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귀신들의 땅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3년 12월
평점 :
독일에서 동성 애인인 T를 죽이고 교도소에서 복역을 마친 천톈홍이 고향 용징으로 돌아왔다. 소설가로 이름을 알리고 독일까지 간 톈홍이 돌아올 곳은 누나들이 있는 고향뿐이었다.
과묵한 아버지, 말을 옮기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어머니 사이에서 누나들 다섯이 태어났고, 이후 형과 막내 톈홍이 태어났다. 이제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가족을 떠났으며 형은 톈홍처럼 감옥에 갔다. 누나들은 각자 결혼을 해서 용징에 살기도 했고, 타이베이에서 사는 누나도 있었다. 그리고 누나들 중 한 명은 귀신이 되어 가족의 곁을 맴돌았다.
톈홍은 개천에서 용 난 스타일이었다. 지도에서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마을 출신에서 나고 자라 그가 쓴 책이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이 신문에 났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거기다 독일로 유학까지 떠나게 되었으니 그보다 더 큰 출세는 없었다.
그럼에도 톈홍은 엄마에게 외면을 당했다. 어렸을 적 근처에 사는 과수원 집 둘째 아들 징쯔총과 함께 있었던 사건으로 애지중지해야 마땅했을 막내아들을 눈엣가시로 여겼다. 성인이 된 후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러 왔을 때에는 쫓겨나고 말았다. 그로 인해 톈홍은 독일에서 복역을 마치고 오갈 데 없는 상황에서도 집으로 돌아오는 걸 주저했을 터였다. 다행히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집을 나가 이제는 큰누나가 그 집을 지키고 있었다.
가만 보면 톈홍만 말 못 할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아니었다. 큰누나 수메이는 첫째 딸이라는 이유로 학교를 다니다 그만두고 공장에 취업해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곳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했지만, 그가 도박에 빠져 돈을 몽땅 날리고 말았다. 둘째 누나 수리는 공무원으로 평탄하게 지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얼마 전에 사건이 터져서 인터넷을 달구는 주인공이 됐다. 셋째 누나 수칭은 공부도 잘하고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현재는 앵커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며 살고 있었다. 넷째 누나 쑤제는 다섯째 만메이의 혼처로 예정되어 있던 왕 씨 집안의 첫째 아들과 결혼해 용징에서 '백악관'이라 부르는 대저택에 살고 있는데, 정신적인 문제가 생겨 방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웠던 건 문제가 있던 사람들이 비단 살아있는 사람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소설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귀신, 죽은 자들 역시 저마다의 이유로 용징에 머물고 있었다. 톈홍은 물론이고 누나들도 용징에 다시 돌아오기 싫어했는데 돌아왔듯, 귀신들 역시 비슷한 이유로 그곳에 머물고 있는 거라 사료됐다.
소설은 동성 연인을 살해한 톈홍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후반에 완전히 밝혀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할애했다. 그 사이에 가족 간의 관계라든지, 남아선호사상 중심의 가정에서 딸로 살아가는 고충도 말하고 있었고, 여성의 도구화와 가정 폭력 등 소외된 이들에 대해 두루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귀신들도 거기에 목소리를 보탰다는 게 특이점이었다.
후반에서야 톈홍의 이유가 밝혀지긴 했지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꽤나 지루하고 시점이 오락가락하여 읽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종의 의식의 흐름 기법이었는데, 이런 방식이 익숙하지 않은 터라 조금은 아쉬웠다.
방금 큰언니가 전화를 걸어 네가 돌아왔다고 말해 줬어. 언니가 전화로 네가 돌아왔다고 말했어. 언니가 그랬어. 톈홍이 돌아왔으니까, 쑤제 너도 빨리 나와. 톈홍이 독일에서 돌아왔다고. 이 바보야. 뭐 하러 돌아왔어? 이 귀신들의 땅에 와서 뭘 하겠다는 거야? - P174
어른이 된 그는 귀신을 믿지 않게 되었고 두려워하지도 않게 되었다. 귀신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가장 잔인한 것은 인간이었다.19
오늘 그는 돌아왔다. 그에게는 해답이 없었다. 사람은 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일까? 어디가 집인가? 그가 돌아온 것은 속죄를 위해서도 아니고 참회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해답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귀향은 의무였다. 귀향은 그를 질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돌아와야 했다. - P3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