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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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 디자인과를 졸업한 한아는 동양화과를 졸업한 절친 유리와 함께 작은 옷 수선집을 운영하고 있다. 업사이클링이 주 목적인 가게를 운영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한아는 저탄소생활을 실천하려 애쓰는 중이다. 물론 유리도 함께 말이다.


한아에게는 대학생 때부터 11년 동안 만난 남자친구 경민이 있다. 경민이 한아를 대하는 온도와 한아가 경민을 대하는 온도가 조금 달라 한아는 늘 남자친구에게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 유성우를 보기 위해 캐나다로 훌쩍 떠나버린 경민의 여름휴가도 늘 있는 일이라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기분이 그리 좋지 않은 건 당연하다.

그렇게 경민이 혼자 여행을 떠나고 돌아온 뒤에 한아는 왠지, 아니 분명히 그가 달라졌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한아를 대하는 경민의 온도가 그녀 자신이 경민을 대하는 온도보다 조금은 더 뜨거워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경민과 유리는 늘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캐나다에 다녀온 후로는 조금 괜찮아진 것 같다.

그러던 중에 한아는 경민이 캐나다 여행 이전의 경민이 아니라는걸, 심지어 같은 지구인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데...




소설 시작에서부터 느낀 점은 한아가 참 다정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게로 옷을 수선해달라고 가져온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태도를 보였다. 할머니가 입던 옷, 친구들끼리 맞춘 옷, 그리고 세상을 떠난 사람의 옷을 가져와 수선해달라고 하는 낯선 손님들의 감정에 깊이 공감했다. 동업자이자 절친한 친구인 유리에게도 다른 느낌으로 다정했고, 무심하긴 해도 여전히 좋아하는 남자친구 경민에게도 그랬다. 또한 한아는 지구를 살아가는 동식물 등 모든 생명체에게도 다정했다. 그랬기에 그녀가 업사이클링이 목적인 옷 수선집을 운영하는 것일 터였다.

언제나처럼 무심한 경민이 혼자 계획한 여행을 훌쩍 떠나버리고 난 뒤 한아는 여느 날과 다름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선 오랜만에 마주한 경민은 여행 이전보다 한아에게 조금은 뜨거워졌다. 무심함은 온데간데없고 다정하게 그녀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유리는 그런 경민을 보며 철들었다고 했지만, 한아는 왠지 모르게 경민이 낯설었다.

그러다 경민의 집을 찾아간 날, 그의 입에서 초록색 빛이 뿜어져 나오는 걸 보고 깜짝 놀라고 만다. 경민의 껍데기를 가진 알 수 없는 생명체를 국정원에 신고하기까지 한다.


한편, 싱어송라이터 '아폴로'의 공식 팬클럽 회장인 주영은 아폴로가 캐나다로 여행을 떠난 뒤에 사라졌다는 걸 알고 그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아폴로가 뜨기 전부터 팬이었던 주영을 익히 알고 있던 기획사 사람들과 매니저는 자신들도 행방을 모른다며 알려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다행히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아폴로가 캐나다에서 사라지기 전에 사용한 카드 내역과 렌터카 등과 관련된 자료였다. 주영은 아폴로의 흔적을 좇다가 캐나다에 소형 운석이 떨어졌을 때 함께 있었던 이들의 뒤를 캤다. 그중 한 사람이 경민이었다.

한아의 신고를 받은 국정원 직원 정규는 신고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고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모처에서 거대한 초록빛 기둥이 뿜어져 나왔었다는 걸 알고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주영과 정규는 경민이 없는 경민의 집에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 시각 경민의 껍데기를 쓴 외계인은 한아에게 프러포즈를 하려던 중이었다.

소설은 여행을 다녀온 남자친구가 이전과는 다른, 그것도 남자친구의 껍데기를 쓴 외계인으로 앞에 나타나 일어나는 해프닝을 그리고 있다. 원래의 이름은 발음하기 어려워서 일단 계속 경민으로 부르게 된 외계인은 고향 행성에서부터 한아를 망원경으로 보고 사랑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를 만나기 위해 어마어마한 빚을 지고 2만 광년을 날아와 원래의 경민에게 우주 자유여행권을 주며 경민의 몸과 맞바꾸었다. 이 부분에서 원래의 경민이 한 행동에 분노했지만, 초점은 떠난 그쪽이 아닌 경민의 껍데기를 한 외계인이라는 게 중요했다. 자신을 만나기 위해 엄청난 교통비, 우주를 가로질러 오기 위해 빚을 내서 왔다는 사랑이 가득한 외계인이었다. 이후 한아가 그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인 뒤 두 사람의 사랑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었다. 외계인과의 연애는 꽤나 귀엽고 엉뚱해서 재미가 있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건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아의 캐릭터 설정에서부터 친환경적이었는데, 외계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지구를 통해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들을 무겁지 않게, 그러면서 주제에 어긋나지 않게 그려냈다. 로맨틱 코미디와 환경 문제의 균형을 잘 맞추고 있었다.


읽는 내내 즐겁고 코믹해서 종종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외계인과의 사랑이 한결같아서 내 마음까지 따스해졌다.

오랜만에 읽는 정세랑 작가의 소설인데 역시나 너무나 재미있었다.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서 좋았고, 환경 문제까지 잘 어우러지게 담아낸 소설이라 의미까지 남겼다. 좋은 책을 읽어서 기분이 참 좋다.

"어떤 특별한 사람은 행성 하나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때가 있어요." - P118

"인간이 인간과 인간 아닌 모든 것들을 끊임없이 죽이고 또 죽이는 이 끔찍한 행성에서, 어떻게 전체의 특성을 닮지 않는 걸까. 너는 우주를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우주를 넘어서는 걸까. 너는 너무 멀리 있는데, 나는 왜 널 가깝게 느낄까. 내가 네 옆에 있는 바보 인간보다 더 가까울 거라고, 그런데 그걸 넌 모르니까, 전혀 모르니까, 도저히 잠들 수 없었어." - P102

"네가 없으면 내 여행은 의미가 없어져."
한아는 망설임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2만 광년이란 엄청난 거리를, 망설임 없이 올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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