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폴링
T. J. 뉴먼 지음, 나현진 옮김 / 어느날갑자기 / 2024년 5월
평점 :
항공사 기장인 빌은 비행이 예정되어 있는 아침부터 캐리와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였다. 그날은 아들 스콧의 리틀 야구 시즌 첫 경기라 꼭 참석하기로 약속했었는데, 빌의 상사가 갑자기 비행을 바꿔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기장들끼리 종종 비행 스케줄을 바꾸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상사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어서 빌은 어쩔 수 없이 아들의 경기를 보지 못할 상황이 됐고 캐리는 그것 때문에 화가 난 것이었다. 빌은 집을 나서기 전에 인터넷 수리 기사가 온 것을 봤고, 여전히 화가 난 캐리에게 인사를 한 후에 공항으로 향했다.
빌은 비행 준비를 하고, 부기장 벤과도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가족 같은 동료로 지낸 조에게 캐리가 화가 난 일에 대해 상담을 한 후에 조종석에 들어갔다. 빌은 비행 직전까지 캐리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아내에게선 문자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도 빌은 맡은 임무에 충실했다. 핸드폰을 꺼두고 비행을 시작해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으로 향해 가기 시작했다.
비행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트북에 메일이 왔다. 캐리와 아들 스콧이 자살 폭탄 조끼를 입고 있는 사진이었다. 곧이어 페이스 타임이 걸려왔는데, 아침에 집에 인터넷 수리 기사라고 찾아온 샘이 똑같은 자살 폭탄 조끼를 입고 빌에게 인사를 건네며 선택을 강요했다. 샘이 지시하는 곳에 비행기를 추락시키거나 가족들을 죽이거나 둘 중 하나를 말이다.
일 때문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시간이 적은 사람에게는 그 짧은 시간이 너무나 애틋하고 소중할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빌처럼 비행기를 조종하며 땅덩이가 너무나도 넓은 미국의 국내로, 해외로 나가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에겐 입학이나 졸업, 운동 경기 등 가족의 중요한 행사에 꼭 참석하고 싶은 마음일 터였다.
빌 역시 그러했다. 아들 스콧의 리틀 야구 시즌의 첫 경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비행기 조종사라는 점 외에는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직장 내에서는 상명하복이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었기에 비행 스케줄을 바꿔달라는 상사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들의 경기에 참석할 수 없다는 점으로 인해 아내 캐리가 빌의 비행 당일 아침에 많이 화가 난 건 당연해 보였다. 그래서 이륙 직전까지도 캐리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 걸 보며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났겠구나 예상했다.
하지만 빌의 예상은 다른 쪽으로 뒤집혔다. 그의 가족이 인질로 잡힌 것이었다. 인질범 샘은 144명의 평범한 승객이 탑승한 비행기 추락과 가족을 살리는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빌에게 강요했다.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선택해야 하고 빌이 선택하지 않을 경우 플랜 B가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비행기에 탑승한 사람 중 샘의 동료가 있다면서 말이다.
샘은 정의로우면서 가족을 끔찍하게 여기는 사람이었기에 둘 다 선택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했다.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모르는 사람보다 당연히 가족을 우선시했겠지만, 샘은 직업 소명 의식 또한 투철한 사람이라 두 가지 모두 선택하지 않고 모든 이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겠다며 굳은 결심을 드러냈다. 샘이 다른 사람에게 절대 알리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를 구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알려야만 했기에 그는 가장 신뢰하는 오랜 동료이자 친구인 사무장 조에게만 털어놓았다.
이 부분에서 모두를 살리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담긴 캐릭터가 등장했으니 FBI 요원인 조의 조카 테오였다. 빌의 말을 들은 조가 테오에게 가족들이 무사한지 확인해달라고 부탁한 덕분에 출동한 그가 집으로 향했으나 집이 폭발하고 말았다. 이 사실을 비행기 안의 빌에게 알리면 예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게 당연했다.
소설은 비행기를 조종하는 기장 빌과 인질범 샘, 인질로 잡힌 빌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여러 캐릭터들이 함께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장 가까이에서 빌을 지지하며 도와주는 한편으로 승객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막중한 임무를 짊어진 조를 비롯한 다른 승무원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상에서는 조의 조카 테오가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빌의 가족을 찾고 구하려는 과정을 보여줬다.
중반 이후에 승객들에게 모든 사실이 빠르게 밝혀졌고 온 세상 사람들 또한 인질로 잡힌 비행기 추락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리고 그 비행기의 목적지가 밝혀지면서 통제할 수 없는 비극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줬다.
하지만 이런 소설의 특성상 비극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에 안도할 만한 방향으로 향해 갔고, 그 과정에서 뭉클한 감동까지 느끼게 했다. 그리고 인질범 두 명의 정체가 밝혀지며 지구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쥔 미국이 불러일으킨 비극이 무엇인지 깨닫게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질범의 행위가 정당화되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긴장감 넘치는 즐거움을 준 덕분에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건 승산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좋은 인간들, 즉 나이스한 미국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는 거야. 그것뿐이라고. 당신 같은 사람은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때 어떻게 할까?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탄 비행기를 고를까? 아니면 당신 가족을 고를까? 잘 들어, 빌. 이건 선택에 관한 문제야. 누가 살아남을지 당신이 선택하는 거.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거야." - P64
상상하면 할수록 캐리가 집에서 그 남자에게 고문을 당하며 고통으로 울부짖는 장면만 떠올랐다. 눈을 감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세상을 찾아 헤맸다. 그가 비행을 거절한 세상. 조종사보다는 아빠와 남편으로 있기를 결심한 세상. 가족들이 함께 잔잔한 일상을 보내는 세상. - P185
테오가 빌의 가족을 지켜줄 것이다. 빌은 비행기를 지켜 줄 것이고. 그러니 우리도 승객들을 지켜야만 한다. - P136
"사람들은 이 세상이 허락하는 만큼만 선하다는 진실. 당신이 날 때부터 선한 인간이 아니었던 것처럼, 나도 태생적으로 악한 인간은 아니었어. 우리는 그저 각자의 삶에 주어진 카드를 쥐고서 상황을 헤쳐 나갈 뿐이야. 그러니까 지금 같은 상황에서 당신은 당신에게 주어진 카드를 쓰게 되는 거고. 그럼 좋은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까? 빌, 이건 비행기 추락의 문제가 아니야. 선택의 문제지. 착한 사람이 사실은 나쁜 사람과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닫는 문제라고." (……중략) "당신들은 그저 항상 좋은 사람이 되기로 선택할 수 있는 사치를 누려 온 것뿐이야." - P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