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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쌍곡선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도쿄의 작은 가게들에 강도가 들었다. 범인은 같은 옷차림에 장갑을 꼈고 총으로 가게 주인을 위협하며 당일의 매상을 훔쳐 갔다. 특이하게 범인은 얼굴을 마스크 따위로 가리는 수고를 하지 않고 온전히 드러냈다. 며칠 연속으로 똑같은 옷차림새에 세상을 탓하는 말을 남기고 떠난 것도 같았기에 경찰은 빠르게 몽타주를 작성할 수 있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범인이 잡혔다. 며칠 연속으로 매상을 빼앗긴 여러 가게의 주인들이 모두 입을 모아 그가 범인이라 주장했지만, 정작 범인은 자신이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을 했다. 놀랍게도 바로 그날 다른 형사에 의해 범인이 또 잡혀왔다. 두 사람이 구분을 할 수조차 없는 일란성 쌍둥이 고시바 가쓰오, 도시오 형제였던 것이다.
한편, 한적한 시골 마을의 호텔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든다. 주인인 하야카와가 호텔을 홍보하고자 도쿄에 사는 젊은 사람들을 초대한 것이었다. 결혼을 앞둔 교코, 모리구치 커플, 마사지 전문점 직원 다지 아야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야베, 범죄학을 연구하는 대학생 이가라시, 그리고 택시 운전기사 다지마였다.
이들이 호텔에 도착에 하룻밤을 보내고 난 뒤, 야베가 방 안에서 목을 매 죽어 있는 걸 발견한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창문으로도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런데 방 안에 첫 번째 복수가 이루어졌다고 쓰인 카드가 발견되면서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된다.
소설은 중요한 사실 하나를 공개하고 시작했다. 이 소설에는 도무지 구분이 가지 않는 쌍둥이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니시무라 교타로 작가는 영국의 무슨 '탐정소설의 십계'가 있다고 하며 쌍둥이가 등장하면 독자에게 꼭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덕분에 자연스레 쌍둥이가 범인일 거라고 예상할 수밖에 없었다.
소설은 두 가지 상황을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었다.
먼저 도쿄에서 일어나고 있는 연속 강도 사건이었다. 매번 똑같은 외투에 장갑을 끼고 얼굴을 내놓고서 돈을 빼앗아 달아나는 범인의 몽타주는 쉽게 만들 수 있었지만, 문제는 이 범인이 쌍둥이였다는 데에 있었다. 보통 일란성 쌍둥이라고 해도 조금은 다른 점이 있기 마련인데, 고시바 형제는 너무 닮아서 형사들은 물론이고 가게의 주인들까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범인이 분명하지만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하면 도리어 경찰이 고소를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 고시바 형제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형사들이 미행을 해도 고시바 형제는 그들을 비웃으며 범죄를 저지르고 다녔다.
한편 도쿄에 사는 사람들이 초대를 받아 눈이 많이 오는 한적한 지역 호텔로 향했다. 그들은 20대 중반의 엇비슷한 나이였지만, 하는 일은 물론이고 접점이라고 할 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런 부분은 차치하고 모인 사람들은 스키를 타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이튿날 초대받은 남자 중 한 명이 자살로 위장해 살해되면서 호텔 내부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 첫 번째 사건 이후에 두 번째, 세 번째 사건이 이어지면서 중요하게 등장한 건 사건 현장마다 마치 출입 금지 표시와 비슷하게 생긴 그림이 그려진 카드가 있었다는 것이고, 초대받은 이들이 호텔에 처음 왔을 때부터 볼링장에 9개뿐이던 볼링핀이 하나씩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남은 이들은 누가 사람들을 죽였을지 예상해 보는 한편으로 자신의 차례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뿐이었다.
도쿄에서의 사건과 호텔의 사건이 처음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줄 알았다. 중반을 넘어가면서도 밝혀진 게 거의 없었기에 대체 이걸 어떻게 풀어가려나 싶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인지했지만 방심한 무언가기 반전으로 드러났다. 뭔가 알면서 속은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렇게 범인이 밝혀진 뒤에 왜 이런 짓을 저지른 건지도 드러났는데, 이 부분에서는 좀 의아함을 느끼게 했다. 타깃이 된 사람들이 잘한 건 아니지만, 그들 탓을 하며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건 너무 과했다.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기에 후반부가 아쉬웠다.
그래도 무난하게 읽기에는 괜찮았다. 소설이 거의 50년 전에 쓰인 거라 생각하면 요즘 시대에 견주어도 훌륭하다고 볼 수 있다.
"화를 낼 거면 이 세상에 내도록 해. 내가 이런 짓을 하는 건 다 세상이 나빠서니까." - P22
"저는 이번에 도쿄에 거주하는 여섯 분을 초청했는데 단순히 제비뽑기로 고른 건 아닙니다. 여섯 분은 어떤 공통된 이유로 선정됐죠.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 이유를 알아맞혀 주셨으면 합니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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