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날 정해연의 날 3부작
정해연 지음 / 시공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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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아내 현아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종현은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현아를 찾아 헤매다가 경찰에 신고까지 하지만, 경찰은 단순 가출이라고 했다. 종현의 전화는 받지 않던 현아가 경찰의 연락을 받고는 곧 이혼을 할 거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종현은 현아가 이혼 얘기를 꺼냈다는 사실도 믿을 수가 없다. 현아가 떠나기 직전까지 두 사람의 사이는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다. 그게 벌써 5개월 전이었다.


그리고 현재, 종현의 집에 웬 거구의 남자 고구남이 쳐들어와서는 김실자라는 여자에게 2억 원을 빌려줬다고 하며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을 했다. 종현이 그런 사람 모른다고 하자 나가려던 구남이 두 사람의 결혼사진을 보며 현아가 김실자라고 말했다. 현아가 왜 김실자라는 이름으로 돈을 빌렸는지 도통 이해가 안 되던 종현은 일단 그녀가 가출했다는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구남은 돈을 받아야겠다며 그때부터 종현의 집에 눌러앉았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뉴스에서 웬 임산부가 6살 박아영 어린이를 납치했다는 사건이 보도되었다. CCTV에 찍힌 흐릿한 정지 사진만 봤는데도 종현은 납치범이 현아라는 걸 알고 너무 당황스럽기만 하다.




가출한 현아를 향한 종현의 사랑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었나 보다. 현아를 찾느라 회사도 때려치우고 엄마를 포함해 지인들이 이제 그만 잊고 새 출발을 하라고 해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던 걸 보면 말이다. 소설 시작부터 등장한 중요한 문제는 결혼하고 1년 뒤에 발기 부전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아는 그런 종현을 다독이며 응원해 줬을 만큼 마음씨도 넓은 아내였었다. 종현은 혹여 남성성의 문제로 인해 현아가 가출했고 이혼하려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에 병원까지 다녔고 현아가 떠나기 전에 챙겨준 비타민도 꼬박꼬박 복용했다. 크게 나아진 건 없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종현 앞에 구남이 나타나면서 자신이 알던 현아가 진짜였는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구남이 현아를 김실자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것에서부터, 김실자가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고 돈을 만들어오라고 했기에 구남을 찾아왔다고 하는데, 종현은 누구를 때리기는커녕 맞을 것만 같은 캐릭터였다. 그뿐만 아니라 뭔가를 알고 있는 듯 구남은 현아가 챙겨준 비타민을 대뜸 먹지 말라고 말했었다.

종현이 이상함을 느끼고 구남을 추궁하자 이 집이 종현과 현아가 마련한 자가가 아니라 월세라는 게 확인됐다. 또한 가계 경제는 모두 현아가 맡고 있었는데, 찾아보니 저축한 게 없었고 통장 계좌에는 마이너스 5천만 원이라는 거액이 찍혀 있었다. 거기다 종현은 침대 밑 깊숙한 곳에서 두 줄짜리 임신 테스트기를 발견하기도 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종현의 멘탈이 박살 나다 못해 가루가 되어 흩어졌을 것만 같은데, 아직 큰 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바로 현아가 임신을 한 몸으로 여자아이를 납치했다는 뉴스였다.

너무나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내가 자신이 알던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게 밝혀질 때마다 종현의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구남조차 말리지 못할 정도로 폭주하며 날뛰는 종현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됐다.

이후 소설은 종현과 구남이 현아를 경찰보다 먼저 찾자는 합심으로 흘러가면서 묘한 관계로 시작한 이 사건이 나름의 스릴과 소리 내어 웃을 정도로 코믹한 전개로 이어졌다. 평범하기만 한 종현이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 다잡는 마음이 있었고, 조금은 혹은 많이 나쁜 놈이었지만 그래도 후회하고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는 구남이 있었다.

그리고 현아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며 일말의 동정도 느끼지 않게 만들었다. 이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악당에게 안타까운 서사 따위 부여하지 않는 작가의 선택이 좋았다.


정해연 작가의 소설 <선택의 날>은 '날 시리즈'라고 불리는 세 작품 중 하나다. 시리즈로 묶여있긴 하지만 서로 연관성은 전혀 없다. 재미있게 읽은 <유괴의 날>만큼이나 통통 튀는 재미와 코믹함이 즐거움을 주었다. 이번에도 재미있었던 책이다.

현아는 어느 날 원래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떠나 버렸다. 이혼하겠다며 경찰과 통화했다는 현아는 그가 알고 있던 그녀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모르는 다른 모습도 있지 않을까? - P31.32

종현은 차현아가 미웠다. 그러나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된 즉시 그는 이미 아버지가 되었다. 조금 전까지 한 여자를 찾는 미션으로 불타올랐던 종현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지금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 아이를 지키고, 만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유괴된 아이와 그들의 부모가 떠올랐다. 아이의 생사는 아직 확인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존재가 이렇게 마음을 힘들게 하는데, 유괴된 아이의 부모 마음은 어떨까를 생각하면 괴로웠다. - P105

구남은 이제 두 가지에 대해 확실히 깨달았다. 하나는 모든 어머니에게 모정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선천적으로 짐승보다 못한 인간도 있다는 사실. - P265.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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