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엘리베이터 살림 펀픽션 1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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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하면 떠오르는 산발적인 이미지들.

편리함. 신분의 고속 상승. 운동부족. 낯선 사람들과의 동승. 그리고 밀실.

기노시타 한타 작가의 [악몽의 엘리베이터]는 이 중에서 ‘밀실‘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

이유 없이 잔인하기만한 스릴러물을 기피하는 취향 때문에 처음 [악몽의 엘리베이터]란 제목을 보고서는 선택하기를 망설였었다. 간혹 뉴스에 오르내리곤 하는 엘리베이터의 고장으로 내부에 갇히거나 혹을 바닥으로 떨어져 사람이 죽는 사고를 상상해보라. 정말 끔찍하지 않은가. 거기다가 악몽이라니.

그러나 그러한 우려는 다섯 쪽을 넘기기 전에 사라지고 궁금증과 재미로 가득 찬 책읽기가 펼쳐진다. 추리와 유머. 그리고 약간의 양념 같은 스릴러. 허를 찌르는 반전.

책을 잡자마자 손에서 놓지 못하고 단숨에 다 읽은 뒤 새로운 작가를 발견한 기쁨으로 기노시타 한타 작가의 약력을 살펴보니 [악몽의 엘리베이터]는 그의 처녀작 이었다. 각본가와 배우로 활약하고 있다는 작가의 이력 때문인지 소설은 마치 잘 짜여진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재미가 있다. 역시 영화로도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오가와, 마키, 사부로. 그리고 가오루. 단 4명만이 등장하고 장소도 엘리베이터 안이 전부이다. 소설은 등장인물 각각의 시점에서 같은 사건을 반복해 다루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평소 소설이나 영화를 볼 때 이렇게 같은 사건을 각자의 시점에서 다루는 방식을 좋아한다.

똑같은 사건을 자신의 입장에 맞추어서 판이하게 다른 해석을 하는 사람의 심리를 들여다 보는 재미. 정말 사람의 일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한 계절 탓에 감기에 걸려 며칠을 침대에서만 보냈다. 늘 새롭게 정말 지독하다는 이번 감기. 하지만 나는 이번 감기는 의외로 쉽게 지나갈 수 있었다. 이유는 기노시타 한타 작가의 [악몽의 엘리베이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동안은 책의 내용에 푹 빠져 흐르는 콧물도 지끈거리는 머리도 온몸이 쑤시는 아픔도 잠시 잊게 된다. 그리고 기노시타 한타 작가에게 중독되어 그의 다른 작품을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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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몽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2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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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란 작가의 명성만으로도 그의 책을 선택하는데 망설임은 없다. 비록 전작은 아니지만 몇 편의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소설을 보고 실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 그 이유이다. [용의자 X의 헌신], [탐정 갈릴레오], [비밀], [도키오] 그리고 [옛날에 내가 죽은 집]까지.

같은 작가의 작품을 계속 연결하여 읽다 보면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 같은 식상함을 느끼곤 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1985년 등단하여 20여 년 동안 꽤 많은 작품을 발표하면서 상도 많이 받고 대중적으로 사랑도 많이 받은 이른바 실력과 행운이 함께하는 작가라고나 할까. 더군다나 그는 공대를 졸업하고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쓰다가 마침내 전업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예지몽]을 보면 <유가와>라는 물리학자가 사건을 해결하는 중요인물로 등장하는데 전기 공학을 전공한 그의 경력이 단단히 밑받침이 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그저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작품이라서 선택한 [예지몽]이 바로 그 유명한 [용의자 X의 헌신] 시리즈 제2탄이었다. 제1탄 [탐정 갈릴레오]와 제3탄 [용의자 X의 헌신]을 읽고 거의 1년 정도 지난 뒤에서야 제2탄을 읽게 된 것이다. 시리즈이긴 하지만 각각 독립적인 이야기라서 순서를 뒤바꿔 읽어도 전혀 상관이 없다.

 

[예지몽]은 꿈에서 본 소녀, 영을 보다, 떠드는 영혼, 그녀의 알리바이, 예지몽 등 5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역시 [용의자 X의 헌신]과 [탐정 갈릴레오]에서 활약했던 구사나기형사와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가 등장한다. 책의 제목 [예지몽]에서 느낄 수 있듯이 5편의 단편 모두 신비한 초자연적인 요소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사건들을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가 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추리하여 사건을 해결한다는 구도.

추리소설을 읽는 재미중의 하나는 자신의 머리를 실험해보는 것인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독자에게 전혀 그러한 재미를 주지 않는다. 도저히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와는 두뇌싸움을 할 수가 없다. 먼저 항복하고 유가와의 추리를 따라가다가 무릎을 치며 감탄할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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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이 되는 절차
이남희 지음 / 텐에이엠(10AM)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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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그러고 보니 정말 오래전이다. 아직 2000년이 도래하기 전이니 말이다.

이남희 작가의 소설집을 몇 권 읽었었다. 그 때 당시 나는 장편보다는 단편을 선호하고 특히 국내 작가의 단편집을 주로 읽었었다. 그러한 결과로 이남희 작가의 작품도 단편집인 [사십세]와 [플라스틱 섹스]가 기억에 남는다. 그 당시 벌써 젊다고 할 수 없는 나이의 작가가 쓴 소설에 상당히 매료 되었었던 모양이다. 거의 10년 전에 읽은 소설의 내용이나 문체가 이리도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는 것을 보면.

철학을 전공했다는 작가의 이력에 걸맞게 작품들은 꽤나 똑 부러지고 페미니스트적인 성향이 강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제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이남희 작가의 소설 [연인이 되는 절차]를 만났다. 실용연애 소설이라는 부재가 붙어 있는데 머리가 끄덕여진다. [플라스틱 섹스]로부터 10년이 지난 뒤 그녀가 그려내는 연애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궁금함과 기대로 가득 차 책장을 펼쳤다.

 

[연인이 되는 절차]는 제목이 책의 모든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본문에서 종종 인용되기도 하는 한 때 잘 나갔던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를 떠올리게 하는.

이 봄 사랑을 찾고 싶은 청춘남녀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보라고 권하겠다. 마음이 붕붕 뜨는 이 계절에 심각하지 않은 연애소설을 읽고 덤으로 연인을 얻는 기술까지 습득한다면 그야말로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현재 사랑하는 사람과 열애 진행 중인 사람도 꼭 읽어둬야 할 연애 필독서라 할 만하다.

[연인이 되는 절차]는 일반적인 연애소설처럼 사랑하는 남녀가 등장하고 그들의 갈등을 서술하는 방법으로 짜여진 것이 아니라 이제 막 30대에 들어선 미혼의 (책에서는 미혼이 아니라 비혼이라고 표현하는데 아주 좋은 단어라고 생각한다. 비혼.) 여성과 그보다는 조금 연상의 역시 비혼인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연인을 만들고 그 연인과 결혼으로 성공하기 위한 카운슬러를 해주는데 외모로부터 말하는 방법, 만나는 시기와 시간, 그리고 구체적인 대사까지 정확하게 알려주고 제시해준다.

 

사랑에는 다양한 시선과 견해들이 있다.

눈으로 보이지 않고 추상적이지만 분명 존재하는 사랑.

내 생각과 다르다 해서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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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집
가토 유키코 지음, 박재현 옮김 / 아우름(Aurum)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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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태어나 계속 도시에서만 생활해온 자에게는 전원생활이라든가 귀소본능이란 단어는 익숙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흔히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지나가 버린 시절에 대한 향수와는 다른 느낌을 나타낸다. 한 번도 경험한 일이 없는 상황이나 장소가 어쩐지 익숙하고 친숙하게 느껴진다는 기시감과도 전혀 다른 감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이 정체불명의 귀소본능을 느낀다. 자연의 삶으로 돌아가고픈 마음. 돌아가다니.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었던 자연으로?

서울을 떠나 지방을 여행하다가 내가 와락 반가움을 느끼는 곳은 한적한 농촌의 풍경이 아니라 2~30년 전의 서울을 닮아 있는 낙후된 도시의 모습에서이다. 그곳에는 분명 유년의 기억을 되살리는 낯익은 풍경이 있다. 그 때를 닮아 있는 건물들. 복개를 하지 않고 다리가 놓여 있는 개천. 햇살이 내리 쬐는 외진 골목 안을 뛰어 다니는 아이들.

그 때 느끼는 감정은 귀소본능이 아니라 향수이리라.

 

가토 유키코 작가의 [꿀벌의 집]을 읽고 내가 느낀 감정은 정학하게 귀소본능이다.

자연으로 돌아가 다 내려놓고 편하게 쉬고 싶은 마음. 아마도 요즈음의 내가 무척 지쳐 있었나보다.

함께 살던 남자 친구가 떠나고 늘 잘 맞지 않아 불편한 엄마와의 관계에서 도피하다시피 향안 꿀벌의 집에서 점차 안정을 찾아가는 주인공 리에에게서 대리만족을 얻는다.

유키코 작가가 보여주는 자연은 한가롭고 편안하기만 한 모습은 아니다. 그녀가 그려내는 인간의 모습 역시 상처를 끌어안고 그 상처만을 드러내며 엄살을 떨고 있지는 않는다.

자연이든 인간이든 그저 담담히 한 발자국 물러서서 바라보는 시선으로 처리되어 있다.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 점이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자연 친화를 얘기하면서도 가족 같은 인간관계를 얘기하면서도 일정 거리 이상은 서로 접근하지 않는, 우리가 냉정한 도시인을 표현할 때 바로 떠올리는 그 사적인 거리 유지를 정확하게 지키고 있다.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었다는 것과 천박한 호기심을 드러내는 것을 구분하는 것, 상대가 가진 마음의 상처를 이해하는 것과 상대에게 무조건 의지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 스스로 치유하고 제대로 일어서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 그것이 가토 유키고 작가가 [꿀벌의 집]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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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신진혜 지음 / 창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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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허구의 인물이 가지는 특별한 생각이나 대사 등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겨두고 때때로 꺼내어 위로를 받기까지 한다. 그것은 내가 길을 잃고 헤매일 때 저 앞에서 길을 밝혀주는 등대이다. 그러나 실존했던 역사 속의 인물들. 특히 우리가 위인이라 칭하는 인물들에 대한 관심은 초등학교 이후 사라졌다. 감히 외람되게도 그들은 내게 현존하는 정치인들이나 티브이 속의 연애인들처럼 그저 대중에게 잘 알려진 사람들일 뿐이었다.

선택 속에서 각색되고 미화되어 남은 사람들이란 인상이 강해서였을까?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러하겠지만 특히 우리 땅에서 살다 간 옛 사람들이 지금까지 우리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기억될 수 있는 힘이란, 약자를 딛고 올라섰다는 것 외에 더 무엇이 있으랴 싶었다.

여성으로서 최초의 왕이 되고 삼국통일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선덕여왕]에 대해서도 잘 알려진 모란꽃일화 외에는 딱히 더 알고 있는 것은 없다.

그녀가 여성으로서 최초의 왕이 될 수 있었던 배경도 역사 지식이 얕은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만큼 통일 전 삼국 시대에는 성차별이 그리 심하지 않았었나보다 하는 궁금증 정도.

 

현재 대학에 다니는 어린나이의 역사학도가 쓴 소설 [선덕여왕].

이 소설은 나를 세 번 놀라게 한다. 흔히 가지는 선입견으로 작가의 나이에 놀라고 그녀의 이력에 또 한 번 놀라고 마지막으로 책을 덮은 뒤에는 정말 재미있어서 작가의 글 솜씨에 놀라게 된다.

소설 [선덕여왕]은 한 마디로 정말 재미있다. 책을 읽기 전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던 마음을 한 순간에 돌려놓을 정도로. 추리 소설도 아닌 책을 읽느라 밤을 새워 본 것이 도대체 몇 년 만인지. 흔히 역사를 배경으로 쓴 소설은 지나치게 야사 위주이거나 아님 너무 딱딱해 재미가 없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신진혜 작가의 소설 [선덕여왕]은 그러한 선입견을 저 멀리 던져버리게 하고도 남음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에는 정설로 이어져 내려오는 것과 그 외의 몇 가지 설이 더 있는데 작가는 소설적 재미를 위하여서인지 몇 가지 내용은 정설 이외의 것을 선택한 점이 흥미로웠다.

잘 알고 있는 김유신 일화로 우리는 김유신이 한 때 <천관>이라는 기생에게 반해 술집을 자주 드나들다가 어머니로부터 크게 꾸지람을 듣고 마음을 잡기로 결심하고 말의 목을 베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신진혜 작가는 소설에서 천문도를 그리고 나중에 첨성대의 기초를 마련한 신비의 여성 <진성>이란 인물을 창조해내고 김유신이 그 <진성>에게 반해 그에게 구애하였으나 거절당하고 말의 목을 벤 것으로 이야기를 그려 나간다.

 

작가 신진혜는 소설 [선덕여왕]을 4년의 기간 동안 처음부터 다시 고쳐 쓰기를 무려 5번을 반복했다고 한다. 완벽을 위한 이런 노력이 있었으니 독자로 하여금 한번 책을 잡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끝까지 다 읽게 만드는 힘과 재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작가의 그러한 열정을 되새기며 다시 한 번 [선덕여왕]을 꼼꼼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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