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샨보이
아사다 지로 지음, 오근영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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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마음을 적시는 소설이 내게로 왔다.

아사다 지로. 유명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처음 대한다. 영화로만 접했던 [철도원]은 구입해놓기만 하고 이 책 저 책들에 밀려 아직 읽지 못하고 있다가 [슈샨보이]를 다 읽자마자 책장을 뒤져 곧바로 찾아내어 읽어가기 시작했다.

중간의 다른 작품들은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섣부른 판단은 할 수 없지만 10년 전에 나온 [철도원]과 최근 출판된 [슈샨보이]는 거의 비슷해 보인다. 정말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에 쓴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무라카미 하루키 이후 전작 읽기를 시도 할 만큼 마음에 드는 작가를 만나지 못해 나름 일본소설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말끔히 날려 보낸 책이다. 아사다 지로의 [슈샨보이]

소설은 소설일 뿐 작가 개인과 혼돈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글을 읽다 보면 글쓴이를 상상하게 되곤 한다. 어차피 글에 녹아 있는 사상은 글쓴이의 인품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아사다 지로의 단편들에 나와 있는 심리 묘사 부분을 보면 작가는 참 따스하고 정감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이야기의 내용이 자칫 잘못 흐르기 쉬운 신파로 싸구려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닌 절제된 내면의 깊이를 보여준다.




[슈샨보이]는 총 7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든 작품이 다 좋지만 그 중 [해후]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작은 온천 마을에서 안마사로 일하고 있는 도키에는 처음부터 맹인은 아니었다.

망막색소변전증이라는 유전이 원인인 병으로 그녀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보이지 않게 되어 사귀고 있던 의대생 에이치와도 헤어지게 된다. 이유는 에이치 부모님의 반대.

헤어졌지만 그녀는 그 사랑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간다.

제목이 가지는 [해후]의 의미는 무엇일까? 도키에와 에이치의 슬픔이 전이되어 지금까지도 먹먹한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리게 한다.




화사한 봄날 읽은 아사다 지로의 주인공들은 모두 쓸쓸하고 옛 사람들처럼 성실하다. 그들의 성실함이 그들의 인생을 좀 더 어둡고 좀 더 외로운 뒤안길로 안내하더라도 묵묵히 받아들이는 아름다움. 흔하게들 말하는 사랑이 평범하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성실함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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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잡
크리스토퍼 무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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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윤회: 생명이 있는 것, 즉 중생은 죽어도 다시 태어나 생이 반복된다고 하는 불교사상이라고 사전에는 정의되어 있다.

서양인인 작가 [크리스토퍼 무어]가 생각하는 윤회는 좀 다른 것 같다. [더티 잡]에서는 인간의 영혼이 육체와 함께 죽었다가 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육체가 죽을 때 잠시 그가 아끼던 물건에 옮겨가 있다가 재생 사용되는 것이다.

제목 [더티 잡]이란 이 영혼의 그릇을 수거하는 죽음의 상인을 뜻한다.

인간에게는 육체가 있고 정신이 있고 그리고 영혼이 있다.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영혼이 있는 사람이 있고 영혼이 없는 사람도 있어 영혼이 필요한 사람에게 스스로 옮겨 가기도 하고 죽음의 상인을 통해 자연스레 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어설픈 동양 사상을 기초로 한 기발한 상상력이다.




[죽음 앞을 지나쳤더니 죽음이 친절하게도 내 앞을 가로막았다] (11쪽)




요즈음은 생을 살면서 어떠한 자세, 가치관을 가져야 하나 막막해질 때가 있다. 특히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 받아들이는 자세는 많은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다소 기발하고 신선한 소재로 특히 죽음을 다룬 깊이 있는 이야기를 기대하게 했던 초반부와는 달리 이야기가 전개 되면서 코믹 호러물 정도로 느껴져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전형적인 베타남성 찰리 애셔는 딸 소피를 얻음과 동시에 사랑하는 아내 레이철을 잃게 된다. 아내가 죽어갈 때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죽음의 상인 민티 프레시를 목격함을 시작으로 그도 죽음의 상인으로 선택(?)되어 영혼의 그릇을 수거하는 더티 잡을 가지게 된다.

이야기는 식상하게도 선과 악의 대치구조이다.

영혼의 그릇을 지키려는 찰리와 그 영혼들을 이용해 세상을 지배하려는 악마의 엎치락뒤치락하는 싸움.

초반부터 너무 뻔하게 드러나서 복선이라고 할 수도 없는 딸 소피의 루미나투스 설정.

후반부에 등장하는 오드리의 활약, 다람쥐 인간의 등장은 나름 동양의 불교 사상을 주입 시키려는 작가의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양념으로 레즈비언에 대한 작가의 트인 사고방식도 책의 한 볼거리라고 할까?




[작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 감싸 안으라고 말한다. 죽음이 두렵고 불쾌한 이유는, 죽음을 출생, 성장과 같은 삶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죽음을 외면하고 인정하지 않고 피하려고만 들기 때문이라는 것.](표지 안쪽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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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니 비치 - 앞서가는 그녀들의 발칙한 라이프스타일!
로리 프리드먼.킴 바누인 지음, 최수희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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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inny Bitch '말라깽이 여자‘를 뜻하는 속어이자, 젊고 날씬하고 세련된 매력을 지닌 여성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요즈음 늘어나는 몸무게 때문에 고민하던 중 제목을 보고 망설이지 않고 선택하게 되었다.

스키니 비치라니 새해의 첫 번째 목표가 아니던가.

날씬해 보이는 여성이 긴 머리를 나풀거리며 강렬한 몸동작을 취하고 있는 표지하며, 전직 모델과 에이전트 출신의 매력적인 두 여성 저자를 보며 상상하던 다이어트. 그러나 책 내용은 평범한 다이어트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요즘 흔하게 듣는 말이 웰빙이다. 육체적·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삶의 유형이나 문화를 통틀어 일컫는 개념으로 책 내용은 진정한 웰빙에 다가서는 입문서에 가깝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먹거리를 과감하게 바꿈으로서 몸과 정신이 건강해지고 저절로 다이어트의 효과로까지 이어진다는 내용이다.

다이어트를 원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진짜 문제는 뚱뚱한 몸이 아니라 올바르지 못한 식습관에 있으며 식습관을 바로하면 날씬한 몸과 함께 성격도 좋아진다고 두 저자는 강력하게 주장한다.

산성인 설탕과, 단어로만 그럴싸하게 포장된 인공 감미료들, 그리고 갖가지 화약약품으로 이루어진 죽은 동물의 시체인 고기에서 벗어나 멋진 몸매와 긍정적인 성격의 채식주의자가 되라고 권하는 것이다.

특히 완전식품으로 알고 아이에게 권하던 우유와 달걀도 금지 식품이다. 도살장에 대한 묘사는 너무 끔찍해서 저절로 고기가 싫어질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관점으로 본다면 책에서 강력히 권하는 과일과 곡류라고 안심할 수 있겠는가. 오염된 토양, 거의 독약에 가까운 농약들은 어쩌란 말인가.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름도 모를 갖가지 살충제들.

유기농이라고 믿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는 것. 그것이 똑똑한 다이어트로 향하는 길일 것이다.




[비교는 우리에게서 즐거움을 강탈해간다. 무슨 짓을 하건 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슈퍼모델이나 유명 연예인처럼 보이기는 어렵다. 이 점을 받아들이면 한결 행복해질 수 있다. ~~~~~~~~~~~~~~~~~~~~~~~~~~~~~~~~~~~~~~~~~~~~~~~~~~~~~~

축복받은 당신의 몸을 최고로 여겨라.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 할 것, 바로 우리의 몸이다. (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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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
윤이형 외 지음 / 작가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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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소설만 그것도 한국 단편 소설만 읽었던 적이 있다.

매년 봄이 되면 출간되는 무슨무슨 문학상 수상 작품집 몇 권이면 한 해 동안 새로 발표된 작품 전부를 볼 수 있어 좋았다. 거기에서 맘에 드는 작가를 만나면 그 작가의 전작 읽기를 시도하곤 한다. 그렇게 전작 읽기를 마친 작가의 새로운 작품을 대하면 마치 오랜만에 친한 친구를 만난 듯 한 반가운 느낌이다.




[오늘의 소설]에는 그런 친구 같은 느낌의 작가들도 보이고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새로운 작가들도 보인다. 총 9편의 작품 중 전작을 읽은 작가, 작품을 읽어 본 작가, 전혀 새로운 작가의 비율이 3: 3: 3로 독서 편식이 심한 나에게는 탁월한 책의 선택이다.




[모두에게 복된 새해]의 김연수 작가, [여행]의 성석제 작가, [너를 사랑해]의 정미경 작가는 전작읽기를 마친 작가들이다.

 

그 중 김연수 작가의 [모두에게 복된 새해]는 기존에 가지고 있는 단편 모음집 3권에 중복 수록된 작품으로 문단에서 누구나가 인정하는 가장 뛰어난 작품이 아닌가 싶다. 특히 한결 성숙되고 안정된 분위기가 느껴져서 좋았다. 아 이 작가도 이렇게 나이를 먹는구나 하는 느낌, 이제는 품이 더욱 넉넉해지고, 상처를 넓게 감싸 안는구나하는 느낌이었다.




[너를 사랑해]의 정미경 작가는 대부분의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중단편 보다는 장편이 더 작품의 완성도가 높게 느껴진다. 아마도 처음 읽은 [장미빛 인생]의 인상이 워낙 강해서 그 다음 읽은 작품들에 덜 호감이 가는 모양이다.




[여행]의 성석제 작가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정말 대단한 작가이다. 그러나 전작 읽기를 하다 보면 작가의 색깔이 너무 뚜렷해 모두 비슷비슷하게 느껴진다.




[큰 늑대 파랑]의 윤이형 작가, [지진의 시대]의 김이은 작가, [곡도와 살고 있다]의 황정은 작가들이 이번 [2008 오늘의 소설]로 처음 만나는 작가들이다.

새로운 작가들의 글은 기존의 소설들과는 확연히 구분이 될 정도로 달라져 있다. 소설을 읽는 가장 큰 이유를 재미에 두고 있는 내가 선택하기에는 조금 망설여지는, 만화와 소설의 중간 정도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혁명 기념일]의 김경욱 작가의 작품은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단 한권만을 읽어 봤는데 2003년도 발행된 그 작품집과 분위기가 유사하다.

기회가 주어지면 전작읽기에 도전해 보고픈 작가이다.




[당신의 손에 잡힐 듯]의 권여선 작가는 그 나이대의 작가들과 작품풍이 비슷하지 않은 가 싶다.




[크로만, 운]의 박민규 작가 정도가 기존 작가와 신진 작가를 나누는 선이다. 나에게는 삼키기도, 뱉어 버리기도 애메한, 그의 작품들을 대하면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읽고 있다.




작품 하나하나 모두 평론들이 실려 있는데  전문 평론가의 평론을 읽는 재미도 [오늘의 소설]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작가는 신인 작가, 대작가의 구분이 가능하지만 평론가는 모두 전문가로만 분류하던 내게 신인 평론가의 어설픈 실수의 발견은 [오늘의 소설]을 머릿속에 각인시켜 주는 효과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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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티볼리의 고백
앤드루 손 그리어 지음, 윤희기 옮김 / 시공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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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4월의 어느 하루, 고전적인 느낌의 소설에 푹 빠져 지냈다. 이국의 낮선 작가가 쓴 집요하고 치명적인 사랑이야기에 중독되어 다른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그저 안타깝고 먹먹한 가슴만 쓸어내리던 하루였다.   




흔이들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고 한다. 아무리 애절한 사랑도 3년을 넘기지 못한다고들 한다. 우리 신체의 호르몬 분비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가는 사랑이 있다. 평생 동안 간절히 원하고 쟁취하려 노력하는 사랑, 평생 동안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사랑. 그러한 사랑 이야기가 [막스 티볼리의 고백]이다. 책을 덮은 지금까지도 잔잔한 막스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다.] (11쪽)라는 의미심장한 문구로 소설은 시작한다. 정신적으로는 정상적인 절차대로 성장해가지만 육체적으로는 70세의 노인의 몸으로 태어나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점점 젊어지는 운명을 가진 불운의 사나이 막스.

평생을 앨리스라는 한 여인만을 사랑하지만 그녀의 사랑을 얻지는 못한다.

정신적으로는 17세의 소년이지만 육체는 50대 노인의 몸으로 14세의 앨리스를 만나 그는 사랑의 좌절을 경험한다.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그녀와 헤어지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최상의 시기인 30대에 우연히 그녀를 다시 만난 막스는 신분을 속이고 그녀와 결혼에 성공한다. 하지만 앨리스 역시 평생 한사람만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기에 막스를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막스를 떠난다.

사랑을 잃은 고통 속에서 자신을 방치하고 유기하던 막스는 정신적으로는 60대 노인이지만 육체적으로는 12세의 소년의 모습으로 앨리스를 찾아가 그녀의 양자가 되어 자신의 아들 새미와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막스의 부모님을 제외하고 막스의 비밀을 알고 있는 단 한 사람 휴이.

그는 어린 시절 막스 가정교사의 아들로 평생을 함께한 단 하나뿐인 막스의 친구이다. 변호사로 성공해 부와 명예를 가졌음에도 행복하지 못했던 휴이. 그는 동성애자이다.




막스가 아들 새미 또는 앨리스에게 쓴 회고록 형식으로 되어 있어 이야기는 큰 기복 없이 잔잔하게 이어진다.

자신의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막스의 이야기가 아직은 사람들이 사랑을 믿고 서로에게 성실하던 전생의 어느 시대를 보여준 듯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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