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본질 세창클래식 21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지음, 이서규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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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어바흐의 신작(?)이 나왔다. 우리나라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철학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Ludwig Andreas Feuerbach, 1804년 7월 28일 ~ 1804년 7월 28일)'는 독일의 유물론 철학자 중 한 명으로, <자본론>을 쓴 것으로 유명한 '카를 마르크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포이어바흐는 자신만의 사상 - 즉 유물론적 시각으로 종교의 모순을 철저히 비판한다. <기독교의 본질(1841)>에선 기독교 깊숙한 곳에 숨겨진 인간 중심의 이기주의 사상을 폭로했으며,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1851)>에서는 원시적 종교부터 시작해 전반적인 종교가 사실은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존경심에서 비롯된, 인간의 무지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포이어바흐는 자신의 저서에서 공통적으로 종교란 결국엔 ‘인간 숭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초창기 종교가 자연에 대한 경외심에서 비롯되었지만 문명이 발전해감에 따라 자연과 분리된 인간은 점차 자연이 아닌, 그 너머 피안의 세계에 있는 관념적인 '신'을 믿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어떻게 인간 숭배가 나올 수 있단 말일까? 스스로를 희생하고 신에게 의지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신 숭배 행위이지 않을까? 하지만 포이어바흐는 자신의 <종교의 본질>라는 저서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신을 '창조'했으며, 그 과정에서 인간이 왜 종교라는 행위를 통해 인간 숭배를 실현하는지를 설명한다.


포이어바흐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로 종교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초기 원시 종교에서는 인간이 자연에 자기 자신을 투사하면서 만들어졌다. 무생물에 인간적 감성이 거의 없는 자연이 자신처럼 감정과 생각,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를 들어 비가 내린다고 치자. 비는 단순히 구름 속에서 이루어진 여러 화학적 반응으로 인해 내린다. 여기엔 별다른 ‘인간적’ 의미가 없다. 구름이나 비는 딱히 의도를 가지고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따라 우울하거나 시적 심상이 강한 사람들은 이걸 보고 ‘비가 나를 괴롭히기 위해 내린다’거나, ‘하늘도 슬퍼서 눈물(비)를 흘리는구나’라고 말한다. 이렇듯 인간은 자연 현상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감동하거나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곤 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게 진실이 아니라 단순한 상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만 종교인들은 그렇지 않다. 하느님이든 알라든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 온갖 자연현상 역시 신이 일으킨다고 생각하지 않은가. 포이어바흐는 이러한 종교적 특성이 인간의 상상에 불과할 뿐, 진리가 아니라고 일침을 가한다.


포이어바흐는 인간이 자연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고 봤다. 초창기 원시적인 인간은 자연 없이 존재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자연은 먹을 것과 곡식을 주는 등 고마운 존재였지만 동시에 천둥 번개를 비롯한 무시무시한 자연재해를 주는 무서운 존재였다. 예측 불가능하고 불가사의한 자연을 인간은 어떻게든 이해하고자 했고, 자기 자신을 투사하는 방식을 통해 자연을 이해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의 존재 이상의 것을 인지하고 이해할 수 없었기 때이다. 인간에게 이로운 것은 곧 신에게도 이로우며, 인간에게 해로운 것은 신에게도 해롭다. 잘 생각해 보면 신은 우리처럼 입이나 장기 같은 신체 기관이 없는데 고대 사람들은 소나 다른 가축들을 신에게 제물로 바쳤다. 그리고 이걸 신이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일일까? 이외에도 고대 이집트와 고대 그리스 신들은 모두 인간처럼 생겼다. 인간처럼 감정을 가지고 있고, 인간처럼 먹고 마신다. 기독교의 신도 마찬가지다. 야훼는 질투하고 진노한다.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종교에서의 신은 인간과 다른 존재지만 동시에 무척이나 인간 같다. 포이어바흐는 모든 종교는 자연이 자신과 같다고 생각하는 상상(투사)에 기초하고 있기에 그 자체로 허구이며, 이러한 신 안에 있는 인간적 특성을 찬양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인간 숭배 행위라 말한다.


하지만 포이어바흐가 경고한 것은 단순히 종교의 본질이 인간 숭배 행위라는 사실뿐만 아니다. 인간으로서 인간을 숭배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또는 일부로 모른 채 하며) 자꾸만 허상의 신에 매달리는 행동이다. 특히 관념적인 신에 매몰되어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포이어바흐는 인간이 인식한 '인간적인 자연' 또는 '인간적인 신'은 허구이며 보편적 진리가 아닌, 전적으로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인간 중심적인 종교관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러한 신들은 현실 속 실존하는 인간과 완전히 다른 관념적인 존재이기 때문에(인간의 추상적인 상상에만 의존하므로) 이에 매몰될 경우 현실 세계와 동떨어지는 '인간 소외'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봤다.


따라서 우리는 신이 있기에 인간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있기에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인간은 신을 통해 죽지 않은 영원함과 무한성을 바라지만 돌아오는 건 신의 침묵과 몇십 년 후 다가올 죽음이다. 하지만 이런 냉혹한 포이어바흐의 주장에도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처럼 하나의 '희망'이 남아있다. 다름 아닌 '사랑'이다. 포이어바흐가 종교를 비판한 건 사실이지만, 그 목적은 종교의 완전한 소멸이 아니다. 그는 종교가 헛된 상상력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그러한 종교가 '인간'을 찬양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는 신이 아닌 '인간'을 사랑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그것도 현실에 존재하는,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인간을 사랑하라고 말이다. 물론 이런 주장 역시 추상적이라 훗날 마르크스를 비롯해 다른 철학자들에게 비판을 받지만, 종교적인 시선이 아닌 유물론적인 시각으로 종교를 신랄하게 비판했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는 크다. 유물론 철학이나 마르크스 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종교인이지만 따끔한 충고를 듣고 싶은 사람에게도 추천하고픈 책이다.



처음에 제목을 보고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와 같은 책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종교의 본질>은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보다 일찍 나온 책으로, 구성이나 내용도 다르다. 뭔가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 초기 원고 같았달까. 구성 자체도 뭔가 명언집 같아서 좋았다.

인간의 본질 또는 신 - 이것을 설명하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인데 - 과 구분되는 독립적인 존재, 즉 인간적인 본질, 인간적인 성질, 인간적인 개성이 없는 존재는 실제로는 자연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종교에서의 인간의 악의 없는, 무의식적인 자기 기만은 자연종교에서는 하나의 분명한, 명백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인간은 그의 종교적인 대상들에게 눈과 귀를 달아 주고, 이러한 눈과 귀가 인위적인, 돌처럼 차갑고 어설픈 눈과 귀들이라는 점을 알고 목격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실제적인 눈과 귀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은 종교에서 보지 않기 위해, 완전히 눈을 멀기 위해 눈을 가지며, 사유하지 않기 위해, 매우 아둔하고 어리석어지기 위해 이성을 가진다. 자연종교는 표상과 현실성, 상상과 사실 사이의 명백한 모순이다. 현실에서 죽은 돌이나 통나무는 자연종교의 표상 속에서는 살아 있는 존재이며, 가시적으로는 신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이지만, 비가시적으로는, 즉 신앙에 의해서는 하나의 신이다. - P80

그 대신에 성실하고 겸손하게, 전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나는 근거를 알지 못한다. 나는 나에게 자료, 재료가 없기 때문에 설명할 수 없다. 당신은 당신 생각의 이러한 결핍, 이러한 부정, 이러한 공허를 상상을 통해 실재적인 존재, 비물질적인 존재들, 즉 물질적이지 않고, 자연적이지 않은 존재들인 그러한 존재들로 변형시킨다. 왜냐하면 당신은 물질적인, 자연적인 원인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P80

세계는 우리에게 사유를 통해, 적어도 형이상학적이고 초물리적인, 실제적인 세계를 추상화하는, 이러한 추상 속에서 그의 참되고, 최고의 존재를 정립하는 사유를 통해 주어지지는 않는다. 세계는 삶을 통해, 직관을 통해, 감각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다. 추상적인, 단지 사유하는 존재를 위해서는 어떠한 빛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존재는 결코 눈, 온기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존재는 감정을 갖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세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존재는 세계를 위한 어떠한 기관도 갖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존재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 P56

따라서 신은 그를 숭배하고 그에게 기도하는 인간을 전제로 한다. 신은 그 개념이나 표상이 자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인간에 의존하는 존재이다. 기도의 대상은 기도하는 존재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신은 그 존재가 오직 종교의 존재와 함께, 그 본질이 오직 종교의 본질과 함께 주어져 있는 대상이며, 따라서 이러한 대상은 종교의 외부에 있지 않고, 종교와 구분되지 않으며, 종교에 의존하고, 이러한 대상 속에서는 종교에서 주관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 이상의 것이 객관적으로 포함되어 있지 않다. - P130

자연 속에서 자연 자체가 아니라 다른 존재가 나타나며, 자연은 그와 다른 존재에 의해 이루어지고 지배를 받는다는 믿음은 근본적으로 유령들, 악령들, 악마들이 적어도 일정한 상황에서 인간을 통해 나타나고, 인간을 홀린다는 믿음과 같은 것이며, 실제로 자연이 어떤 낯선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해 사로잡혀 있다는 믿음이다. 무론 또한 실제로 이러한 믿음의 입장에서는 자연이 어떤 정신에 의해 사로잡혀 있지만, 그러나 이러한 정신은 자연을 자신의 존재와 상징과 거울로 만드는 인간의 정신, 인간의 상상, 무의식적으로 자연 속에 스스로 집어넣는 인간의 심정이다.

"당신의 마음처럼, 그렇게 당신의 신이 존재한다"

인간이 원하는 것처럼, 그렇게 인간의 신들이 존재한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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