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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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생태연구센터에서 일하는 아영은 강원도 해월의 폐허에서 유해 잡초가 이상 증식 현상을 보인다는 다른 관련 부처의 보고를 받았다. 아영은 그쪽에서 보내준 샘플을 분석하는 일을 하는데, '모스바나'라고 불리는 이 잡초에 대해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현장으로 직접 채취를 하러 간다.

그러던 중에 아영은 모스바나가 어릴 적 잠깐 살던 동네에서 괴짜 취급을 받던 희수 할머니가 키우던 잡초라는 걸 알게 된다. 신비로운 푸른빛으로 빛나는 풀이라고 말이다.


더스트 폴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을 때 더스트 내성종이던 나오미와 내성이 전혀 없던 언니 아마라는 실험을 당하던 연구소에서 도망쳐 입소문으로 전해지는 도피처를 찾아다녔다. 돌아다니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도 제대로 본 적이 없기에 그 도피처는 낙원처럼 여겨졌다.

도피처를 찾아 헤매던 자매는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빛을 보고 발걸음을 옮겼다. 자매는 그렇게 '프림 빌리지'에서 생활하게 됐다.




소설의 현재 시점은 대재앙이 종식된 이후의 지구였다. '더스트 폴'이라 지칭된 재난 시기에 인체에 유해한 먼지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그나마 내성이 있는 자들은 연구소에 붙잡혀 실험을 당했다. 인간의 경중을 따지며 주요 인물들은 먼지로부터 안전한 '돔'에 우선 거주권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그런 현실에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이들을 처리하고 해결하는 일을 맡은 공헌자는 더스트 폴이 종식된 이후 혜택을 받았다.

소설에 등장한 주인공 나오미와 아마라 자매는 더스트 폴이 일어날 당시 10대 중후반 소녀들이었다. 나오미는 먼지에 강한 내성종이었으나 아마라는 동생보다 조금 취약했는데, 현 사태를 해결하려는 이들로 인해 붙잡혀 실험을 당하곤 했다. 그리고 더스트 폴이 완전히 종식된 현재 시점의 아영은 더스트 시기와 종식 이후의 생태에 관해 연구를 하는 센터의 일원이었다.

그런 그들이 만나게 된 건 강원도 어느 폐허에 나타난 잡초 '모스바나' 때문이었다. 처음에 아영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 식물에 대해 별 감흥이 없었으나 어릴 때 본 신비로운 푸른빛을 내던 그 식물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모스바나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을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했다. 학회는 물론이고 인터넷 게시판까지 찾아서 겨우 만나게 된 사람은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버린 나오미였다.

나오미는 아마라와 함께 도피처인 '프림 빌리지'를 어떻게 찾아냈는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영에게 들려주었다. 어렵게 찾아낸 프림 빌리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규칙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었다. 지수 씨라고 불리는 리더가 사람들을 통솔했고, 그 규칙을 기꺼이 따르며 저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리고 마을에서 조금 동떨어진 곳에 유리로 된 온실에는 레이첼이 살아가며 식물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자신들만의 규칙을 지키며 살아가던 프림 빌리지는 더스트 폭풍을 대비하고자 레이첼이 준 식물을 숲에 심게 되면서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폭풍이 지나간 후 그 식물 모스바나가 식용 작물들까지 못 쓰게 만들어버린 후 분열되어 하나둘 프림 빌리지를 떠났다. 그런 사람들에게 지수 씨는 더스트로부터 지켜줄 거라고 하며 모스바나를 떠나는 이들에게 안겨주었다.

모스바나가 발견되고 수소문을 하는 아영과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오미, 그리고 다시 현재 시점으로 돌아와 그간의 이야기를 알게 된 아영이 남겨진 이에게 대신 마음을 전하는 결말까지 이어졌다. 살고 싶고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레이첼의 존재가 무엇인지 밝혀졌을 때 깜짝 놀랐는데, 그 덕분에 프림 빌리지 사람들이 꽤 오랜 시간 동안 더불어 살아갈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지수 씨와의 관계로 마음 한구석을 아프게 했고, 결말에 이르렀을 때 전하지 못했던 지수 씨의 마음과 단언할 수 없던 레이첼의 감정이 맞닿았어야 했다는 게 드러나 서글퍼졌다. 그제야 끝을 맺으려 한 레이첼의 홀가분함이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김초엽 작가의 단편 소설을 한 권 읽은 이후 처음 읽는 소설이다. 그동안 왜 안 읽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디스토피아와 재건 이후를 배경으로 현실과 맞닿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SF 장르라 상상력이 돋보였고, 엔딩은 감성적이라 좋았다.

"이 시대에도 불행한 일들만 있지는 않았다는 걸 사람들도 알게 되겠지. 우리에게도 일상이, 평범한 삶이 있었다는 거 말이야." - P177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은 식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지만, 식물들은 동물이 없어도 얼마든지 종의 번영을 추구할 수 있으니까요. 인간은 언제나 지구라는 생태에 잠시 초대된 손님에 불과했습니다. 그마저도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위태로운 지위였지요. - P365

"마음도 감정도 물질적인 것이고, 시간의 물줄기를 맞다 보면 그 표면이 점차 깎여나가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어떤 핵심이 남잖아요. 그렇게 남은 건 정말로 당신이 가졌던 마음이라고요. 시간조차 그 마음을 지우지 못한 거예요." -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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