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터 라이어
태넌 존스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시간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 레슬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레슬리가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 세상을 떠났고, 동생 로빈은 10년 전에 가출한 이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 곁에 남은 유일한 가족이었던 레슬리가 그를 간호하고 보살피며 마지막까지 지켰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는 유산 처리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변호사의 말을 들으니 아버지는 레슬리와 로빈이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왔을 때 절반으로 나눈 유산을 딸들이 갖게 될 거라는 조건이 붙었다.


그래서 레슬리는 어렵게, 어렵게 로빈을 찾았다. '레이철 브릴런드'라는 가명으로 살고 있는 로빈을 찾아 고향으로 직접 데리고 가려고 했던 레슬리는 싸늘한 주검이 된 깡마른 로빈의 시신을 마주했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당황한 레슬리는 그대로 도망을 쳐 나왔다. 로빈은 레이철이라는 가명으로 무연고자 묘지에 묻히겠거니 했다.

5만 달러 유산을 어떻게 받아야 하나 고민하던 레슬리 앞에 예쁘게 생긴 메리가 나타났다. 배우 지망생이라고 하는 메리의 머리 색깔을 바꾸면 예뻤던 로빈과 제법 비슷할 것 같아서 레슬리는 그녀에게 제안을 한다. 고향으로 함께 가서 로빈인 척 서류에 사인을 해주고 로빈 몫의 유산을 가지라고 말이다.




아버지 곁에 남아 간호하고 보살핀 레슬리 입장에서 유산 상속 조건은 큰 불만이었을 것 같다. 동생 로빈은 10년 전에 떠나서 돈이 필요할 때에만 연락을 했고, 때로 술이나 마약에 취해서 전화 연락만 했으니 레슬리는 답답하고 화도 났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산 상속 문제로 동생을 찾아냈을 때 이미 죽어버린 시신을 보고 놀라 소리를 지르거나 통곡을 하는 등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걸로 봐서 어쩌면 그런 끝을 예감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유산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그러다 메리를 만나게 된 건 레슬리에게 기회였을 것이다. 10년 전에 가출해서 집에는 돌아오지 않았던 동생의 외모 같은 건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졌을 터였다. 어릴 때부터 레슬리보다 예뻤던 로빈이었기에 그만큼 예쁜 메리가 로빈과 똑같은 머리 색깔로 바꾼다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예쁜 건 화장이나 헤어스타일로 어떻게든 만들어낼 수 있으니 말이다. 더구나 아버지의 친구이자 유산 상속 변호사는 돌아가신 아버지만큼이나 지긋한 나이였기에 확실히 구분할 수 없다는 데에 가능성을 걸었다.

그렇게 시작된 사기는 처음엔 잘 먹혀 들어가는 듯했다. 레슬리는 집으로 가는 중에 부모와 관련된 정보를 메리에게 알려주었다. 배우 지망생이라 그런지 메리는 로빈인 척 능청스럽게 연기하며 레슬리의 남편 데이브, 아들 일라이를 만났다. 그리고 변호사 또한 마주했는데, 서류 처리 문제로 시간이 좀 미뤄져 가짜 자매의 기묘한 동거 생활이 시작되었다.

메리는 레슬리가 왜 그렇게 유산을 원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데이브에게는 일을 그만뒀다고 했지만, 레슬리는 낮에 회사에 갔고 일라이는 어린이집에 맡겼다. 메리는 레슬리를 미행하며 그녀가 왜 낯선 이에게 동생인 척해달라는 부탁까지 한 건지 밝혀내려고 했다. 그러는 와중에 과거 로빈과 묘한 관계가 있었던 낸시를 만나 전적인 사랑을 받는 느낌이 무언지 깨닫게 되었다. 낸시는 메리와의 관계를 로빈과의 재회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레슬리의 비밀을 파헤치는 와중에 가족의 과거, 정확히 말하면 자매의 어머니에 관한 사실이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이 부분은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긴 했다. 충분한 단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한차례 반전이 드러나며 커다란 충격을 줬고, 결말에서는 또 한 번 놀란 가슴을 움켜쥐게 만들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억울하고 안타까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제목이 이보다 더 내용과 잘 어울릴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경찰에 연락하지 않으면 로빈 보이트는 이대로 레이철 브릴런드로 남게 된다. 라스베이거스시는 가족 없는 헤로인 중독자 레이철 브릴런드를 알아서 묻어줄 것이다. 열여섯 살 로빈이 선택한 삶의 길 그대로. 고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땅속에 홀로 묻혀 있기를. - P15

순간, 진짜 로빈을 보는 듯했다. 실제보다 완벽한 로빈. 로빈이 또 다른 삶을 살았다면 아마도 저런 모습일 것이다.
어수선한 머릿속으로 흘러든 생각은 또 다른 상상으로 이어졌다. 해결책. 바로 이 난관을 뚫을 방법이었다. - P66.67

어떤 면에서 나는 이미 유령이었다. 죽은 여자의 집에서 죽은 여자의 얼굴로 돌아다니고 있으니까. 이따금 레슬리가 나를 보는 표정에서도 그것이 느껴졌다. 그럴 때면 레슬리에게 나는 메리가 아니라, 로빈이었다. - P155.1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