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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죽인 여자들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엄지영 옮김 / 푸른숲 / 2023년 12월
평점 :
30년 전 사르다 가족의 막내딸 17살 아나가 끔찍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아나의 몸은 토막이 나 있었고 그 토막 난 신체 곳곳에 불에 탄 흔적이 있었다. 누가 아나의 몸에 이런 짓을 했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의문스럽게도 너무나 빠르게 종결되었다.
사르다 가족 모두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는데 아나의 사건으로 둘째 리아가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그것도 아나의 장례식이 열리는 성당에서 말이다. 엄마는 기함하며 난리를 쳤고 첫째 카르멘은 언제나 동생들에게 그랬듯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 아버지 알프레도만이 리아를 이해하며 그녀를 다독였다.
아나와 유독 친밀하고 다정한 사이였던 리아는 더는 가족들과 함께 살 수가 없어서 돈을 모아 아르헨티나를 떠나 스페인으로 떠났다. 순례자의 길이 끝나는 지역에 서점을 연 그녀는 오로지 아버지와만 편지를 주고받으며 아나의 사건 수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 그녀에게 갑자기 언니 카르멘과 언니와 결혼한 훌리안이 찾아온다. 아버지가 리아의 주소를 절대 알려주지 않았을 게 당연하기 때문에 어떻게 자신을 찾아온 건지 의문스러웠다. 카르멘이 찾아온 이유는 자신의 아들 마테오가 사라졌다고 하며, 마지막으로 리아의 서점에서 카드가 사용됐다는 걸 알렸다. 그러면서 마테오의 사진을 보여주며 아들이 다시 이곳을 찾으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언니와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던 리아는 알겠다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 지었는데, 떠나려던 카르멘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면서 유골재를 건네주었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고 편지로만 대화를 나누었다는 죄책감과 이제 아나의 죽음을 밝힐 수 있는 건 자신뿐이라는 책임감이 리아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소설의 중심이 되는 사건은 30년 전에 일어난 아나의 죽음이었다. 고작 17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녀가 몸이 토막 나고 불에 그을린 채 발견됐다는 사실은 가족은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작은 마을에서 이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적이 없었기에 사람들은 더욱 오랫동안 이 사건을 기억하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큰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빠르게 수사가 종결되었다는 게 의심스러웠다.
아나의 죽음을 중심에 두고 여러 사람의 시점으로 사건에 대해, 그리고 비밀과 진실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첫 번째로 등장한 사람은 아나의 죽음 이후 신이 없다고 믿게 된 둘째 언니 리아였고, 그다음은 카르멘과 훌리안의 아들 마테오였다. 마테오는 독실한 신자인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무신론자인 할아버지 알프레도와 가깝게 지내면서 신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되었다.
아나와 가장 친한 친구였던 마르셀라는 친했던 친구이니만큼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었다. 심지어 가족들, 언니들조차 모르는 아나의 비밀을 알고 있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건 아나가 말하지 않았다. 또한 아나는 마르셀라의 무릎에서 숨을 거뒀는데, 이후 사람들을 부르러 가려던 그녀의 머리에 성당의 대천사상이 떨어지는 바람에 선행성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말았다. 엘메르는 아나를 첫 사건으로 맡았던 법의학자였었다.
그리고 후반으로 가면서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훌리안과 카르멘의 이야기가 펼쳐져 충격을 줬다. 에필로그에서는 알프레도가 딸 리아와 손자 마테오에게 남기는 편지가 등장했다.
초반에 리아의 시점에서 등장한 아나의 사건은 그 자체만으로 너무나 끔찍하고 안타까운 것이었다. 독실한 가족들 사이에서 신은 없다고 선언한 리아가 이해가 될 정도였다. 아버지 역시 종교적 믿음에 자유로운 편이었는데, 나중엔 리아처럼 무신론자로서 그녀의 견해를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 되어 정말 든든했다. 여기에 알프레도에게 영향을 받은 마테오는 스스로 종교적인 믿음에 대해 선택하는 현명한 모습을 보여 리아와 잘 맞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프레도 역시 그런 걸 느꼈기에 두 사람이 함께 보라며 편지를 남긴 것일 터였다. 진실을 모두 다 알고 난 후에 알프레도가 두 사람에게 편지를 남긴 심정이 이해가 됐다. 두 사람이 함께라면 진실을 알게 된 후에도 절망으로 쓰러지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일 것이다.
진실을 향해 한 발자국씩 가까워지면서 예감되던 게 있었는데 역시나 어긋나지 않았다. 아나와 관련된 사건 두 가지 중 한 가지는 명백하게 그를 의심했기에 놀랍지 않았지만, 아나를 그렇게 만든 자가 누구였는지 밝혀졌을 때 혐오스러움에 몸서리가 처졌다. 신을 믿는다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하고도 천벌을 받지 않은 건가 싶어 불쾌함이 하늘을 찔렀다. 독실한 신자의 모순이 노골적이라 혐오스럽고 역겹기까지 했다. 자기만의 정의에 빠져 있는 것 또한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들이 어떻게 되는지는 결말에 가능성으로 열어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 말마따나 신이 있다면 당연히 천벌을 받을 거라고, 제발 그들에게 지옥과도 같은 벌을 내려주기를 빌었다.
범죄 스릴러를 기본으로 하고 신에 대해서 말하는 책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노골적으로 말하든, 아니면 돌려 말하든 사람들은 무신론자를 좌절한 군상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급기야 종교적 믿음을 갖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악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예단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신도 믿지 않는 사람은 결코 선량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논리다. - P18.19
내 믿음이 두려움과 내 주변 사람들이 떠받드는 하느님─혹은 다른 신─이라는 존재를 믿지 않으면 나쁘고 끔찍한 일, 즉 세상의 종말이 올 수도 있다는 가정에 바탕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이처럼 하느님에 대한 경건한 두려움을 갖도록 교육받고 자랐다. 하지만 어떤 자들이 내 동생을 죽인 것도 모자라 시신을 불태워 없애버리려고 하다가 결국 토막까지 내고 말았다. 내가 믿음을 버린대도 얼마나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 P21
여성들은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싸워오지 않았던가? 임신중지는 자기들이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내가 무슨 책임을 져야 하는 거지? 그들은 스스로 결정하기를 원한다. 일단 결정을 내린 이상, 여자들은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아나는 결정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느님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신 것뿐이다. - P324.325
어쩌면 믿음이라는 건 순진한 속임수일지도 몰라. 적어도 여러 가지 소박한 속임수에 의해 지탱되는 삶에서 말이다. - P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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