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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ㅣ 민음사 세계시인선 44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최선 옮김 / 민음사 / 1997년 11월
평점 :
품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푸쉬킨의 대표적인 시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책은 러시아의 대표적인 소설가이자 시인인 알렉산드로 푸쉬킨의 시를 러시아 원문과 함께 실은 시집이다.
내가 푸쉬킨을 처음 접한 것은 [대위의 딸]이라는 작품이었다.
[대위의 딸]은 제정 러시아에서 일어난 '푸카쵸프의 난'을 배경으로 하는 역사 소설인데, 당시 러시아의 역사에 깊은 관심이 있었던 나한테는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인 재미를 선사했던 소중한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소설가로서의 푸쉬킨에는 관심이 많았던 반면에 시인으로서의 푸쉬킨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아마도 그때 나는 푸쉬킨을 '푸카쵸프의 난'이나 러시아의 현실을 알려주는 매개체로만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떠오른 푸쉬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가 생각이 났고 이 시집을 읽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읽어보니 왜 푸쉬킨이 러시아를 대표하는 '국민 시인'인지 알게 되었다.
자유와 개인을 중시했던 푸쉬킨의 시는 전반적으로 시인으로서의 위치와 억압이 아닌 자유와 자연을 숭배하는 시를 썼다. 여느 시인들과 달리 각종 미사여구가 달린 시도 아니었다. 한 마디로 단순하고 소박한 문체로 이를 노래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 소박함에 놀랐지만 일평생 주위의 억압(보수적이고 반동적인 러시아 현실, 사교계의 각종 음모들 등등)을 겪었던 푸쉬킨의 삶을 돌아보니 마음에 와 닿았다.
그의 시에게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위에처럼 소박한 말투뿐만이 아니라 바로 그러한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희망과 삶을 찬양했다는 점이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그의 대표시인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에서도 이런 생각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때문에 푸쉬킨의 시는 정말 위로가 되었다. 이런 점으로 인해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오늘, 다시 한번 푸쉬킨을 생각해 본다.
푸쉬킨 문학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 것은 한마디로 인간의 본성과 삶에 대한 긍정이다. 그는 죽음이 사방에 널려 있고 그것은 질곡으로 우리를 조여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 가운데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사는 인간 본연의 삶, 그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에게 소박한 말로 전해 준다. - P116
지난날의 슬픔은 - 포도주처럼 내 영혼 속에서 오래될수록 더 진해진다. 나의 길은 우울하다. 미래라는 일렁여진 바다는 내게 고난과 슬픔을 약속한다.
허나 오, 친구여,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나는 살고 싶다, 생각하고 아파하기 위해.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비통과 근심과 불안 가운데 기쁨도 있으리라는 것을.
- 비가 -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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