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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질은 부드러워
아구스티나 바스테리카 지음, 남명성 옮김 / 해냄 / 2024년 4월
평점 :
어느 날부터 세계 모든 동물들이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집에서 키우는 반려동물은 물론이고 농장의 가축과 동물원의 동물, 심지어는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조류들까지 바이러스를 피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해 동물원은 폐쇄되었고 각 가정에서는 애지중지 돌보던 반려동물을 주인의 손으로 끝을 내야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은 대체 육류를 찾아야 했는데, 그 결과 각국 정부는 인육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고 법을 제정했다. 기존의 육류 가공 공장들은 '특별육'이라고 불리게 된 인간 수컷과 암컷들을 처리했고, 특별육을 키우는 농장 역시 따로 존재했다.
중년 남성 마르코스 테호는 육류 가공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이 일을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지만, 변이가 생긴 이후 정신줄을 놔버린 아버지를 안전하게 모시기 위해 제일 좋은 요양원에 보냈기에 돈을 많이 주는 이곳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곁에 가족이라도 있으면 고되지 않았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갓난 아기인 아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아내 세실리아가 친정으로 가버렸기 때문에 그는 이 상황을 묵묵히 견디고만 있다.
그런 그에게 특별육 사육장의 사장이 순종 1세대 암컷을 선물로 보내줬다. 마르코스는 너무나 경악스러워하며 받지 않으려 했지만 사장은 좋은 암컷이라고 하며 그에게 떠넘겼다. 그때부터 마르코스의 삶은 이전과는 달라지게 되는데...
이 책을 읽게 된 건 순전히 제목이 특이해서였다. 보통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 신착 코너를 돌고서 읽을 책 목록에 있는 걸 빌려오는 편인데, 신착 코너에 있던 이 책의 제목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육질은 부드러워>라는 뜻이 대체 뭔지 책을 집어 들어 뒤편에 쓰인 간략한 줄거리를 읽었는데 흥미가 확 일었다. 바이러스로 동물이 사라지고 대체재로 인간을 동물처럼 사육해서 먹는다니 상상하니 끔찍하면서도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해졌다.
주인공은 육류 가공 공장에서 일하는 마르코스였다. 마르코스는 특별육을 인간이라고 부르면 잡혀가서 그 역시 특별육이 될 수 있는 세상이 온 이후 채식만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 다른 사람들은 마르코스처럼 인육에 거부감을 느꼈지만 육류 섭취 부족이 계속해서 이어진 뒤에, 그리고 인육을 맛본 뒤에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마르코스는 그렇게도 혐오하는 인육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아버지의 요양원 비용 때문이었다. 결혼 후에 남편, 아이들과 도시에서 사는 여동생은 말로만 아버지를 걱정할 뿐 비용을 보태지 않았다. 마르코스가 비싼 요양원에 아버지를 모신 이유는 그런저런 요양원에 보내면 노인들이 임종한 후에 저렴한 인육으로 팔아넘겨졌기 때문이다. 역겨움의 극치라서 너무나 경악스러웠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며 이 책을 읽어선 안 됐던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인육에 관한 생각을 드러낼 수 없었던 시대에 마르코스는 순종 암컷을 선물로 받게 되었으니 처치 곤란이었다. 오로지 사람에게 먹히기 위해 길러지는 존재들은 목소리를 낼 수 없도록 미리 처리를 했고, 당연하게 가축에게 그러하듯 기르기만 했다. 인간이었지만 인간으로 여기지 않았기에 선물 받은 암컷은 마르코스를 두려워하며 창고에 묶여 있어야만 했다.
그러다 마르코스에게 여러 사건이 일어난 후 그는 재스민이라 이름 붙인 그 암컷과 몸을 섞었다. 사실 이건 예상이 가능한 부분이긴 했다. 아내가 친정으로 떠난 뒤에 마르코스는 늘 외로웠고 욕구를 다른 데서 풀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빈번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 암컷이 순종이라 그런지 생김새도 고왔고, 다른 특별육들처럼 머리카락을 밀어버리지도 않았기에 씻겨두니 보기 좋았을 터였다.
문제는 그 암컷, 재스민이 아기를 갖게 된 것이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아 뒤통수가 너무 아팠다. 마르코스가 사는 사회에서는 가축처럼 길러서 먹는 존재들을 성적으로 착취하면 안 되는 법이 있었기에 들키면 그 역시 인육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조심스레 재스민을 돌보며 뱃속의 아기가 무사히 태어나길 빌었다. 아이를 한 번 잃어본 경험이 있었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주인공 마르코스와 그 외 모든 사람들 사이에는 너무나 먼 거리감이 느껴졌다. 소설 속 현실과 소설을 읽고 있는 나의 거리감만큼이나 까마득했기 때문에 당연히 마르코스에게 공감을 했고, 그런 상황에서도 돈을 벌기 위해 죄책감을 느끼며 일을 해야 했던 그에게 동정심이 생겼다. 아버지의 또 다른 자식인 여동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걸 혼자 짊어져야 한다는 게 안타깝기도 했다. 또한 아내 세실리아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잃은 슬픔은 부부 모두에게 공통인 아픔이었지만, 세실리아가 그 아픔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며 마르코스에게 다시금 괴로움을 안겨주고 있다는 게 인육을 먹는 사람들과의 거리감만큼이나 비슷하게 다가왔다.
그러던 차에 재스민이 아기를 갖게 된 게 마르코스에게는 삶을 다른 방식으로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이라고 보였다. 여태껏 그가 보여준 행동과 감정들을 미루어 봤을 때 섭취되는 육류로만 취급받는 이들에게도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일어난 건 가히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놀란 엔딩이었다. 마지막 한 문장이 깊은 탄식을 하게 만들었다.
디스토피아가 배경인 영화와 책을 정말 많이 접했는데 이 소설만큼 충격인 설정은 없었다. 금기시되는 카니발리즘이 합법이 되었다는 것에서부터 놀랍고 끔찍했는데, 소설을 쓴 작가 아구스티나 바스테리카가 육우 섭취율이 굉장히 높은 아르헨티나 작가라는 것도 의외였다. 그로 인해 시사하는 바가 새삼 다르게 와닿았다.
놀랍고 또 놀라운 소설이다. 읽으면서 몇 번이고 눈살을 찌푸렸지만 금세 읽어버리게 만든 흡입력이 있었다. 영상화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인상적으로 본 영화 <옥자>의 고어 디스토피아 버전이 될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사람들이 모여서 몰래 다른 사람들을 죽인 후 먹기 시작했다. 두 명의 볼리비아 출신 실직자를 이웃 사람들이 공격한 다음 시신을 토막 내 불에 구워 먹었다는 기사가 언론에 등장했다. 뉴스를 접한 그는 몸서리를 쳤다. 그런 유의 사건이 공개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그 사건은 결국 대중에게 어디서 났든 고기는 고기일 뿐이라는 인식을 서서히 주입했다. - P16
"어쨌든 세상이 생겨난 뒤로 우리는 서로를 먹어왔어요. 상징적으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서로를 뜯어먹고 있었어요. 변이라는 과정이 우리를 덜 위선적으로 만든 겁니다." - P205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조금 전까지 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까? 신경이나 쓸까? 그러다 자신이 실제로 자신이 내린 지시에 따라 남자와 여자의 목을 베고 배를 가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감독하며 인생 대부분을 보냈다는 생각을 한다. 마치 그런 일이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사람은 거의 모든 일에 익숙해질 수 있다. 아이가 죽는 것만 빼고는.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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