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장의 재판 -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 우수상 수상작 케이스릴러
박은우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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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고등학생이던 예쁜 여동생이 친구와 함께 아는 명문대생 오빠들을 만나러 간다고 단장을 했다. 걱정하며 바라보는 손위 형제에게 동생은 낮에 만나서 놀다가 금세 들어올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동생은 집에 오지 않았다.


J 그룹 3세 조성주가 파티를 열 때마다 사용하는 엄마 명의의 청계산장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조성주가 직접 초대한 부유한 집안의 친구들이었고, 그들이 데리고 온 파트너는 하나같이 뛰어난 미모를 자랑했다. 초대를 받고 산장에 들어가려던 이들에게 한 가지 조건이 붙었으니 그건 바로 얼굴에 가면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물부터 영화 캐릭터, 배우의 얼굴 등 각양각색의 가면을 쓴 그들은 처음엔 거부감이 들었으나 파티의 성격을 생각하고 금세 수긍했다.

그렇게 30여 명이 초대된 파티에서 케이터링 업체 직원들이 음식을 비롯한 이런저런 서비스를 돕다가 늦은 시각이 되어 몇 명만 남고 퇴근을 했다. 술과 약에 취한 이들의 소란과 웨이트리스에게 치근덕대는 안하무인 도련님을 잠재우기 위해 곰 가면을 쓴 남자가 나타나 총을 쐈다. 평소에 절대 들을 수 없는 소리에 놀란 이들이 주목한 곳에 가면을 쓴 남자가 배에서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었다. 방금까지 웨이트리스에게 치근덕대던 사람이었다. 이후 여우 가면을 쓴 남자가 나타나 그들 모두가 인질이 되었음을 알렸다.




프롤로그로 시작된 소설로 인해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가슴을 답답하게 하리라는 걸 예상하게 했다. 피해자가 고작 고등학생인 여자애였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는 차차 밝혀지게 되겠지만, 그게 무엇이 됐든 최악일 거라는 건 안 봐도 훤했고 가해자 역시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기에 피해자 여고생의 가족이 모든 걸 계획하고 청계산장에서 재판을 벌이려는 것일 터였다.

본격적으로 청계산장의 파티가 열리기 전에 여러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의 단편을 이야기했다. 형사의 어머니가 돈을 불려준다는 사기 수법을 어디선가 듣고 온 해프닝이 있었고, 강남의 잘나가는 성형외과 의사가 의료사고와 향정신성 의약품 상습 복용으로 인해 의사 면허가 취소된 사건도 이야기하고 지나갔다. 청계산장 파티의 호스트인 조성주가 잠깐 등장했다 의문을 남기고 사라지기도 했다.

이후 주요 무대가 청계산장으로 등장해 파티의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초대된 손님은 물론이고 케이터링 업체 직원, 숨어 있을 인질범들까지 모두의 정체를 숨기는 게 일단 첫 번째 목표라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손님들은 은밀하고 퇴폐적인 파티이기에 가면을 쓴다는 걸 마음에 들어 했다. 얼굴을 가리면 무슨 짓을 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고, 사회적인 시선으로 인해 감추고 있던 욕망을 드러내기도 쉬울 테니 말이다.

그러나 파티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총성이 울렸고, 그 결과 한 남자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 걸 보여줬다. 고작 파티에 왔을 뿐인 인질들은 인질범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총에 맞아 죽고 싶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인질범은 일단 남자 인질들의 손발을 묶어 통솔하기 쉽게 했다. 그 이전에 핸드폰 및 소지품을 걷는 데 일부러 시간적 여유를 준 덕분에 산장 내부의 사정이 외부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경찰에게까지 이 이야기가 흘러들어간 건 당연했다.

프롤로그의 여동생을 잃은 유족이 진짜 가해자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이런 일들을 벌였다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마스터'라 불린 그 당사자의 정체는 쉽게 파악할 수 없었다. 오래전에 이 산장에서 치욕을 당하고 살해된 고등학생 민지영의 형제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알고 보니 민지영 외에 피해자가 더 있다는 게 드러나 누가 이런 일을 벌이는 건지 예측할 수 없게 했다. 산장 밖에서 백방으로 애를 쓰는 경찰과 인질범의 대치는 빈틈이 없어서 파고들기가 어려웠기에 인질범이 이 계획을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인질범이 나쁜 쪽이 아닌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억울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후에는 당연히 그를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안타깝고 분노할 과거가 있었기에 가해자는 똑같은 벌을 받아야 마땅했다. 복수로 인해 자신이 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괴물이 되어 간다고 느껴도 멈출 수가 없었다. 복수를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버리고 원하는 걸 손에 넣을 때까지 분노를 원동력 삼아 움직여야 했으니 말이다.

복수가 성공했는지 못했는지는 결말보다 앞서 밝혀졌는데, 그 상황에 대한 진실보다 앞으로 남은 이야기에 핵심이 있을 거란 생각에 계속해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펼쳐 나갔다.


복수를 위해 착착 맞아떨어지는 이야기가 매력적이었다. 이렇게 사적 제재가 이루어지고 그걸 환호하는 건 현실의 법이 공정하지 않기 때문인 게 당연할 것이다. 치밀한 과정의 복수와 그 복수가 성공해도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기에 결말은 씁쓸한 맛이 남았다.

"지금부터 여러분의 신분은 인질입니다. 당연히 우리는 인질범이지요. 그리고 이제 하나의 연극이 시작됩니다. 바로 인질극입니다." - P55.56

"저는 여기서 재판을 하려고 합니다. 재판정이 아닌 산속에 있는 산장에서 재판을 하려고 하니 이 역시 흔한 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아는 재판정에서는 열리지 못했고, 앞으로도 열릴 가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 오래전에 열렸어야 할 재판을 이제야 열게 되었습니다. 복잡해 보이지만 간단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수 년 전에 어떤 범죄 행위가 있었는데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백했음에도 재판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 재판을 지금 열고자 하는 것입니다." - P259

진실을 알아도 고통스럽고 알지 못해도 고통스럽다. 복수 역시 마찬가지다. 해도 괴롭고 안 해도 괴롭다. 그럴진대 안 하고 오래오래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사느니 빨리 하고 끝내는 게 낫지 않겠는가. - P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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