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생거 수도원 펭귄클래식 8
제인 오스틴 지음, 임옥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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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번 <설득>에 이어서 읽은 '제인 오스틴(Jane Austen, 1775년 12월 16일 ~ 1817년 7월 18일)'의 <노생거 수도원>이다. <설득>에서 여주인공 '앤'이 가족들과 함께 '바스'라는 곳으로 이사 가는데, <노생거 수도원>의 배경도 마침 바스여서 한 번 읽어봤다. 처음엔 제목만 보고 무슨 수녀나 수도사의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노생거 수도원> 역시 제인 오스틴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여주인공의 사랑과 성장을 다루고 있었다.


주인공 '캐서린 몰런드'는 이제 막 18살이 된 아가씨이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천방지축에 당시 여성들이라면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할 우아함이나 차분함이 부족했다. 대신에 누구보다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좋은 점을 생각해 내는 등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캐서린은 가까운 지인이자 친척이었던 '앨런 부부'를 따라 '바스'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바스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처음에 캐서린은 크게 실망한다. 그러다가 무도회에서 '헨리 틸니'라는 신사와 만나는데, 틸니는 바스에 처음 온 캐서린을 친절히 대한다. 이 만남을 계기로 캐서린은 헨리에게 반한다. 틸니 이외에도 캐서린은 앨런 부인의 옛 지인인 '소프 부인'과 만나고, 부인의 딸인 '이자벨라'와 아들인 '소프 씨'와도 인연을 맺게 된다. 특히 이자벨라와는 친구가 되는데, 사실 이자벨라는 그전부터 캐서린의 오빠와 썸(?)을 타고 있는 사이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순수한 캐서린은 이자벨라의 우정에 감격하지만 정작 이자벨라를 포함해 소프 씨는 그녀에게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겉으로는 캐서린을 생각해 주는 척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자기들 뜻대로 움직이길 것을 강요한다. 이때 캐서린 눈앞에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헨리 틸니가 등장하고, 상황이 크게 바뀌는데....


<노생거 수도원>은 밝고 순수한 캐서린이 사회에 처음 발을 들이면서 겪는 고난과 행복을 다루고 있다. 초반부에는 앞서 말한 사회와 인간관계에서의 어려움을, 후반부에서는 헨리 틸리를 따라 그가 사는 노생거 수도원에 가게 되면서 겪는 사건 사고들을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초반부를 재밌게 읽었다. 뭔가 사회 초년생이 처음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게되는 마음 고생을 보는 것 같았달까. 작중 순진한 캐서린이 다른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을 때 상대방의 말속에 담긴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자꾸 실수를 저지르는 장면이 특히 그랬다. 헨리도 지적했듯이 캐서린은 사람의 이중적인 면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순수한 만큼 상대방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곧이곧대로 믿고 따르는 거다.

그리고 이런 순진한 캐서린의 마음을 악용하는 인물들이 바로 이자벨라와 소프 씨 남매다. 앞서 말했듯이 이들은 제3자인 내가 봐도 '불쾌할' 정도로 이중적인 모습으로 캐서린을 쥐락펴락한다(자기 필요할 때만 찾고, 필요 없으면 버림 ㅇㅇ). 장담하건대 캐서린처럼 처음 사회생활했을 때 크게 데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저 상황에 PTSD가 와서 책상 뒤엎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읽는 내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다행히 캐서린은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 + 틸니 남매의 도움으로 점차 성장해 이들의 계략을 뿌리친다.

결과적으로 조금이나마 성장하긴 했지만 남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약간의 백치미(?)마저 느껴지는 캐서린은 모습은, 지금까지 나온 제인 오스틴의 다른 여주인공들과 확연히 다르다. 아시다시피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는 상대방의 의중을 재빠르게 간파하는 건 물론이고, 능숙한 말솜씨로 은근히 돌려까는데 선수이다. <설득>의 '앤' 역시 엘리자베스처럼 신랄하지는 않지만 상황 파악을 하면서 눈치껏 적절하게 행동한다. 심지어 <이성과 감성> 속 감성적인 '메리앤'도 주변 눈치는 볼 줄 안다. 하지만 캐서린은 이들과 비교하면 그런 능력이 조금 떨어져보인다.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캐서린이 너무 미성숙하다며 꺼려 하지만 내 생각엔 바로 이런 점이 저자인 제인 오스틴이 생각했던 바가 아닐까 싶다. 누구나 처음부터 완벽할 순 없다. 엘리자베스나 앤, 메리앤도 처음에는 캐서린처럼 무척 순수했을거다. 그러다가 사회적 현실과 '사교'의 본질을 알게 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했던 건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캐서린'은 제인 오스틴이 창조한 캐릭터 중에서 사실상 '첫 번째' 캐릭터가 아니었을까? 캐서린을 보면서 우리는 제인 오스틴의 캐릭터의 가장 초창기 모습을 보는 거다. 실제로 <노생거 수도원>은 제인 오스틴이 어렸을 때(초창기 때) 썼던 습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죽기 직전까지 수정을 거쳐 사후에 출간되었다고 하니 할 말 다했다고 본다.


다만, 읽으면서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첫째로는 후반부에 틸니 남매가 사는 노생거 수도원에 방문한 캐서린이 고딕 소설에 과몰입하는 장면이었다. 당시엔 고딕소설이 인기였을지 몰라도 관련 지식이 1도 없는 나로서는 캐서린의 심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내가 아는 거라곤 그나마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폭풍의 언덕>이나 <제인 에어>뿐이었음...). 초반부엔 캐서린의 성장을 다루는 것 같았는데 뜬금없이 고딕 얘기로 이야기가 전개되니까 조금 황당했다. 물론 이전에도 캐서린이 소설을 자주 읽는다는 묘사가 있었지만 설마! 진짜로!! 과몰입을 할 줄이야!


두 번째로 아쉬웠던 점은 헨리 틸니라는 캐릭터와 급격하게 끝난 결말이었다. 작중 헨리는 굉장히 장난스러운 인물로 나온다. 순진해서 어벙하게 있는 캐서린을 놀리면서도 그녀의 서투른 면을 이해해 주고 친절하게 대한다. 이런 점 때문에 캐서린은 헨리에게 푹 빠지게 되는데 솔직히 나는 헨리라는 캐릭터에 대해 그다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취향 문제가 아니라 헨리의 하는 말이나 태도가 영 찜찜했다. 본인은 여성들의 권리에 대해서 인정하는 듯한 말을 하면서도 캐서린을 가르치려는 모습을 보이고, 여성들에 대해선 배려만 하지 그 외에는 딱히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무슨 사상가나 혁명가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뭐랄까, 약간 자뻑(?)이 심한 사람 같아 보였다.

무엇보다 소설 자체가 급박하게 끝나서 두 사람의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작중에서도 두 사람이 처음 만나고 결혼에 골인하기까지 12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하는 걸 보면 좀.... 물론 당시엔 긴 편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무튼, 개인적으로 헨리 틸니는 제인 오스틴 세계관에서 그저 그런, 밍밍한 남주였다^^;;;

결론적으로 <노생거 사원>은 미숙했던 캐서린이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며 성장해가는 이야기는 다룬 작품이다. 지금까지의 제인 오스틴 세계관에선 보지 못한 독특한 성격을 가진 주인공을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니 뭔가 새로운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읽어보시는 걸 추천한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진지함이나 완벽성 면에선 아쉽기 때문에 유의하시길 바란다!


헨리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남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지 그다지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 같군요"

"왜요? 그게 무슨 뜻이죠?"

"당신은 사람들이 어떻게 영향을 받는 것 같은가, 그리고 어떤 사람의 감정, 나이, 상황, 존경받는 생활 습관에 작용하는 동기는 무엇인가라는 점들을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고요. 다시 말해, 그것은 나는 어떻게 영향을 받게 되는가, 이러저러한 행동을 하는데 나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같은 의문들이죠"

(중략)

겉으로는 이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다른 것을 바라는 이유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래 가지고는 남들이 어떻게 그 속을 알 수 있단 말인가? - P176

소프 씨가 혼자 쏟아내는 이야기는 오로지 자기 자신과 자신의 관심사로 시작해서 그것으로 끝났다. (중략) 캐서린은 독자적으로 판단하는 습관이 거의 없었으며, 남자라면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전반적인 개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소프 씨가 끝없이 뿜어내는 장황한 자기 자랑을 참고 들으려니, 이 사람이 정말로 괜찮은 남자인가라는 의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 P93

내가 남자답다는 것을 보여주어야겠군요. 내 머리의 영리함뿐만 아니라 내 영혼의 관대함을 입증함으로써 말이에요. 난 남자들 중에서 여성들의 이해력이 떨어진다고 무시하면서 경멸하는 자들을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요. 물론 여자들의 능력이 충분하지도 예리하지도 않을 수 있어요. 혹은 열성적이지도 않고 예민하지도 않을 수 있고요. 그렇지만 여자들이 관찰력, 분별력, 판단력, 재능, 재치, 발랄한 상상력을 갖고 싶어 할 수는 있거든요. (중략) 몰런드 양, 나보다 여성의 이해력에 관해 높게 평가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내 생각에 여자들은 엄청난 이해력을 갖고 태어났지만 평생 자기 이해력의 절반도 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더군요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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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8
제인 오스틴 지음, 전승희 옮김 / 민음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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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은 우리에게 <오만과 편견>으로 유명한 '제인 오스틴(Jane Austen, 1775년 12월 16일 ~ 1817년 7월 18일)’이 쓴 '6대 장편소설' 중 한 권이다. 1815년에 집필했고 저자 사후인 1818년에 출간되었다고 하니 사실상 제인 오스틴의 마지막을 장식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단순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대표작인 <오만과 편견>과 달리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가진 작품이라는 평이 많아 궁금증이 들었다. 그렇게 완독한 결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단언컨대 <설득>은 제인 오스틴 세계관에서 성숙미가 최고인 작품이었다. 특히 여주인공인 '앤'이 그랬다.

앤은 준남작인 '월터 경'의 둘째 딸이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와 언니 '엘리자베스'와 살고 있었지만(여동생 '메리'는 일찍 결혼해서 출가함), 집안사람들 중에서 누구도 앤을 존중하지 않는다.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거나 무시하기 일쑤였다. '준남작'이라는 지위에 집착하며 허영심 가득한 가족들은 그렇지 않은 앤을 이해하지 못하고 따돌리는 것이었다. 반면에 월터 경의 지인인 '레이디 러셀' 부인은 유일하게 앤의 진가를 알아보고 아낀다. 그러던 어느 날, 19살이 된 앤은 23살의 젊은 청년 '웬트워스'와 사랑에 빠진다. 유순한 앤과 달리 웬트워스는 강직하고 올곧은 성격이었는데, 서로의 매력에 푹 빠져 결혼을 약속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에 웬트워스는 해군에 입대한지 얼마 안 되었고, 별다른 지위나 재산도 없어서 앤의 아버지인 월터 경은 두 사람의 사이를 반대했다. 심지어 레이디 러셀 부인도 성급한 결혼이라며 앤을 '설득'했고, 결국 이에 넘어간 앤은 웬트워스의 청혼을 거절하고 만다.


그 모습에 실망한 웬트워스는 앤의 곁을 떠나고, 이후로 앤은 장장 8년 동안(!) 그 일 때문에 속앓이를 한다. 사실 앤도 웬트워스와 함께라면 어떤 역경이라도 헤쳐나갈 각오가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설득과 만류에 휩쓸려 그만 거절을 한 것이었다. 이제 앤은 28살 노처녀(당시 기준에선 노처녀임 ㅠㅜ)가 되었다. 그동안 다른 남자가 청혼도 했지만 웬트워스 생각에 거절하고 줄곧 독신으로 살던 때에, 웬트워스가 돌아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때 앤의 집안은 아버지의 지나친 사치로 인해 원래 살던 저택에 세를 놓고 '바스'로 이사를 가던 중이었다. 다만 앤은 '머스그로브 씨' 가족에게 시집간 여동생 메리의 병간호를 위해 근처 머스그로브 씨의 저택에 남아있었고, 피하고 싶었지만 그곳에서 웬트워스와 재회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웬트워스는 8년 동안 해군에 있으면서 많은 공을 세워 '대령'이 되었고, 상당한 부자가 되어 있었다. 상황이 완전히 반대가 되었다. 신랑감으로서 맞지 않았던 그가 이제는 누구나 탐내는 1등 신랑감이 된 것이다!


메리를 포함한(당시 메리는 시집가서 앤과 웬트워스와 있었던 일을 모름)머스그로브 씨의 가족들은 이런 웬트워스 대령을 좋아하지만 앤은 슬퍼한다. 단순히 그가 성공했기 때문에 예전에 결혼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기보다는 남의 설득에 휘말려 웬트워스의 마음에 상처를 준 일 때문에 가슴 아파한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웬트워스가 자기한테 호희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닐지 내심 기대한다. 하지만 웬트워스 대령은 앤을 아랑곳하지 않고 대놓고 머스그로브 씨의 딸들과 친하게 지낸다. 이에 앤이 반쯤 체념하며 스스로를 되돌아보는데 그 모습이 너무 슬퍼서 보는 내가 다 마음 아팠다.


그러나 앤의 태도는 마냥 슬퍼한다기보다는 실연의 슬픔에도 꿋꿋이 자신의 일을 해가며 성찰해가는 모습에 가깝다. 한 마디로 실연 때문에 질질 짜거나 한탄만 하는 사람이 아닌 거다(외유내강형). 내가 이 작품을 성숙미가 있다고 말한 것도 바로 이런 앤의 모습 때문이었다. <오만과 편견>의 '리지(엘리자베스)'처럼 톡톡 튀고 활발한 사람은 아니지만 조용히 고통을 감내하며 성숙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캐릭터랄까. 더욱이 앤은 나중에 웬트워스 대령도 인정했듯이 여느 여성들과 달리 지성과 탁월한 관찰력을 가지고 있다. 19살 때는 레이디 러셀 부인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당했던 처지였으나 28살이 된 지금의 앤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설득하기도 한다. 잘 보면 머스그로브 식구들도 그렇고 앤에게 많이 의지한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인상적인 대사도 그렇고, 마지막 2~3장(챕터)에서 사랑에 대한 남녀의 태도를 말하는 장면에선 앤이 얼마나 현명한지 알 수 있다. 거기다 남녀 간의 구분이 심했던 당시에 저런 진지한 이야기를 남자와 동등한 위치에서 술술 말하는 앤의 모습 역시 인상적이었다. 여성도 남성들처럼 진지하게 대화하고 토론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달까.


이외에도 앤과 웬트워스 대령과의 로맨스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 앞서 웬트워스 대령은 8년 전 사건 때문에 배신감을 느껴 앤 앞에서 다른 여성들과 어울리지만 그럼에도 앤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 같이 산책을 하던 중에 앤이 힘들어하자 마침 마차를 타고 지나가던 누나 부부에게 몰래 귀띔해서 마차에 태워 집까지 가도록 해준다든지, 파티를 벌이는 와중에도 앤이 있는 근처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든지, 그리고 앤이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얼굴에 생기를 띄자(밝아지자) 흐뭇해하면서 바라본다. 그 밖에도 앤을 향한 소소한 배려가 은근 설레게 한다. 거기에 알게 모르게 두근거리는 앤의 반응도 귀엽다!


결론적으로 <설득>은 제인 오스틴의 다른 작품들 중에서 제일 성숙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또한 현실적인 면 때문에 남의 말에 '설득' 당하고, 그로 인해 고통에 시달리는 앤의 모습을 통해 결혼 문제에 자유롭지 못했던 당시 여성들의 슬픔을 엿볼 수 있었다. 겉으로는 앤과 웬트워스 대령의 사랑이라는 로맨스에 싸여있어도 그 속을 벗기면 사회적 현실(구시대적인 귀족이 몰락하고 해군을 비롯한 새로운 계층이 부상하던 시대)과 여성의 위치, 그리고 여성과 남성에 관한 심오한 이야기 있기 때문에 꼭 한번은 읽어봤으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제인 오스틴이 말한 소설의 힘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다고 본다!


추가로, 제목이 '설득'이고, 앤이 레이디 러셀 부인의 설득으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에 레이디 러셀 부인이 악인이라거나, 설득 자체를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결말 부분에서 앤은 자기가 설득당한 일을 후회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레이디 러셀 부인이 했던 설득 자체는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레이디 러셀 부인이 했던 설득은 잘못된 판단에 의한 것이었지만 앤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위험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한 것에 가깝다. 현실적으로 보면 앤이 무일푼이었던 웬트워스의 청혼을 받아들이는 건 정말 무모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작중에선 '설득'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레이디 러셀 부인이 했던 설득뿐만 아니라 찰스가 메리에게, 앤이 메리에게, 웬트워스가 루이자에게 등등 다른 수많은 인물들이 누군가를 설득하는 장면도 많다. 개중엔 앤의 사례처럼 설득으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좋은 선택을 하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타인의 설득에 대한 자신의 '선택' 아닐까. 본인이 어떤 판단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설득당할 때 결과가 달라지는 게 아닌가 싶다.

앤의 겨우는 아버지나 큰딸에게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총명하고 상냥해서 조금만 자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중요한 존재로 여겼을 텐데 말이다. 앤의 말은 언제나 무시되었고,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편리를 양보할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그녀는 그냥 앤일뿐이었다. - P11

지금의 앤 엘리엇은 젊은 시절에 강렬한 사랑을 하게 된 사람들에게 노력을 모욕하고 섭리를 불신하면서 지나치게 조바심을 내는 그런 조심성보다는 미래에 대한 낙관적 신뢰를 가지라고, 그편이 훨씬 낫다고 열렬하게, 진정 열렬하게 주장했을 것이다! 젊은 시절 신중을 강요당했던 그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로맨스에 대해서, 그러니까 서투른 시작의 자연스러운 결론에 대해서 배우게 된 것이다. - P47

더 나쁜 것은 그런 행동을 통해서 의지가 박약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성격이 과단성 있고, 자신만만한 웬트워스로서는 그런 박약한 의지를 참아 주기가 힘들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를 포기한 사람이었다. 그것은 지나친 설득의 결과였고 결점이자 소심함의 표현이었다. - P93

하빌 대령 : 여자의 변덕스러움을 말하지 않은 책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노래와 속담도 모두 여자의 변덕을 이야기하죠. 하지만 당신은 그게 다 남자가 쓴 거라고 하겠지요.



앤 : 맞아요. 책에 쓰인 사례는 들지 마세요. 남자들은 자기들의 이야기를 하기가 훨씬 유리한 상황이에요. 남자들이 훨씬 수준 높고 교육을 받고 손에 펜을 쥐고 있었잖아요. 책으로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어요. (중략) 그런 문제에 관해 증명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건 견해의 차이이고 증명이 불가능한 문제예요. 우리 각자가 자기 자신의 성에 관해 편파적인 견해를 갖고 논의를 시작해서 그 기초 위에 주변에서 일어난 우호적인 예들을 모두 쌓을 테지요. - P339

앤은 사람들의 눈에 확 띌 만큼 건강미가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반듯하고 어여쁜 이목구비가 미풍을 받은 덕분에 젊음을 되찾고 청순하게 활짝 피어났으며, 눈도 그 미풍 덕인 듯 생기가 넘치면서 총기를 빛냈다. (중략) 웬트워스 대령도 곧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그도 그 낯선 신사가 그녀에게 보내는 경탄의 눈길을 알아본 것이 분명했다. 일시적으로나마 밝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길은 ‘저 남자가 당신에게 반했군. 그리고 이 순간만큼은 나 역시 당신에게서 과거 앤 엘리엇과 비슷한 모습을 다시 발견하고 있소‘라고 말하는 듯했다. - P156

소설에는 인간 정신의 가장 위대한 힘이 표현됩니다.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완벽한 지식, 인간 본성의 다양한 모습에 대한 가장 훌륭한 묘사, 재치와 유머의 가장 활력 있는 토로가 최고로 정제된 언어로 세상에 전달되는 것입니다. - P374

제가 한때 설득당했던 게 잘못이었다 해도, 그건 무모한 짓을 부추기는 설득이 아니라 위험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설득이라는 걸 기억하셨어야지요. -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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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 21
오쿠보 케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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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출간되었네요!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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コミックビ-ム 2026年 3月號
KADOKAWA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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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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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조선 2 슬픈조선 2
가타노 쓰기오 지음, 정암 옮김 / 아우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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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권에 이어 이번 2권에선 일제강점기 때부터 해방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 중에서 항일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가 제일 인상깊다. 독립을 위해 자기 한 몸 바쳤다는 것 뿐만 아니라 그들이 남긴 말들이 몇 백년을 지난 지금도 심금을 울리게 한다. 1권 못지 않게 흥미진진하기에 2권도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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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8 21: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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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8 21: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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