이의 어떤 비밀로 인해 이 관계가 기울어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해나는 남편 찰리를 따라 이곳에 오긴 했는데, 사실 그녀는 줄스와 친하지 않았다. 찰리와 줄스가 오랜 친구라고는 해도 해나는 그들 사이에 친구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걸 내내 느꼈다.
이렇게 소설은 신부 줄스, 웨딩플래너 이파, 신부 들러리 올리비아, 신랑 들러리 조노, 남편을 따라 하객으로 참석한 해나까지 여러 사람의 시점을 결혼식 전날부터 보여주는 한편으로 때때로 현재 시점인 결혼식 피로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드러냈다. 그래서 시작부터 이 결혼식은 비극이라는 걸 예감할 수 있었다.
파국이 어떻게 시작될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처음엔 그저 저마다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줄스는 신부라서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올리비아는 헤어진 남자친구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밝혀지며 큰 충격을 주었다. 해나는 남편 찰리가 줄스와 단순한 친구가 아닐 거라고 내내 의심해왔기에 섬에 도착해서부터 그녀와 붙어서 결혼식 사회 진행에 관한 준비를 하는 걸 보는 게 싫어서 차라리 자리를 피했다. 조노는 기숙학교 출신인 다른 친구들과 달리 좋은 직업도 없고, 잘나가는 게 아니라서 조금은 껄끄러워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술이나 마약을 찾았던 건지도 몰랐다.
단순히 결혼식을 걱정하는 건 줄스와 이파뿐이었다고 보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는 걸 드러냈다. 올리비아가 해나에게 과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해나는 세상을 떠난 언니 앨리스를 떠올리게 됐다. 여기까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조노와 친구들이 기숙학교 시절에 학생들이 전통처럼 했던 '생존' 게임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그 게임에서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는 걸 예감할 수 있었고 그 실체가 후반에 드러났다.
여러 사람들이 엮이면서 저마다의 문제가 한 사람의 문제로 이어져 역시나 재수 없는 인간은 싹수부터 노랬다는 걸 보여줬다. 그저 싹수가 노란 게 아니라 되먹지 못한 인간이었기에 그렇게 되어 마땅했다. 저지르고 다닌 죄가 워낙 많아서 누구라도 그 인간에게 칼을 들이댈 수 있었다. 결말에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한편으로 또 다른 죗값을 치르는 걸 보니 역시 사람은 죄를 짓고 살면 안 된다는 걸 느끼게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줄스의 결혼식이 완전히 망가져서 안타까운 마음이 살짝 들었지만, 이혼보다는 파혼이 낫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줄스가 이후에 한 행동은 조금은 의외로 여겨졌고 둘의 관계가 생각보다 괜찮아서 다행이었다.
여러 사람의 시점을 오가며 저마다의 비밀로 향해가다 현재에 빵 터트려 권선징악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구조가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나는 이 예배당 같은 곳에서 결혼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래, 이곳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에는 뭔가 비극적인, 살짝 섬뜩하기까지 한 구석이 확실히 있다. - P80
결혼식을 기획한다는 건 이런 거다. 하객이 장단을 맞춰주고 특정한 경계선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걸 잊지만 않으면 나는 완벽한 하루를 꾸릴 수 있다. 그러나 하객이 협조해주지 않으면 그 뒤탈은 이십사 시간보다 훨씬 오래갈 수도 있다. 그런 유의 후유증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다. - P3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