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뻬쩨르부르그 연대기 외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28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항재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평점 :
데뷔작인 '가난한 사람들'에 이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초기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중요한 책이다. 후기 작품들과 달리 유토피아 사회주의와 휴머니즘으로 가득한 것이 특징인데, 마치 작중 등장하는 '몽상가'처럼 무수한 생각들의 향연 그 자체였다.
때문에 다소 난해한 작품도 있었지만 천재를 탄생을 예고하는 듯이 훗날 도스토예프스키 특유의 세심한 심리 묘사가 탁월했다. 특히 뻬쩨르부르그의 도시 정경을 정서적, 심리적으로 묘사한 '뻬쩨르부르그 연대기'는 1840년대 러시아인들의 무기력한 삶과 '뻬쪠르부르그'라는 도시적 생활의 불안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훌륭했다.
아무튼, 색다른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나고 싶다면 추천한다!
이렇게 이야기도 하고 토의도 해서 뭔가 사회에 유익한 몇몇 문제들을 해결하고, 서로 상대에게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고 난 다음에는, 모임 전체는 왠지 짜증 나고, 기분 나쁜 허탈한 상태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결국에는 상대방에게 화를 내고, 몇 가지 아픈 사실들이 이야기되고, 몇몇 잔인하고 과장된 인격들의 실체가 폭로되면, 결국 각자 집으로 흩어져 진정을 하게 되고 현실적인 삶의 지혜가 쌓이게 되면 점차적으로 위에서 말한 모임과 흡사해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 P88
뻬째르부르그에서 하품은 감기나 치질, 열병과 같은 병으로, 지금까지도 아무런 치료 방법, 예를 들어 뻬쩨르부르그의 그 어떤 유명한 치료 방법으로도 치유되지 않고 있다. 뻬쩨르부르그는 하품을 하면서 일어나고 하품을 하면서 일을 하고, 하품을 하면서 잠자리에 든다. - P106
나는 뻬쩨르부르그 사람들이 몹시 화를 내고 슬퍼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글을 쓰는 내 마음도 아프게 죄어 온다. 그리고 사람들 모두가 분노의 아련함으로 인해 누구는 남을 험담하며 마음을 달래고, 누구는 아내와 한바탕 싸우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누구는 공문서 처리에 푹 빠져 있고, 누구는 다음 날의 한판 승부를 위해 저녁에 벌이던 카드 놀이를 걷어치우고, 누구는 쓸쓸한 집 구석에서 커피를 끓이려다 주전자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환상적인 물소리에 잠이 들어 버리는 등, 모두가 할 일 없이 각자 집에 처박혀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 P110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아무리 자기와는 상관이 없는데도 어떤 원칙을 내세워 출판 문제에 간섭을 하면서 사회 전체가 도덕성을 상실했다는 둥, 예절을 망각했다는 둥 소리를 지르며 다닌다. - P118
역시 화를 버럭 내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아 세우고 자기는 정직한 사람이자, 존경받는 사람으로, 그 누구도 자기에게 불쾌감을 일으키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겠다고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사람들 중 몇 명은 자신들이 정직하며 점잖은 사람들이라는 말을 너무나 자주 반복해, 마침내는 자신들이 만들어 낸 말을 정말로 진지하게 믿게 되어 혹시라도 누군가가 자신들의 이름을 정중하게 부르지 않으면 이내 격분하게 되었다. - P119
우리는 게으름을 피우면서도 불만과 걱정에 싸여 있고, 우리들의 휴식은 뭔가 조급하고 불안하며, 찡그리고, 불만스러운 동시에 우리는 분석, 비교하며 회의적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며, 우리에게는 늘 끊임없이 계속되는 일상의 자질구레한 문젯거리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질구레한 노동의 의무감으로 삶의 굴레를 점점 졸라매고 있는 듯하며, 그러면서도 우리에게 더 이상 힘도 없고,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쳤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를 두려워한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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