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시에 산다 비온후 도시이야기 2
박훈하 글, 이인미 사진 / 비온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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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나 자신을 어찌할 수가 없을 때가 있다.

극으로 극으로만 몰아가는 기분.

달랑 차 키와 지갑만을 챙겨서 나가 봤자 고속도로다. 햇빛 쨍쨍한 도로를 무작정 달렸더니 그 끝에 있는 도시가 부산이었다. 당시 네비게이션도 구비하지 않았을 때라 이정표에만 의지한 채 무작정 바다로 갔다.

해질녘의 바닷가에서 빈속에 커피만 한잔 마시고 밤새 그 길을 다시 달려 돌아오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나라가 생각보다 넓기는 넓구나.’였다.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왜 부산을 안 가 봤겠는가. 하지만 내 마음에 남아 있는 부산은 그 때의 그 바닷가뿐이다.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이 무서워 정작 바다 가까이는 가 보지도 못하고 멀리 주차장 차 안에서 막연히 바라보던 바다. 무슨 맛인지도 모르면서 습관적으로 뽑아 마시던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 차를 타고 조금만 가면 도로세인지 다리세인지 모르지만 자꾸 돈을 내야 해서 운전하는 동안 계속 무릎에 지갑을 올려놔야 했던 기억들.

다른 사람들이 부산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자갈치 시장이라든가 깡통시장, 남포동, 보수동, 무슨무슨 맛집, 무슨무슨 음식. 등은 전혀 모르면서도 내가 부산하면 반갑고 잘 안다고 느끼는 것은 오로지 그 날의 기억에만 의지해서이다.

 

처음 비온후의 [나는 도시에 산다.]라는 책을 선택한 이유는 내 머릿속에 이렇듯 순전히 주관적인 이유로 인해 왜곡된 이미지로 자리 잡고 있는 부산을 새롭게 정면으로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색감이 전혀 없는 흑백으로만 처리해서 일까?

사진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으면서도 [내가 도시에 산다.]에 실린 사진들을 보노라면 어쩐지 세련되지 못하고 낙후된 세계가 가지고 있는 슬픔이 느껴진다. 지난 7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나는 도시에 산다.] 라는 제목에서 상상했던 심플하고 세련된 도시의 밝음을 강조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밀려나고 뒤처진 것들에 대한 애환과 함께 지나간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이 책은 애초에 글과 사진이 종속적 관계가 아닌 상호간의 길항이 최대한 보장되도록 기획되었다. 이 말은 글과 사진이 내용상의 유사성보다는 도시를 바라보는 방법상의 일치를 최종적인 목표로 삼았다는 뜻이고,](9쪽)

 

글쓴이와 사진작가가 각각 다르고 위와 같이 머리말에서 확실히 설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 묶음으로 나누어져 있는 글 중 책의 앞부분에 등장하는 글의 성격 또한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인 관계로 [나는 도시에 산다.]라는 책을 보노라면 자연스레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사람살이의 그 비슷함이라니.

그 중 [육아일기]를 읽으면서는 새로 태어난 첫아이와의 대면 장면에서 보여주는 지은이 박훈하 작가의 황당한 반응에 폭소를 터트리다가 그의 결론에서는 곤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잘 쓴 글의 힘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투명하지 않는 사실은 진리일 수 없다. 제 아무리 줄기세포라 해도 형식의 천박함을 이겨내서는 안 된다. 진리는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 혹은 윤리의 문제이므로.](51쪽)

 

도시에서 나고 자란 탓일까. 시골 풍경의 묘사 보다는 시멘트 숲의 황량함을 보면서 더욱 애틋함을 간절함을 향수를 느끼게 된다. 낯선 도시를 여행하다가 문득 느끼게 되는 친숙함은 자연의 모습보다는 그 모습이 70~80년대의 서울의 모습을 닮아 있어서임을 깨닫곤 한다.

어찌 지나간 것이 다 아름답고 옳기만 하겠는가.

온통 정치적인 것들에 얽매여 살면서도 이 순간 과거와 미래 없이 그냥 이 도시를 그대로 받아들여 바라보기만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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