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도둑놀이
퍼 페터슨 지음, 손화수 옮김 / 가쎄(GASSE)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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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나면 잔잔한 무엇이 마음을 후려치는 책들이 있다. 강한 무엇인가가 번득이기는 하지만 콕 집어 표현하기 힘든 것. 마음속의 이야기를 하는 듯 하면서도 결코 아무런 마음도 드러내지 않는 사람처럼 말이다.

퍼 페터슨 작가의 [말도둑 놀이]가 바로 내게는 그런 소설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뒤표지에 나와 있는 이국 작가의 사진을 오래도록 들여다봤다. 평범한 인물 사진이건만 내게는 그 표정에서 노르웨이의 숲이 연상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말도둑 놀이]로 처음 만나게 된 퍼 페퍼슨 작가는 노르웨이 출생으로 영미 문화권에서 다양한 상을 수상하고 호평을 받은 소위 잘 나가는 작가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국내에는 [말도둑 놀이] 이외에 번역된 책이 없는 듯하다.

[말도둑 놀이]는 과거와 현재 시점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다행인 점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는 나, 즉 주인공 트론 산데르로 국한되어 있다는 점.

67세의 나, 트론은 사고로 부인을 잃고 노르웨이의 동족 끝에 있는 강가의 작은 집에 개 한 마리와 함께 이사를 한다. 낡고 허름한 집은 노인이 혼자 살기에는 적당치 않아 보이지만 그가 혼자 조용한 삶을 위해 선택한 집이다. 강가의 낡은 집에서의 삶은 유년의 한 때로 그를 안내한다. 그의 성장기의 한 때를 같이 했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삶 속에서 사라져 버린 아버지, 그리고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친구 욘. 그들은 그 이후의 그의 삶에도 강한 영향을 끼친다.

중독이라는 것이 이럴까. 퍼 페퍼슨 작가의 글을 읽노라면 의식하지 못한 사이 서서히 그의 글이 주는 이미지, 정서에 빠져 한동안 헤어 나오기가 어렵다. 아주 사소하고 행복한 중독이다. 어서 그의 다른 글들이 번역되어 한동안의 감염이 주는 행복을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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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별 - 김형경 애도 심리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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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지인을 따라서 소위 ‘점집’이라는 곳을 다녀온 적이 있다. 별다르게 궁금한 일이 있다거나 묻고 싶은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순수하게 그저 호기심 반, ‘어디 뭐라고 하나 보자’ 하는 장난스런 맘 반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스님이라 칭하는 점보는 사람 앞에 자그마한 책상을 마주하고 앉자 갑자기 눈물보가 터진 듯 마냥 터져 나오는 오열에 당황스럽기만 했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몇 마디 이야기도 나누지 않고 그저 울고 있는 자신이 스스로도 의아하게만 생각되면서도 도저히 울음이 그치지가 않았다. 그렇게 약 한 시간쯤을 울다가 인사하고 나온 기억은 오랫동안 내 마음에 의문점을 남긴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보아도 도무지 이유가 떠오르지 않으니 난감할밖에.

그 때의 기억이 김형경 작가의 [좋은 이별]이란 책을 선택하게 했다. 그리고 새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 그때, 나의 무의식 저 밑바닥에는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이별의 상처가 웅크리고 있었나보다’ 하고 말이다.

지인을 따라서 가게 되긴 했지만 그전까지 마음속으로 비웃기만 하던 ‘점집’을 찾아 전전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도 생긴다. 그 사람들은 다 ‘치료사’가 필요한 것이다. 자신의 아픈 영혼을 찾아내 치료해줄 마음의 치료사. 우리나라 사회의 통념상 ‘정신병원’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와 함께 결코 만만치 않은 금전적인 압박도 사람들을 심리 치료사를 찾기보다는 ‘점집’으로 향하게 하는 커다란 요인이랄 수 있겠다.

김형경 작가의 애도 심리에세이인 [좋은 이별]은 소설가가 쓴 책이라서인지 비슷한 종류의 다른 책들에서는 주로 임상 경험의 실제 사례를 제시하고 치유 과정을 설명한 것에 비해 소설이나 그 밖의 책에서 사례를 인용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작가 자신의 경험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전에 작가의 소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읽으면서 작가가 단순히 소설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는 정도를 넘어서 본격적으로 심리학을 공부하지 않았을까 짐작했었는데 ‘역시나‘ 하는 마음이 든다.

살아가면서 늘 일상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다독여주고 위로해 주는 것, 그래서 다시 똑바로 서서 앞을 향해 걸어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 이런 것들을 위해 우리는 김형경 작가의 책을 읽는다. 우리 삶 가까이에 김형경 작가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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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게 나이 드는 법 46 멋지게 나이 드는 법
도티 빌링턴 지음, 윤경미 옮김 / 작은씨앗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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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부쩍 ‘어떻게 나이를 먹어야 하는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제법 고민도 되곤 한다. 아마도 이제 나는 더 이상 젊은 나이가 아니라는 것을 지각한 결과일 것이다.

이제는 그 무엇이 될 수 없고 이미 굳어져 있다는 자각은 참 마음을 서글프게 한다. 오르막길은 끝나고 천천히 내려가는 길만이 남아있다는 느낌은 무엇인가를 시도해 보려다가도 ’뭘 새삼스럽게 이 나이에...‘하고 주저앉게 만들곤 한다. 그래서 주변의 지인들에게서 우울증이나 심각하게는 공항장애 때문에 병원과 약물의 신세를 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기도 하나보다.

그러한 심리 상태에서 선택한 [멋지게 나이 드는 법 46]은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별 기대가 없었었다. ‘조용한 황혼을 준비하는 처세에 대해 미리 공부 좀 해두자’ 정도랄까. 내려가는 길에도 땅만 보지 말고 주변을 잘 살피면서 숨어서 피어 있는 들꽃도 발견하고 멋지게 군무를 이루는 나비의 무리도 놓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작가 도티 빌링턴은 열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비결을 밝혀내고 싶어 쉰 살이 되었을 때 대학원에 입학하여 심리학의 새로운 분야인 성인 발달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단지 공부만 시작한 것이 아니라 박사 학위를 따고 난 후에도 꾸준히 그 분야를 연구하고 조사하여 만들어진 책이 바로 [멋지게 나이 드는 법 46]이다.

총 46개의 짧은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작가가 면담한 내용을 바탕으로 실제 사례들이 제시되어 있다. 단지 사례의 열거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법과 아이디어가 수록되어 있다.

46장의 내용 하나하나가 다 유익한 정보이긴 하지만 특히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방법으로 42장의 ‘최초의 3분’을 실천해보려고 한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삐딱한 시선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이 마치 거짓에 속지 않고 진실을 꿰뚫어보는 혜안인냥 착각하고 살았던 자신을 긍정적인 사람으로 바꿔주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작가 도티 빌링턴은 말한다. 육체의 나이가 몇인가 와는 상관없이 사람은 언제나 성장이 가능하다고.

꾸준히 노력하여 10년 뒤에는 좀 더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발전된 나를 만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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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는 곤충 왕국 학교에서 살아가는 곤충들 1
강의영 외 지음, 박지숙 그림 / 일공육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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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곤충의 종류는 과연 몇이나 될까? 제일 먼저 ‘장수하늘소’가 떠오른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곤충 ‘장수하늘소’가 아니라 이외수님의 소설 [장수하늘소]이다. 그 소설을 읽으면서 ‘장수하늘소’가 곤충이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나는 일생을 살면서 곤충에는 별반 관심이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생긴 모습에서부터 일반적인 생활습관과 먹는 음식의 기호까지 나만 쏘옥 빼닮은 나의 아들은 곤충에 대한 관심만은 나를 닮지 않았다.

차로 집 앞까지 데려다주는 유치원과는 달리 그 나이에는 좀 멀다 싶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문제는 시작됐다. 어른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어린아이의 걸음으로는 30분정도 걸리는 거리를 오가면서 아이를 유혹하는 것이 생겼으니, 바로 ‘개미’란 존재였다.

집에서 마음 졸이며 기다리는 엄마는 안중에도 없고 하굣길에 이놈의 ‘개미’란 녀석만 눈에 보였다 하면 그 개미를 따라 자기딴에는 짧은 일탈을 경험하곤 신이나 하기만 한다.

서너 시간 만에 집에 돌아온 아들을 보고 어디 갔다 왔냐고 물으면 개미를 따라 갔다가 왔다면서 자신이 경험한 신비함을 풀어내느라 아이는 수다스러워진다. 그래도 집을 잃지 않고 찾아온 것이 대견하기만 하다.

비단 내 아이만의 사건은 아니지 싶다. 그 나이의 사내아이들이라면 아마도 비슷한 관심과 호기심이 있지 않을까. 그런 아이들에게 정말 유익하고 꼭 필요한 책이 바로 일공육사의 [학교에서 살아가는 곤충들]이다. 총 천연색의 사진들이 마치 실물의 곤충을 보는 듯한 착각을 줄 정도로 정밀하게 나와 있다. 특히 곤충에 별반 관심이 없었던 나 같은 엄마라면 더욱 필요하다. 아이의 왕성한 지식욕구에 뭐 아는 것이 있어야 대답을 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책을 먼저 읽고 나서 아이의 질문에 상세하게 대답해 줄 때 아이의 맑은 눈동자에 가득 차오르는 엄마에 대한 존경심을 상상해보라. 정말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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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 톨스토이와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인생
석영중 지음 / 예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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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와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인생.> 간단명료한 표지 문구이지만 무척 맘에 든다. 상상했던 것보다 좀 작은 책 크기에 살짝 들려했던 실망감을 덮어준다고나 할까.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라는 책을 선택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니 세상에, 글쎄 톨스토이의 작품이라곤 달랑 하나, 그것도 단편집으로 읽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읽으려고 미리 준비해둔 책도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톨스토이’ 하면 잘 알고 있는 작가인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불후의 명작이라는 그의 작품들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고작 제목뿐이면서도 말이다.

이런 상태에서 석영중 저자의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를 들고 나름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최소한 [안나, 카레니나] 한 권이라도 먼저 읽고서 석영중 저자의 책으로 넘어가야 이해가 쉽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읽다가 정 안되겠다 싶으면 그 때 생각해보지 뭐’ 하고 반체념 상태에서 읽기 시작했으나 결국은 그 자리에서 밤을 새고 말았다.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는 소설도 아닌 것이 소설보다도 훨씬 더 재미있다. 여러 가지 화려한 수식어가 있겠지만 그 모두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재미있다’ 이지 않겠는가.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는 톨스토이의 일생과 그의 인생관, 문학세계. 그리고 유명한 그의 부인과의 사생활등을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비교적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서술되어 있다.

귀족으로 태어나 성공한 작가의 삶을 살면서도 끊임없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했던 톨스토이. 다만 머릿속의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고 옳은 삶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던 작가의 삶을 살짝 아주 살짝 엿 본 듯한 기분이다.

 

[그를 정 비난하고 싶다면 그 소망의 진실성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소망의 실천 가능성을 너무도 가벼이 생각한 그의 교만을 비난해야 할 듯하다.] (222쪽)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는 책을 읽기 전에도 [안나 카레니나]와 어느 것을 먼저 읽어야 하나 고민하게 만들더니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석영중 저자의 다른 책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를 먼저 읽어야 하나 아님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어야 하나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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