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정말 사랑할 수 있을까
루이스 레안테 지음, 김수진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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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여년이 지나간 다음에 다시 그 사람을 만나도 내 감정은 과연 그대로일까?

내 마음은 [아니다.]라는 쪽으로 기운다. 사람의 마음에도 유통기한 같은 것이 있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므로.

사람이 항상 진실만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무의식중에 자신의 감정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변형시킨 기억을 간직하고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퇴색되고 왜곡되어진 기억을 따라 과거로 거슬러 갈 필요가 있을까 싶다.




스페인 작가인 루이스 레안테의 [너를 정말 사랑할 수 있을까]는 읽는 내내 지나간 내 젊은 시절을 기억하게 했다.

[너를 정말 사랑할 수 있을까]는 여주인공 몬세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서술하는 방식으로 쓰여졌는데 또 현재의 상황에서도 주로 과거의 회상 장면이 많은 탓이지 싶다.




만 열여덟이 지난 어느 날 몬세는 우연히 산티아고를 만나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다. 서양 영화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별로 특별할 것 없는 10대들의 그렇고 그런 사랑. 부유한 집의 딸인 소녀와 가난뱅이 소년. 사소한 오해로 둘은 헤어지게 되고 홧김에 산티아고는 입대를 자원해 사하라로 떠난다.

남은 몬세는 임신한 사실이 가족에게 발각되어 고통의 나날을 보내다가 유산하게 된다.

그 뒤 모든 것이 완벽한 남편을 만나 부부 의사로 평온한 삶을 산다.

하지만 유일한 그녀의 딸이 19세 때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고 남편은 젊은 여자에게 빠져 이혼을 요구한다.

불혹의 나이에 이르러 삶의 정체성을 잃고 혼란에 빠져있던 몬세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산티아고의 사진을 우연히 발견하여 산티아고가 살아있음을 알게 되고, 그를 만나러 사하로 떠난다.




두 남녀의 열정적이고 지독한 사랑이야기를 바탕으로 서사하라의 정치적인  상황이 은은하게 베여 있는 [너를 정말 사랑할 수 있을까]는, 이런 종류의 소설이 종종 범하는 오류인 강압적이고 웅변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작가 자신의 감정이나 정치성을 배제하고 읽는 이들이 판단하고 스스로 느끼게 하는 편안함.

마지막 장의 여운은 어떠한 소설이나 영화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애잔함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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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불임 클리닉의 부활
가이도 다케루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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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의학적인 전문지식이 전혀 없는 평범한 시민의 입장인 나는 의료분쟁이나 의료사고를 대하면 좀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했었다.

괜한 자격지심, 피해의식이라고나 할까.

현역 의사로 근무하면서 작가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가이도 다케루의 [마리아 불임클리닉의 부활]은 의료 현실을 잘 알고 있는 작가의 입장에서 쓰인 현장 고발성이 강한 의료 소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설 속에서는 우리가 강자로 인식하고 있는 의사가 또 다른 정치놀음의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의료현실이 우리와는 다른 일본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실제 있었던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온 듯한 소설 속의 에피소드는 평소 아무 근거 없이 삐딱한 시선을 유지해왔던 나를 반성하게 했다.




30여년을 의사로서만 살아온 작가가 어찌 글을 이리 잘 쓸 수 있는지. 작가 가이도 다케루의 소설 [마리아 불임클리닉의 부활]은 문체, 구성, 줄거리 모든 면에서 거의 완벽하다는 찬사를 주고 싶다.

이미 명성이 자자했던 작가의 전작들도 읽어야 할 책들 목록에 추가해 본다.




얼음마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소네자키 리에는 인공수정 전문의로서 명문 의과대학인 데이카 대학에서 발생학 강의를 하며 아르바이트로 일주일에 두 번 마리아클리닉에서 비상근 의사로 진료를 보고 있다.

대학병원 월급쟁이 의사의 박봉으로는 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묵인되어 왔던 이 아르바이트 행위가 대학이 독립 행정 법인화되면서 금지되고, 그 부작용으로 지역 의료 체제도 붕괴되기 시작한다. 의사의 부족으로 지역의 산부인과 의원이 문을 닫게 된 것이다. 그 결과는 당연 일반 시민들의 불편으로 이어진다.

그 밖에도 인공수정, 대리모 문제, 낙태, 기형아 출산, 미혼모 문제, 저출산 해결 방안 등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들을 작가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비판하며, 문제를 꼬집어 내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나아가 해결 방안까지 제시한다.




소설 속에서나 소설 밖에서나 인공수정의 문제는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의 한계를 모호하게 한다는 일종의 경각심을 갖게 한다. 그리고 휘파람새와 두견새의 일화에서 보여주듯 누가 진짜 부모인가 하는 문제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너무 급진적인 의학의 발달이 과연 인간에게 행복만을 주는 것일까?

씁쓰레한 여운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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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월요일 - 참을 수 없는 속마음으로 가득한 본심 작렬 워킹 걸 스토리
시바타 요시키 지음, 박수현 옮김 / 바우하우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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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 당겨진 고무줄처럼 치열하고 팽팽하게 사는 삶.

이십대 때 내가 동경하던 생의 모습이었다. 여러 가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칙릿 소설을 버리지 못하고 읽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본인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화려하고, 풋풋한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시절. 이십대.

어떤 행동을 해도 아름답게 느껴지고,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이십대는 아직 완성된 어른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나가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과 칙릿 소설 특유의 통통 튀는 발랄함과 상큼함에 대한 기대로 읽게 된 책이다. 시바타 요시키 작가의 [참을 수 없는 월요일].

[참을 수 없는 월요일]은 각각의 요일을 한 단락으로 하여 20대 후반 직장 여성의 일주일을 그린 소설로서, 우리의 주인공 네네는 결코 뛰어난 외모의 소유자도 아니고,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도 아니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백마 탄 왕자님은 코끝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일반 칙릿 소설과는 좀 다르다고 할까? 그러나 그러한 점으로 차별화할 순 없다는 생각이다.




네네의 일주일은, 그 날이 그 날 같은 지겨운 일상의 연속이지만 그 안에서 존경하는 상사의 불륜현장을 목격하기도 하고, 누구나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대단한 미인인 옆집 여자가 사실은 물건에 대한 집착으로 도벽까지 있어 자살을 시도하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한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때만 해도 왕따는 이웃나라 일본의 비틀린 모습으로만 이해했었다. 우리에겐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고, 전혀 상관이 없는 딴 나라의 일.

그러나 요즘에는 이 왕따 문제가 우리나라 청소년의 심각한 병폐로 매일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다. 사실 청소년에게 국한된 이야기도 아닌 모양이다.

완성된 인격체인 성인들의 집단인 회사 내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회 현상. 주인공 네네가 다니는 출판사에서도 이 이지메 현상은 있다.

문제는 가해자도 다른 측면에서 보면 자기 일에 열심인 평범한 사람으로 비친 다는 것. 주위 사람들이 피해자를 동정하기는 하지만 암묵적으로 가해자의 편에 서 있다는 것.

네네는 사회 병폐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이 문제를 바라본다. 그러나 20대 후반의 그녀는 비판의식을 가지는 선에서 끝. 구체적인 행동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좁히는 데 필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슬쩍 상대방에게 보여줄 수 있는 순간. 입고 있던 갑옷을 벗고 후~하고 속내를 드러낼 기회.](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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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과 알 - 138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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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나는 그리 좋은 딸은 아니었다. 자식으로서 말고 같은 성을 가진 딸로서 엄마에게 말이다. 다정다감하지도 못하고, 희생과 인내를 강요당하는 생을 사시는 것에 대한 측심도 부족했었다. 타고나기를 모성애라는 것이 많이 부족한 모양이다.

그러한 성격은 또 내 아이에게도 차갑고 엄격하기만 한 엄마가 되고 만다.

이래저래 나와 가족이란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미안할 뿐이다.




가와타미 미에코 작가의 [젖과 알]은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이차성징을 소재로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초경을 앞두고 불안하고 예민해져 있는 딸 미도리코는 반항의 한 방법으로 엄마 마키코와는 말을 하지 않고 필담만 나눈다. 혼자서 호스티스 생활로 딸을 키우느라 고생하는 엄마가 가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것이 미도리코의 속마음이다.

40을 앞둔 마키코가 유방성형을 하려고 하자 미도리코는 그것을 자신을 낳은 것을 후회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내가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을 흘깃 본 아들이 재미있냐고 물어보기에, 요즘 나오는 어느 선전 문구처럼 “딱 내 스타일이야”라고 대답했더니 아들 왈 “소녀티를 못 벗은 아줌마랑 어른인척 건방떠는 소녀 이야기지”한다.

책도 읽지 않고 제목과 표지만 보고 한마디로 저리 딱 꼬집어 내다니...... 더 이상의 정확한 표현이 있을까 싶다.




순수문학을 하는 신인에게 수여된다는 아쿠타가와상 수상작품인 [젖과 알]은 호스티스, 무명가수 출신의 작가가 썼다는 선전용 문구는 오히려 책의 빛을 반감 시킨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절제된 감정 묘사가 뛰어난 작품이다.

역자 후기를 읽어보니 책의 내용이 모두 오사카 사투리로 되어 있어 일본 독자들조차 읽기 어렵다고 하는데 번역본을 읽은 나는 그 맛을 전혀 느낄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이다.

일본 소설을 보면서 일어를 배워 원서로 읽어 보고 싶다는 욕심이 든 책은 아마 [젖과 알]이 처음이지 싶다.

자칫 잘못 표현하면 질척거리고 너무 뻔한 이야기라 지루해지기 쉬울 소재를 간결하게 깔끔하게 쓰여졌다 느끼는 것은 번역의 힘일까? 하는 의문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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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키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오근영 옮김 / 창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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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문득 잠에서 깨어 다시 잠들기 힘들어지는 때가 있다.

그럴 때, 이러저러한 공상을 즐기다가 지나가버린 과거의 어느 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저질렀던 잘못들이 떠올라 회한에 휩싸이게 되곤 한다.

그 대상이 어린 아들일 경우 더더욱 그렇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하고 간절히 바라게 되는 순간이다.

그토록 지나치게 엄격히 굴지 말았어야 했는데, 상처받은 아이를 좀 더 따뜻하게 감싸줬어야 했는데, 바로 그 순간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해 줬어야 했는데................

짧은 한마디, 잠깐의 포옹에 왜 그리 인색했을까?




다른 모든 인연들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경이롭게만 느껴진다.

삶의 가장 큰 선물이고 축복이다. 내 아이.

과거의 어느 한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어둠 속에서 울고 있는 아이에게 꼭 말해 줘야지.

“엄마가 있잖아, 엄마를 믿어”라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도키오]는 미래의 아들이 과거의 아버지를 만나 그에게 내 방식으로 말한다면 “엄마가 있잖아, 엄마를 믿어”를 들려준다는 이야기이다.

작가의 탁월한 입담과 추리 소설 기법이 가미되어, 짧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한번 책을 손에 잡으면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있는 소설이다. [도키오]




23살의 아버지 다쿠미는 어느날 자신이 친부모에게 버려져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이를 탓하며 불성실한 젊은 날을 보내고 있다.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려는 마음도 없고, 오로지 한탕주의만을 꿈꾸는 한심한 청년이다.

그러한 그에게 미래의 아들 도키오가 나타난다.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는 다쿠미를 다독이며 과거에 대한 오해로 응어리져 있는 마음을 도키오는 엉켜 있는 매듭을 풀듯 풀어 나간다.




[“다쿠미 씨랑 같이 있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 나는 행복했어요. 아니, 이 세상에서 만나기 전부터 그렇게 생각했어요. 지금 다쿠미 씨와 만나기 전에도 나는 충분히 행복했어요.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는걸요.”](451쪽)

부모로서 자식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는걸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일본 여행을 하게 된다면 꼭 아사쿠사 놀이공원에 가보고 싶다.

그곳에서 과거의 아버지와 미래의 아들이 만나는 장면을 되새겨 보며 다시 한번 부모와 자식의 인연에 대해 정리해 보고 싶어진다.

다행이 아사쿠사 놀이공원은 도키오가 걸린 병 [그레고리우스 증후군]처럼 작가의 창작물이 아닌 실재하는 놀이공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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