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쌍곡선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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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도쿄의 작은 가게들에 강도가 들었다. 범인은 같은 옷차림에 장갑을 꼈고 총으로 가게 주인을 위협하며 당일의 매상을 훔쳐 갔다. 특이하게 범인은 얼굴을 마스크 따위로 가리는 수고를 하지 않고 온전히 드러냈다. 며칠 연속으로 똑같은 옷차림새에 세상을 탓하는 말을 남기고 떠난 것도 같았기에 경찰은 빠르게 몽타주를 작성할 수 있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범인이 잡혔다. 며칠 연속으로 매상을 빼앗긴 여러 가게의 주인들이 모두 입을 모아 그가 범인이라 주장했지만, 정작 범인은 자신이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을 했다. 놀랍게도 바로 그날 다른 형사에 의해 범인이 또 잡혀왔다. 두 사람이 구분을 할 수조차 없는 일란성 쌍둥이 고시바 가쓰오, 도시오 형제였던 것이다.


한편, 한적한 시골 마을의 호텔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든다. 주인인 하야카와가 호텔을 홍보하고자 도쿄에 사는 젊은 사람들을 초대한 것이었다. 결혼을 앞둔 교코, 모리구치 커플, 마사지 전문점 직원 다지 아야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야베, 범죄학을 연구하는 대학생 이가라시, 그리고 택시 운전기사 다지마였다.

이들이 호텔에 도착에 하룻밤을 보내고 난 뒤, 야베가 방 안에서 목을 매 죽어 있는 걸 발견한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창문으로도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런데 방 안에 첫 번째 복수가 이루어졌다고 쓰인 카드가 발견되면서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된다.




소설은 중요한 사실 하나를 공개하고 시작했다. 이 소설에는 도무지 구분이 가지 않는 쌍둥이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니시무라 교타로 작가는 영국의 무슨 '탐정소설의 십계'가 있다고 하며 쌍둥이가 등장하면 독자에게 꼭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덕분에 자연스레 쌍둥이가 범인일 거라고 예상할 수밖에 없었다.

소설은 두 가지 상황을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었다.

먼저 도쿄에서 일어나고 있는 연속 강도 사건이었다. 매번 똑같은 외투에 장갑을 끼고 얼굴을 내놓고서 돈을 빼앗아 달아나는 범인의 몽타주는 쉽게 만들 수 있었지만, 문제는 이 범인이 쌍둥이였다는 데에 있었다. 보통 일란성 쌍둥이라고 해도 조금은 다른 점이 있기 마련인데, 고시바 형제는 너무 닮아서 형사들은 물론이고 가게의 주인들까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범인이 분명하지만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하면 도리어 경찰이 고소를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 고시바 형제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형사들이 미행을 해도 고시바 형제는 그들을 비웃으며 범죄를 저지르고 다녔다.

한편 도쿄에 사는 사람들이 초대를 받아 눈이 많이 오는 한적한 지역 호텔로 향했다. 그들은 20대 중반의 엇비슷한 나이였지만, 하는 일은 물론이고 접점이라고 할 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런 부분은 차치하고 모인 사람들은 스키를 타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이튿날 초대받은 남자 중 한 명이 자살로 위장해 살해되면서 호텔 내부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 첫 번째 사건 이후에 두 번째, 세 번째 사건이 이어지면서 중요하게 등장한 건 사건 현장마다 마치 출입 금지 표시와 비슷하게 생긴 그림이 그려진 카드가 있었다는 것이고, 초대받은 이들이 호텔에 처음 왔을 때부터 볼링장에 9개뿐이던 볼링핀이 하나씩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남은 이들은 누가 사람들을 죽였을지 예상해 보는 한편으로 자신의 차례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뿐이었다.


도쿄에서의 사건과 호텔의 사건이 처음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줄 알았다. 중반을 넘어가면서도 밝혀진 게 거의 없었기에 대체 이걸 어떻게 풀어가려나 싶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인지했지만 방심한 무언가기 반전으로 드러났다. 뭔가 알면서 속은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렇게 범인이 밝혀진 뒤에 왜 이런 짓을 저지른 건지도 드러났는데, 이 부분에서는 좀 의아함을 느끼게 했다. 타깃이 된 사람들이 잘한 건 아니지만, 그들 탓을 하며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건 너무 과했다.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기에 후반부가 아쉬웠다.

그래도 무난하게 읽기에는 괜찮았다. 소설이 거의 50년 전에 쓰인 거라 생각하면 요즘 시대에 견주어도 훌륭하다고 볼 수 있다.

"화를 낼 거면 이 세상에 내도록 해. 내가 이런 짓을 하는 건 다 세상이 나빠서니까." - P22

"저는 이번에 도쿄에 거주하는 여섯 분을 초청했는데 단순히 제비뽑기로 고른 건 아닙니다. 여섯 분은 어떤 공통된 이유로 선정됐죠.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 이유를 알아맞혀 주셨으면 합니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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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링
T. J. 뉴먼 지음, 나현진 옮김 / 어느날갑자기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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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 기장인 빌은 비행이 예정되어 있는 아침부터 캐리와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였다. 그날은 아들 스콧의 리틀 야구 시즌 첫 경기라 꼭 참석하기로 약속했었는데, 빌의 상사가 갑자기 비행을 바꿔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기장들끼리 종종 비행 스케줄을 바꾸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상사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어서 빌은 어쩔 수 없이 아들의 경기를 보지 못할 상황이 됐고 캐리는 그것 때문에 화가 난 것이었다. 빌은 집을 나서기 전에 인터넷 수리 기사가 온 것을 봤고, 여전히 화가 난 캐리에게 인사를 한 후에 공항으로 향했다.

빌은 비행 준비를 하고, 부기장 벤과도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가족 같은 동료로 지낸 조에게 캐리가 화가 난 일에 대해 상담을 한 후에 조종석에 들어갔다. 빌은 비행 직전까지 캐리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아내에게선 문자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도 빌은 맡은 임무에 충실했다. 핸드폰을 꺼두고 비행을 시작해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으로 향해 가기 시작했다.


비행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트북에 메일이 왔다. 캐리와 아들 스콧이 자살 폭탄 조끼를 입고 있는 사진이었다. 곧이어 페이스 타임이 걸려왔는데, 아침에 집에 인터넷 수리 기사라고 찾아온 샘이 똑같은 자살 폭탄 조끼를 입고 빌에게 인사를 건네며 선택을 강요했다. 샘이 지시하는 곳에 비행기를 추락시키거나 가족들을 죽이거나 둘 중 하나를 말이다.




일 때문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시간이 적은 사람에게는 그 짧은 시간이 너무나 애틋하고 소중할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빌처럼 비행기를 조종하며 땅덩이가 너무나도 넓은 미국의 국내로, 해외로 나가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에겐 입학이나 졸업, 운동 경기 등 가족의 중요한 행사에 꼭 참석하고 싶은 마음일 터였다.

빌 역시 그러했다. 아들 스콧의 리틀 야구 시즌의 첫 경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비행기 조종사라는 점 외에는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직장 내에서는 상명하복이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었기에 비행 스케줄을 바꿔달라는 상사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들의 경기에 참석할 수 없다는 점으로 인해 아내 캐리가 빌의 비행 당일 아침에 많이 화가 난 건 당연해 보였다. 그래서 이륙 직전까지도 캐리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 걸 보며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났겠구나 예상했다.

하지만 빌의 예상은 다른 쪽으로 뒤집혔다. 그의 가족이 인질로 잡힌 것이었다. 인질범 샘은 144명의 평범한 승객이 탑승한 비행기 추락과 가족을 살리는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빌에게 강요했다.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선택해야 하고 빌이 선택하지 않을 경우 플랜 B가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비행기에 탑승한 사람 중 샘의 동료가 있다면서 말이다.

샘은 정의로우면서 가족을 끔찍하게 여기는 사람이었기에 둘 다 선택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했다.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모르는 사람보다 당연히 가족을 우선시했겠지만, 샘은 직업 소명 의식 또한 투철한 사람이라 두 가지 모두 선택하지 않고 모든 이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겠다며 굳은 결심을 드러냈다. 샘이 다른 사람에게 절대 알리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를 구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알려야만 했기에 그는 가장 신뢰하는 오랜 동료이자 친구인 사무장 조에게만 털어놓았다.

이 부분에서 모두를 살리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담긴 캐릭터가 등장했으니 FBI 요원인 조의 조카 테오였다. 빌의 말을 들은 조가 테오에게 가족들이 무사한지 확인해달라고 부탁한 덕분에 출동한 그가 집으로 향했으나 집이 폭발하고 말았다. 이 사실을 비행기 안의 빌에게 알리면 예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게 당연했다.

소설은 비행기를 조종하는 기장 빌과 인질범 샘, 인질로 잡힌 빌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여러 캐릭터들이 함께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장 가까이에서 빌을 지지하며 도와주는 한편으로 승객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막중한 임무를 짊어진 조를 비롯한 다른 승무원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상에서는 조의 조카 테오가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빌의 가족을 찾고 구하려는 과정을 보여줬다.

중반 이후에 승객들에게 모든 사실이 빠르게 밝혀졌고 온 세상 사람들 또한 인질로 잡힌 비행기 추락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리고 그 비행기의 목적지가 밝혀지면서 통제할 수 없는 비극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줬다.

하지만 이런 소설의 특성상 비극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에 안도할 만한 방향으로 향해 갔고, 그 과정에서 뭉클한 감동까지 느끼게 했다. 그리고 인질범 두 명의 정체가 밝혀지며 지구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쥔 미국이 불러일으킨 비극이 무엇인지 깨닫게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질범의 행위가 정당화되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긴장감 넘치는 즐거움을 준 덕분에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건 승산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좋은 인간들, 즉 나이스한 미국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는 거야. 그것뿐이라고. 당신 같은 사람은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때 어떻게 할까?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탄 비행기를 고를까? 아니면 당신 가족을 고를까? 잘 들어, 빌. 이건 선택에 관한 문제야. 누가 살아남을지 당신이 선택하는 거.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거야." - P64

상상하면 할수록 캐리가 집에서 그 남자에게 고문을 당하며 고통으로 울부짖는 장면만 떠올랐다. 눈을 감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세상을 찾아 헤맸다. 그가 비행을 거절한 세상. 조종사보다는 아빠와 남편으로 있기를 결심한 세상. 가족들이 함께 잔잔한 일상을 보내는 세상. - P185

테오가 빌의 가족을 지켜줄 것이다.
빌은 비행기를 지켜 줄 것이고.
그러니 우리도 승객들을 지켜야만 한다. - P136

"사람들은 이 세상이 허락하는 만큼만 선하다는 진실. 당신이 날 때부터 선한 인간이 아니었던 것처럼, 나도 태생적으로 악한 인간은 아니었어. 우리는 그저 각자의 삶에 주어진 카드를 쥐고서 상황을 헤쳐 나갈 뿐이야. 그러니까 지금 같은 상황에서 당신은 당신에게 주어진 카드를 쓰게 되는 거고. 그럼 좋은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까? 빌, 이건 비행기 추락의 문제가 아니야. 선택의 문제지. 착한 사람이 사실은 나쁜 사람과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닫는 문제라고."
(……중략)
"당신들은 그저 항상 좋은 사람이 되기로 선택할 수 있는 사치를 누려 온 것뿐이야."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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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질은 부드러워
아구스티나 바스테리카 지음, 남명성 옮김 / 해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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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터 세계 모든 동물들이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집에서 키우는 반려동물은 물론이고 농장의 가축과 동물원의 동물, 심지어는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조류들까지 바이러스를 피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해 동물원은 폐쇄되었고 각 가정에서는 애지중지 돌보던 반려동물을 주인의 손으로 끝을 내야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은 대체 육류를 찾아야 했는데, 그 결과 각국 정부는 인육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고 법을 제정했다. 기존의 육류 가공 공장들은 '특별육'이라고 불리게 된 인간 수컷과 암컷들을 처리했고, 특별육을 키우는 농장 역시 따로 존재했다.


중년 남성 마르코스 테호는 육류 가공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이 일을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지만, 변이가 생긴 이후 정신줄을 놔버린 아버지를 안전하게 모시기 위해 제일 좋은 요양원에 보냈기에 돈을 많이 주는 이곳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곁에 가족이라도 있으면 고되지 않았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갓난 아기인 아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아내 세실리아가 친정으로 가버렸기 때문에 그는 이 상황을 묵묵히 견디고만 있다.

그런 그에게 특별육 사육장의 사장이 순종 1세대 암컷을 선물로 보내줬다. 마르코스는 너무나 경악스러워하며 받지 않으려 했지만 사장은 좋은 암컷이라고 하며 그에게 떠넘겼다. 그때부터 마르코스의 삶은 이전과는 달라지게 되는데...




이 책을 읽게 된 건 순전히 제목이 특이해서였다. 보통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 신착 코너를 돌고서 읽을 책 목록에 있는 걸 빌려오는 편인데, 신착 코너에 있던 이 책의 제목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육질은 부드러워>라는 뜻이 대체 뭔지 책을 집어 들어 뒤편에 쓰인 간략한 줄거리를 읽었는데 흥미가 확 일었다. 바이러스로 동물이 사라지고 대체재로 인간을 동물처럼 사육해서 먹는다니 상상하니 끔찍하면서도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해졌다.

주인공은 육류 가공 공장에서 일하는 마르코스였다. 마르코스는 특별육을 인간이라고 부르면 잡혀가서 그 역시 특별육이 될 수 있는 세상이 온 이후 채식만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 다른 사람들은 마르코스처럼 인육에 거부감을 느꼈지만 육류 섭취 부족이 계속해서 이어진 뒤에, 그리고 인육을 맛본 뒤에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마르코스는 그렇게도 혐오하는 인육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아버지의 요양원 비용 때문이었다. 결혼 후에 남편, 아이들과 도시에서 사는 여동생은 말로만 아버지를 걱정할 뿐 비용을 보태지 않았다. 마르코스가 비싼 요양원에 아버지를 모신 이유는 그런저런 요양원에 보내면 노인들이 임종한 후에 저렴한 인육으로 팔아넘겨졌기 때문이다. 역겨움의 극치라서 너무나 경악스러웠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며 이 책을 읽어선 안 됐던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인육에 관한 생각을 드러낼 수 없었던 시대에 마르코스는 순종 암컷을 선물로 받게 되었으니 처치 곤란이었다. 오로지 사람에게 먹히기 위해 길러지는 존재들은 목소리를 낼 수 없도록 미리 처리를 했고, 당연하게 가축에게 그러하듯 기르기만 했다. 인간이었지만 인간으로 여기지 않았기에 선물 받은 암컷은 마르코스를 두려워하며 창고에 묶여 있어야만 했다.

그러다 마르코스에게 여러 사건이 일어난 후 그는 재스민이라 이름 붙인 그 암컷과 몸을 섞었다. 사실 이건 예상이 가능한 부분이긴 했다. 아내가 친정으로 떠난 뒤에 마르코스는 늘 외로웠고 욕구를 다른 데서 풀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빈번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 암컷이 순종이라 그런지 생김새도 고왔고, 다른 특별육들처럼 머리카락을 밀어버리지도 않았기에 씻겨두니 보기 좋았을 터였다.

문제는 그 암컷, 재스민이 아기를 갖게 된 것이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아 뒤통수가 너무 아팠다. 마르코스가 사는 사회에서는 가축처럼 길러서 먹는 존재들을 성적으로 착취하면 안 되는 법이 있었기에 들키면 그 역시 인육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조심스레 재스민을 돌보며 뱃속의 아기가 무사히 태어나길 빌었다. 아이를 한 번 잃어본 경험이 있었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주인공 마르코스와 그 외 모든 사람들 사이에는 너무나 먼 거리감이 느껴졌다. 소설 속 현실과 소설을 읽고 있는 나의 거리감만큼이나 까마득했기 때문에 당연히 마르코스에게 공감을 했고, 그런 상황에서도 돈을 벌기 위해 죄책감을 느끼며 일을 해야 했던 그에게 동정심이 생겼다. 아버지의 또 다른 자식인 여동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걸 혼자 짊어져야 한다는 게 안타깝기도 했다. 또한 아내 세실리아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잃은 슬픔은 부부 모두에게 공통인 아픔이었지만, 세실리아가 그 아픔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며 마르코스에게 다시금 괴로움을 안겨주고 있다는 게 인육을 먹는 사람들과의 거리감만큼이나 비슷하게 다가왔다.

그러던 차에 재스민이 아기를 갖게 된 게 마르코스에게는 삶을 다른 방식으로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이라고 보였다. 여태껏 그가 보여준 행동과 감정들을 미루어 봤을 때 섭취되는 육류로만 취급받는 이들에게도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일어난 건 가히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놀란 엔딩이었다. 마지막 한 문장이 깊은 탄식을 하게 만들었다.


디스토피아가 배경인 영화와 책을 정말 많이 접했는데 이 소설만큼 충격인 설정은 없었다. 금기시되는 카니발리즘이 합법이 되었다는 것에서부터 놀랍고 끔찍했는데, 소설을 쓴 작가 아구스티나 바스테리카가 육우 섭취율이 굉장히 높은 아르헨티나 작가라는 것도 의외였다. 그로 인해 시사하는 바가 새삼 다르게 와닿았다.

놀랍고 또 놀라운 소설이다. 읽으면서 몇 번이고 눈살을 찌푸렸지만 금세 읽어버리게 만든 흡입력이 있었다. 영상화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인상적으로 본 영화 <옥자>의 고어 디스토피아 버전이 될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사람들이 모여서 몰래 다른 사람들을 죽인 후 먹기 시작했다. 두 명의 볼리비아 출신 실직자를 이웃 사람들이 공격한 다음 시신을 토막 내 불에 구워 먹었다는 기사가 언론에 등장했다. 뉴스를 접한 그는 몸서리를 쳤다. 그런 유의 사건이 공개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그 사건은 결국 대중에게 어디서 났든 고기는 고기일 뿐이라는 인식을 서서히 주입했다. - P16

"어쨌든 세상이 생겨난 뒤로 우리는 서로를 먹어왔어요. 상징적으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서로를 뜯어먹고 있었어요. 변이라는 과정이 우리를 덜 위선적으로 만든 겁니다." - P205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조금 전까지 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까? 신경이나 쓸까? 그러다 자신이 실제로 자신이 내린 지시에 따라 남자와 여자의 목을 베고 배를 가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감독하며 인생 대부분을 보냈다는 생각을 한다. 마치 그런 일이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사람은 거의 모든 일에 익숙해질 수 있다. 아이가 죽는 것만 빼고는.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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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장의 재판 -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 우수상 수상작 케이스릴러
박은우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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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고등학생이던 예쁜 여동생이 친구와 함께 아는 명문대생 오빠들을 만나러 간다고 단장을 했다. 걱정하며 바라보는 손위 형제에게 동생은 낮에 만나서 놀다가 금세 들어올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동생은 집에 오지 않았다.


J 그룹 3세 조성주가 파티를 열 때마다 사용하는 엄마 명의의 청계산장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조성주가 직접 초대한 부유한 집안의 친구들이었고, 그들이 데리고 온 파트너는 하나같이 뛰어난 미모를 자랑했다. 초대를 받고 산장에 들어가려던 이들에게 한 가지 조건이 붙었으니 그건 바로 얼굴에 가면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물부터 영화 캐릭터, 배우의 얼굴 등 각양각색의 가면을 쓴 그들은 처음엔 거부감이 들었으나 파티의 성격을 생각하고 금세 수긍했다.

그렇게 30여 명이 초대된 파티에서 케이터링 업체 직원들이 음식을 비롯한 이런저런 서비스를 돕다가 늦은 시각이 되어 몇 명만 남고 퇴근을 했다. 술과 약에 취한 이들의 소란과 웨이트리스에게 치근덕대는 안하무인 도련님을 잠재우기 위해 곰 가면을 쓴 남자가 나타나 총을 쐈다. 평소에 절대 들을 수 없는 소리에 놀란 이들이 주목한 곳에 가면을 쓴 남자가 배에서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었다. 방금까지 웨이트리스에게 치근덕대던 사람이었다. 이후 여우 가면을 쓴 남자가 나타나 그들 모두가 인질이 되었음을 알렸다.




프롤로그로 시작된 소설로 인해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가슴을 답답하게 하리라는 걸 예상하게 했다. 피해자가 고작 고등학생인 여자애였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는 차차 밝혀지게 되겠지만, 그게 무엇이 됐든 최악일 거라는 건 안 봐도 훤했고 가해자 역시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기에 피해자 여고생의 가족이 모든 걸 계획하고 청계산장에서 재판을 벌이려는 것일 터였다.

본격적으로 청계산장의 파티가 열리기 전에 여러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의 단편을 이야기했다. 형사의 어머니가 돈을 불려준다는 사기 수법을 어디선가 듣고 온 해프닝이 있었고, 강남의 잘나가는 성형외과 의사가 의료사고와 향정신성 의약품 상습 복용으로 인해 의사 면허가 취소된 사건도 이야기하고 지나갔다. 청계산장 파티의 호스트인 조성주가 잠깐 등장했다 의문을 남기고 사라지기도 했다.

이후 주요 무대가 청계산장으로 등장해 파티의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초대된 손님은 물론이고 케이터링 업체 직원, 숨어 있을 인질범들까지 모두의 정체를 숨기는 게 일단 첫 번째 목표라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손님들은 은밀하고 퇴폐적인 파티이기에 가면을 쓴다는 걸 마음에 들어 했다. 얼굴을 가리면 무슨 짓을 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고, 사회적인 시선으로 인해 감추고 있던 욕망을 드러내기도 쉬울 테니 말이다.

그러나 파티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총성이 울렸고, 그 결과 한 남자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 걸 보여줬다. 고작 파티에 왔을 뿐인 인질들은 인질범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총에 맞아 죽고 싶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인질범은 일단 남자 인질들의 손발을 묶어 통솔하기 쉽게 했다. 그 이전에 핸드폰 및 소지품을 걷는 데 일부러 시간적 여유를 준 덕분에 산장 내부의 사정이 외부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경찰에게까지 이 이야기가 흘러들어간 건 당연했다.

프롤로그의 여동생을 잃은 유족이 진짜 가해자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이런 일들을 벌였다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마스터'라 불린 그 당사자의 정체는 쉽게 파악할 수 없었다. 오래전에 이 산장에서 치욕을 당하고 살해된 고등학생 민지영의 형제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알고 보니 민지영 외에 피해자가 더 있다는 게 드러나 누가 이런 일을 벌이는 건지 예측할 수 없게 했다. 산장 밖에서 백방으로 애를 쓰는 경찰과 인질범의 대치는 빈틈이 없어서 파고들기가 어려웠기에 인질범이 이 계획을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인질범이 나쁜 쪽이 아닌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억울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후에는 당연히 그를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안타깝고 분노할 과거가 있었기에 가해자는 똑같은 벌을 받아야 마땅했다. 복수로 인해 자신이 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괴물이 되어 간다고 느껴도 멈출 수가 없었다. 복수를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버리고 원하는 걸 손에 넣을 때까지 분노를 원동력 삼아 움직여야 했으니 말이다.

복수가 성공했는지 못했는지는 결말보다 앞서 밝혀졌는데, 그 상황에 대한 진실보다 앞으로 남은 이야기에 핵심이 있을 거란 생각에 계속해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펼쳐 나갔다.


복수를 위해 착착 맞아떨어지는 이야기가 매력적이었다. 이렇게 사적 제재가 이루어지고 그걸 환호하는 건 현실의 법이 공정하지 않기 때문인 게 당연할 것이다. 치밀한 과정의 복수와 그 복수가 성공해도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기에 결말은 씁쓸한 맛이 남았다.

"지금부터 여러분의 신분은 인질입니다. 당연히 우리는 인질범이지요. 그리고 이제 하나의 연극이 시작됩니다. 바로 인질극입니다." - P55.56

"저는 여기서 재판을 하려고 합니다. 재판정이 아닌 산속에 있는 산장에서 재판을 하려고 하니 이 역시 흔한 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아는 재판정에서는 열리지 못했고, 앞으로도 열릴 가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 오래전에 열렸어야 할 재판을 이제야 열게 되었습니다. 복잡해 보이지만 간단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수 년 전에 어떤 범죄 행위가 있었는데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백했음에도 재판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 재판을 지금 열고자 하는 것입니다." - P259

진실을 알아도 고통스럽고 알지 못해도 고통스럽다. 복수 역시 마찬가지다. 해도 괴롭고 안 해도 괴롭다. 그럴진대 안 하고 오래오래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사느니 빨리 하고 끝내는 게 낫지 않겠는가. - P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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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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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 디자인과를 졸업한 한아는 동양화과를 졸업한 절친 유리와 함께 작은 옷 수선집을 운영하고 있다. 업사이클링이 주 목적인 가게를 운영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한아는 저탄소생활을 실천하려 애쓰는 중이다. 물론 유리도 함께 말이다.


한아에게는 대학생 때부터 11년 동안 만난 남자친구 경민이 있다. 경민이 한아를 대하는 온도와 한아가 경민을 대하는 온도가 조금 달라 한아는 늘 남자친구에게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 유성우를 보기 위해 캐나다로 훌쩍 떠나버린 경민의 여름휴가도 늘 있는 일이라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기분이 그리 좋지 않은 건 당연하다.

그렇게 경민이 혼자 여행을 떠나고 돌아온 뒤에 한아는 왠지, 아니 분명히 그가 달라졌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한아를 대하는 경민의 온도가 그녀 자신이 경민을 대하는 온도보다 조금은 더 뜨거워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경민과 유리는 늘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캐나다에 다녀온 후로는 조금 괜찮아진 것 같다.

그러던 중에 한아는 경민이 캐나다 여행 이전의 경민이 아니라는걸, 심지어 같은 지구인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데...




소설 시작에서부터 느낀 점은 한아가 참 다정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게로 옷을 수선해달라고 가져온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태도를 보였다. 할머니가 입던 옷, 친구들끼리 맞춘 옷, 그리고 세상을 떠난 사람의 옷을 가져와 수선해달라고 하는 낯선 손님들의 감정에 깊이 공감했다. 동업자이자 절친한 친구인 유리에게도 다른 느낌으로 다정했고, 무심하긴 해도 여전히 좋아하는 남자친구 경민에게도 그랬다. 또한 한아는 지구를 살아가는 동식물 등 모든 생명체에게도 다정했다. 그랬기에 그녀가 업사이클링이 목적인 옷 수선집을 운영하는 것일 터였다.

언제나처럼 무심한 경민이 혼자 계획한 여행을 훌쩍 떠나버리고 난 뒤 한아는 여느 날과 다름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선 오랜만에 마주한 경민은 여행 이전보다 한아에게 조금은 뜨거워졌다. 무심함은 온데간데없고 다정하게 그녀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유리는 그런 경민을 보며 철들었다고 했지만, 한아는 왠지 모르게 경민이 낯설었다.

그러다 경민의 집을 찾아간 날, 그의 입에서 초록색 빛이 뿜어져 나오는 걸 보고 깜짝 놀라고 만다. 경민의 껍데기를 가진 알 수 없는 생명체를 국정원에 신고하기까지 한다.


한편, 싱어송라이터 '아폴로'의 공식 팬클럽 회장인 주영은 아폴로가 캐나다로 여행을 떠난 뒤에 사라졌다는 걸 알고 그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아폴로가 뜨기 전부터 팬이었던 주영을 익히 알고 있던 기획사 사람들과 매니저는 자신들도 행방을 모른다며 알려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다행히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아폴로가 캐나다에서 사라지기 전에 사용한 카드 내역과 렌터카 등과 관련된 자료였다. 주영은 아폴로의 흔적을 좇다가 캐나다에 소형 운석이 떨어졌을 때 함께 있었던 이들의 뒤를 캤다. 그중 한 사람이 경민이었다.

한아의 신고를 받은 국정원 직원 정규는 신고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고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모처에서 거대한 초록빛 기둥이 뿜어져 나왔었다는 걸 알고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주영과 정규는 경민이 없는 경민의 집에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 시각 경민의 껍데기를 쓴 외계인은 한아에게 프러포즈를 하려던 중이었다.

소설은 여행을 다녀온 남자친구가 이전과는 다른, 그것도 남자친구의 껍데기를 쓴 외계인으로 앞에 나타나 일어나는 해프닝을 그리고 있다. 원래의 이름은 발음하기 어려워서 일단 계속 경민으로 부르게 된 외계인은 고향 행성에서부터 한아를 망원경으로 보고 사랑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를 만나기 위해 어마어마한 빚을 지고 2만 광년을 날아와 원래의 경민에게 우주 자유여행권을 주며 경민의 몸과 맞바꾸었다. 이 부분에서 원래의 경민이 한 행동에 분노했지만, 초점은 떠난 그쪽이 아닌 경민의 껍데기를 한 외계인이라는 게 중요했다. 자신을 만나기 위해 엄청난 교통비, 우주를 가로질러 오기 위해 빚을 내서 왔다는 사랑이 가득한 외계인이었다. 이후 한아가 그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인 뒤 두 사람의 사랑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었다. 외계인과의 연애는 꽤나 귀엽고 엉뚱해서 재미가 있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건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아의 캐릭터 설정에서부터 친환경적이었는데, 외계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지구를 통해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들을 무겁지 않게, 그러면서 주제에 어긋나지 않게 그려냈다. 로맨틱 코미디와 환경 문제의 균형을 잘 맞추고 있었다.


읽는 내내 즐겁고 코믹해서 종종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외계인과의 사랑이 한결같아서 내 마음까지 따스해졌다.

오랜만에 읽는 정세랑 작가의 소설인데 역시나 너무나 재미있었다.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서 좋았고, 환경 문제까지 잘 어우러지게 담아낸 소설이라 의미까지 남겼다. 좋은 책을 읽어서 기분이 참 좋다.

"어떤 특별한 사람은 행성 하나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때가 있어요." - P118

"인간이 인간과 인간 아닌 모든 것들을 끊임없이 죽이고 또 죽이는 이 끔찍한 행성에서, 어떻게 전체의 특성을 닮지 않는 걸까. 너는 우주를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우주를 넘어서는 걸까. 너는 너무 멀리 있는데, 나는 왜 널 가깝게 느낄까. 내가 네 옆에 있는 바보 인간보다 더 가까울 거라고, 그런데 그걸 넌 모르니까, 전혀 모르니까, 도저히 잠들 수 없었어." - P102

"네가 없으면 내 여행은 의미가 없어져."
한아는 망설임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2만 광년이란 엄청난 거리를, 망설임 없이 올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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