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강유원 옮김 / 이론과실천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칼 마르크스의 친구이자 이념적 동지였던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년 11월 28일 - 1895년 8월 5일)'가 쓴 독일 관념론 비판서이다. 원래 본 책은 1845년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서문에서 자신들의 사상이 이전의 독일 고전 철학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밝히고 이를 비판하기 위해 쓴 것을 시작으로 만들어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당시 사정으로 인해 미처 출판하지 못했고, 마르크스 사후 전 세계로 퍼진 마르크스의 사상이 왜곡되고 이론화되어가는 과정을 보다 못한 엥겔스가 다시 한 번 이 주제를 다룰 필요성을 느껴 1886년에 새롭게 출판하게 되었다. 


또한 엥겔스는 같은 시기에 잡지 <새로운 시대>의 편집부로부터 포이어바흐에 대한 비평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아 앞의 관념/이론의 비판과 함께 포이어바흐의 비판 역시 같이 수록하기로 결정한다. 이 포이어바흐 비판은 독일 관념론 비판서처럼 과거 마르크스가 미완성 초고로 남긴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마치 성경의 십계명을 연상시키는 아주 간략한 이 글은 우리가 잘 아는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라는 구절로 끝난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은 총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기존의 독일 고전철학에 대한 비판이다. 여기서 엥겔스는 과거 독일을 휘어잡았던 헤겔 철학을 시작으로 독일 관념론의 단점과 오류를 지적한다. 두 번째는 포이어바흐를 향한 비판이다. 엥겔스는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적 입장에 대해선 좋은 평가를 내리지만 그가 여전히 추상적인 부분에 머물러 있음을 지적한다. 세 번째는 변증법을 통한 국가와 사회,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사고 과정을 다루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첫 번째 부분에서 독일 관념론을 비판하면서 궁극적인 철학적 진리란 없다는 주장이었다. 엥겔스는 헤겔이 말한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다"라는 명제를 가지고 변증법적 논리를 펼친다. 겉으로 보면 현실에 순응하라는 것 같지만 엥겔스는 헤겔에게 있어 '현실적'인 것은 '필연성'이라고 덧붙인다. 즉, "현실성은 자기의 전개 과정에서의 필연성임이 입증된다"라는 것이다.


'자기 전개 과정에서의 필연성'이 곧 현실성이다. 그렇기에 현실은 어느 한 가지 진리나 사상에 의해 확립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 '과정'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를 통해 엥겔스는 학문이나 종교에서 말하는 진리란 없다고 말하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궁극적인 것, 신성한 것의 해체가 파격적이면서도 흥미로웠다. 


다음으로는 포이어바흐를 향한 비판이었다. 나는 예전에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과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종교를 철학적으로 비판하는 모습에서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종교의 비밀을 폭로한 것 같았달까?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비판적인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엥겔스와 마르크스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이들 역시 한때 포이어바흐를 추종했으나 나중에 비판적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본 책에서는 그 이유가 적나라하게 나온다.


포이어바흐는 종교의 비밀을 폭로함으로써 인간이 관념이 자연과 세상을 움직인다는 오류를 지적했으며, 오히려 현실(자연)이 인간의 생각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포이어바흐가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덕에만 머물고자 했으며, 사실상 그의 책에는 '현실적 인간'이 보이지 않는다고 맹비판한다. 아마 인간이란 사회적 동물이자 사회적 유산 - 사회의 영향을 잘 받는 존재라고 생각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사회적 현실 대신에 홀로 숲 속에서 은거하며 추상적 인간 - 무한한 사랑을 얘기하는 인간에게 질렸던 것 같다. 너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건지도 모른다. 이 부분은 왠지 훗날 마르크스가 '진정한 사회주의'와 같은 추상적 사랑과 정에만 호소하는 사회주의자들을 비판하는 모습과 겹쳐 보였다.


그 외에도 마지막에 국가와 이데올로기적에 대해서는 국가 권력의 기초란 그 사회의 기득권층에 기인하며, 정치권력 또한 이런 경제적 이해관계에 달려있음을 말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정신이 물질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물질이 정신을 지배한다는 유물론적 사고와도 비슷해 보였다.


결론적으로 보면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은 철학, 종교, 사회, 경제, 그리고 이데올로기에 대한 마르크스, 엥겔스의 관점을 간략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앞서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했지만 마냥 그렇지만 않다. 사실상 이 책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론에만 머물지 말고 현실을 쟁취하라'라고 할 수 있겠다. 세상을 바꾸는 건 너희들의 머릿속 생각에만 있는 게 아니라 사회적 현실에도 있으니, 변화하고 싶다면 앉아만 있지 말고 사회 현실에 적극 참여하라는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 엥겔스의 사상이 전부 맞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런 부분만큼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마르크스 / 엥겔스의 사상을 간략하게 알고 싶은 분, 혹은 최근 포이어바흐의 책을 읽은 사람, 그리고 비슷한 종류의 책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 추천드린다. 


국가가 우리에게 악으로 보이는데도 그것이 계속해서 존속한다면, 정부의 악은 그 악에 상응하는 신민의 악으로써 정당화되며 설명된다. 당시의 프로이센 사람들은 그들에게 합당한 정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 P13

인류 역사에서 현실적이었던 모든 것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비이성적인 것이 된다. 따라서 그것은 규정 자체로 보아 이미 비이성적인 것이며 처음부터 비이성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두뇌 안에 있는 이성적인 모든 것은 그것이 아무리 현존하는 외견상의 현실성과 모순되는 것이라해도 현실적인 것이 될 운명을 지니고 있다. 헤겔 철학이 인간의 사유 및 활동의 결과가 궁극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끝장난 데 있다. - P14

그러니 학문은 이른바 어떤 절대적 진리를 발견함으로써, 더이상 나아갈 수 없다거나, 팔짱을 끼고 이미 획득된 이 절대적 진리를 놀라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되는 지점까지는 결코 이르지 못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정은 철학적 인식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인식과 실천 활동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역사도 인식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완전한 이상적인 상태에서 완결될 수 없다. 완전한 사회, 완전한 ‘국가‘는 환상 속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이어지는 역사적 상태들은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상승하는 인간사회의 끝없는 발전과정의 일시적 단계들일 뿐이다. - P15

변증법 철학은 궁극적 의의를 가지는 절대적 진리와 이에 상응하는 인류의 절대적 상태에 대한 모든 표상을 해체한다. 이 철학 앞에는 궁극적인 것, 절대적인 것, 신성한 것이 아무 것도 성립하지 않는다. - P15

세계사는 더 할 일이 남아 있지 않은데도 계속되어야 한다 - 그러므로 이것은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모순이다. 이렇게 설정된 철학의 과제는 한 사람의 철학자가 수행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 전 인류가 전진적 발전 속에서 수행할 수 있는 것임을 통찰하기만 하면, 우리가 이것을 통찰하기만 하면 지금까지의 의미에서의 철학은 끝난다. 우리는 이러한 방식으로 그리고 개인들이 개별적으로는 도달하지 못할 ‘절대적 진리‘는 내버려두고, 변증법적 방법을 매개로 실증과학의 방법과 그 성과의 총괄에 의하여 도달할 수 있는 상대적 진리를 추구한다. - P20

개별 영혼의 불멸이라는 지루한 상상을 하게 된 것은 종교적 위안의 필요에서가 아니라, 영혼의 존재는 인정하면서도 일반적인 한계 때문에 죽은 후에 그 영혼이 어디로 가버리는지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곤란함 때문이다. - P28

데카르트에서 헤겔에 이르는, 그리고 홉스에서 포이어바흐에 이르는 오랜 기간에 걸쳐 철학자들을 움직여 온 것은 그들이 생각한 것처럼 순수사유의 힘만은 결코 아니었다. 그와는 반대였다. 실제로 그들을 앞으로 밀고간 것은 주로 위력 있고 더욱 더 급속하고 급격한 자연과학과 산업의 발전이었다. - P32

물질은 정신의 산물이 아니며 정신이 물질의 최고 산물일 뿐이다. 우리는 자연 속에서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 속에서도 살고 있고, 인간 사회는 자연 못지않게 발전사와 학문을 가지고 있다. - P38

우리가 지금 그 안에서 생활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 즉 계급대립과 계급지배에 기초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과 교류하면서 순수하게 인간적인 감정을 느낄 가능성이 본래 매우 적다. 우리는 이 감정을 종교라는 높은 자리까지 받들어 올림으로써 이 가능성을 더욱 적게 할 이유는 조금도 없을 것이다. - P47

행복추구는 관념적인 권리만으로는 아주 불충분하며, 그것은 무엇보다도 물질적 수단을 더 많이 요구하지만, 자본주의적 생산은 동등권을 가진 대다수의 개인들이 극빈한 생활을 유지하는 데 극히 필요한 것만을 겨우 가질 수 있도록 하고, 그에따라 자본주의가 일반적으로 행복에 대한 다수의 동등권을 존중한다해도 노예제나 농노제도보다 더 존중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 P53

우리는 항상 모든 획득된 인식의 필연적인 한계, 모든 획득한 인식은 그것이 획득된 상황에 의해서 제약된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다. 지금 진리로 인정되고 있는 것은 지금은 숨어있으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나타날 오류의 측면을 가지고 있으며, 또 그와 꼭 마찬가지로 지금 오류로 인정되고 있는 것도 진리의 측면을 가지고 있으며 그 때문에 이전에 참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었다는 것, 또 필연적인 것이라고 확인되고 있는 것은 순수한 우연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연적인 것이라고 간주되는 것은 필연성이 감추어져 있는 형식이라는 것 등을 알고 있다. - P62

역사의 진행이 어떠하든지 사람들은 자신이 의식적으로 수립한 자신의 목적을 추구함으로써 자신의 역사를 창조하며, 서로 다른 방향으로 활동하는 수많은 의지와 외부세계에 대한 이러한 의지의 다양한 작용의 결과가 바로 역사인 것이다. - P67

불철저함은 관념적인 충동의 힘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만 머무르고 더 나아가서 그러한 충동의 힘을 움직이게 하는 원인을 찾으려 하지 않는 데 있다. - P68

무엇보다도 먼저 경제적 이해관계가 중요했고, 정치적 권력은 이 경제적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수단에 불과하였다는 점도 명료하다. 현대 역사에서는 모든 정치투쟁이 계급투쟁이며, 또한 모든 계급 해방투쟁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형태를 띠기에 결국은 경제적 해방에 달려있다. 여기서 국가, 정치질서는 종속적인 요소이며 시민사회, 경제적 관계들의 영역이 결정적인 요소이다. - P72

대공업과 철도의 시대인 오늘날조차 국가는 전체적으로 볼 때 생산을 지배하는 계급의 경제적 요구를 포괄적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다. - P73

인간에 대한 최초의 이데올로기 권력은 우리에게 국가로 나타난다. 이 기관은 생겨나자마자 사회에 대하여 자립성을 가지게 되며 또 그것이 특정 계급의 기관이 되면 될수록, 이 계급의 지배를 직접적으로 실현하면 할수록 사회에 대한 자립성은 더욱 더 강화된다. 국가는 사회에 대하여 자립적인 권력이 되는 즉시 그 이상의 이데올로기를 낳는다. - P78

인간은 실천 속에서 진리, 즉 현실성과 힘, 자신의 사유의 차안성을 증명해야만한다. 사유 - 실천이 고립된 - 의 현실성이나 비현실성에 관한 논쟁은 순전히 스콜라주의적인 문제이다. - P86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 왔을 뿐이며,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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