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의 집
가토 유키코 지음, 박재현 옮김 / 아우름(Aurum)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도시에서 태어나 계속 도시에서만 생활해온 자에게는 전원생활이라든가 귀소본능이란 단어는 익숙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흔히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지나가 버린 시절에 대한 향수와는 다른 느낌을 나타낸다. 한 번도 경험한 일이 없는 상황이나 장소가 어쩐지 익숙하고 친숙하게 느껴진다는 기시감과도 전혀 다른 감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이 정체불명의 귀소본능을 느낀다. 자연의 삶으로 돌아가고픈 마음. 돌아가다니.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었던 자연으로?

서울을 떠나 지방을 여행하다가 내가 와락 반가움을 느끼는 곳은 한적한 농촌의 풍경이 아니라 2~30년 전의 서울을 닮아 있는 낙후된 도시의 모습에서이다. 그곳에는 분명 유년의 기억을 되살리는 낯익은 풍경이 있다. 그 때를 닮아 있는 건물들. 복개를 하지 않고 다리가 놓여 있는 개천. 햇살이 내리 쬐는 외진 골목 안을 뛰어 다니는 아이들.

그 때 느끼는 감정은 귀소본능이 아니라 향수이리라.

 

가토 유키코 작가의 [꿀벌의 집]을 읽고 내가 느낀 감정은 정학하게 귀소본능이다.

자연으로 돌아가 다 내려놓고 편하게 쉬고 싶은 마음. 아마도 요즈음의 내가 무척 지쳐 있었나보다.

함께 살던 남자 친구가 떠나고 늘 잘 맞지 않아 불편한 엄마와의 관계에서 도피하다시피 향안 꿀벌의 집에서 점차 안정을 찾아가는 주인공 리에에게서 대리만족을 얻는다.

유키코 작가가 보여주는 자연은 한가롭고 편안하기만 한 모습은 아니다. 그녀가 그려내는 인간의 모습 역시 상처를 끌어안고 그 상처만을 드러내며 엄살을 떨고 있지는 않는다.

자연이든 인간이든 그저 담담히 한 발자국 물러서서 바라보는 시선으로 처리되어 있다.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 점이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자연 친화를 얘기하면서도 가족 같은 인간관계를 얘기하면서도 일정 거리 이상은 서로 접근하지 않는, 우리가 냉정한 도시인을 표현할 때 바로 떠올리는 그 사적인 거리 유지를 정확하게 지키고 있다.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었다는 것과 천박한 호기심을 드러내는 것을 구분하는 것, 상대가 가진 마음의 상처를 이해하는 것과 상대에게 무조건 의지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 스스로 치유하고 제대로 일어서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 그것이 가토 유키고 작가가 [꿀벌의 집]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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