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 내 인생의 제1조, 제1절, 제1항은 이거다
클라우디아 프렌첼 지음, 조경수 옮김 / 이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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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의식하지 못한 사이 나는 밤낮이 바뀐 불규칙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점차로 굳어져서 이미 생활 패턴으로 자리 잡은 상태. 다음날 오전 중에 약속이라도 있으면 밤을 꼬박 샌 상태로 약속장소로 향해야 한다.

도대체 언제 부터였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알레르기 비염이 심해 약에 의존하게 되면서인 것 같다. 제대로 된 치료약도 아니고 다만 증상 완화제일 뿐임을 알면서도 당장 너무 괴로워 복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약을 먹으면 30분 이내로 증상이 멎으면서 견딜 수 없는 졸음이 온다. 마치 기면증 환자처럼. 장소불문하고 자고 싶어진다. 기면증 환자와 다른 점은 죽을힘을 다하면 참을 수 있다는 것. 최소한, 거리에서 쓰러져 자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

 

클라우디아 프렌첼 작가의 [싫어]는 바로 그 기면증 환자의 일상을 소재로 삼고 있다는 자료를 보고 무조건 선택하게 된 책이다. 비록 내가 앓고 있는 병이 기면증은 아니지만 대부분 알레르기 증상은 낮에 발생하기 때문에 약을 먹고 잠드는 시간은 한 낮이다.

[싫어]의 미리암처럼 난 주로 새벽에 잠에서 깨어 활동하게 되곤 하는데 새벽에는 주로 책읽기나 컴퓨터 작업 같은 정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 아무리 피곤해도 샤워마저도 삼가고 말이다.

용감한 미리암은 자정을 넘긴 시간에 뮌헨 거리를 산책하기도 하고 새벽 세시에 빨래를 하기도 한다. <비조직적 유형의 다상성 수면 패턴>이라는 중추신경계의 신경전달물질 장애로 인한 기이한 병 때문에 정규적인 직업을 가지긴 힘들지만 ‘플레이 보이’지 편집부에서 출퇴근이 자유로운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기도 하다.

책을 읽다보면 그녀의 빠른 수다를 따라가기가 벅차게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숨도 안 쉬고 끊임없이 독설을 늘어놓는 것 같은 나름 자기 관리가 분명한 20대의 미리암. 그녀의 의지는 너무 강하다 못해 자칫 도발적이고 신경질적으로만 읽혀지기도 한다.

평범하지 않은 자신의 삶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질질 끌려가지 않고 본인의 의지대로 바로 세우려는 노력. 당당함. 당당하게 꾸려나가는 자신만의 삶. 그것이 바로 클라우디아 프렌첼 작가가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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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시에 산다 비온후 도시이야기 2
박훈하 글, 이인미 사진 / 비온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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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나 자신을 어찌할 수가 없을 때가 있다.

극으로 극으로만 몰아가는 기분.

달랑 차 키와 지갑만을 챙겨서 나가 봤자 고속도로다. 햇빛 쨍쨍한 도로를 무작정 달렸더니 그 끝에 있는 도시가 부산이었다. 당시 네비게이션도 구비하지 않았을 때라 이정표에만 의지한 채 무작정 바다로 갔다.

해질녘의 바닷가에서 빈속에 커피만 한잔 마시고 밤새 그 길을 다시 달려 돌아오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나라가 생각보다 넓기는 넓구나.’였다.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왜 부산을 안 가 봤겠는가. 하지만 내 마음에 남아 있는 부산은 그 때의 그 바닷가뿐이다.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이 무서워 정작 바다 가까이는 가 보지도 못하고 멀리 주차장 차 안에서 막연히 바라보던 바다. 무슨 맛인지도 모르면서 습관적으로 뽑아 마시던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 차를 타고 조금만 가면 도로세인지 다리세인지 모르지만 자꾸 돈을 내야 해서 운전하는 동안 계속 무릎에 지갑을 올려놔야 했던 기억들.

다른 사람들이 부산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자갈치 시장이라든가 깡통시장, 남포동, 보수동, 무슨무슨 맛집, 무슨무슨 음식. 등은 전혀 모르면서도 내가 부산하면 반갑고 잘 안다고 느끼는 것은 오로지 그 날의 기억에만 의지해서이다.

 

처음 비온후의 [나는 도시에 산다.]라는 책을 선택한 이유는 내 머릿속에 이렇듯 순전히 주관적인 이유로 인해 왜곡된 이미지로 자리 잡고 있는 부산을 새롭게 정면으로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색감이 전혀 없는 흑백으로만 처리해서 일까?

사진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으면서도 [내가 도시에 산다.]에 실린 사진들을 보노라면 어쩐지 세련되지 못하고 낙후된 세계가 가지고 있는 슬픔이 느껴진다. 지난 7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나는 도시에 산다.] 라는 제목에서 상상했던 심플하고 세련된 도시의 밝음을 강조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밀려나고 뒤처진 것들에 대한 애환과 함께 지나간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이 책은 애초에 글과 사진이 종속적 관계가 아닌 상호간의 길항이 최대한 보장되도록 기획되었다. 이 말은 글과 사진이 내용상의 유사성보다는 도시를 바라보는 방법상의 일치를 최종적인 목표로 삼았다는 뜻이고,](9쪽)

 

글쓴이와 사진작가가 각각 다르고 위와 같이 머리말에서 확실히 설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 묶음으로 나누어져 있는 글 중 책의 앞부분에 등장하는 글의 성격 또한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인 관계로 [나는 도시에 산다.]라는 책을 보노라면 자연스레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사람살이의 그 비슷함이라니.

그 중 [육아일기]를 읽으면서는 새로 태어난 첫아이와의 대면 장면에서 보여주는 지은이 박훈하 작가의 황당한 반응에 폭소를 터트리다가 그의 결론에서는 곤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잘 쓴 글의 힘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투명하지 않는 사실은 진리일 수 없다. 제 아무리 줄기세포라 해도 형식의 천박함을 이겨내서는 안 된다. 진리는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 혹은 윤리의 문제이므로.](51쪽)

 

도시에서 나고 자란 탓일까. 시골 풍경의 묘사 보다는 시멘트 숲의 황량함을 보면서 더욱 애틋함을 간절함을 향수를 느끼게 된다. 낯선 도시를 여행하다가 문득 느끼게 되는 친숙함은 자연의 모습보다는 그 모습이 70~80년대의 서울의 모습을 닮아 있어서임을 깨닫곤 한다.

어찌 지나간 것이 다 아름답고 옳기만 하겠는가.

온통 정치적인 것들에 얽매여 살면서도 이 순간 과거와 미래 없이 그냥 이 도시를 그대로 받아들여 바라보기만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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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로하는 사진 이야기 - 보이지 않아도 희망은 있다 나를 위로하는 시리즈 1
이요셉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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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부끄럽게도 전문 사진집을 제대로 보기는 [나를 위로하는 사진 이야기]가 처음이다.

요즘 디카를 안 가지고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고 핸드폰 또한 사진 찍는 기능이 갖추어져 있어 눈만 돌리면 여기 저기 사진들의 천국이라 할 수 있는 시대에 ‘나 만이라도 한 발자욱 물러서서 좀 둔감하게 살자’ 하는 마음이 강했다.

컴퓨터에 올라온 사진들을 보면 꽃이든 책이든 실물 보다는 사진으로 보면 더 화사하고 예뻐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사실이 나에게는 더욱 사진에 대한 관심을 버리게 하곤 한다.

 

이제는 나를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 좀 더 다양한 것들로 눈을 돌려 더 늦기 전에 시야를 넓혀 보고 싶다는 생각. 그래서 한곳으로 굳어져 가는 사고로 인하여 잘못 판단하고 고집을 부리는 우를 범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들이 요즈음 나를 지배한다.

 

그러던 와중에 발견한 책이 이요셉 작가의 [나를 위로하는 사진 이야기]였다.

햇살이 따스하던 봄날 오후,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펼쳐든 [나를 위로하는 사진 이야기]는 그날 오후의 모든 일정을 취소하게 만들었다. 책 한권을 읽고 보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도 빠져 나오기 힘든 그 무엇, 짧은 나의 문장실력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

그러면서도 속되게 드는 생각.

‘아 이 좋은 글들을, 이 좋은 사진들을 왜 이리 작은 사이즈의 책으로 만들었을까? 더군다나 사진집인데~~~아쉬운 데로 두 배만 컸으면 좋겠다................’

평소 책을 보면서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구절이 나오면 연필로 줄을 긋곤 했다. 하지만 [나를 위로하는 사진 이야기]는 도저히 줄을 그을 수가 없었다. 아까워서. 정말 소중해서.

줄을 그어야만 하는 구절들은 자꾸 나오고 줄은 도저히 못 긋겠고 옮겨 적자니 이 느낌을 간직한 채 어서 다음 장의 글들을, 사진들을 보고 싶고........ 그렇게 그날 오후를 다 보냈다.

 

[자꾸 무언가를 보여 주려고 할 게 아니라 스스로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가치를 사진 안에 가둘 것이

아니라 내 삶으로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61쪽)

 

[누구나 자기 몫의 인생을 산다.

내 몫은 의심하고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다.](188쪽)

 

굳이 그의 일기가 아니더라도

그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분명 위로가 된다.

그리고 ‘이 세상을 이러한 방법으로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은 앞으로 내 삶의 방향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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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걷다 - 2009 경계문학 베스트 컬렉션 Nobless Club 11
김정률 외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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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문학은 우리에게 낯선 용어이다. 경계 문학이라는 용어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는 이 분야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고, 경계 문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 지는 채 3~4년이 되지 않을 것이다.

판타지 혹은 무협 소설로 불리우던 경계 문학이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의 작가들은 1세대라고 불린다. 이들의 작품은 그때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참신함 그 자체였고, 그렇기 때문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활자 중독을 일으킨다고 이슈를 되기도 했다.

 

경계 문학을 읽는 사람들에게 왜 읽느냐고 묻는다면, 그 중 대부분은 신선한 느낌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실제로 보통의 소설이 현실에 있을법한 일들을 허구로 꾸며낸 이야기라고 정의된다면, 경계 문학은 실제로 있지 않을 법한 일들을 허구로 꾸며낸 이야기이니까.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닌 부분들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작가 개인의 상상력에 더욱 의존하며, 사람마다 각각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이 다르기에 독자들은 글을 읽으며 참신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참신함을 느끼는 그 실례로, 익히 알고 있는 톨킨의 작품이나, 롤링의 작품이 있다.

 

로크미디어에서 출판된 [꿈을 걷다]라는 책은 경계 문학의 앞길을 밝히는 등불이 될 듯하다. 경계 문학을 읽는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는 작가들이 쓴 단편들을 모은 이 책에는 다른 책들과는 달리 상투적인 이야기가 거의 없다. 서로 죽이는 장면에 대한 지루하도록 자세하고 길기만 한 묘사 대신에, 잔잔한 분위기의 내용들이 있다. 대부분 판타지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이야기와 구성이 있다. 유행에서 벗어나, 다시 초기의 참신했던 글들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 문학 작품이나 그러하겠지만 특히 경계 문학이라는 장르를 읽는다는 행위는, 작가의 상상력을 읽는 것이다. 결코 만만하지 않은 기발한 상상의 세계. 그것은 신화의 다른 형태, 다른 이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경계문학이라는 상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첫 발걸음을 로크 미디어의 ‘꿈을 걷다’로 시작하는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 할 수 있겠다. 그것은 경계문학을 시작하려 할 때 망설이게 되는 커다란 이유들, 장편이다. 한번 시작하면 적어도 10권 이상은 읽어야 한다. 길게 늘려 놓은 책들이 가지는 커다란 단점. 3권 이상 읽으면 거기서 거기다. 라는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작가들의 글 중에서도 특히 전민희 작가의 [11월 밤의 이야기]가 맘에 든다.

[11월 밤의 이야기]는 너무 참신하고 섬뜩한 판타지의 세계가 아닌 낯익고 친숙한 신화 같은 느낌이다. 그 뒤로도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이어질 것 같은 느낌. 어느 날, 서점에서 [11월 밤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는 연작 소설을 만난다면 나는 나름 근거 없는 성취감까지 느끼며 기쁘게 그 책을 선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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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 가면 쿠바가 된다 - 진동선의 포토에세이
진동선 지음 / 비온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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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하면 떠오르는 것들.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 헤밍웨이. 그리고 바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엔 불가능한 꿈을 간직하자.‘

쿠바. 그곳은 나에게 불가능한 아름다운 꿈의 상징이다. 뜨거운 피를 가진 영원한 청년의 모습이다.

감히 쿠바를 여행하고 싶다거나 몸으로 부딪치며 느껴보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꿈에도 가진 적이 없다. 그저 불가능한 꿈을 가슴에 간직한 영원히 젊은 청년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쳐 구해내고자 싸웠던 아름다운 나라로만 각인되어 있다.

세상살이에 지치고 길을 밝혀줄 별도 없이 캄캄한 마음일 때 ‘아 쿠바라는 나라가 있었지. 그곳에는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그 신념에 충실하게 살다간 청년이 있었지’ 하는 정도.

 

10대가 시작되면서 나는 사진 찍기를 열광적으로 좋아 했었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사진 찍히기를. 보통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학교에 카메라를 들고 가서 친구들과 선생님과 사진을 찍곤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사진의 거의 90% 이상이 그 때 찍은 혹은 찍힌 사진들이다. 진동선 작가가 포착한 사진에 우호적인 쿠바 사람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할 수 있겠다.

 

[카메라에 순응적인 사람, 능동적인 사람, 자연스러운 사람은 3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먼저 순수함. 여태 사진으로부터 침해 당한적 없는 사람, 카메라의 위험성을 모르는 사람이다. 대체로 아이들, 기술문명을 모르거나 낙후된 곳 사람이다. 두번째는 좋은 경험. 삶으로부터 사진에 친숙한 사람, 카메라가 삶 가까이에 있는 비교적 서구사람이다.

세번째는 욕망과 자신감. 대체로 끼가 있거나 미남, 미녀 등 삶에서 사진으로부터 칭찬이나 부러움을 많이 받아 본 사람들이다.](33쪽)

 

세월이 지나 어느 정도 나이를 먹자 나는 절대적으로 사진 찍히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변변한 가족사진도 없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사진 찍히기가 싫다.

진동선 작가의 [쿠바에 가면 쿠바가 된다.]에 등장한 인물 사진들을 보면서 나는 묘한 상실감과 함께 희미한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느낀다.

어느 이국 스타의 브로마이드를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183쪽의 소년. 무엇인가 불만을 표출하며 울고는 있지만 결코 그 울음이 슬픔이라든가 절망의 어느 한끝도 전혀 비치지 않는 오히려 크게 터트리는 폭소와 닮아 있는 182쪽의 5살 정도의 아이. 그리고 비스듬이 기대어 앉아 정면 바라보기를 거부하는 할머니의 모습. 할아버지의 모습.

 

[채워진 사랑은 포만. 비워진 사랑은 결핍.

포만과 결핍의 간극은 늘 지겨움과 지루함.](168쪽)

 

진동선 작가의 포토 에세이 [쿠바에 가면 쿠바가 된다.]를 보면서 ‘아 사진은 그 자체만으로도 시가 되고 소설이 되는구나.’ 느낄 수 있었다.

사람과 거리와 바다와 그리고 신념까지.

쿠바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는 [쿠바에 가면 쿠바가 된다.]

아름답다. 느끼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던 나의 마음은 헤밍웨이 박물관을 보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강렬하게 강력하게 쿠바에 가 보고 싶다고.

헤밍웨이가 살았던 침실, 주방, 거실 그리고 그의 서재.

 

[서재를 바라보면 녹색 컬러에 좌측에 4단 높이의 책상이 있고, 정가운데는 심플한 보르네오 티크 책상이 놓였다. 그 위에 타자기 한 대, 연필통 한 개, 원고지를 눌러주는 조그만 중압기가 있다. 책상 우측으로는 천체 망원경 한 대가 삼각대에 놓여 있다. 언제든지 문만 열면 하늘의 별자리를 볼 수 있는 방향이다.](67쪽)

 

거기다가 진동선 작가는 말한다.

[역시 직접 와서 보아야 대문호의 체취와 숨결이 느껴지는 법이다.](67쪽)라고.

 

아아아 쿠바에 가고 싶다. 그리하여 직접 쿠바가 되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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