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없는 생활
둥시 지음, 강경이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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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이라든가 대세에 별 관심이 없는 나는 책을 선택하는데도 그 버릇이 그대로 적용된다. 요즘 서점가를 휩쓸고 있다는 어떤, 어떤 책들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주로 오프라인 서점을 이용하면서도 그저 내가 즐겨 읽는 소설 코너에서 낯익은 작가의 책들만 사서 보게 된다.

그러한 연유로 일본 소설이 한참일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요즘에야 한권씩 선택해서 읽고 있다. 어디에 어떻게 적용하든지 숙성의 기간을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이점이 많다. 홍수에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고 이른바 검증된 책들만 고를 수 있으니.......

요즘의 서점가는 일본 소설에서 점차 중국 소설로 옮겨가고 있는 느낌이다.

중국 작가의 책을 고를 때는 많이 망설이게 된다. 아직은 숙성의 기간을 거치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중국 소설의 처음 시작은 쑤퉁과 위화의 작품으로 했다.

이유는 단지 그 작가들이 나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비슷한 흐름 속에서 성장했다는 유대감 때문이다. 그러한 요인들은 정서라든가 사상을 이해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친다.

서로 이웃해 있고 옛날부터 이러저러한 일들로 많이 엉켜 있어서 서양인의 시각으로는 잘 구별이 가지 않는다는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그러나 중국 작가의 소설들을 보다보면 고등학교 때 접하고 의무감으로 읽었었던 [신소설]을 떠올리게 된다. 이유가 무엇일까? 중국이 우리나라보다 3~40년쯤 뒤쳐져 있어서? 아님 대륙인 특유의 위트와 해학을 내가 소화하지 못하는 것일까?

조금은 복잡한 심정으로 둥시 작가의 [언어 없는 생활]을 선택했다.

둥시 작가 역시 먼저 접했던 쑤퉁, 위화등과 함께 1960년 이후 출생하여 1990년대에 등단한 [신생대 작가]그룹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기대를 가지게 한다.




[언어 없는 생활]은 [언어 없는 생활] [느리게 성장하기] [살인자의 동굴] [음란한 마을] [시선을 멀리 던지다] 등 5편의 중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 독립적인 작품들이지만 5편의 작품 모두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 자신의 의지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몇 편 접해보지는 못했지만 중국 소설의 특징은 입심이 좋다고나 할까. 어떠한 상황을 세련된 묘사가 아닌 거침없고 투박하게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전개한다. 그냥 날 것으로 드러내는 방식. 그러면서도 촌스럽다거나 지루하게 느끼지 않고 책장을 술술 넘기게 하는 것이 중국 [신생대 작가]그룹의 힘이고 능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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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후르츠 캔디
이근미 지음 / 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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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접하던 사춘기 때는 거의 에스프레소 수준의 진한 커피를 즐겼다.

단지 어디선가 보았던 문구 [지옥처럼 뜨겁고 독약처럼 쓰게]라는 말에 매료되어서.

기억이 가물거리기는 하지만 광고 카피는 아니고 어느 책에선가 읽은 구절인 듯하다.

지금은 설탕과 프림을 잔뜩 넣은 전통적인 다방 커피를 즐긴다. 그냥 놔둬도 인생살이가 그야말로 지옥이고 쓰기만 한데 굳이 커피까지 그렇게 마실 필요가 있나해서이다.

10대 후반부터 20대 후반까지.

각자 나름대로 고통을 호소하기도 하지만 밖에서 억지로 지옥을 끌어 들여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인생이 알록달록하고 달콤한 후르츠 캔디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그 시절을 한눈에 보여주는 책표지. 쉽게 소화해 내기에는 조금 버거워 보이는 총천연색 가로 줄무늬 스타킹에 빨간 구두, 짧은 스커트. 발랄하게 두 손으로 치마를 펼쳐들고 있다.

이근미 작가의 [어쩌면 후르츠 캔디]는 책 표지가 그 책의 내용을 다 담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평범한 집안, 지방의 그저 그런 대학교를 나온, 토플 점수도 대단치 않은, 주인공 조안나는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라는 생각으로 그냥 응시해본 국내 굴지의 광고회사 자이언트 기획에 덜컥 합격이 되면서 소설은 시작한다.

학벌 따지기로 유명한 자이언트에 지방의 그저 그런 대학을 나온 조안나가 합격하고, 그룹의 오너와 같은 조씨라는 이유로 조안나는 그룹의 조카딸로 오인 받게 된다. 동명이인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런 회사의 분위기를 조안나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명하지 않고 은근히 즐기고 나아가서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본인은 해명하려 했지만 일이 꼬이고 때를 놓쳤다고 변명을 한다.




나름 요즘 젊은이들의 꿈이라는 광고회사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지만, 삶의 치열한 현장을 보여 준다기보다 재미에 역점을 두고 그저 수박 겉핥기식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5~6년 전에 읽은 정미경 작가의 [장미빛 인생]이 책을 읽는 동안 자주 뇌리를 스친 것은 그러한 미진함이 느껴져서일 것이다.




[   나를 뛰게 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

핸드백에서 후르츠 캔디를 꺼내 입에 물었다. 사랑을 닮은 사탕의 달콤함이 입 안 가득 고였다.] (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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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그리고 시작
김명조 지음 / 문학수첩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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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까지는 정규 수업과정 중에 따로 반공 과목과 교련 과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 된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요즘에는 내가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고 지냈다.

세월이 그만큼 흐른 탓인지, 아니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발전한 탓인지 선거 때만 되면 심심찮게 등장하여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에 살고 있음을 새로이 기억하게 해 주던 간첩 사건이라든가 국가 전복 음모론등도 요즈음엔 보기 힘들다.

이러한 연유들로 김명조 작가의 [끝 그리고 시작]은 읽을까 말까 많이 망설이던 작품이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또는 너무 진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망설임.

그러나 책을 손에 든 순간 읽기 전에 가졌던 우려들은 말끔히 날아가 버린다. 책의 내용에 흠뻑 빠져 밤을 새고 말았다.

우선 스토리가 재미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도저히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법을 공부하고 법원의 재판부와 등기소등에서 근무한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이어진 사실적인 묘사 부분 또한 뛰어나다. 탄탄한 구성도 느껴진다.




그저 흔한 치정살인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극동 국장 살인 사건’으로 불리는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피해자의 처로서 그녀는 의과대학 부속병원의 의사이자 대학 교수이다. 피해자인 허준기의 후배 이재훈과 내연의 관계를 가지던 중 그 사실이 발각날 것이 두려워 처 심은희와 후배 이재훈이 공모하여 남편 허준기를 살해한 것이다. 처음에는 순순히 자백하던 심은희가 법정에서 자신의 자백을 번복하며 심문 도중 성폭행이 있었음을 폭로한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사건을 조사하다가 우연히 발견된 지문과 머리카락이 이미 사망한 황인성이란 사람의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전환점을 가진다.




법정 스릴러가 가지는 긴박감과 고도의 두뇌싸움이 주는 상상의 만족감에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납북과 고문. 탈북자들의 인권으로까지 연결된다.

특히 자국민의 보호에서는 아직도 멀기만 한 우리의 현실이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현재 중국에는 북한을 탈출한 주민이 30~40만 명쯤 있습니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는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북한을 의식한 정책이기도 하지만 이들의 인권이 국제적으로 드러나면 자국의 인권문제와 연관되어 전 세계의 질타를 받을 것을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탈북자들은 일정한 직업도 없이 산속이나 초막에 숨어서 막일로 겨우 입에 풀칠합니다. 대부분 여자가 노예처럼 팔려 다니며 매춘을 강요당하고, 남자들은 도시 뒷골목을 떠돌며 짐승처럼 살고 있지요. 이들은 거의 한국행을 원하는데도 한국 정부는 이들에 대해 공식적 입장을 밝히지 않습니다. 각자 알아서 제3국을 통해 올 테면 오라는 식입니다. 실제 탈북자 중에서는 한국대사관을 피해서 외국 공관의 도움으로 중국을 벗어나는 사람도 많습니다.] (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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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1 - 하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밀레니엄 (아르테)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아르테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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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을 읽으면서 나는 18세 때 느꼈던 독서의 즐거움을 재발견했다. 책을 손에 잡은 뒤 거의 자지 않았고, 2000페이지를 한 번에 읽어 내렸다. 밀레니엄은 마지막 페이지가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매 페이지를 음미할 수 있는 그런 책이다.](표지 뒤 소개문구)




책을 읽기 전 작가의 약력 외에는 어느 것도 보지 않고 본문부터 읽는 습관상, 책을 다 읽고 서평을 쓰려고 앉았을 때 비로소 발견한 표지 뒤편의 소개 문구.

책을 읽는 동안 느꼈던 나의 기쁨을 이렇게 정확하게 콕 집어 표현하다니. 

좋은 책을 발견했을 때 느끼는 사람들의 감정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모양이다.




스웨덴 작가인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을 선택한 이유는 사실 책의 명성도 명성이지만 특이한 작가의 이력에 더 끌렸었다. [밀레니엄]의 탈고 직후 출고도 보지 못하고 심장마비로 사망해 데뷔작이자 유작이 되어 버렸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아 32년을 동지이자 반려자로 살아 왔음에도 배우자는 인세 유산을 한 푼도 못 받는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40대 후반에 집필을 시작했다는 점 등에 흥미를 가졌었다.

모든 소설들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40이 넘어서 시작한 글에는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들과 사상이 그대로 묻어나지 않겠는가.




굵직한 두 가지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하면서 스토리는 진행된다. 이러한 구성의 경우 두 가지의 이야기에 따라서 화자가 바뀌는 것이 흔한 방법인데 [밀레니엄]에서는 이야기의 교차와는 상관없이 시점이 나누어진다. 두 남녀 주인공 미카엘과 리베스트로.




칙릿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비슷한 완벽남 미카엘 블롬크비스트. 그는 40대의 이혼남으로서 밀레니엄이란 잡지의 편집자인 동시에 공동 사주이다. 경제 기자인 미카엘이 그가 쓴 기사로 인해 법정에 서게 되고 실형을 선고 받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정말 재미있는 추리 소설적 요소를 두루 갖춘 주인공은 리스베트 살란데르라는 여성이다.

천재 해커이면서 사회적 부적응자로서 후견인의 통제 아래 살아가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1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는 그녀가 가진 미스테리적 요소들에 대한 답을 주지 않는다. 그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라도 2부 [휘발유통과 성냥을 꿈꾸는 소녀]의 출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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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된 평화
존 놀스 지음, 박주영 옮김, 김복영 감수 / 현대문화센터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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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것, 되돌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선 아무래도 회환이 따르게 마련이다.

있는 그대로 명확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흐려지고 굴절되어 왜곡된 기억으로 남게 되기도 한다. 공감이 가기는 하지만 무작정 따뜻한 시선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것이 성장 소설이 가지는 맹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신의 십대 시절에 대해 아련한 향수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1942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직은 전쟁의 여파가 미치지 않은 호젓한 사립학교를 배경으로 쓰이어진 존 롤스의 [분리된 평화]는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한다.




[“너도 여기서 재미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널 총이라도 겨눈 것처럼 억지로 끌고 왔으니까. 하지만 아무하고나 같이 바닷가에 올 순 없잖아. 혼자 올 수도 없고. 우리 나이 때는 같이 오기에 제격인 건 가장 친한 친구잖아.”

그리고 머뭇거리며 덧붙였다.

“바로 너 말이야”] (67쪽)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인격체인 두 소년 진과 피니어스.

명문의 사립학교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전쟁은 그들의 행동과 사고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끊임없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15년이 지난 뒤 화자인 진이 기억하는 피니어스는 그야말로 탁월하고 눈부신 존재였다.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타고난 운동신경과 뛰어난 리더쉽의 소유자로서 진은 그에게 강한 애정과 함께 묘한 열등감을 느낀다.

그 열등감을 공부를 열심히 해 최고의 성적을 따 내는 것으로 만회하려 하나 진은 피니어스가 자신의 공부를 방해한다고 의심한다. 자신이 피니어스를 질투하는 것처럼 피니어스도 자신을 질투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처음에는 의혹이던 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확신 쪽으로 치우치게 되고 진은 이중적인 감정에 괴로워한다.

그러한 와중에 우연한 사고로 피니어스는 불구가 되고 수술을 받던 중 목숨을 잃게 된다.

진은 사고 당시 자신의 무의식 세계에 고의성이 없었는지를 분석하고 또 분석하며 10대를 마감하고 어른이 된다.




[다른 이들은 모두 살아가다가 어느 시점에 주변 세계의 어떤 것과 격렬하게 부딪쳐 자신의 내부에 공동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와 동기인 이들은 대개 이러한 시점이 전쟁의 실상을 파악하는 때였다. 자신들이 사는 세상에 엄청나가 적대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 이들 성격의 단순성과 일체감은 무너지고 이들은 결코 이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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