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의 뿌리
이사야 벌린 지음, 석기용 옮김 / 필로소픽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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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시험공부며 일하느라 책 리뷰를 할 시간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이럴 때야말로 책을 읽어야 하는 법!
그렇게해서 읽게 된 이사야 벌린의 ‘낭만주의의 뿌리‘는 독서의 스릴(?)을 더욱 돋구게 한 책이었다.

사실 나는 이사야 벌린에 대해 잘 모른다.
이번에 읽은 ‘낭만주의의 뿌리‘는 내가 읽는 그의 첫 저작이다.
그래서 혹시 내 취향에 맞지 않은 책일까 봐 노심초사했었는데, 편집자의 서문을 읽자마자 ‘잘 골랐다‘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어떤 사상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누군가에게 왜곡되기 쉬우며 제작자의 의도에 벗어나는, 즉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기도 한다는 말. 이것이 이사야 벌린의 주된 생각이라는 편집자의 글은 본 책이 하나의 사상이 맞다고 고집을 부리는 여느 책들과 다르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본문을 들어가 보면 저자인 이사야 벌린 나름의 낭만주의에 대한 정의와 함께 그 유례와 특성들이 쭉 나오는데, 주로 독일 낭만주의자들을 통해 낭만주의를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특히 단순히 감성적이고 히스테리적인 모습에 ‘프랑켄슈타인‘처럼 판타지, 신화를 좋아하는 것으로만 알았던 낭만주의가 사실은 오늘날 21세기에 해당할만한(통용될 만한) 자유와 개성, 의지를 부르짖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고 하나의 대답이 아닌 다양한 대답을 선호했으며, 사회의 질서보다는 개인의 이념과 이상을 이루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고, 정적인 것보다 유동성 있는 것을 추구한 이들은 가히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사야 벌린은 이러한 낭만주의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한다. 그는 낭만주의를 ‘고삐 풀린 망아지‘라고 부르며 낭만주의가 파시즘과 과도한 민족주의를 불러일으켰다고 말한다. 실제로 낭만주의의 흐름을 보면 처음 의도와 달리 점차 변질되어 개인의 의지를 국가의 의지로 통일시키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파시즘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 벌린이 마냥 낭만주의를 비판하지는 않는다.
그는 낭만주의가 기존의 계몽주의에 대표하는 서양의 인식에 큰 변화를 주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나의 대답이 아닌 여러 가지 대답이 존재한다는 것, 내가 믿고 있는 진리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 등이 그렇다. 이 때문에 세계는 드디어 ‘개인‘을 의식했고 이런 인식이 오늘날 21세기의 개인의 자유,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게 만든 시대를 만들었다고 말이다.

아무튼, 다소 생략한 면과 개인적인 생각이 없지 않지만 이사야 벌린의 ‘낭만주의의 뿌리‘는 낭만주의 입문서로 제격인 책이다. (1960년대 했던 강연록이었다는 것도 놀랍다.)

낭만주의에 대해 알고 싶으신 분들, 독일 낭만주의 철학자에 대한 벌린만의 생각을 보고 싶으신 분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책이다.

나는 다른 것은 전혀 아니면서 그저 온전히 낭만주의적이라고만 말할 수 있는 예술가나 사상가나 인물이 있다는 의미에서 이른바 순수한 경우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은근슬쩍 당연히할 의사도 없다. 마치 어떤 사람이, 이를테면 세상의 다른 그 무엇과도 공유하는 성질 없이 온전히 개인적일 수 있다거나, 혹은 본인에게만 고유한 성질 같은 것은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 온전히 사회적일 수 있다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 P23

당신은 그들은 소수가 다수보다 더 신성하며, 무언가 비열하고 저속한 측면이 들어 있는 성공보다는 오히려 실패가 더 고귀하다고 믿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다. 이상주의라고 하는 바로 그 개념은 원칙이나 어떤 신념을 위해 아주 많은 것을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고, 그런 것들을 팔아넘길 준비란 되어 있지 않으며, 자기가 믿고 있는 바를 위해서라면 단지 믿는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어떤 시련이든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의 마음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며,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이상에 헌신할 수 있는 능력과 자발적 의도였다. - P46

중요한 것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이런 가치들에 헌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야말로 비극에 어울리는 영웅들인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속물이고, 부르주아이고, 선하지 않은 사람이며, 글을 쓸 가치도 없는 자이다. - P52

헤르더에게는 모든 것이 기쁨이다.
그는 바빌론에 기뻐하고, 아시리아에 기뻐하고, 인도에서 기뻐하고, 이집트에 기뻐한다. 그는 그리스인을 좋게 생각하고, 중세를 좋게 생각하고, 18세기를 좋게 생각하며, 자신이 속한 시대와 장소를 둘러싼 ‘인접 환경만 빼고‘ 나머지 거의 모든 것을 좋게 생각한다.
헤르더가 싫어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타인에 의해 한 문화가 제거되는 것이다. - P133

끊임없이 스스로를 새롭게 창조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정화하고, 끝없는 자기 변신과 끝없는 자기 창조, 스스로를 창조하는 일에 끊임없이 매달리며 전진, 또 전진하는 예술 작품들의 어떤 전대미문의 드높은 탁월성에 이르고자 열망하는 것이다. - P176

‘많은 가치들이 존재하고 그 가치들이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생각, 다원성과 소진 불가능성과 인간적인 모든 답과 합의의 불완전함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 예술에서 건 인생에서건 완벽하게 참이라 주장되는 그 어떤 답변도 원리상 완벽하거나 참일 수 없다는 생각‘, 우리는 이 모든 생각들을 낭만주의자들에게 빚진 것이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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